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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1>
<천성경p759> 우리 인간(人間)은 태어나면 한번은 죽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 연기(煙氣)가 사라져버리듯이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영계(靈界)에 가게 마련입니다. 영계(靈界)에 가게 되면 영계(靈界)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영계(靈界)의 주인(主人)이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지 못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靈界)를 무시(無視)하면 안 됩니다.
이것이 가는 원칙(原則)이기 때문에 암만 잘난 사람도 그 원칙(原則)에 맞게끔 이 땅 위에 살아가지고 일체이상(一體理想), 즉 균형적(均衡的)인 평준화(平準化)를 이루어야 됩니다. 상대적(相對的) 평면(平面)입니다. 균형(均衡)을 취(取)해 가지고 도는데 90도(度)를 중심삼고 걸리지 않고 수평(水平)으로 돌아야 됩니다. 그래서 360도(度)를 돌면서도 여기서 걸리지 않아야 됩니다. 사탄이 조금만 뭐라 해도 걸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는데 돌지 않는 것 같이 보일 수 있는 이런 역사를 지닌 사람이 들어가야되는 것입니다. 본격적(本格的)인 가정(家庭) 재검토시대(再檢討時代)가 오는 것입니다. 이제 교회(敎會)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직접(直接) 모시고 살 수 있는 본연(本然)의 시대(時代)입니다.
<말선242-168> 우리 한국(韓國) 말 중(中)에 무슨 말이 있느냐? 나이가 많아서 죽으면 ‘돌아 가셨다.’고 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왜 안 계시냐고 물으면 ‘돌아 가셨다.’고 하지요? 어디로 돌아갔느냐? 영계(靈界)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본래(本來) 무형(無形)의 하나님으로부터 출발(出發)했기 때문에 본연(本然)의 고향(故鄕)이 무형세계(無形世界)입니다. 무형(無形)의 세계(世界)에서부터 유형(有形)의 세계(世界)를 거쳐 땅위에서 번식(繁殖)을 해서 살다가 그다음에는 무형(無形)의 세계(世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무형(無形)의 아버지로부터 출발(出發)해 가지고 유형(有形)의 아버지의 몸(肉)을 빌려서 태어나서 살다가 유형세계(有形世界)의 몸(肉)을 벗어 놓고 본연(本然)의 형태(形態)로 돌아가는 것이 영계(靈界)에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은 늙지 않습니다. 머리는 암만 하얗게 늙더라도 마음은 늙지 않습니다. 마음은 젊다는 것입니다.
<말선94-11> 사람이 죽으면 숨을 거두었다고 하지요? 우주(宇宙)가 주었다가 거두어 가는 것입니다. 인간(人間)이 태어날 때 눈을 감고 태어났다가 눈 뜨고 살다가 눈감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인과법칙(因果法則)> 모든 존재(存在)는 법(法)의 방향(方向)을 따라 살기 위한 존재(存在)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人間)은 그 법(法)대로 살아가게 될 때 우주(宇宙)도 환영(歡迎)하고 천운(天運)도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과적(結果的) 존재(存在)는 원인적(原因的) 존재(存在)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존재세계(存在世界)의 원칙(原則)입니다. 그래서 우주(宇宙)가 중심(中心)이 아니라 원칙(原則)이 중심(中心)입니다.
인간(人間)도 몸을 따라가야 되고 대상(對象)은 주체(主體)를 따라가게 될 때 온전(溫全)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우주(宇宙)가 중심(中心)일까요, 이 법(法)에 의(依)한 원칙(原則)이 중심(中心)일까요? 「원칙(原則)이 중심(中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존재물(存在物)은 존재(存在)하기 전(前)에 그런 원칙(原則)이 있어 가지고 그 원칙(原則)의 결과(結果)에 따라 존재(存在)의 결정(決定)이 계승(繼承)되고 존재(存在)의 존속(存續)이 계속(繼續)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 엄마 젖을 먹는다는 교육(敎育)이나 법(法)을 알고 태어났나요, 모르고 태어났나요?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지남석(指南石) 줄이 다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존재(存在)하는 것은 방향(方向)을 따라가기 위해서 존재(存在)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 ❶사랑하는 방법(方法),= ❷충(忠), 효(孝), 열(㤠),= ❸젖 먹는 것,= ❹눈 뜨는 것,= ❺서고 기는 것,= ❻냄새 맡는 것, ❼잠자는 것, 등은 교육(敎育)이 필요(必要) 없습니다.>
<말선518-139> 참된 사랑을 하는 부부(夫婦)는, 하나님이 본성상(本性相)과 본형상(本形狀)으로 계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계(靈界)에 가게 되면 하나님의 본연적(本然的) 기준(基準)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연적(本然的)이고 절대적(絶對的)인 하나님도 참사랑에는 절대복종(絶對服從)하시기 때문에 그들 부부(夫婦)도 본연적(本然的) 기준(基準)에 가게 되면 그 점(點)은 한 점(點)이므로 그들은 하나님 화(化)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그것을 무엇이 가능(可能)하게 하느냐 하면 참사랑입니다.
