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기100.3.14. 토요법회
<일타원 이명희 교무님 (독일 쾰른교당) 설법>
반갑습니다.
저는 독일 퀼른교당에서 원불교 선 센터를 개척하고 있는지 9년째에 들어섰습니다.
안암교당에서 소중한 인연들과 함께 하게 되어 대단히 반갑습니다. 저는 종로교당 청년회 활동을 했었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네요.
쉬운 이야기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예전에 어느 나라에 임금님이 국민들에게 특별한 과제를 내렸습니다. 모든 가정마다 꽃씨를 나누어주고는, “꽃씨를 심어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운 사람에게는 아주 큰 상을 내리겠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가정마다 꽃씨가 배달되었습니다. 난리가 났죠. 싹이 날 때가 되고, 잎이 날 때가 되고, 꽃이 날 때가 되자 모든 가정마다 꽃에 대해서만 훈훈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1년 뒤 임금님이 전국에서 각자 키운 꽃을 갖고 오도록 했습니다. 아름다운 화분이 왕궁을 가득 채웠습니다.
임금님은 국민들이 가져온 화분을 하나하나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구석에서 훌쩍훌쩍 울고 있는 남매를 발견했습니다.
임금님이 물었습니다.
“너희들은 왜 울고 있느냐? 너희들 화분은 어디 있느냐?”
남매가 답했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저희도 명령하신대로 정성을 다해 꽃을 키웠는데, 저희들 꽃씨는 싹이 트지 않았습니다.”
임금님이 말했습니다.
“여기를 보아라. 이 아이들이야 말로 내가 원하는 꽃을 피운 아이들이다.”
임금님이 준 씨앗은 사실, 쇠로 만든 씨앗이었습니다. 물을 아무리 줘도, 꽃이 필 수 없는 씨였습니다.
국민들은 받은 씨앗에서 꽃이 피지 않자, 다른 씨앗을 저마다 구해서 꽃을 피웠던 것입니다. 다른 주민들은 진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라에 거짓말이 횡횡하니까, 민심을 바로잡기 위해서 임금님께서 내놓으신 해결책이었습니다.
원불교가 100년을 맞이했습니다. 원기 100년을 맞이하며 이 이야기가 새롭게 떠올랐습니다.
퀼른 교당에서, 한국에서 가져온 씨앗을 키우려 여러 노력을 합니다. 감자도 심어보고 호박도 심어봅니다.
한국종자가 독일에서 싹 트기가 쉽지 않죠. 몇 년에 거친 노력 끝에 겨우 성공하기도 합니다. 싹트기 실패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몇 년 전에는 어느 교무님이 연꽃 씨앗을 주셨어요. 쾰른교당에서 큰 꿈을 갖고 씨앗을 심었는데, 싹이 안 났어요. 포기했죠. 그런데 2년이 지난 어느 날 연못에서 하얀 실 같은 것이 올라왔습니다. 연꽃이 싹이 난 거예요. 조금씩 잎이 커지면서, 손바닥만한 잎을 키울 정도로 자랐습니다.
무척 기뻤지요. 연꽃가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어서 기쁘기도 했지만, 연꽃이 싹을 틔우면 그 연못이 썩지 않을 수 있어서 기쁘기도 했습니다. 연못의 자정능력은 대단하거든요.
제가 왜 이런 이야기들을 들려드렸을까요?
원불교가 100년이라는 세월을 어렵게 왔습니다. 원불교가 그렇게 재밌게 느껴지는 종교는 사실 아니지요. 원불교는 쇠로 만든 씨앗에다가 물을 주는 공부 같아요. 그렇게 100년동안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정성을 들였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 겨울에 수도원 주변을 산책하다가, 농부 아저씨가 소를 몰고 밭을 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추운 날, 울퉁불퉁한 흙덩어리에다가 공을 들이는 농부의 마음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저런 일은 흙의 힘을 알고 있는 농부만이 할 수 있는 정성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마음도 겨울의 흙과 같습니다. 보이지도 않고요, 어떤 증거가 나타나지도 않지만, 여러분들께서는 마음에다가 물을 주고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때로는 의심을 갖기도 하고 회의감이 들기도 해서 물러났다가도,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면서, 그렇게 100년을 맞이했습니다.
그렇게, 탄탄하게 굳은 땅에서 가느다란 실처럼 원불교가 일어났습니다. 어렵게 싹을 틔운 연꽃이 연못을 맑히듯이, 어렵게 올라온 원불교가 세상을 맑힐 것이라 생각합니다.
독일에는 불교가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다른 종교들은 큰 전쟁들을 일으켰지만, 불교는 전쟁을 일으킨 적이 없다해서, 독일인들이 불교를 좋게 봅니다.
