2015년 7.17~7.28까지 10박 12일간 알프스 3대영봉(몽블랑 마터호른 융플라우)을 등반 여행한적이 있다
그때 마지막 목적지가 융플라우였다. 9일차에 체르마트 야거호프 호텔에서 조용한 산촌마을 그린델발트로 이동후
피르스트 바흐알프제(2,265m) 호수를 트레킹하고 그린델발트 다운타운 로지에서 1박후 3대영봉 마지막 기착지인
융프라우요흐(3,571m)로 산악열차로 이동하였다. 아이거에 긴동굴을 만들어 융프라우요흐 까지 기차가 연결된다.
이곳은 1936년 4인의 아이거 북벽 원정대중 3명이 자일에 매달려 죽고 마지막 1명은 동굴공사 인부에게 발견되었지만
카러비너에 자일이 얽혀 불과 30m차이로 구조를 못하고 그역시 자일에 매달려 얼어죽은 비운의 현장이다.
나는 그 비운의 현장을 꼭 보고 싶었는데 마침 기차가 아이거북벽을 정면에서 바라볼수있는곳에서
정차했고 동굴통과시에도 아이거 북벽이 보이는 곳에서 잠시 쉬어서 북벽을 잠시나마 바라볼수 있었다
해발고도 3,970m인 아이거의 북벽은 경사가 굉장히 급하고 수직높이만 1800m에 달한다.
아이거북벽의 등반역사는1935년, 독일 팀 2명이 도전했다가 2명다 실패후 사망하였고, 이듬해 1936년 독일 나치의 지원을
받은 등산대원 10명이 다시 도전했다. 이들은 독일인 4명, 오스트리아6명으로 이뤄진 팀이었다. 나치 측에선, 이들이 아이거산을
정복하면 정권선전 목적으로 쓸 예정이었다. 하지만 훈련 도중 1명이 사망하는 일이 일어났고, 악천후가 계속되자 더 이탈하는
사람이 나와 최종적으로 4명만 도전하게 됐다. 4명은 독일팀 안드레아스 힌터스토이서와 토니 쿠르츠, 그리고 오스티리아팀
빌리 앙거러와 에디 라이너였다. 이들은 구름이 어느 정도 걷히자 다시 등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날씨는 더더욱 나빠졌고, 눈에 비,
심지어 산에서 돌덩이들이 또 굴러 떨어졌다. 팀원은 암벽에서 내려가 재정비하기로 했다. 그런데 내려가던 도중 갑자기 눈사태가
일어났다. 눈사태는 내려가던 4명을 그대로 덮쳤다. 힌터스토이서는 그대로 눈사태에 휩쓸려 실종됐고, 앙거러는 떨어지면서 바위에
몸을 부딪혀 사망, 라이너는 밧줄이 횡경막주변을 조이는 바람에 그대로 질식사했다. 쿠르츠 혼자만 살아남았다.
다음 날, 스위스 구조대가 인근 아이거반드 역에서 출동해 이들을 구조하러 나섰다. 구조대은 쿠르츠 혼자 살아남은 채,
남은 두 대원은 줄에 매달려 사망한 걸 발견했다. 남은 쿠르츠라도 구조해야 했지만 눈사태가 언제 또 일어날지 모르는지라
바로 구조할 수도 없었다. 구조대가 하산 후 어떻게 쿠르츠를 구조해야 할지 의논하는 사이 시간이 더 흘렀다.
쿠르츠는 그 사이에 손에 동상을 입었고, 피부가 말 그대로 꽁꽁 얼어붙었다. 위에는 라이너의 시신이, 아래에는 앙거러의 시신이 있는
상황에서, 쿠르츠는 칼로 줄을 잘라 앙거러의 시신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상공에 계속 매달린 상태에서 쿠르츠의 상태마저 악화됐다.
