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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주차 한국갤럽여론 조사에서 22대 국회의원에게 당부하는 국민들의 요망사항 중 가장 비중이 큰 것 다섯가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서로 싸우지 말 것/화합/협치 19%
2. 당리당략보다 국민우선시 8%
3. 서민 위한 정치/민생 문제해결 8%
4. 열심히 책임 다할 것/일하는 국회 8%
5. 경제물가안정 6%
갤럽 여론조사에 나타난 윤석열대통령의 직무수행 평가는 “잘하고 있다 21%” “잘못하고 있다 70%”로 윤대통령 취임 후 각각 최저와 최고점을 찍었습니다. 지역별 여론조사에서 광주/전라가 “잘하고 있다 9%”로 최저이고 대구/경북이 “잘하고 있다 35%로 최고였습니다. 연령대 별로는 40대에서 “잘하고 있다 8%”로 최저이고 70대에서 “잘하고 있다”가 49%로 최고였습니다.
대통령의 직무수행 평가는 최근 6주간 정체 내지 하향 추세를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의 상황 인식은 전혀 위기 의식을 체감하지 못하는 듯 변화의 조짐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제22대 국회개원일인 지난 달 30일 밤 국민의 힘 의원 워크숍 만찬에서 윤석열대통령은 “이제 지나간 것은 다 잊고 한 몸이 되자”며 일일이 맥주를 따라 돌렸습니다. 한편 원내 대표가 “똘똘”이라 선창하고 의원들은 “뭉치자”를 따라 외쳤습니다. 비상대책위원장은 “108석은 굉장히 큰 숫자이고 우리 뒤엔 대통령이 있다”고 외쳤습니다. 의회소수파로 전락한 국민의 힘 워크솝 분위기는 국민을 의식하기 보다 다분히 대통령의 심기를 의식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여 물의를 빚었습니다. 의회소수파로 전략한 정부여당의 현시국에 대한 상황인식이 너무나 태연하고 안이했습니다. 위기의식을 실감하기는 커녕 구각을 탈피하려는 몸짓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조용히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할 때에 나온 윤석열 대통령의 어퍼컷 세리모니도 격에 어울리지 않고 어색해 보였습니다.
“위기(crisis)”란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특히 정치나 경제에서 더 나빠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을 말한다”고 Longman English Dictionary에 나와 있습니다. 제 22대 국회개원과 동시에 이제 192석을 지닌 거대 야당의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108석의 소수당으로 전락한 여당이 똘똘 뭉쳐서 상대방의 흠결을 지적하고 정통성을 부정하는 방식으로는 이제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소수의 국민의 힘이 거대 야당과 맞서면 갤럽여론조사에서 22대 국회에 바라는 국민의 여망인 “서로 싸우지 말 것/화합/협치” 는 이룰 가망은 전혀 없습니다. 절충과 타협 없는 구태연한 대결의 정치는 국정의 차질로 그리고 국민의 피로감을 한층 더 자극할 것이 뻔한 노릇입니다.
통상 개인이나 조직이 위기 국면에 처하면 적절한 조치로 위기 국면의 돌파로 현상을 타파하고자 노력하거나 아니면 부적절한 조치로 상황을 악화시키거나 아니면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고 상대방이 실수하기를 기다리는 것 중에서 한가지를 선택합니다. 그러나 국민의 힘은 어떤 상황인식하에 어떤 효과적인 위기 돌파의 조치를 선택했는지 아직은 말하기가 모호 합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 대로라면 국민의 힘은 4.10총선에서 지고 변해봐야 아무소용 없다는 논리로 비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거대 야당의 부당한 입법공세를 막으려면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을 획기적으로 끌어 올려야 합니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계속해서 20%대 언저리에 머물면 야당은 국민들이 무소불위의 입법권을 무제한 허용하는 green light 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만일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20%대 이하로 떨어지면 모르긴 해도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는 거대 야당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 질것입니다.
