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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산과 운문산은 경상 남북의 경계선이 주 능선이다.
북쪽으론 우리 느림보의 젊잖은 신사분 우보님과 관주님의 고향이신 경북 청도군이 자리를 잡고 있고 남쪽으론
경남 밀양이 얼음골의 차가운 바람으로 그 싱그런 풋 사과를 원 없이 살찌우고 있다.
하늘이 금새라도 찢어질 듯한 청명한 가을의 절정을 만끽하며 오늘의 산행 들머리인 석남고개에 우리 느림보 리무진이 그 음전한
자태를 나투신다.
우리 느림보 산악회는 입회 자체가 신분과 품격의 일차 상승이자 진정 산을 사랑하고 자연을 벗 삼아 유유한 삶을 영위하는
고품질의 멤버쉽 카드 발급과 동일하다는 인식이 분당 인근에 소문이 자자한지도 이미 오래인지라 요즘은 아파트 입주권이나
로또 정도는 장난도 아니다.
오늘도 만부득히 강 대장님께서 25인승 콤비 뻐스를 추가로 출발을 시킨 탓에 산행 들머리 석남고개는 형형 색색의
칠면조를 연상시키는 우리 느림보님들로 온통 왁자 지껄이다.
산행 시작에 앞서 장비와 여장을 점검하는 우리 사랑하는 느림보님들을 잠시 둘러 보는 망중한을 즐겨 본다.
어디서 무얼 하며 어떤 삶의 인생 행로를 겪어 오신 분들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당연히 알아서도 아니 될
일이긴 하지만 구김없이 맑고 청아한 눈빛과 언행을 보노라면 참으로 좋아 지고푼 인간들의 군상이다.
가지산 정상을 목전에 둔 어느 가파른 능선을 힘겹게 오르는데 어디서 본 듯한, 아니 한번쯤은 만난 듯한 정겨운 얼굴이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는다.
이미 전날에 정상 옆에 있는 대피소에서 막소주를 한 댓빙이나 해 치우며 우리 느림보님들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셨던
바람에 걸리지 않는 그물처럼, 강아지 짖는 소리에 결코 놀라지 않는 숫사자처럼 자그만 걸림도 없이 유유 자적하게 이 시대를
살아 가시는 무애와 해탈의 일인자이자 해동 제일의 대 자유인이신, 그 닉네임도 고명하신 거문도 킴님이 오늘의 주연이시다.
정상은 바람이 차다시며 이미 대피소에 말씀을 해 두셨단다.
대피소에서 잠시만 기다리면 여러 사람들 얼굴을 휑 허니 보시곤 금새 치고 올라 오신다더니 아직 오토바이 엔진 소리도
떼그르르 하고 울리는 와중에 거문도 킴님께서 선뜻 대피소로 들어 오시더니 양 볼따구니에 어줍잖게 길른 꾀꼬리 수염이
연신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을 연상 시키는 대피소 쥔장께 어릴 적 시골에서 몇번 본 적이 있는 시커먼 부엌칼과 도마를
잠시 빌리신다.
살이 오복 통실하게 잘 찐 병어를 도마에 눕히곤 숙달된 솜씨로 칼질을 하신다.
이미 생침은 꼴까닥 흘르는데 하늘 나라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천도 복숭아처럼 차마도 감읍한 마음 때문에 손이 갈 수가 엄따.
구져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긋이 눈을 감고 이리도 험하고 높은 산을 오시며 옛정이 든 산벗들이 온다고 퍼덕거리는 살찐
병어를 차마 가슴에 안고 산을 오르는 심뽀(?)를 가진 거문도 킴님의 산벗에 대한 따수븐 애정과 정성을 가슴 속 깊이 그려 본다.
사달이 벌어진 건 다름 아니라 대피소 안쪽에 있던 어떤 느림보님이 거문도 킴님을 찾자 잠시 칼질을 멈추고 일순간 자리를
뜨는 그 순간.
정말 박 터지는 줄 알았습니더.
옆자리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시던 신성님을 비롯한 외 다수 여러분들이 와장창 달려 들어 아예 손꾸락으로 도마 위에
있는 병어회를 학 움켜 쥐고선 거문도 킴님이 준비해 오신 조선 막된장을 그득 발라 가지곤 숨 쉴 틈도 없이 입에 걸쳐 넣는게
아니겠습니껴?