여러 불교가 있습니다. 티벳 불교, 일본 불교, 베트남 불교, 스리랑카 불교 등등 많습니다. 한국불교도 있습니다. 제가 그런 불교들을 보면서, ‘불교들이 별로 변하지를 않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티벳 불교는 샤머니즘적 요소가 있고, 일본 불교는 화두 연마 위주이고, 동남아 쪽 불교는 계문 지키는 쪽 위주이고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사람들을 포용해서, 세상을 평화롭게 하기 위해서는 불교가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준비된 불교가 많지는 않겠다 싶었습니다.
우리 원불교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준비된 불교로서 굉장히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노력을 많이 해야겠지요.
독일에서 소중한 일원의 종자를 키우고 싹을 틔우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저는 매일 '절벽에서 뛴다'는 마음으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절벽에서 뛴다’는 불교 말이 무슨 의미일까요? 타고간 땟목을 버린다는 의미입니다. 땟목은 불법입니다. 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소중한 가르침들입니다. 그런 가르침들을 우리가 다 익힌 다음에는 무얼 해야겠습니까? 실천해야지요.
‘절벽에서 뛴다’는 말은 실천의 순간에서 모든 가진 것을 놓아야한다는 의미입니다.
실천 사례 하나를 말씀 드릴게요.
제가 독일 퀼른교당에서 원불교 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지요. 독일에 처음 가서, 교당 주변을 산책하다가 어느 한 사람을 만났어요. 그분과 함께 선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제법 모였어요.
그런데 1년 쯤 지나자, 갑자기 겁이 나더라고요. 지금 모인 사람들이 떠나버리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해결책이, 선 프로그램에 오신 분들을 업그레이드 시켜 드려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득이 있어야지만 계속해서 찾아오실 것 아니겠습니까?
세미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교도가 되신 분께 말씀을 드리니까, 황당해 하세요. 제가 독일어를 잘하지 못하니까요. 어떻게 하실 거냐고 물으시기에, “강의를 먼저 하고, 분반토론을 한 다음, 종합토론을 하겠다”고 했죠. 그분이 해보자고 해서, 광고를 했죠. 세미나 하기로 한 날이 다가 왔습니다.
세미나 하기로 한 날, 독일인 9명이 오셨습니다. 팔짱 끼고 앉아계시더라고요.
제가 그때까지 세미나를 준비할 수가 없었어요. 한글로 된 교전 열심히 읽고, 독일어교전 좀 읽고, 독일어로 문장 2줄 쓴 게 다입니다.
9명 앞에 서긴 섰는데, 절벽이었지요. 유성펜을 들고 강의를 시작했는데, 그때부턴 제 힘이 아니었어요. 선(禪)을 한자로 썼습니다. 한문을 풀이해서, 선(禪)은 보일 시(示), 홑 단(單)에 합쳐진 글자인데, ‘하나 자리를 본다’는 뜻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어찌되었든 한 시간 강의를 했어요.
신기하게도, 알아들으시는 것 같더라고요. 3명 씩 조별토론을 20분간 시킨 다음에, 대표를 뽑아서 종합토론을 시켰지요.
절벽에서 뛰었는데, 결국 된 거죠.
그런 모험을 너무 자주해서는 안됩니다. 그렇지만, 뛰어내려야할 때는 뛰어야하거든요.
그런 식으로 세미나를 몇 번 더 했습니다. 종법사님, 상사님도 오셔서 세미나 해주시기도 했고요. 이제껏 세미나를 11번 했네요. 이렇게 일원의 종자를 뿌리 내리고 다져가고 있습니다.
최근에 했던 세미나는 ‘무시선법’이에요. 하루 3시간 씩 3일간, 무시선법에 대해 세미나 했습니다.
최근에는 세미나를 했어요 여러분도 동계훈련을 하시죠. 저희는 비슷하게 3일을 하는데 하루에 3시간씩 이번엔 무시선법으로 했습니다.
먼저 제 경험을 말씀드렸어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의문을 가졌던 적이 있어요. 반대말에 대해 많이 배웠던 시기였는데, 어느날 문득, ‘반대가 도대체 뭐지?’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남자의 반대가 왜 여자이지?’, ‘아이의 반대가 왜 어른이지?’, ‘동쪽의 반대는 왜 서쪽이지?’.
남자도 여자도 사람이라는 점에서 공통되지요. 다른 부분보다 같은 부분이 더 많은데, 왜 반대라고 말할까요?