윤ㅁ석열대통령이 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고 병행해서 자신의 권위가 실추당하는 아픔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그로인하여 자신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어려움이 뒤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자발적으로 변화와 개혁에 동의하지 않으면 정부와 여당은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루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기 때문에 윤대통령의 협조가 중요합니다. 따라서 국민의 힘 의원들은 윤석열대통령에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를 강력하게 호소하고 설득해야 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열대통령의 국정운영긍정 평가가 20% 선 아래로 떨어지면 시간이 흐를수록 국민의 힘 의원들은 윤석열 대통령과 decoupling을 시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윤대통령의 국정운영 부정평가에 비례하여 야당의 개헌 공세도 힘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재명 대표가 사법 리스크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윤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전제로 하는 개헌 공세는 거대 야당이 유석열대통령 임기중에 내놓을 수 있는 비장의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국민적 호응이 필요합니다. 개헌에 대한 국민적 호응은 윤석열 대통령 국정 수행 긍정 평가와 반비례하기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들이 점수를 매기는 국정평가 긍정 평가율을 부단한 노력으로 높여 나가야만 임기를 무사히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risk) 보다 윤석열대통령의 당면 위기(crisis)극복이 더 심각하고 화급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과 채상병 특검에 대한 윤석열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검찰총장 재직시에 강골 검사로서의 순수성과 정당성이 퇴색하여 윤대통령의 이미지가 옛날과 같이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사회에 아빠 찬스가 자주 회자되지만 유독 조국과 그 가족에 대한 법의 심판이 엄혹했다는 동정론이 여론의 힘을 얻어 조국혁신당이 정치적 부활을 하는 사정 변화가 있었습니다. 윤석열대통령은 22대 국회개원과 동시에 또 한사람의 강력한 정치적 라이벌과 대적해야만 하는 부담을 안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윤석열대통령에게는 제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극복해야 할 위기의 시간이 임박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과거 왕조시대에 리더가 설정한 국가적 위기대응의 방향이 잘못설정 되었음을 지적하는 한 선비의 대책이 과거시험을 통해 주목을 끈 사건을 조선시대 역사의 재조명을 통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1611년(광해군 3년)에 시행된 과거시험 시험 전시(殿試)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광해군은 나라를 잘 다스리고 안정시키려면 시급히 당면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면서 좋은 인재를 등용하고 국론 분열을 해소하는 방안, 공납제도를 개선하여 백성의 부담을 경감시킬 방안, 토지 제도를 정비할 방안, 호적과 지도의 정리방안 등 네가지 현안에 대해서 대책을 제시하라고 질문했습니다.
당시 임숙영(任淑英, 1576-1623)이라는 선비는 과거시험에 출제된 문제와 다른 답안을 제출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나라의 진짜 큰 우환과 조정의 병폐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으셨으니 신은 전하의 뜻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애오라지 덮어 두기만하고 의논하지 않으셨단 말입니까?”
임숙영은 전시에서 임금이 당장 해결해야 할 일로 첫째, 중궁(中宮)의 기강과 법도가 엄하지 않는 것, 둘째, 언로(言路)가 열리지 않는 것, 셋째, 공정한 도리가 행해지지 않는 것, 넷째, 국력이 쇠퇴한 것 등 네가지를 제시하면서 이 네가지 문제들은 모두 임금이 제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며 아래와 같이 대책에 대해서 자문 자답을 전개 했습니다..
첫째, 중궁(中宮)의 기강과 법도가 엄하지 않는 것. 중궁(中宮)은 왕비인 중전을 뜻하는 단어이지만 여기서는 중전과 후궁들 즉 내명부(內命婦) 전체를 말합니다. 그당시 후궁들이 왕의 총애를 믿고 사사로운 청탁을 하는 등 국정에 자주 개입하였는데 내명부의 기강을 세워 엄단해야 한다는 것이 임숙영의 주장 입니다. 조직의 공식적인 지위에 있지 않은 사람이 공적조직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공적인 일에 개입하게 되면 설령 그것이 선한 내용일지라도 조직의 원칙과 절차를 무너뜨리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따라서 왕이 직접 나서서 그 싹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둘째, 언로는 임금이 올바로 판단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왕은 자신의 부족함을 보완하고 더 나은 선택지를 고르기 위해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때 사람들의 말이 막힘 없이 임금에게 전달되는 통로가 언로입니다. 임숙영은 리더가 아무리 인품이 훌륭하고 부하의 의견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라 해도 그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말하기기 란 쉽지 않다고 본 것입니다. 특히 리더가 포용력이 부족하고 자신의 뜻에 거슬리는 말을 하는 사람을 가만두지 않는 성격이라면 직언을 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 임숙영의 지론입니다. 이경우 오히려 리더의 뜻에 부합하고 아부하는 사람들이 넘치게 될 것으로 본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조직내부의 자정능력, 합리적인 의사결정 능력이 사라져 버릴 테니 이런 조직이 잘 될 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임숙영의 말입니다. “부디 전하께서는 질문하기를 좋아하고 어떤 말이든 기꺼이 경청했던 순임금을 배우십시오. 좋은 말을 들으면 그 말을 해준 사람에게 감사하며 절을 했던 우 임금처럼 전하의 잘못을 간하는 사람들을 존중하셔야 합니다.”