사실 이룬 높은 산 정상에서 싱싱한 병어회를 썰면서 한 젓가락 맛뵈기도 안 준다는 건 그 자체가 고문이 아니고 머시 겠습니껴?
그리고 두툼한 고깃 덩어리 던져 주었는데 그걸 한 입에 꿀컥한 하이에나가 잘못한 것이 과연 무었이냐 이겁니더.
중학교 2학년에 겨우 낙제를 면하고 올라 가니 한문을 배우는 시간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한글 전용이다 머다 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니 결국은 한문 과목을 없애 버리는 극약 처방을 하게 된다.
당시로선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나로선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긴 하였지만 사실 한문은 밥에 딸려 나오는 국과 똑 같이
없으면 뭔가 조합이 맞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서울로 유학(?)을 와서 처음 사귄 친구넘은 꾀새아비라는 별명에 걸 맞게 인생 자체를 요령 하나로 살아 온 입지 전적인 인물이다.
수강 신청을 할 적엔 교수님의 이름 하나는 반드시 한자로 써 내라고 귀뜸을 해 준다.
원래 교수란 인물들은 게으르고 무관심한 성품 덕에 시험지 채점이란 건 제대로 하는 경우가 거의 없이 자기 이름을 한문으로
제대로 썼느냐 마느냐 정도만 따지고 극히 드물게 할 일이 없어 심심한 경우에 한해서 시험답안지를 선풍기 앞에 학 뿌려선
멀리 날아 가는 답안지는 그만큼 글씨를 덜 썼으니 에푸 학점이고 선풍기 바로 앞에 떨어 지는 무거운 답안지(?)는 에이를
먹인다고 한다.
한자를 모르니 자연 수강신청서에 기재한 교수님들의 이름은 김이나 이씨 정도만 겨우 알았고 나머진 그냥 그림을 그려댔는데
유독 국어작문 시간을 담당했던 교수님이 잊혀 지지 않는다.
형사 콜롬보처럼 후줄근한 곤색 바바리를 입은 중년의 교수님은 머리 모양이 우리 느림보의 유 고문님과 무척 비슷하게 아주
젊잖게 올빽을 하셨는데 유순한 분위기와는 달리 가늘고 길게 빠진 눈매는 의외로 무척 매서운 인상을 주시는 분이셨는데
교수법 또한 무척이나 특이하시다.
무조건 시 한편을 적어 오면 그 중에서 괜찮아 보이는 학생을 호명하여 칠판에 자신이 써 온 시를 적게 하곤 참으로 괜찮은
시라는 칭찬 아닌 칭찬을 두어 번 하곤 수업 끝이다.
그런데 시라는 게 그리 만만한 작업은 아닌 지라 꾀새아비한테 조언을 구하니 아주 쉬운 해법을 제시한다.
중.고등학교 다니는 동생들 책꽂이에 보면 교지라는 게 몇권 씩은 있는데 그 중에서 아무 시라도 베끼기만 하문 에이 학점은
최소한 보장이 된다고 한다.
약발은 영락없이 잘 받아서 무난한 학창생활을 하던 어느 날 국어작문 시간에 참으로 엉뚱한 사건이 벌어 진다.
시는 고사하고 연애 편지 한장 제대로 쓰지를 못하는 삼척 출신 개고기라는 넘의 시가 채택이 되어 칠판에 자신의 시를 쓰게 되는
영광을 얻었는데 참으로 괜찮은 시 였었던 가 보다.
바닷가 모래밭에 손꾸락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당신을 그립니다
코와 입 그리고 눈과 귀... 턱 밑에 점으은 하아나...
이쯤 써 내려 갈 즈음엔 당연히 교실은 얄개 한마당이 되었지만 그때까지 단 한번도 자신의 주장이나 철학같은 걸 내 비치는
법이 없이 바람에 부는 갈대처럼 흐물거렸던 교수님이 정색을 하시며 분위기를 가라 앉히시더니 참으로 괜찮아 보이는
시를 보고 왜들 그리 심하게 웃느냐며 야단을 치신다.
당시 유행하던 방 주연씨의 당신의 마음이라는 이 노래를 과연 몰랐는지 아니면 그 또한 내숭인지는 일단 미제로 남기고
학교 후문 바로 옆에 있는 오리지널 화교 짱퀘 아저씨가 운영하는 중국집이 한 곳 있었는데 고기를 넣지 않은 야채 간짜장이
장안에 소문 난 일품이었다.