<삶과 사랑 그리고 영혼의 세계p267> 모든 것은 근원(根源)에서 왔으니 근원(根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바다에 있는 물도 수증기(水蒸氣)가 되어 대기(大氣)중으로 올라가 비로 내려 강(江)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니 본연(本然)으로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순환운동(巡還運動)을 통(通)하여 생명(生命)이 연속(連續)되는 것입니다. 만약 순환(巡還)하지 않게 되면 전부(全部) 원소(元素)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신천성경p716> 하늘의 소망(所望)을 품고 사는 사람은 인간(人間)이 슬퍼하는 죽음의 고개도 기쁨으로 넘어설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늘의 소망(所望)을 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죽음을 앞에 놓고 세상만사(世上萬事)를 원망(怨望)하고 탄식(歎息)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기뻐하고 하늘 앞에 서서 자기(自己) 죽음의 가치(價値)를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은 이러한 소망(所望)의 아들딸들을 찾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리에 서서 하늘의 기쁨을 느낀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으려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하늘을 대(對)하여 울부짖는 무리(武吏)가 있다고 한다면 하늘이 그 울부짖음에 응답(應答)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천성경p714>하나님이 인간(人間)의 부모(父母)라면 인간(人間)을 어떻게, 왜 지었느냐? 사랑의 하나님이 인간(人間)을 지을 때 하나님의 사랑에 동참(同參)시킨 자리에서부터 출발(出發)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서 출발(出發)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서 자라,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서 상속(相續)하여 가정(家庭)을 이루고, 이 땅 위에서 세계적(世界的)인 사랑과 연결(連結)시킬 수 있는 성숙자(成俶者)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人生)길입니다.
<신천성경p715> 인간(人間)은 하나님을 닮고 싶어 하고, 하나님도 자신(自身)을 닮게 하고 싶다는 관념(觀念)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은 하나님과 닮을 수 있는 체(體)를 입고 태어나야 됩니다. 그런 날을 하나님도 고대(苦待)하고 인간(人間)도 고대(苦待)합니다. 그런 사람으로 태어나는 날이 죽는 날입니다. 이런 입장(立場)에서 인간(人間)은 죽음을 환영(歡迎)해야 되겠습니까, 환영(歡迎)하지 말아야 되겠습니까? 환영(歡迎)해야 됩니다. 죽는 데는 뭣 때문에 죽을 것이냐 할 때 ‘하나님의 참사랑을 위해 죽겠다.’라고 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육신(肉身)을 벗는 것은 무한(無限)한 하나님의 사랑의 활동권(活動權)에 내가 동참(同參)하기 위해서요.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世界)를 위(爲)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태어나는 것이 죽는 것인데, 인간세계(人間世界)에서는 ‘아이고, 죽는다!’ 하고 야단합니다. 제한(制限)된 사랑권 내(內)에서 무제한(無制限)의 사랑권 내(內)로 돌입(突入)하는 기쁨을 맞는 순간(瞬間)이 제2의 출생(出生)인 죽음 길을 통(通)하는 순간(瞬間)입니다. 여러분은 죽음의 공포(恐怖)에서 해탈(解脫)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관계(關係)를 맺을 수 없습니다.
<신천성경p716> 천국(天國)은 방대(尨大)한 곳입니다. 이 우주(宇宙)보다 더 크고 더 넓은 세계(世界)입니다. 그것은 형용(形容)할 수 없을 정도(程度)로 방대(尨大)한 세계(世界)입니다. 그리고 그 세계(世界)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그런 세계(世界)의 어디에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보고 싶다고 하면 즉각 나타납니다. 무슨 마음을 갖고 보고 싶어 하는지 저쪽에서는 대번에 안다는 것입니다. 오자마자 인사(人事)합니다. ‘이렇게 생각(生角)해 줘서 고맙다,’라고 상대(相對)가 마음먹은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 세계(世界)를 설명(說明)할 필요(必要)가 없습니다. 설명(說明)할 필요(必要)없이 다 느끼는 것입니다. 거기에 가서 척 만나게 되면 ‘무슨 말을 할 것이다.’라고 압니다. 알고 듣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멋진 세계(世界)입니까?
