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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혁교회의 학교
네덜란드는 교육의 자유를 중시한다. 이는 기독교 교육을 실현하기에 큰 이점으로 작용한다. 이와 같은 교육의 자유는 약 100년간 지속되고 있다. 1917년 이후 부모들은 자유롭게 자녀들을 위해 학교를 세울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부모들이 세운 학교 역시 정부로부터 충분한 재정적 지원을 받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정부는 무엇보다 교육의 질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를 위해 충족되어야 할 요건들을 제시한다. 학교들은 이 요건들을 충족시켜야 하고 그 결과물을 정부에 제시해야 한다. 만약 학교가 정부가 제시한 요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정부의 감사를 받아야 하며 끝내 재정적 지원이 중단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학교의 교육 프로그램에 간섭할 수 없다. 학교는 어떤 인생관을 교육에 반영할 지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학생들에게 정부주관 학력고사(central toetsing)를 실시한다. 이는 교육의 각 단계가 끝날 때 실시된다. 즉 초등교육과정이 끝날 때 치루는 마지막 시험이 정부주관 학력고사이다. 이 시험의 결과에 따라 학생들은 자신들의 수준에 적합한 중등교육과정을 선택한다. 중등교육과정을 마무리 할 때에도 학생들은 학력고사를 치룬다. 학력고사를 통과해야만 학생들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학력고사의 결과를 참고하여 해당 학교의 교육수준을 가늠한다.
교육의 자유로 인해 네덜란드 기독교 학교들은 기독교적 인생관에 기초한 교육을 자유로이 실시 할 수 있다. 곧 학교는 기독교적 인생관을 교육의 세 가지 측면, 즉 학습 (지식의 습득), 사회화, 그리고 인격형성에 충분히 반영할 수 있다. 학생들의 사회화와 인격형성을 위해서 교육의 분위기와 교육환경이 중요하다. 기독교적 인생관에 기초하여 기독교 학교는 학생들에게 건전한 유대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한다. 또한 학생들 자신이 타인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으며, 기독교인으로 어떻게 사회에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는지를 가르친다. 학생, 학부모, 그리고 교직원 모두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서로를 도와야 한다는 의식이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살고 있다는 믿음 또한 중요하다. 이 믿음에 기초하여 기독교 학교는 학생들의 실수와 잘못을 훈육한다.
기독교 학교는 학습(지식의 습득)의 측면에서도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교육할 수 있는 충분한 자유를 누린다. 학습은 교육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판단력을 키우는 것이다. 학생들은 다양한 자식들을 배우고 그 지식들 사이의 연관성 및 관련성을 배운다. 더 나아가 그것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서도 질문하고 대답한다. 그런데 이 마지막 단계는 항상 특정한 세계관에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목적을 가지고 계신다고 믿는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새 창조를 이루고 계심을 우리는 믿는다. 기독교 학교에서는 이러한 믿음이 사태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기독교 학교는 이렇게 교육할 수 있는 충분한 자유를 누린다.
네덜란드는 다양한 역사를 가진 기독교 학교들이 있다. 100년이 넘은 학교들도 있다. 이 학교들은 교회에 의해 운영되었고, “성경과 함께 가르치는 학교 (School met de Bijbel)”라고 불리었다. 그런데 세속화 영향으로 상황은 조금씩 변했다. 비록 기독교 학교로 불리지만, 대부분의 학생들, 학부모들, 그리고 교직원들이 기독교 신앙에 더 이상 관심이 없는 학교들이 많다. 이 학교들은 교육 방침에 기독교적 규범과 가치를 반영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교육과정에서 성경을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고, 모든 종류의 세계관을 수용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네덜란드 개혁교회 해방파 교회에 속한 부모들은 1950년 이후 자신들의 자녀를 교육할 학교들을 설립하였다. 해방파 교단이 세워진 후 이들은 자신들의 자녀들을 개혁주의적 인생관을 가지고 교육시킬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부모들은 학교를 설립하였고, 해방파 교회의 교인들은 개혁주의적 교육의 필요성에 동감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모든 교직원들은 해방파 교회 교인이었고, 학생들과 학부모들 역시 그러하였다. 해방파 교회의 학교들이 네덜란드 전역이 세워졌고, 전적으로 해방파 교회 소속 교인들에 의해 운영되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해방파 교회는 자신들의 고립화에 대해 반성하기 시작했다. 기독교인들로서 자신들의 교육과 삶에서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기를 원하는 타 교단들과 교류하기 시작하였다. 비록 해방파 교회와 상이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교회와 그 교회의 회원이라 할지라도 동일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이다. 이후 개혁주의 전통을 공유하는 교회들 간의 공동작업이 활성화 되었고, 이는 학교교육에도 영향을 미쳤다. 타 교단의 회원들도 해방파 학교에 학생을 보내고, 또한 교직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교직원 임명에 있어 교회회원자격이 덜 중요해 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회회원’이라는 형식적인 측면보다 교직원 각자의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중요하며, 모든 교직원들이 학교가 개혁주의 정체성을 실현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이는 학생들을 교육하는 구체적인 현장에서 그러하다. 특정한 교단의 ‘교회회자격’보다, 개혁주의에 충실한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학생들을 위해 더욱 중요하다.
