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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문화이민자들] [제민스토리] '르 에스까르고(Le Escargot)' 고용준
"달팽이(Le Escargot)처럼 느리더라도 건강한 빵 만들기 최선"
▲ 고용준 '르 에스까르고(Le Escargot)' 대표
제주 올레에 이어 '느림'을 화두로 던진 새 명물이 생겼다. 건강함을 보탠 30대의 야심찬 도전은 '로컬 푸드'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것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르 에스까르고(Le Escargot)'의 고용준 대표(33)다. 청년 창업이 드문 것은 아니지만 이력만큼은 특별하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던 고대표는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 우연히 오븐 안에서 맛있게 부풀어 오르는 빵을 본 순간 진로를 정했다.
잘 다니던 학교까지 그만 두고 한국제과학교에 입학해 '빵'을 배울 때만 해도 주변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하지만 자는 시간까지 쪼개가며 빵을 만든 열정은 서울 유명 베이커리 팀장 자리를 만들었다. 이제 좀 할만하다 싶을 때 고 대표는 귀향했다. 우연히 신문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본 뒤였다. 고 대표는 "늘 잘 지낸다, 걱정하지 말라던 아버지가 태풍에 감귤나무를 지키려고 애를 쓰고 계셨다"며 "돕지 못했다는 죄송함에 바로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고 털어놨다.
배운게 '빵'뿐이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프랜차이즈 빵집에 밀려 골목 빵집이 하나 둘 문을 닫는 상황에 '좋은 자리'를 잡는 것도 쉽지 않았고, 변변한 밑천이 없어 고가 장비는 꿈도 꿀 수 없었다. 대신 서울 고물상을 돌며 쓸만한 장비를 구해 직접 고쳤다. 아버지가 지킨 밭에서 제주 밀을 키워 재료도 조달했다. 다음은 제주에서 나고 자라며 아버지로 부터 배운 것을 실천했다.
평생 농사꾼으로 살면서도 다양한 작목을 시험하고 마을영농조합을 만들어 운영하는 도전을 피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고 대표는 건강한 빵은 '딱딱하다'라는 선입견을 바꿨다. 우연히 고 대표의 빵을 만난 한 피부암 환자가 "걱정없이 먹을 수 있는 빵이 있다"는 입소문을 내면서 단골도 생기고 빵을 사려는 사람들이 긴 줄을 서는 일도 흔해졌다.
▲ 고용준 대표가 만든 빵
빵집 대표지만 시간을 내 재료를 살피러 가는 것을 빼놓지 않는다. 공식적으로는 재료관리를 위한 것이지만 비공식적으로 아버지를 지원하기 위한 걸음이다. 아버지가 버릇처럼 말하는 '땅'을 배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제주 빵집 사장님 중에는 유일한 '지역 영농조합법인 최연소 조합원'이 됐다. 제주밀 조달을 위해 조합원들과 계약재배를 하는 등 로컬푸드에도 한 발 다가섰다. 고 대표는 "로컬푸드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닌데 정직한 것을 따라가다 보니 저절로 그렇게 됐다"며 "동네 삼촌들에게 칭찬을 들으려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사람좋은 웃음을 지었다.
이어 "앞으로 밀 뿐만 아니라 양파, 감자 등 직접 재배한 식재료로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빵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진정성을 전달하고 싶다"며 "달팽이처럼 느리더라도 건강한 빵으로 승부할 생각 "이라고 전했다. - *글 사진 김동일 기자 <제민일보> 2015년 08월 27일
르 에스까르고 Le escargot 노형오거리 근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 1291-24 ☎064-748-0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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