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보다 하얗게.
아이보다 순수하게.
雪라벌 기행2. 월성, 동궁과 월지(안압지),
황룡사터, 분황사
월성중학교 3학년 3반 김민욱
많이 걸을 걸 예상하긴 했지만, 영 불안하다. 교동마을에서 월성으로 향한다. 월성은 봄에 벚꽃이 핀 듯 하얗게 물들었다. 게다가 중간은 사람들이 잘 안 다녀서 숫눈이 환상적으로 깔렸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숫눈. 밟기가 미안해 질정도다. 그저 이렇게 있다가 녹아주기를.
(월성으로.)
(새하얗게 변한 천 년 왕궁.)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이다.)
(석빙고.)
(하얗다... ...)
(월성과 해자.)
길을 건너 동궁과 월지(안압지)로 향한다. 명칭이 바뀐 지 꽤 됐건만 아직도 안압지란 말이 익숙한 곳이다. 월지에는 많은 사람이 사진을 찍기 위해서, 또는 그저 이 눈을 만끽하기 위해서 왔다. 여름이나 가을에 보는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월지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재밌는 건, 눈무게 때문에 월지 뒤편은 나무들이 축 처져서 완전히 허리를 숙이고 가도 나뭇가지들이 우산을 스친다. 멋있긴 한데 눈 좀 털어주지. 저러다 부러질 것만 같다.
(눈 내린 동궁과 월지.)
(한옥은 눈이 내렸을 때 아름다움의 절정을 맞는다.)
(여긴 경주가 아닌 것 같다.)
(누군가의 귀여운 눈사람.)
(그저 말없이...)
(... ...)
(눈 때문에 본의 아니게 터널 역할을 해주는 대나무들.)
(천국이나 극락이 있다면 이런 곳일 것이다.)
월지에서 남산을 갈지, 황룡사터를 갈지 고민한다. 원래 둘 다 가려 했으나 시간상 안 될 것 같아 날씨도 그렇고 남산은 나중에 눈발이 약해지면 가기로 하고 황룡사터로 향한다.
항상 자전거를 타고 다녀서 그런지 걸어서 가니 조금 멀게 느껴진다. 게다가 황룡사 마루 길은 눈을 안 치워서 길을 만들다시피 해서 간다. 덕분에 남들 안 밟아본 눈을 처음 밟아서 기분은 좋지만. 그렇게 걷고 걸어서 황룡사터 앞에 있는 서편사터에 도착한다. 정강이까지 오는 눈을 해치며 다가간다. 주변에 아무도 눈을 밟지 않아 온통 숫눈 투성이다. 힘들지만, 날아갈 듯한 기분이다.
(황룡사터 가는 길.)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황룡사터 서편사터.)
황룡사터 서편사터를 지나 황룡사터로 들어가자 할 말이 없어진다. 하얗다는 표현은 너무 아쉽다. 뭐라고 해야 하지... ... 이 깨끗한 세상을! 천국이나 극락이 있다면 이런 세상이 분명할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마지막 세상. 수천 평이 넘는 곳이 그 누구의 손도 가지 않은 채 하얗게 물들었다. 목탑 터의 심초석을 보러 올라가는데 눈 밟기가 정말 미안해진다. 이런 장면을 만들어준 하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황룡사터 목탑 터 심초석.)
(세상 그 어디에도 없을 그런 곳. 천국이나 극락이 있다면 이런 곳일 것이다.)
(와... ...)
풍경도 환상적이고 모든 것이 다 아름다운 곳인 건 틀림없다. 지금까지 본 설경 중 가장 아름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평지라 그런지 바람이 장난 아니다. 눈보라가 몰아칠 줄이야. 게다가 눈이 너무 하얘서 깊이를 알 수 없어 비탈이나 높낮이가 다른 곳을 실수로 밟아 미끄러지거나 넘어지기 일쑤다. 보기엔 천국인데 있으니 지옥이다. 추운 날씨를 잊기 위해 김광석 노래를 크게 부르기도 한다. 기쁨도 잠시 빨리 분황사로 가고 싶을 뿐이다.
(금당 터에서 바라본 목탑 터.)
(황룡사터.)
(황룡사터 우물.)
(구황동 당간지주.)
(황룡사터에서 본 분황사. 노래 부르며 오니 몇몇 분들이 날 쳐다본다.)
분황사 안으로 들어가니 입구부터 여러 사람이 삼각대를 설치하고 좋은 각도를 만드느라 바쁘시다. 새하얀 눈이 지붕돌이 되어 아름답게 빛나는 분황사 모전석탑. 정말 곱고 아름답다. 보광전을 거쳐 분황사를 가장 멋지게 바라볼 수 있는 곳 중 하나인 보광전 앞터 뒤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가 사리탑과 반쯤 묻힌 불상을 본다. 다들 눈이 도톰하게 쌓인 게 여간 사랑스러운 게 아니다. 말없이 경내를 본 후 조용히 나온다.
(아름다운 분황사 모전석탑.)
(하얗게 변한 분황사 석조물.)
(옥 가락지처럼 예쁘게 쌓인 분황사 석정 설경.)
(언제나 그 자리에... ...)
(정면에서 본 분황사 모전석탑.)
(분황사 전체모습.)
시내권은 이제 어느 정도 답사가 끝났다. 사진기가 없어 휴대폰으로 찍은 게 많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나 아름답다. 눈을 내려준 하늘에게 또 한 번 감사 드린다.
푹푹 파이는 길을 걸으며 낭산으로 향한다.
-여정- (2014. 2. 10. 月)
---------→ 월성 입구→ 월성→ 석빙고→ 동궁과 월지→ 황룡사 마루 길→ 황룡사터 서편사터→ 황룡사터→→ 분황사---------→ (3부에서 계속)
(雪라벌 기행1. 대릉원, 계림, 교동마을: http://cafe.daum.net/sanjoa035/4a0U/685)
(雪라벌 기행3. 낭산: http://cafe.daum.net/sanjoa035/4a0U/687)
(雪라벌 기행4. 황성공원: http://cafe.daum.net/sanjoa035/4a0U/688)
(雪라벌 기행5. 남산 삼릉계곡: http://cafe.daum.net/sanjoa035/4a0U/689)
(雪라벌 기행6. 불국사 석굴암: http://cafe.daum.net/sanjoa035/4a0U/690)
(雪라벌 기행7. 경주 구시가지: http://cafe.daum.net/sanjoa035/4a0U/691)
(雪라벌 기행8. 옥산서원, 독락당: http://cafe.daum.net/sanjoa035/4a0U/692)
새롭게 펼쳐라!
羅新
첫댓글 설국이 따로 없구나.
눈내린 안압지가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것 같네.
정말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