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청화백자에 피다 / 변종호
몇 세기를 뛰어넘은 침묵의 세월이 읽힌다. 흠도 실선조차 없는 유백색의 깔밋한 청화백자가 유혹한다. 명문인 관요 태생으로 궁궐의 어느 곳에 머물며 어떻게 쓰였는지 알 수 없으나 온전한 상태로 귀한 대우를 받는 상팔자이다.
진귀한 고미술품을 청주에서 감상할 기회라 염치없이 초대에 응했다. 타이틀은 “어느 수집가의 초대” 국보와 보물급 문화재가 즐비한 특별전에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흥선 대원군의 ‘괴석과 난초’, 국보 청화백자각병, 상감청자 풀꽃갈대무늬매병 등 많은 예술품이 전시되었다.
유명세를 치르는 인왕제색도는 관람객이 줄지어 서 있다. 실물 전시와 디지털영상으로 소개하니 이해가 쉬웠다. 사실, 소중한 문화재가 밀반출돼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는 게 얼마나 많은가,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만 해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도서 번호 109번, 기증 번호 9832라는 수인을 달고 망향가를 부르지 않던가. 이런 맥락에서 보면 수많은 고미술품을 소장했다 국가에 기증한 기업인에 무한 존경심이 들었다.
전시장을 둘러보다 한 공간에서 붙박이가 되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빼어났다. 가치를 꿰뚫는 전문가에 의해 이미 보물로 지정된 청화백자이다. 고열을 견디느라 생기는 빙렬조차 없는 백자에 코발트 안료로 농담을 가한 문양에 정신을 빼앗겼다. 화선지도 아닌 둥근 도자기에 어쩜 저리도 잘 나타냈는지 절로 감탄이 나왔다.
해설을 보면 조선 후기 18세기에 만들어진 ‘청화백자 산수무늬병’이란다. 바탕은 푸른 안료로 군데군데 찍어 잔잔히 이는 물결을 표현했고 가늘고 긴 삿대로 힘차게 호수를 밀치느라 휜 듯한 사공의 역동적인 모습과 뱃머리에 앉아 호수의 절경을 조망하는 사람이 보인다. 문양의 백미는 위에서 비스듬히 아래로 힘차게 그은 삿대이며 마치 대원군이 강한 필치로 비틀리며 꼬인 난 이파리를 친 형상과 같았다.
몸통에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한 문양이 돋보였다. 가만히 들여다보자니 삿대로 호수를 가르는 사공의 구성진 뱃노래도 들리는 듯했다. 나룻배 위는 해무에 가려진 듯한 산봉우리가 절묘했고 그 옆은 절벽 위에 누각과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도 예사롭지 않았다, 휘영청 뜬 만월과 산봉우리를 배경으로 삼은 걸 보면 동정호가 크기가 가늠되었고 떠가는 나룻배와 정박한 평화로운 풍경은 여백의 조화로 극치를 이뤘다.
수많은 도자기를 봤으나 ‘동정추월’의 문양은 처음이다. 아름답고 희귀했기에 보물로 지정되지 않았겠나. 일반 주병처럼 생겼으나 굽이 낮고 주둥이가 올라가면서 점차 밖으로 벌어진 형상이다. 청화로 그려진 문양은 많은 조선 사람이 흠모하던 중국 후난성의 동정호란다. 교교히 달빛이 흐르는 동정호에 뜬 가을 달 풍경인 <동정추월>은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소상팔경 중 하나다. 누가 만들었고 그렸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이력처럼 밑굽에 둘린 푸른 테를 보면 궁중에서 필요한 관요를 굽던 경기도 광주 분원 태생으로 문양의 정교함으로 보면 도화서 화원畵員으로 추정된다.
보석이나 미술품의 가치 기준은 미美와 희귀성이다. 그런 측면에서 도자기는 완벽한 균형미를 갖춰야 하고 흠이 없고 깨끗해야 하며 문양도 조화를 이뤄야 한다. 문양을 새기는 화원의 솜씨는 상세한 묘사와 붓과 먹을 얼마나 잘 다루는가의 필력으로 평가된다, 이런 조건이라면 청화백자 산수무늬병의 문양을 새긴 화원의 솜씨는 최상급으로 평가되지 않을까.
한동안 도자기를 바라보자니 청소년 시절의 내가 보였다. 학창 시절, 미술은 제일 피하고 싶은 과목이었다. 소질 여부를 떠나 궁핍한 살림으로 준비물 마련이 어려웠다. 매번 미술 시간이면 잊어버렸노라 거짓말을 했고 선생님은 한 시간 내내 벌을 세웠다. 그것도 한이 되었는지 반세기를 팽개쳤던 그림에 관심이 생기면서 미술관을 자주 찾으면서 안목을 조금 키우고 나니 그림을 그리고 싶다. 청주에는 2,000여 명의 희망 얼굴을 멋지게 칭찬 캐리커처로 그려주며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감초 교장의 영향도 크다.
박물관을 나서는 길, 충격을 안긴 청화백자의 감동이 생생하다. 한동안 가슴앓이를 할 듯싶다. 이십여 년 가까이 글을 썼지만, 청화백자를 보고 나니 글 쓰는 게 더 아득하게 느껴진다. 이런 감동을 주는 글 한 편 쓰고 싶지만, 그 또한 욕심이 아닌가.
보물 지정이 거저 될 일이 만무다. 달관한 도공과 화원이 흘린 땀이 유약처럼 도자기에 발라지지 않았을까. 차지게 다진 백자토로 물레에서 형상을 갖추고 화원이 문양 그려 넣고 유약을 발라 장작으로 가마 온도를 맞추느라 몇 날 며칠 갈개잠을 자던 도공의 염원으로 태어난 것이다.
보물로 지정된 공은 도공보다 화원에게 돌리고 싶다. 어떤 사람이었을까. 세심한 붓놀림으로 봐서는 내성적인 성격에 아담한 키, 갸름하고 곱상한 얼굴, 짙은 눈썹에 가늘고 긴 손가락을 가졌지만, 대찬 기운도 있지 않았겠나. 이만큼 살아보니 알겠다. 세상은 간절히 원한다고 모두 이뤄지는 건 아니라는 것을, 가고 싶었으나 갈 수 없었던 화원은 뱃머리에 앉아 동정호의 풍광을 만끽하는 자신을 백자에 그려 넣으면서 청화백자에 꿈이 활짝 피어난 셈이다.
꿈을 이룬 화원이 부러웠을까, 그날 대청호 변을 혼자 오래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