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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한 목자라(요 10:7-15)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난 10일, 스웨덴 한림원은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우리나라의 한강을 선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전혀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좌우지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대한민국에 독서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12일 안성맞춤랜드에서 열린 ‘경기 다독다독 축제’에, 6,000명 이상이 방문해 독서 나들이를 즐겼다고 합니다. 강연을 위해, 행사장을 찾은 김영하 작가는 “독서를 통해 다른 세계를 경험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고 나를 돌아보는 힘을 가질 수 있다”라며 독서의 중요성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했는데, 이번 가을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푹 빠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라고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내 마음대로, 내 하고 싶은 대로, 내 뜻대로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내 의지, 내 고집, 그런 것들을 다 내려놓고, 오직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5:8)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어야 합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내 모든 것은 주님께 달려 있습니다. 내 고집대로 살아서는 아니되고, 무엇을 하든지, 오직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지 않고, 내 마음대로, 내 하고 싶은 대로, 내 고집대로 하면서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누가복음 15:4-7절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예수님을 생각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릅니까? 푸른 풀밭 위에, 아주 자상하신 모습으로, 어린양 한 마리를 안고, 수많은 양떼들 사이에 서 계신 모습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이 땅에 오실 예수님에 대하여,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어서,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목수로 사셨기에, 그의 이마에는 고생의 흔적이 가득했을 것이며, 그의 손은 매우 거칠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예수님은 가장 매력이 넘치는 분이셨습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 100:3-4)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양인 우리는 목자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목자를 따르지 않고, 내 가고 싶은 대로 가버린 한 마리 어린 양이었습니다. 길 잃어버린 어린 양이었습니다. 사망의 골짜기에 빠진 어린 양이었습니다. 늑대와 같은 사나운 짐승에게 목숨을 빼앗길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는 어린 양이었습니다.
깊고 깊은 골짜기에서 길을 잃고 헤매이는 우리를 누가 찾을 수 있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우리를 구해주셨습니다. 지치고 상한 우리를 안고, 그 험한 길을 걸어, 그 사망의 골짜기를 벗어나, 푸른 풀밭으로, 우리를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우리에게 참된 평안을 주셨습니다.
목자이신 주님께서 잃어버려진 우리를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셔서, 마침내 우리를 찾으셔서, 우리는 지금 이 은혜의 자리에 앉아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렇게, 우리는 목자이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요,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기르시고, 돌보시고, 인도하시는 양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 58:11)라고 선포했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항상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메마른 곳에서도, 우리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우리 뼈를 견고하게 해 주십니다.
건강한 우리에게 행복을 주실 뿐만 아니라, 지치고 병든 우리 영혼도 소생시켜 주십니다. 쓰러진다 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새 힘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절망 중에 허우적거려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소망의 바다로 이끌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내 마음대로 가려고 하기 보다는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7-10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자, 더 풍성한 삶을 주시고자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왜 우리를 인도하십니까? 목자가 양들을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가 있는 곳으로 인도하듯, 주님은 우리에게 더 풍성한 삶을 주시고자, 우리의 삶을 인도하여 주십니다.
목자는 양들을 먹을 것이 없고, 마실 물이 없는, 아무것도 없는 그런 들판으로 인도하거나, 그런 곳에 놓아두지 않습니다. 목자의 관심은 어디에 더 푸른 풀이 있는지, 어디에 마실 물이 있는지에 쏠려 있습니다. 또 어느 길로 가야, 안전하고 평안로운지를 생각합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신 28:12)라고 말했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주님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사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하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채워주십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에 때를 따라 비를 내려 주시고, 우리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려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부족할 수가 없습니다.
시편 23:1-12절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여러분! 선한 목자가 되시는 예수님을 여러분의 목자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삶도 아주 매력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미리 느끼며, 정말 부족함이 없는 인생으로 우뚝 서는, 참된 행복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양의 문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의 행복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나의 목자로 삼고, 선한 목자이신 주님만을 철저하게 의존하며 사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그의 목자로 삼고, 그 자신은 하나님의 양으로, 그렇게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항상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체험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양의 문으로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의 문으로 들어온 우리를 영원히 지켜주시고, 인도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맡기고, 오직 선한 목자이신 주님만을 따라가야 합니다.
내 삶을 책임지고, 나의 부족함을 채우며, 인도하기를 원하시는 주님께 내 모든 것을 기꺼이 내려놓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철저하게 주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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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절 말씀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예수님께서 친히 “나는 선한 목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라고 선언하시는 주님은, 분명히 우리가 신뢰하고 맡길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여러분들의 선한 목자가 되셨습니까? 예수님을 선한 목자로 삼으시고, 선한 목자를 따라서,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에서, 맘껏 안식를 누려보고,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나는 내 양을 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께서, 나의 선한 목자라면, 우리는 정말 부족함을 모르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이 나의 삶을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나의 선한 목자가 아니라고 한다면, 살아가기 바쁜 세상에서, 누가 나의 삶을 책임져 주겠습니까? 이 고달픈 세상에서, 누가 나의 위로와 소망이 되겠습니까?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서, 누가 나를 도와주겠습니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이 험한 세상에서, 누가 나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겠습니까?
