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꽃/ 강병로
비 갠 오후,메꽃을 만났습니다.
빗물을 머금은 앳된 모습을 마주한 순간,
까마득히 잊었던 소꿉동무의 재잘거림이 파도처럼 밀려왔지요.
먼 과거로부터 들려오는 달착지근한 목소리.
예닐곱 계집애의 목소리는 당당했습니다.
“여보, 메꽃밥을 먹어야 얼굴이 훤해지고 힘이 세진 답니다.
쌀밥만 찾지 말고 메꽃밥을 드세요”.
100% 지당한 말씀!
소꿉놀이 때마다 아내 되기(?)를 자처했던 그 애는
메꽃의 효능을 어찌 그리 정확히 꿰뚫고 있었을까요.
이제라도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습니다.
메꽃뿌리로 밥 지을 생각을 어떻게 했냐고.
소꿉놀이에 등장했던 ‘메꽃밥’은
중년이 훌쩍 넘은 어느 해 봄
당뇨를 앓던 지인의 부탁과 함께 소환됐습니다.
지인이 그러더군요.
어렸을 때 허기를 달래던 메꽃 뿌리가 당뇨에 특효약이라고.
아 그랬구나.
가난했던 그 소꿉동무는 메꽃밥으로 허기를 채웠겠구나.
자존심이 뭔지도 몰랐던 시절
“메꽃밥이 건강에 좋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던
그 애의 얼굴이 슬프게 다가옵니다.
메꽃!
지금이야 웰빙 식물이지만
보릿고개를 넘던 그 시절엔 목숨 줄을 지켜주던 구황식물이었던 셈입니다.
메꽃이 구황식물로 쓰인 건 오래전부터의 일입니다.
17세기 신속이 저술한 ‘신간구황찰요’에는
“메꽃 뿌리를 쪄서 먹으면 배고픔을 잊을 수 있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후 간행된 ‘증보산림경제’와
‘해동농서’,‘죽교편람’,‘조선증보구황철요’,‘구황지남’ 등에도 같은 기록이 보입니다.
1945년 발행된 ‘조선의 구황식물과 식용법’에는 메꽃의 활용법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어린 순은 데쳐서 나물로 먹고,뿌리줄기는 가루를 내어 떡을 하거나 밥에 넣기, 굽기 등으로.
메꽃이 구황식물에서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기 시작한건 최근의 일입니다.
물론 옛 의서에도 치유와 건강에 대한 기록이 보입니다.
동의보감을 보면 “메꽃은 성질이 따뜻하고 기를 보하며 얼굴빛을 좋게 한다.
소변이 잘 나오게 하고,힘줄과 뼈를 이어준다”고 했습니다.
현대 의학에서도 이 같은 설명은 그대로 적용됩니다.
메꽃으로 당뇨병과 혈압,소화불량을 치료할 수 있고 자양강장제와 이뇨제로 쓰인다고 설명합니다.
6~7월 들녘엔 메꽃이 한창입니다.보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될 듯합니다.아련한 옛 추억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