셋째 공정한 도리는 인사문제에 관한 것입니다. 관직은 크든 작든 반드시 재능에 따라 천거되어 야 하며 벼슬은 높던 낮던 능력에 따라 선발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공(公)이고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이 사(私)입니다. 광해군 시대에는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르고 재산이 많은 사람이 출세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나라의 발전과 백성의 안녕을 위해 공정하게 운영되어야 할 관직이 사사로운 거래의 대상이 되었으니 이는 모두 왕의 잘못이라는 것이 임숙영의 주장이 였습니다.
넷째, 국력의 쇠퇴를 지적한 것은 위기 의식을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임숙영의 말입니다.
“전하께서는 나라가 편안하더라도 근심스러운 듯 대하고 나라가 형통하더라도 운수가 막힌 듯이 대하십시오. 나라의 살림살이가 풍족하더라도 곤궁한듯 대하시고 성대하더라도 금방 쇠퇴할 듯 대하십시오. 그리하여 근심할 것은 근심하고 힘써야 할 것은 힘써야 합니다. “임숙영이 보기에 지금의 왕과 신하들은 마치 태평성대를 만난 것 같이 나태하고 겉으로 꾸미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며 “난리가 일어나기 전 위태로운 시국”이라는 마음가짐으로 국정을 일신하지 않으면 정말로 곧 난리가 날 것이라고 경고 하였습니다.
원칙적으로 과거시험에 출제된 시험문제와 다른 답안을 쓰면 과거에서 탈락 처리되는 것이 당시 관례였습니다. 그러나 임숙영은 과거시험의 낙방과 광해군의 분노를 감수하고 나라의 큰 우환과 조정의 병폐를 지적했던 것입니다. 당시 시험 총책임자인 우의정 심희수는 임숙영을 탈락시키지 않고 합격자 명단에 포함시켰습니다. 그러나 광해군은 임숙영의 급제를 취소(삭과) 했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과거시험의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지만 사실은 임숙영의 광해군에 대한 비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후 석달에 걸쳐 사간원과 사헌부, 홍문관을 비롯하여 재상들이 삭과 조치를 취소해달라는 상소를 올리자 광해군이 물러서 임숙영의 급제가 복원되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카산드라의 (Cassandra)여사제 이야기가 최근 우리나라 정치판이야기를 잘 반영하는듯하여 재조명해봅니다. 트로이의 여사제 카산드라는 아폴로신으로부터 앞날을 예언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폴로신의 구애를 거절한 그녀에게 화가 난 나머지 아폴로신은 동시에 아무도 카산드라 여사제의 예언을 믿지 않도록 저주를 내렸습니다.
오늘날 카산드라는 통상 임박한 재앙에 대한 정확한 예언을 하는 예언자이지만 아무도 그의 예언을 믿지 않는 (세속에서 세인이 주목하지 않도록 운명 지어진) 예언자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쓰이고 있습니다.
한국갤럽이 실시한 일련의 5월달 여론조사시리즈로 오랜 시간에 걸쳐 무시하지 못할 또렷한 경보음을 윤석열대통령과 국민의 힘에게 쉴 새 없이 울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대통령과 108명의 국민의 힘 소속 의원들은 위기상황의 엄중함을 인식하지 못한 듯 어영부영 변화의 황금 시간을 놓치며 지금까지 허송세월하고 있습니다. 카산드라여사제에 대한 아폴로신의 저주가 새삼 원망스럽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