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은 “에헤제케엘”, “하나님이 강하게 하신다 또는 하나님이 힘을 주신다”라는 의미입니다. 왜 이런 의미의 이름을 가졌을까요? 에스겔은 유다왕 요시야시대 성전에서 율법책이 발견되기 1년 전에 출생합니다. 에스겔은 요시야의 종교개혁을 10대 때 경험했을 것입니다. 앗수르, 애굽, 바벨론 강대국으로 인해 나라가 점점 망해 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예레미야 사역에 대해서 들었고 알았을 것입니다.
바벨론은 남유다를 3차 침공합니다. 기원전 605년에 1차 침공합니다. 이때 다니엘이 포로로 끌려갑니다. 기원전 597년에 2차 침공합니다. 이때 에스겔이 포로로 끌려갑니다. 기원전 586년에 3차 침공합니다. 이때 남유다가 멸망합니다.
에스겔 1:1절을 보면 “서른째 해”라고 말씀합니다. 25세에 2차 포로로 끌려가고 5년 뒤, 그의 나이 30세에 선지자(파수꾼)로 부름을 받고, 예언을 받고, 그리고 예언자로 활동합니다. 민수기 3:4절을 보면 제사장으로 시작하는 나이가 30세입니다. 에스겔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왔기에 제사장 사역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에스겔서를 보면 자신을 제사장으로 소개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암울한 가운데(에스겔 1:1절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가지었던 그의 정체성입니다.
이런 에스겔에게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회복이라는 주제로 두 가지의 환상을 보게 하십니다. 하나는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의 환상입니다. 다른 하나는 보좌에서 흘러내리는 생명의 강의 환상입니다.
에스겔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에 대한 잘못된 성전 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전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결코 성전이 무너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전만 있으면 살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습니다(에스겔 10:18). 성전이 무너졌습니다. 나라가 멸망했습니다.
하나님은 본문에서 에스겔에게 예루살렘 멸망 13년 후에 새로운 성전의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에스겔이 50세 때 새로운 성전의 환상을 보게 됩니다(에스겔 40:1). 그런데 이 성전은 실제로 존재하는 성전이 아닙니다. 여기에 나오는 수치들로 만들어진 성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성전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성전이 무너진 자리에 다시 세우고자 하는 새로운 성전은 새 예루살렘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요한계시록 21:9~27절을 보면 새 하늘 새 땅 전체가 지성소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에덴에서는 하나님이 왔다가 떠납니다. 지성소에서는 하나님이 왔지만, 그 앞에 백성이 나아갈 수 없습니다. 대제사장만 1년에 한 번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새 하늘과 새 땅은 전체가 지성소이기에 언제든, 누구든, 어느 곳이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그분과 깊은 사귐과 교제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전이십니다(요한계시록 21:3, 22).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요한복음 14:23절).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집이 아닙니다. 건물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과 교제입니다. 에베소서 2:21~22절을 보면 오늘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완성되기 이전에는 “건축 중인 교회(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지어지는 성전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 설계도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신자의 특권이요 영광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인 완성인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존귀와 영광 가운데 함께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 1~2절, 8절을 보면 성전의 문지방 밑에서 생명의 강이 흘러나오는데, 그 방향이 어디입니까? 동쪽입니다. 왜 동쪽입니까? 동쪽에는 사해가 있습니다. 죽은 바다입니다. 죽은 바다에 흘러가 살립니다. “죽었다”라는 말은 지금 이스라엘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곳에 흘러가 살립니다.
본문 3~5절을 보면 점진적으로 차오르는 생명수를 말씀합니다. 이것은 성령에 대한 은유입니다(요한복음 4장, 7장). 발목, 무릎, 허리까지 차면 우리의 힘과 의지가 작동합니다. 하지만 가득 차면 우리의 힘, 의지로 작동하지 못합니다. 모든 주도권이 나에게 있지 않습니다. 모든 주도권이 하나님에게만 있게 됩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교회는 하나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수를 받아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관개용수입니다. 관개는 농작물의 재배 등을 위해 농경지에 인위적으로 물을 공급하는 것을 말하며, 이때 사용되는 물이 관개용수입니다. 농작물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물을 공급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특히 그 지역의 강수량이 부족한 경우 관개가 꼭 필요합니다.
죽음의 세력이 지배하는 세상, 곧 사막화가 진행되는 세상을 향해, 그리고 그것에 맞서 사막화를 극복하는 생명의 관개용수 활동이 교회의 숭고한 사명입니다. 생명의 원천이면서, 관개용수이면서, 우리의 힘과 의지가 아닌 그분의 주도권으로 살리시는 영, 예수님, 그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해 회복이 일어나는 역사가 저와 여러분 가운데, 교회 가운데 차고 넘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