개혁주의 학교들은 정체성을 충실하게 실현시킬 수 있는 교육정책을 세워야 한다. 이에 좋은 사례들이 많다. 현재 개혁주의 학교들은 “개혁주의학교협회 전국연합 (LVGS: het landelijk verband van gereformeerde schoolverenigingen, http://www.lvgs.nl)”을 결성하여 개혁주의 정체성을 더욱 뚜렷하게 발전시키고자 공동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로써 학교들은 개혁주의 학교로부터 기대되는 바를 부모들, 학생들, 교직원들, 그리고 정부에게 분명히 제시한다.
네덜란드에는 개혁주의 학교들 외에 다른 전통에 서 있는 기독교 학교들도 있다. 이들 역시 기독교적 정체성을 진지하게 고수하고 있으며, 상호 협력한다.
기독교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학교들 외의 공립학교들은 일반적인 학교행정에 의해 운영된다. 이러한 학교들은 특정한 신앙을 표방하지 않는다. 또한 설립 당시에는 기독교 학교였으나, 현재 기독교적 정체성을 버린 학교들도 있다. 이들은 학생들에게 기독교적 인생관을 교육시키지 않는다. 간혹 이런 학교들 중에 매주 한번 기독교인 교사가 실시하는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는 해당 학교의 교육스스템과 관련 없이 이루어지는 예외적인 수업이다.
2. 구체적인 현장에서의 정체성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다시 말해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학교는 구체적인 교육현장에서 정체성이 드러나야 한다. 학교 운영회가 개혁주의적 정체성을 문서에 반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한 정체성을 실현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후원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학교를 선택한 사람들은 모두 개혁주의 정체성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정체성을 매일의 교육 현장에서 실현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만약 학교운영회가 개혁주의 정체성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찾고 임용하였다 하여 자연히 현장에서 개혁주의적 정체성이 실현될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이는 지극히 순진한 판단이다. 기독교인들이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고자 한다면 영적인 양식을 매일 먹어야 하듯이, 기독교 학교 또한 구체적인 교육 현장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활발하게 유지하기 위해 매일의 특정한 활동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개혁주의 학교는 매일 성경을 펼쳐 읽는다. 특히 매일 학급조회시간(dagopening)에 성경을 읽는다. 교육일과를 시작하면서 교사는 학생들과 함께 성경을 읽고, 본인의 믿음을 학생들과 공유한다. 교사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학생들과 나누면서 신앙의 확신을 공유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교사가 품고 있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학생들과 나눔으로써 동일한 질문을 가진 학생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교사가 진지한 고민을 학생들과 나누고 학생들과 함께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기도하는 것은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다. 또한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과 세계의 여러 나라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 역시 그러하다. 함께 성경을 읽고 기도 함으로써 교사와 학생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학교의 학생들로 서로 만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함께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조회의 영적인 힘을 경험한 적이 있다. 학교에서 일하던 어느 날, 필자는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몇 시간 전 한 동료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필자는 이를 다른 동료들에게 알려야 했다. 슬픔으로 가득 찬 우리는 조회 시간에 함께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했다. 이때 우리는 슬픔을 이길 수 있고, 서로가 더욱 하나가 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함께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은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학교는 학생들을 교육하고 잘 가르쳐 배움을 전수해야 한다. 그런데 개중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배우고 익히는 것에 곤란을 겪는 학생들도 있다. 학교는 이런 학생들을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한다. 학교는 이들에게 적합한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고, 무엇보다 상담을 통해 그들의 문제를 직접 듣고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 가정의 문제나 학생 자신의 개인적 문제 등이 학습에 지장을 줄 때, 교사는 상담을 통해 다양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학생들 자신이 가치있는 자임을 알려주어야 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학생들을 만드시고 사랑하시고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려줌으로써 가능하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 주는 것이야 말로 가정의 문제나 개인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학생들을 지도하는데 가장 중요하다.