우리들이 차이가 나는 부분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공유되는 부분이 훨씬 많은데도, 차이나는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지요. 차이나는 부분은 달팽이 뿔처럼 작은 데도요. 작은 데 주착해서 분별을 합니다. 작은 차이 때문에 다투고, 전쟁도 합니다.
작은 차이가 아니라, 많은 공유점들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성품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어요.
감정에 지배되어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감정은 달팽이 뿔 중에서도 아주 작은 부분인데, 우리가 감정에 지배되어 삽니다. 감정 때문에 전쟁이 나기도 합니다.
저 또한 오랫동안 감정이 소중하다고 생각했었다고 말씀드리니까, 세미나 오셨던 독인인분들이 좋아하시더라고요.(웃음) 감정이 저를 책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생각이나 이데올로기도 만찬가지겠지요. 그런 것들이 우리를 책임지지 않아요. 그렇지만 우리는 감정이나 생각이 나의 존재 자체라고 생각해서 집착하지요.
진정한 정체성은 작은 달팽이 뿔에서 찾으면 안 됩니다. 공유되는 큰 부분에서 찾아야 합니다. 우리 성품입니다.
감정도 없는 인간이 되자는 뜻은 아니지요. 감정은 자연스레 일어납니다. 다만, 감정이 날 때, ‘한 호흡’만 멈추자는 것이지요. 한 호흡만 멈추면 감정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한 호흡 멈추는 것이 선(禪)이고,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습관이 들 때, 우리의 삶이 바뀝니다.
독일에는 선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선에 대한 서적도 많아요. 그렇지만 실제로 선을 하는 사람은 그보다는 적습니다. 선에 대해서 수십년간 책을 읽으셨지만, 실제로 선을 해본 적은 없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독일에 갔을 때 제게 주어진 첫째 과제는, 선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퀼른교당에서 1시간 반 동안 선을 하게 하고, 30분간 차를 마시는 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선을 하고 나면 본인들이 느낍니다. 안정이 된다는 느낌을 스스로 알고요, 그 느낌이 좋아서 또 오십니다.
우리 원불교 선법이 대단한 것입니다. 원불교 선법을 오랫동안 순수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 팔만대장경 읽는 것보다도 훨씬 더 낫습니다.
대종사님께서 사반공배(事半功倍)라 하셨습니다. 노력은 적게 들이지만 결과는 배라는 뜻이지요. 무시선법이나 일원상 서원문 하나를 오래오래 마음에 가져보세요. 하루종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시간 날 때 잠깐잠깐 보는 식으로 오래 하시고, 교무님 지도를 계속 따르시다보면, 탄탄한 실력과 인격을 갖추게 되십니다.
선 프로그램은 유료로 진행되고 있어요. 저희가 돈이 많지 않으니까요. 유료로 선 프로그램을 하면서, 신심을 키워내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외교화에 나선 저희가 잘해야겠지요. 저희는 대종사님의 대행이에요.
저희가 온전하게 생각해서 취사하는 모습들을 보이고, 저희 때문에 지역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면, 지역 사람들이 저희에 대해 다른 생각들을 갖게 되겠지요. 대종사님 같은 광채를 처음부터 낼 수는 없겠지만, 대종사님 법을 실행해가는 모습을 보이면, 지역주민들이 우리에 대해 신뢰를 갖게 합니다.
최근 세미나에서 3일 전참하신 분이 5명이고, 2일씩 오신 분들이 8명입니다. 세미나가 정례화 되고 있고요, 수료증을 주면서 계속하다보면 독일의 명실공히한 불교센터로 자리 잡지 않을까 싶습니다.
독일 퀼른교당에서 정식으로 법명을 가지신 분은 5명이지만, 반쯤 교도이신 분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행사하면 그런 분들이 다들 나서서 도와주세요.
1월 1일 신정절 때, 제가 아무도 초대를 안했었어요. 조촐히 신정절을 기념할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초인종이 울려서 나가보니까, 8명이 신정절을 함께 기념하겠다고 오신 겁니다. 그때 제가 얼마나 기쁘던지요.
내년 원불교 백주년 행사에는 자신도 한국에 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세요. 내년에 그분들과 함께 한국에 올 것 같습니다.
퀼른교당에서 한국인 유학생들을 받고 있는데요. 여기 오시는 독일 분들은 다른 독일인들과는 좀 다르지요. 훨씬 더 따뜻하시고 정감 있으시지요. 퀼른교당 오시게 되면 이런 분들과도 교류하면서 더욱 좋게 공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본 설법과 질의응답을 재구성해서 작성했습니다.
초벌해주신 남궁부 교우님 감사합니다 +_+
업로드가 늦어 죄송합니다 ㅠㅠ
우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