참사랑은 직단거리(直斷距離)를 통(通)합니다. 참사랑은 직단거리(直斷距離)를 통(通)하고, 참사랑의 속도(速度)는 최고(最高)의 속도(速度)입니다. 사랑하는 자식(子息)이 외국(外國)에 나가 있다고 하더라도 부모(父母)는 그 자식(子息)을 생각(生角)하면 벌써 자식(子息)에게 갔다 오는 것입니다. 거리를 초월(超越)합니다. 참사랑의 속도(速度)는 최고(最高)의 속도(速度)이기 때문에 이 방대(尨大)한 대우주(大宇宙)를 자기생활(自己生活)의 활동무대(活動舞隊)로 측정(測定)하는 것입니다.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을 초월(超越)하니 거리감(距離感)이 없습니다. 다 눈앞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천국(天國)은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世界)입니다. 사랑의 공기(空氣)를 맡는 세계(世界)입니다. 거기에는 생명(生命)이 꽉 차 있습니다. 어디 가든지 생명(生命)이 약동(躍動) 안 하는 데가 없습니다. 그리고 전부(全部) 혈연적(血緣的)인 인연(因緣)으로 묶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한 핏줄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슬퍼하는 것이 있으면 온 영계(靈界)가 한 세포(細胞)와 같이, 한 몸(肉)같이 슬픔을 느낍니다. 또 한 하나님이 기뻐하게 되면 전부(全部)가 기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방대(尨大)한 대천국(大天國)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거기에 화답(和答)해서 생명권(生命權)이, 모든 만물(萬物)이 주체(主體) 대상(對象)을 중심삼고 예술적(藝術的)인 미화(美和)의 대상(對象)이 되어 있습니다. 핏줄과 같이 연결(連結)되어 있어서 하나님이 기뻐하면 나도 기쁘고 하나님이 슬퍼하면 나도 슬퍼집니다.
<신천성경p759> 영생(永生)은 사랑에 의(依)해서 연결(連結)됩니다. 그래서 영생(永生)의 환경(環境)을 이루는 데는 사랑의 환경(環境)을 중심(中心)삼고 생활(生活)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영생(永生)이라는 이론(理論)이 여기에서 발발(勃勃)하는 것입니다. 생명(生命)에서부터 시작(始作)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사랑을 가지면 영원(永遠)히 살 수 있게 돼 있습니다. 그 사랑 권내(圈內)에 들어가 있으면 영계(靈界)나 지상(地上)에 살게 될 때, 자기(自己)가 어디에 가서 살 것인지를 다 보고 사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에서 나서 사랑에서 커가지고 사랑에서 살다가 사랑에서 죽습니다. 그런데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주체(主體) 되시는 그분이 영원(永遠), 불변(不變), 유일(唯一), 하니까 그 앞에 대상적(對象的)인 사랑의 자리에 서게 될 때는 영생(永生)하는 것입니다.
<신천성경p713> 우리는 알든 모르든 어느 곳을 향(向)하여 가고 있습니다. 내가 움직이는 이 시간(時間)에도 가고 있고, 쉬고 있는 시간(時間)에도 가고 있습니다. 비단(非但) 나뿐만 아니고 이 민족(民族), 혹(或)은 이 세계(世界), 더 나아가 하늘(天)과 땅(地)까지도 어떠한 곳을 향(向)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부인(否認)할 수 없는 사실(事實)입니다. 일생(一生)을 거친 후(後)에 나는 어떠한 곳으로 갈 것인가? 이것이 인간(人間)이 해결(解決)해야 할 중요(重要)한 문제(問題)입니다. 종교(宗敎)도 이 문제(問題)를 해결(解決)하기 위하여, 철학(哲學)도 역사(歷史)도 이 문제(問題)를 해결(解決)하기 위하여 동원(動員)돼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자신(自身)도 이런 운세(運勢)에 사로잡혀 이끌려가고 있다는 것을 부인(否認)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問題)를 해결(解決)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어차피 가야 할 운명(運命)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가 살다 죽는 날, 이 몸은 흙에 묻힘으로써 끝납니다. 그러면 몸(肉)이 묻히는 날 마음(心)도, 생명(生命)도, 심정(心情)도, 이념(理念)도, 혹은 소원(所願)까지도 같이 묻혀버리고 마는 것인가? 내용(內容)과 해결점(解決点)과 확실(確實)한 목적관(目的觀)을 세워 놓지 않은 사람은 불행(不幸)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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