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끄럽게도 그림 그리는 것만으로도 이 사회에 충분한 봉사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본래 그림은 나누어 가지는 것이긴 하지만 이 엄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선 어쩔 수 없이 그림을 그냥 줄 수는 없다고 믿어왔다. 그림으로 먹고 살아가야 하니까 말이다.(가끔 그림을 여기저기 줬지만 그것들은 매우 사소한 것으로 이렇다 하게 내세울 만한 일은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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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녹색병원에 처음 그림을 갖다 걸게 된 것도 응당의 대가를 받는 것으로 시작된 일이다. 그러나 병원의 재정상의 사정으로 일이 여의치 않게 되었다. 그래서 병원 건물의 엘리베이터 탑에 벽화를 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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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워지면 길이 생기는 것인가. 나는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병원 내부에는 그림 한 점 없이 외벽에만 큰 벽화가 덩그라니 붙어 있는 병원의 모습은 너무나 부조화스런 것이 아닌가? 아무래도 이런 표현이 맞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나는 안팍의 구색 맞추기로 실내에도 몇 점의 그림을 걸기로 하였다. 이 큰 병원에 20여 점의 그림은 거의 흔적도 없어 보였다. 나는 내심 약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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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병원 전체를 그림으로 채워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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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나는 내가 마치 자기부상이나 하듯이 알 수 없는 기운에 의해 엄청난 황홀감에 휩싸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전신에 소름이 쫙 끼쳐지면서 어떤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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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도 한번은 사람다운 일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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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무보수의 일을 해보자. 신작을 그리면 우선적으로 병원에 먼저 갖다 걸자. 하나 둘 하다 보면 언젠가는 병원 전체를 그림으로 채울 수 있겠지. 넘치면 바꿔 걸고 마음에 안차면 새로 그려 걸자. 개인전을 꼭 미술관이나 화랑에서 하라는 법이 있는가. 개인전을 아예 병원에서 하자. 몇 번의 개인전을 하다 보면 어느새 병원은 미술관이 되겠지. 나는 양길승 원장에게 그래도 되겠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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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그러면 녹색병원이 임옥상 화백 개인 미술관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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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진녹색병원과의 만남은 나에게 있어 미술을 전혀 새롭게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예술의 기능 중 치유의 기능을 우리는 전혀 무시해 왔다. 그러나 예술에 있어 치유성 이야말로 예술을 예술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병원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 병원임을 잊고, 나아가 병까지 잊고 건강한 사람들처럼 건강한 감성으로 아름다움을 느끼고, 즐길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면 한 화가로서 그 이상의 보람과 행복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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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진녹색병원의 탄생을 나는 누구보다도 축복하고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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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동적인 말씀이네요. 치유로써의 예술! 훌륭한 일을 하시는 한바람님을 존경합니다. 내일 그 곳에서 콘서트가 있다고 들었는데 갈수있도록 노력하지요.
네,,예술가로서 응당의댓가를 바라는 것은 열심으로일한사람의노동의결실그이상의것인데,,그것을 이해하는 대중은 많지않지요,그래서실력있는가난한예술가가많구요...하지만,,선생님말씀처럼 이제는대중에게 먼저다가설수있어야한다고생각되네요...자기만족이아닌...
내친 김에 녹색병원에서 이번에 '임옥상 미술제'를 열거나 매년 정기적으로 여는 것은 어떨까요?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봉사의 뒤안길에 진달래꽃잎 뿌려주시는 한 여인이 있다는 사실...............................희경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