그냥 짜장은 마지막으로 뽁을 때 전분 가루와 물을 살짝 넣어서 뽁기 때문에 후루룩 거리며 먹는 맛이 일품인 반면, 간짜장은
마지막으로 뽁을 때 기름을 살짝 돌려서 짜작하게 뽁기 때문에 마를 건자를 써서 건짜장이라고 한다.
간장 간장하는 짜거운 간자가 결코 아니다.
그날도 개고기놈과 친구들 하고 짤짤이 하여 번 돈으로 건짜장 곱배기에 빼갈 한 독구리 시켜서 막 젓가락을 들다 우연히 옆으로
고개를 돌리다 보니 약간 바닥이 높은 별도의 룸 테이블에 앉은 작문 교수가 눈에 들어 온다.
김이 무럭 무럭 나는 얼큰한 짬뽕에 더운 날씨로 히야시가 잘 된 맥주병이 엄청 션하게 보인다.
맥주병에는 이슬이 송알 송알 맺혀 있었는데 교수님 앞자리에 앉은 하늘거리는 미니 원피스에 찰랑거리는 긴 쌩머리가 무척이나
인상적인, 아마도 낯째기만 반반하였지 학점은 형편없어 보이는 불여우 한마리가 아주 정중한 자세로 노리끼리한 맥주 한잔을
교수님께 따루어 올리는데 난 그날 이후로 광개토대왕이나 을지문덕 장군같은 사람이 되겠다던 황당하고 현실성 없어 보이는
꿈을 완조니 접어 버렸다.
국어 작문 같을 걸 맡으면 새로이 연구할 것은 당연히 없고 애들 가르킬려고 사전 준비할 아무런 건덕지 또한 당근 없을 뿐 더러
저 교수처럼 구져 시 한편 써 오라고 해서 연신 칭찬만 하면 언능 하루 일과 끝이고, 행여 점심 시간이라도 걸리면 저룬
낭창 낭창한 불여우들이 맥주 사 줄려고 줄을 서는게 교수의 본분이라면 달리 해골 아푸게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이 없다. 교수?
그리고 제가 말하고 글 쓰는 건 항상 반반입니다.
사실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여야 재미도 있고, 부달 두 쪽 밖에 없는 내 밑천이 드러 나지 않는 장점 때문이지만
이거 하나 만은 정말 정말 진짜입니다.
수강신청서에 교수님 이름을 무조건 그림 그리듯 했기 때문에 그 해가 다가도록 그 작문 교수님의 존함을 몰랐었는데
일년 동안 그 교수님으로 부터 딱 한가지 들을 만한 얘기를 들었던 건 본인이 쓰신 시에 대한 짤막한 멘트였었는데
70년대에 국력이 강해지면서 이 분도 아마 외국의 문인들과의 교류가 많아 졌던 가 본데 한국에서 가을에 그 환한 모습과
청아한 냄새 덕분에 귀족 대우를 받는 국화꽃이 유럽에선 장례식 때만 주로 쓰기 때문에 음산한 분위기를 연상시킨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고 하신다.
시세 말로 세계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고등학교 국정 교과서에 나오는 내 누이 처럼 잘 생긴 국화꽃하는 그 순간
난 정말 수채 구멍으로 뛰어 들고 싶었다.
나를 가르키는 교수님의 존함을 처음으로 아는 그 순간은 정말로 잊을 수 없는 충격이었다.
학교를 졸업한 연후에도 이 시인께서 가끔 언론에 인터뷰를 하는 걸 보면, 관악산 자락에 있는 시인의 자택을 기자들이 찾고
아주 마음씨 좋은 시골 노인네처럼 기자들을 정겨웁게 맞아 들여선 아예 짝으로 사서 재여 둔 맥주를 원없이 들이키는, 매미 날개
같은 모시 바지 저고리를 입은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지성으로 항상 미화되고 노출된다.
이 시인은 노벨문학상 후보로 세번이나 노미네이트되는 우리나라에선 유일한 기록 보유자이신데 이 시인은 노벨문학상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분이라고 결연히 투서를 던진 분이 시인 고은님이시다.
원래 해인사에서 승려 생활을 했던 고은님은 환속을 하면서 약 3년간이나 스승의 집에서 먹고 잤을 뿐 아니라 문단에 등단하는
것도 이 시인의 영향이 컸었던 지라 투서 사건 이후 생전 남을 원망하지 않던 이 시인도 몹시 서운한 감정을 여러 번
표출했었던 가 보다.
