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레라고 하면 잊을 수 없는 실패담이 생각납니다.
그러니까 제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그 옛날에 뉴슈가로 유명한 오뚜기라는 회사에서
처음으로 카레라는 신기한 것을 만들어서 신문과 라디오에 대대적으로 광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광고를 보고 맛있을 것 같아서 엄마를 졸라 카레를 만들어 먹게 되었습니다.
카레를 만드는 동안 엄청 기대에 부풀었던 기억이 지금까지도 생생합니다.
그러나 조리를 할 때부터 무슨 약냄새 같은 것이 심상찮았는데 막상 첫숟가락을 떠먹었을 때의 그 이상한 맛이란....
우리 식구들 중 그 누구도 그 한약 같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결국엔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당시 입맛이 촌스럽기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여서 오뚜기카레가 시장에서 자리 잡기까지는 수년이 걸렸습니다.
카레는 인도음식이라고 알고 있지만 막상 인도에는 우리가 먹는 카레가루가 없습니다.
우리가 수퍼에서 사는 카레는 영국 식품회사가 식민지였던 인도의 전통음식을 본따 인스턴트 식품으로 만든 것인데
영국의 그 SB카레를 수입했던 일본이 받아들여서 다시금 자기네 먹거리로 꽃을 피우게 된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사용하는 카레가루는(물론 고형카레도 마찬가지) 말하자면 다시다와 같은 인스턴트 식재료인 셈입니다.
이 대목에서 그렇다면 왜 정형화된 카레만 만들어 먹어야 하는가 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상상력과 창의력만 살리면 맛있는 새로운 맛의 나만의 카레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첫째는 육수의 사용입니다.
보통은 건더기 재료를 볶아서 맹물을 붓고 카레가루를 푸는데, 이때 사골국물이나 멸치다시육수 등을 넣는 것입니다.
물이 아닌 육수만 사용해도 카레의 맛이 한결 깊은 맛을 내게 됩니다.
저는 다음에 새우젓이나 액젓을 넣고 만들어 볼까 생각 중입니다. (예상외로 맛있을 수도 있습니다)
둘째는 카레가루는 미완성의 기초 조미료라는 생각입니다.
우선 카레가루에는 매운 맛, 안 매운 맛의 종류가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아이들을 생각하면 순한 맛을, 어른을 생각하면 매운 맛을 하고 망설이게 되는데,
그렇 필요 없이 구입은 그냥 순한 맛으로 하고 만들 때 매운 맛을 좋아하면 청양고추 송송 썰어 넣으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카레가루의 매운 맛이 고추의 맛이라고 생각을 못 하는데 카레가루 성분 중에는 엄연히 고추도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입맛에 맞는 청양고추로 매운 맛을 더한다면 우리 입맛에 더 잘 맞을 것입니다.
만약 청양고추가 없다면 그냥 고추가루를 넣어도 상관 없습니다.
고추뿐만 아니라 마늘, 생강, 후추, 산초 등을 더 넣어서 자기만의 카레를 만들 수 있습니다.
세째는 꾸미(건더기)입니다.
왜 카레라이스는 고기와 감자, 당근, 양파 만으로만 만들어야 하나요?
애호박, 고구마, 단호박, 토마토, 버섯, 가지 그리고 각종 해물들... 등등 맛을 풍성하게 하는 재료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아직 실제로 만들어서 먹어본 것이 아니라서 자신 할 수는 없지만 연시를 넣어서 만들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내년 여름에 팥빙수에 넣어 먹으려고 냉동해둔 연시가 있는데 한 알 꺼내서 만들어 봐야 하겠습니다.
또는 마파두부 만들 듯이 두부 튀겨서 두반장 대신 카레가루로 만들어도 그럴 듯 할 것 같습니다. (오래 전부터 생각만 하고 있음)
그리고 너무나도 손쉽게 특제 카레라이스를 만들어 먹는 비장의 카드가 있습니다.
카레를 요리하는 날 가까운 포장마차나 떡볶기집에 가서 좋아하시는 튀김을 사오는 것입니다.
오징어 튀김도 좋고, 고구마, 감자, 야채튀김, 심지어는 김말이도 좋습니다. 다시 한 번 더 바짝 튀겨달라고 해서
카레를 드실 때 식가위로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카레와 곁들여 내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렇게 힘 하나 안 들이고 이다지도 맛있는 것을 먹어도 되는가 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되실겁니다.
네째는 카레라이스는 소스에 비벼 먹는가, 말아먹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어떤 책에 보니까 어떤 유식한 분이 카레는 원래 밥에 살짝 묻혀 먹는 것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스에 말아 먹다싶이 한다면서 뭔가 잘 못 됐다 싶은 뉘앙스로 말한 걸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말아 먹다 싶이 소스를 듬뿍 부어 먹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인도사람과 우리나라 사람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쌀의 차이 때문입니다.
인도사람들이 먹는 쌀은 찰진 우리나라 쌀과 다른 찰기가 전혀 없는 안남미(예전에 알랑미라고 불렀던)입니다.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안남미는 소스를 살짝 묻혀야 어울립니다.그리고 그 사람들은 손으로 먹습니다.
당연히 질쭉하면 손으로 뭉쳐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찰진 우리쌀에 소스를 조금 묻혀 먹으면
소스가 쌀의 강한 맛을 이겨낼 수 없어 싱겁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전세계에서 드물게도 숟가락으로 밥을 퍼먹는 민족입니다.
(대부분의 민족은 숟가락은 국물 먹을 때만 사용하죠.)
그러므로 우리나라 사람은 카레에 말아 먹는 것이 맞습니다.
아니면 말고요.
Tip - 연시가 가장 쌀 때 (올해는 이미 늦었군요) 구입해서 한 알씩 위생비닐봉지에 넣어서 냉동고에 넣어두었다가
한여름에 빙수를 만들어서 꾸미(토핑)로 하면 그만입니다. 이보다 더 맛있는 팥빙수는 없다 싶을 정도입니다.
*뱀다리 - 잠을 청하려고 틀어논 버드 파월(Bud Powell)의 현란함과 빌 에반스(Bill Evans)의 적막한 터치에 홀려 그만 밤을
홀딱 새우다 왜 갑자기 카레 생각이 나서 인터넷을 로긴했는지 참 모를 일입니다. 아~ 이제서야 졸립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