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0:22~33 내가 영생을 주노니 25.11.9 주일낮
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에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성도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무엇이든 처음엔 공짜로 주다가 나중엔 값을 받게 되면 속상합니다. 물건을 싸게 팔다가 동이 나니까 비싸게 팔면 기분이 안 좋습니다. 공연도 공짜로 보여주다가 갑자기 돈 내고 보라고 하니 안 갑니다. 처음부터 돈을 받았다면 당연히 여길 텐데, 갑자기 바뀌면 불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줬다가 뺏는 분이 아니고 공짜로 주다가 값을 정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은혜로 주신 것들은 결코 값으로 따지지 않고 영원한 선물로 주십니다. 그 기준은 변하지 않고 바뀌지 않습니다. 너희는 값없이 돈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했습니다. 구원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므로 받습니다. 우리의 어떤 수고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한 번도 은혜와 믿음의 법을 변경하지 않았습니다. 할렐루야!
수전절이라는 표현은 신·구약 통틀어 한 번 기록되어 있는데 바로 오늘 본문 22절입니다. 수전절은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 왕에 의해서 더럽혀졌던 예루살렘성전을 되찾아서 다시 하나님께 바친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200년 전 안티오쿠스 4세는 유대를 정복하고 성전에서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지하였고, 성전의 제단에 제우스 상을 세워 숭배하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너무도 치욕스런 날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예루살렘과 여러 도시에 사신을 보내어 유대전통인 할례 예식과 안식일 규례를 금하는 칙령을 공포했습니다. 유대인 문화말살정책을 편 것입니다. 심지어 왕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돼지를 잡아 제단에 그 피를 뿌리도록 했습니다. 왕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모진 고문을 당하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러한 성전 모독은 곧 유일하신 하나님을 모독한 것이기에 경건한 유대인들을 결정적으로 자극했고, 마카비를 중심한 유대인들의 독립투쟁으로 이어졌습니다. 3년간의 투쟁 끝에 마침내 성전을 탈환하게 되었는데, 처참히 더럽혀진 성전의 모습을 발견하고 마카비와 군인들은 제사장들을 세워서 성전을 정결케 했습니다. 우상의 제단을 헐고 새로운 제단을 만들어 봉헌하고 무너진 곳을 수축하였습니다. 수전절은 닦을 수(修), 대궐 전(殿)입니다. 성전을 닦다, 재건하다, 회복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때 먼저 성소의 등잔, 일곱 촛대에 불을 켰는데 기름이 하루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을 정결케 하는 8일 동안 불이 꺼지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그래도 자기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기억하셔서 능력을 베푸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 해마다 수전절을 지키며 8일 동안 성전과 집에 등을 밝히며 축제를 열었습니다. 이것이 수전절 빛의 축제입니다.
유대인들은 수전절에 등을 켜면서 이전에 마카비가 무장투쟁으로 자기들을 구하고 성전을 회복한 것처럼 이렇게 자기들을 구원해 줄 메시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성전 안을 거니시는 것을 보고 24절에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25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너희가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주님은 그리스도임을 밝히셨지만 사실 저들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기초는 예수님을 아는 지식, 바른 지식입니다. 그게 출발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사명은 다른 무엇보다 예수님을 바르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설교도 예수님을 바로 알도록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선포, 증거가 곧 설교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행한 일이 무엇인지, 나에게 어떤 분인지, 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라야 하는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요17:3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를 아는 것이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법, 복 받는 법, 건강하게 잘 사는 법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예수님을 잘 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것은 우리 삶에 유익을 주고 생활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하겠지만 결국 영생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것은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입니다.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요6:40).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너희가 영생 얻기 위해 내게 나아오지 않는도다고 했습니다.
눅11:52에 보면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밝히 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지식의 열쇠로 도리어 영생의 문을 닫아놓고 자기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과 영생에 이르지 못하면 이 땅에서 아무리 잘 먹고 잘 누리며 잘 살아도 소용없습니다. 영생 얻지 못하면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이 구원을 얻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의 초점, 중심을, 핵심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는 반드시 영생에 이르러야 합니다.