이 시인은 유족 문제가 순탄치를 못했던지 사후에 생가가 집장사를 하는 업자들에게 헐 값으로 팔릴 지경에 이르자 서울시에서
급기야는 인수를 해선 현재는 관악구에서 그 관리를 맡고 있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흉가처럼 방치되어 있었는데 어떤 용도로
사용할 것이라는 공사설명서도 없이 얼마전 부터 수리를 하고 있다.
서울의 남산은 옛 이름이 목멱인데 밥상을 받는 안산이고 그 뒤에 자리 잡고 있는 현무 관악산은 사당에서 올라 보면 특히나
심하게 나타 나는데, 바위 모양 자체가 불꽃 형태이다.
그러한 사유로 한양이 화재에 자주 시달린다고 하여 광화문 앞 양 쪽으로 해태상을 세워서 화기를 누르고 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좁은 소견으론 불에는 물이 상극일지라면 관악산 자락에 연못을 파 두면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솟구 치곤 한다.
태백산맥을 쓰신 작가 조 정래님도 이 시인의 제자이신데 두 번이나 자택을 찾아 가선 다른 건 다 몰라도 친일 행각을 한
부분만은 진솔하게 참회하고 반성하는 의사를 민족 앞에 나타 내셔야 한다고 강변을 하셨지만 끝끝내 묵묵부답이었다고
하는데 친일 행각이 처음으로 거론되었을 때 이 시인이 내 비쳤던 반응 또한 참으로 아이러니컬 하다.
대일본제국주의가 그리도 쉽게 패망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것인데 그렇게 패할 지경이었으면 친일은 결코 하지 않았을...
이 시인보단 약간 앞선 세월이긴 하지만 똑 같은 일제 치하에서 살았던 참으로 고귀한 인품이 한분 계신다.
나와 같은 고향땅의 어른이신지라 오해의 소지도 있어 간략히 이 시인의 행적을 소개해 드립니다.
진성 이씨 즉 퇴계 이황 선생의 후손으로 6형제 중 이 육사 시인을 비롯한 삼형제가 무장 독립운동에 뛰어 든다.
참으로 온 집안을 말아 먹을려고 작심을 하셨던 모양인데 이 육사님의 필명은 그 분이 일제하 대구교도소에 수감되었을 때
받은 수인 번호 264를 음역하신 것인데 40년 짧은 생을 사시는 동안 17번이나 투옥되고 구금이 되신다.
165센티 정도의 보통 체구로 얼핏 보기에도 먹물이나 묻히며 책상머리에서만 계셨을 것 같은 이 시인은 글로서만 저항을
하신 것이 아니고 온 몸을 던져 무장 투쟁까지 감행하신 분이시다.
난 이 세상을 살아 오면서 이 시인이 쓰신 청포도와 광야처럼 아름답고 사람의 가슴을 송두리채 싸아 하게 만들어 버리는
시를 본 적이 없다.
해방을 딱 한해 앞둔, 중국에 있는 어느 왜놈 교도소에서 이 위대한 시인은 차마도 그리운 고국 산천과 가족들의 모습을
그리며 숨을 거두신다.
백성은 모름지기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이 육사 시인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국가가 강변할 권리가 있다면
민족과 나라를 팔아 먹은 자들에게 국가가 행해야 할 의무가 무었인지는 최소한 알아야 할 것 같은데
비싼 세금으로 생가를 복원하여 문학관이라도 설령 만들어서 지나 가는 사람들에게 그 어떤 교훈을 주고자 저룬
망나니같은 작태를 벌이는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기왕지사 벌인 공사라면 관악산 화기도 막을 겸 해서 그 땅엔 자그만 연못이나 하나 파고, 연못 둘레론 청포도나 몇그루 심어서
오고 가는 이들에게 은쟁반에 담긴 청포도를 대접하고 흠뿍 적신 손은 하이얀 모시 수건으로 닦아 드렸으며 좋으련만.
탄천변에서 승냥이 주둥이 같은 돌삐 드립니다.
첨언 ; 시인께선 은퇴 후에 전세계 2000미터 이상급 고봉들과 각국의 수도 이름을 매일 외우셨는데 기억력 감퇴를 막기
위해서라지만 사실은 치매 예방책의 일환이었다.
중국의 마오쪄뚱 (모택동)은 노후에 치매를 막기 위해서 늘상 마작을 즐기며 계속해서 쨩구를 굴렸다고 하는데
저하고 한이불에서 가끔 자는 제 예팬네는 치매 하나 만은 결단코 걸릴 일이 없습니더.