구조대는 쿠르츠가 있는 지점에 도달하고, 그를 묶어서 내려보낼 정도의 줄을 준비해 쿠르즈에게 다가갔으나,
쿠르츠는 "더는 못 버티겠습니다." 라는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사망했다. 힌터스토이서는 이후 시신으로 발견됐다.
결국 아이거 산 정복을 꿈꾸며 떠난 4명 모두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사망한 이들의 시신은 이후 독일팀에서 수습했다.
수습하는 동안 라이너와 쿠르츠의 시신은 몇주간 절벽에 매달려 있었다.
이들이 사망한 지역은 힌터스토이서의 이름을 따 힌터스토이서 트래버스라 부르게 됐다.
1938년 7월 24일, 안데르 헤크마이어와 루트비히 뵈르크, 프리츠 카스파레크, 하인리히 하러로 이뤄진 팀이
다시 도전해 마침내 등정에 성공했다. 유명한 등산복 노스페이스는 아이거 북벽에서 유래한다
첫댓글 나나무스끄리 even now
https://youtu.be/CPs8sX1wT9A?si=iXwd1w28vQmdfwDW
PLAY
<내가 진짜 원하는 것과
내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원하는 것
두 가지만 구분할 줄 알면 훨씬 인생이 풍요로워진다>
어떻게 살아가다 마지막 순간을 맞이해야 하는지
어떤 게 정답인지...
그래도 본인이 원하는 것 하다가
마지막 순간이 온다면 그리 억울하지는 않을 듯요!
반갑습니다
고산등반가들이나 탐험가들은 거의 목숨을 담보로
위험속에서 등반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성공했을때 더 큰 희열을 느낄테고
일반인들은 그들의 삶을 이해하긴 어려울것 같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저도 한때는 매주 산에서 살았는데
이제는 둘레길이나 트레킹위주로 살살 걷고 있습니다
그저 옛날 사진 보며 추억에 잠깁니다
무릎주사도 맞으셨다니 산에 정말 많이 다니셨나 봅니다
쾌유를 빕니다
저도 6개월 마다 연골주사 맞아요 ㅠㅠ
도전이란 단어가 무궁 무진합니다.
수고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산우들과 100대명산과 백두대간
해외명산들을 다닐 때가
제일 행복했던 시절인것 같습니다 ^^
주위에 백대명산 찍은분 계시는데 자부심 하나로도 충분히 행복해하시며 매사에 자신감 가지며 시시더군요 그러분 옆에 계시면 즐겁습니다
감사합니다
함박산님도 산을 좋아하시니
카페에서 함께 소통하는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
여행기 읽고 갑니다.
반갑습니다
이젤님의 스위스 융프라우 여행기를 보고
10년전에 제가 다녀온 산행기를 올려봤습니다
너무 안타깝습니다 아무리 좋아 하는 일이라 해도 보는 저는
이해 못하겠어요 그산님 고맙습니다
저당시에는 지금처럼 일기예보가 발달되지 않았기에
갑작스런 돌풍과 눈보라를 만나 조난당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는 산악인들은 칼날위에 서있는 것처럼
위험이 가득합니다. 늘 응원해주셔서 감사드리고 행복한
저녁보내시기 바랍니다 ^^!
그산님같은 전문적인 산악지식을 가지신 분들이
이러한 글들을 접하면 그 감회가 남다를듯요.
이러한 죽음도 불사하는 도전의식이 있기에
인간의 역사는 꾸준히 발전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듯 하여
절로 숭고(崇高)함에 고개숙여 보는 경건(敬虔)함으로
읽어보며 1번째로 추천(推薦)드립니다., ^&^
삼족오님 반갑습니다
등산을 좋아하다보니 사연이 있는 산에 가면
감회가 새롭습니다. 산이 거기있기에 오른다는 힐러리경의
말대로 산에 모든것을 바친 산악인들의 자취를 보면 경외심이
듭니다. 추천감사드리며 행복한 봄날 보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