너에 대해서 확실히 말하라는 유대인에게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미 말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스스로 밝힌 것은 '나는 ...이다.'는 것인데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양의 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많이 하던 '숨은 고개'라는 놀이가 있습니다. 가령, 임진왜란, 난중일기, 백의종군, 삼도수군통제사, 거북선..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누구인지를 맞추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나는 누구라는 것을 밝혀 나가고 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고 묻는 대제사장에게 "네가 말하였느니라", 메시야를 기다리는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에게 "네게 말하는 내가 그니라"고 하시고, 본문 뒤 36절에서도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고 하느냐” 이처럼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신지를 선언했습니다. 선언만 한 것이 아니라 나의 선언을 증거하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1. 25, 32절에 내가 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 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하는 일들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라 합니다. 날 때부터 소경이던 자가 실로암에서 씻고 눈을 뜨고 나서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이런 일을 하겠느냐고 고백한 것처럼(요9:33) 본문 뒤 38절에서도 나를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일은 믿으라고 했습니다. 요5:36에서도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하는 역사가 나를 증거한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하신 일들은 모두 아버지로 말미암아 하신 일입니다.
그래서 그가 하신 일들은 선한 일입니다.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다고 했습니다(32절). 그가 하신 일은 단순히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한 이적을 일으킨 것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 중의 가장 큰 일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주셔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것이고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행하신 가장 큰 표적입니다. 모든 사람이 믿을 만한 증거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가장 선한 일이요, 큰 일입니다.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할렐루야!
2.그런데도 예수님은 26절에 말씀합니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반대로 하면 '내 양은 나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불신자에게 큰 이적이 나타나고 기적이 일어나면 저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믿을 것 같다고 생각해도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당시에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을 직접 보고 주시는 떡을 먹고 병 고침을 받고 이적을 경험한 자는 한 명도 주님을 떠나지 않아야겠지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경험하고도 부인하고 떠났습니까.
이적을 본다고 예수님을 알고 믿는 것은 아닙니다. 대제사장들은 나사로를 살리신 일로 인해 예수님을 믿기는커녕 증거인 나사로도 함께 죽여버리자고 했던 사람들입니다(요12:10,11). 아무리 큰 증거가 있어도 안 믿는 자는 안 믿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고 믿는 것은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당신의 양으로 불러 주셨기에 가능한 것입니다(3~5절). 우리가 주님을 믿는 것은 주님의 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이 자리에 있는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3.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영생이라고 했습니다. 28절에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라고 합니다. 이처럼 영생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과 모양대로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사람이 생령이 되게 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라고 하십니다. 영생을 누가 주십니까. 예수님이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분입니다.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내 호주머니에 있는 것을 꺼내어 다른 사람에게 주듯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기 생명을 버려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졌다고 선언하셨듯이 또한 예수님은 영생을 주시는 분입니다. 생명을 주시되 풍성히 주시는 분이십니다. 10절에 보시면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영생을 어떻게 주십니까? 네가 얼마를 주면 주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너희는 값없이 돈없이 와서 그저 받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니까 우리는 믿고 받으면 됩니다. 너에게 거저 주노니 받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받기만 하면 됩니다. 받아야만 합니다. 어떻게 받습니까? 믿음으로 받습니다. 믿는 것이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나의 주인으로, 인격적으로 영접하는 것,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 것이 곧 영생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3:36에 말씀합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받으시길 바랍니다.
4. 끝으로 말씀합니다. 28,29절의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양, 내가 영생을 준 양을 내 손에서 뺏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손에서 뺏는다는 것은 아버지의 손에서 뺏는 것과 같은 것인데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신 분이니 누가 아버지의 손에서 뺏을 자가 있겠습니까. 아버지의 손을 펴서 뺏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악한 자가 와서 너희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고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셨다가 도로 빼앗지 않으실 뿐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 빼앗기지도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자기 생명을 바쳐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받는 양입니다.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양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예수님의 양이 된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입니다. 그 은혜와 사랑을 간직하여 영생을 맛보며 영생을 누리며 영생에 이르도록 승리하며 살아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