눈까리만 뜨면 하루 쥔종일 남편 잡아 먹을 궁리만 골똘히 하는 분이신지라 나 원참.
글구 석골사 입구로 느림보 리무진이 가니 이미 일진으로 탑을 맡으셨던 분들이 하산을 완료하고 닭고기 학 풀어서
껄쭉하게 끓인 칼국시를 맛나게 드시고 계셨는데 반가웁게도 거문도 킴님과 그 아우되시는 분과 동석하게 되었다.
바다 낚시도 나가시고 지리산 설악산을 가리지 않고 연일 산행을 하시면서 참으로 내 이상향같은 삶을 사시는 거문도 킴님을
너무도 부러워 하며 입이 마르도록 존경의 의사를 보이자 아무래도 여자란 우리 예팬네처럼 속아지 하나는 밴댕이 소갈머리인게
틀림 없는 가 보다.
옆에 앉아 계시던 껏님께서 혀를 쯔쯔거리시며 하시는 말씀이 남편이란 분이 허구헌 날 바다로 산으로 가서 외박을 하고 들어
오면 집에 계시는 사모님은 쌩과부가 틀림없을 터이고 속은 썩어서 숯껌댕이가 되었을 게 뻐언 하다고 하시니
가구 사업을 오래 하셔서 밴댕이 보단 쫴꿈 나은 에쉴리 여사님께서 상당히 논리적인 반론을 전개하신다.
지난 봄에 남도에서 벚꽃놀이 할 적에 거문도 킴님께서 사모님을 대동하고 나오셨는데 빼어난 미모는 말 할 것도 없고
얼굴색과 풍기는 분위기가 남편 때문에 속앓이를 하는 분위기가 전혀 아니더라고 하면서 설왕 설래가 두어 순배 오갈 무렵
이미 인생사에서 득도의 경지에 오르신 거문도 킴님께서 딱 한마디 말씀으로 좌중을 제압해 버린다.
내가 비록 낚시다 등산이다 머다 해서 자주 집을 비우는 건 사실이지만 일주일이면 일주일 열흘이면 열흘 어쩌다 흑탄 백탄을
피우는 날에는 아예 학 자지러지게 맹글어 버려서 최소한 보름 정도는 숨도 제대로 몬 쉬게 맹글어 버린다시며 아주
자랑스러운 표정을 하시며 한손으로 나같은 오초 순간뽄드같은 넘들 기 죽으라고 대충 겉보기에도 나바론 요새의 대포처럼
우람한 가운데 토막을 우두둑 소리가 나도록 쓰윽 문지르신다. 캬 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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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 느림보 산악회는 입회 자체가 신분과 품격의 일차 상승이자아 유유한 삶을 영위하는
이 정도로 느림보 광고를 하셨으면 되었습니다.실한 느림보의 홍보맨이십니다.겁게 하셨군요.
진정 산을 사랑하고 자연을 벗
고품질의 멤버쉽 카드 발급과 동일하다는 인식이 분당 인근에 소문이 자자한지도 이미 오래인지라
요즘은 아파트 입주권이나 로또 정도는 장난도 아니다'
돌삐님께선
산행이 끝나면 기다려지는 돌삐님의 산행기..
고정 독자가 꽤 많다는걸 느끼고 계시는지요
가지산 정상에서의 병어회 한점이 돌삐님을
더 좋은 날들이 산정에서 기다립니다.
과분한 말씀에 얼굴이붉어지고...
기대했던 첫만남 넘넘즐거웠슴다.
가능했다면 대피소에서 정담을나누며 댓병을비우고싶었는데 아쉬움이클뿐입니다.
서락에서 멎진일박을 기대하여봅니다.
늘건강 유념하시고,알차고살찐 산행기에 한참을 머물다갑니다.
거실에 앉아 혼자 킥킥대니 마눌님이 "??? 저 인간이 오늘은 왠 일로 근 보름만에 맨 정신으로 들어오더니 맛이 갔나???"하는 표정입니다...아후~~~~~~~직입니다요~~직여~~~~~!!!! 존경!!!존경!!!!!ㅎㅎㅎ
모리안님도 돌삐님 광팬이 되셨군요. .....
돌삐님 산행기 읽으면서 킥킥거리지 않는다면 그건 비정상입니다.
자연스럽게 쿡 터지는 웃음을 어찌 참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