이스라엘은 고원지대에다가 푸른 풀을 찾기가 어려운 광야 사막지대입니다. 또한, 그곳에서는 잔잔한 물가를 찾아낸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우리나라는 강이 많습니다. 한강, 금강, 낙동강, 미호강 등 셀 수 없이 많은 강과 시내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강 이름 중, 어떤 이름이 생각나십니까? 구약에서는 얍복강, 신약에서는 요단강 정도일 것입니다. 그리고 요단강을 잇고 있는 상류의 갈릴리 호수와 하류의 사해 정도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물을 찾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곳이 아닙니다. 깎아지른 절벽 같은 산들이 계속 이어지는 곳에서, 양들은 풀이 많지 않고, 물도 찾기가 어려워서, 목자가 인도하지 아니하면,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양은 자기를 방어할 수 있는 무기가 없습니다. 양을 해치려는 짐승들과 싸울 수 있는 날카로운 발톱이나 이빨이 없습니다. 자기 먹을 것을 스스로 마련하지도 못합니다. 양의 가장 취약점은 앞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디가 어디인지를 모르는, 방향 감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고, 무거운 털이 온 몸을 뒤덮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둔하고, 그리고, 더 나아가, 미련하기까지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양은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가득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목자만 있으면 됩니다. 목자가 양에게 모든 양식을 공급하여 줍니다. 털을 깎아 줍니다.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줍니다. 사나운 짐승이 오면 물리쳐 줍니다. 가야 할 길을 인도하여 줍니다. 양에게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가 바로 목자입니다.
여러분!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인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십니까? 목자는 그의 음성을 양에게 들려주면서 인도한다고 합니다. 그리하듯이,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우리를 선한 길, 생명의 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양의 시력을 사람의 시력에 비교한다면, 마이너스 10정도 되는 시력을 가지고 있어, 거의 앞에 있는 물체도 제대로 구분할 수 없다고 합니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반면에, 귀는 굉장히 발달해 있어, 우리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아주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부시럭거리는 소리만 나도, 놀라서 도망칠 수 있는 것이 양입니다. 또한, 양들이 무리지어 갈 때 “음메 음메” 하며 따라가지 않습니까? 왜 그럴까요? 그것은 다른 양들에게 보내는 신호라고 합니다. 눈으로는 보지 못하니까, 소리를 듣고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3절을 보면,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라고 했으며, 4절은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며”, 5절은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않고, 듣는 것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눈에 보이는 것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곧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다른 소리는 듣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다 보면, 듣지 말아야 할 소리가 무엇인지를 구별할 수가 있습니다. 나에게 도움을 주는 말씀인지, 나의 것을 빼앗아 가고자 하는 도둑의 음성인지를 구별할 수가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를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예배의 자리, 은혜의 자리를 사모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매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이성과 경험이 늘 서로 충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과 세상의 유혹 사이에서, 늘 갈등하며 살아갑니다. 우리의 이성과 경험이 앞서고, 세상의 유혹에 무릎 꿇을 때가 있습니다.
선한 목자의 음성을 따르지 않고, 내 가고 싶은 곳으로 가다가, 길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이성과 경험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서서는 안될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시 95:7)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음성을 듣거든”이라는 말은 “주님의 음성을 들어 보라”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나쁜 말씀이 아니라, 생명을 주시는 귀하고 소중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시 19:7-10)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기에, 많은 순금보다도 더 사모해야 합니다.
14-15절 말씀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예수님께서 친히 “나는 선한 목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신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찾고, 구원의 길을 찾아보려고, 애쓰고 힘써 보았지만, 도저히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었고, 구원의 길을 찾을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의 영광과 보좌를 버리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소망 없는 우리를 위해 목자가 되어주셨습니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죄짓는 것밖에는 모르는 우리를 위해,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어리석고, 미련하고, 죄 많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일과 그 생명을 지키는 것과,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인도하는 것이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관심사의 전부였기에, 오직 그 일에만 집중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나는 선한 목자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선한”이라는 말은 “아름다운”, “사랑스러운”, “매력적인”, “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선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참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우리를 찾아오셨고, 예수님의 생명을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내어놓으셨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랍습니까?
날마다,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며, 찬송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감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예비해 놓으신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에서,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합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 우리를 인도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이성과 경험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 따라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고집을 버리고, 오직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 가기를 원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삶이 다하는 그날까지, 오직 선한 목자이신 주님만을 따라가고자 하오니,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