개혁주의 학교교육의 중요한 목적은 학생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가르치는 것이다. 개혁주의 학교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르치면서 이 자연이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가르친다. 우리가 묘사할 수 있으나 결코 모방할 수 없는 신비로운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도록 하신다는 것도 가르친다. 개혁주의 학교는 사물의 아름다움을 관찰할 수 있는 방법과 수학의 흥미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본인의 의사를 정학하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아름답게 묘사할 수 있는 다양한 언어를 가르치면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임을 강조한다. 이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교실에서 보여주는 것이 교사의 고귀한 책임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모든 교사들에게 손쉬운 것은 아니다. 또 늘 좋은 예들을 찾을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기에 교사들은 서로를 돕고 배우며 창의적인 도구와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교육은 동급생들 사이의 건전한 유대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개혁주의 학교의 모든 학생들은 동급생 소그룹에 속한다. 그러나 동급생들 사이의 유대관계가 늘 원만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사춘기를 겪는다. 이들은 불안감을 느끼고 감정의 격동을 서투른 방법으로 표출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학교는 학생들이 상대방을 존중하고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로써 학교는 건전하고 원만한 배움의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이는 개혁주의 학교에서도 동일한 과제이다. 이는 개혁주의 학교가 학생들에게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적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3. 학교, 가정, 그리고 교회의 연계성
그렇다면 개혁교회의 학교교육과 가정, 그리고 교회의 연계성은 어떠한가? 가정과 교회에서 학생들은 동일한 개혁주의 정체성을 배운다. 학교에서 마찬가지로, 자녀들은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선하신 하나님의 창조를 듣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배운다. 이같은 신앙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은 가정에서부터 그들을 양육하는 부모로부터 이 신앙을 전수받고 배워야 한다. 또한 이 동일한 신앙을 교사들은 학교에서 가르친다. 이렇게 부모들의 양육과 교사들의 교육은 함께 작동한다. 동일한 신앙을 바탕으로 양육과 교육이 협력하여 어린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양한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고, 그들의 인격 형성을 돕는다.
나는 다리가 세 개인 의자를 예로 들고 싶다. 다리가 세 개인 의자에 어린이가 앉아 있다. 의자에 앉은 어린아이는 자연스레 성장한다. 그런데 아이가 나이가 들고 더 무거워지면, 아이의 무게를 못 이긴 의자의 다리들이 부서질 수 있다. 의자 다리들 또한 아이들의 성장을 지탱할 수 있도록 튼튼해야 한다. 각각의 다리가 떠받쳐야 할 지점을 든든히 받쳐 무거워지는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 세 개의 다리는 가정, 학교, 그리고 교회이다. 아이들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셋 중 어느 하나라도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의자는 부서지고 아이는 바닥에 떨어지고 만다. 가정, 학교, 그리고 교회 간의 조율은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개혁교회의 학교교육에는 소위 ‘삼각형’이 자주 언급하였다. 이는 개혁주의의 교육을 ‘가정’, ‘학교’, 그리고 ‘교회’라는 삼각으로 이루어진 삼각형에 비유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축을 교육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적용하려 할 때, ‘교회’는 단지 해방파 교회만을 의미하지 않고, 보다 넓다. 이에 대해 해방파 교회회원들의 일부는 개혁주의 학교의 정체성을 상실한 것으로 여긴다. 이들은 ‘우리가 해방파 교회를 버린다면, 이는 개혁주의 교육의 삼각형이 와해된 것이고, 개혁주의 교육의 정체성을 상실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교회 현실을 차분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해방파 교회에도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이견으로 내부적인 다양성이 존재한다. 동시에 동일한 문제에 대해 다른 교단들은 해방파 교회 보다도 일치된 견해를 보이기도 한다.
교육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동일한 목적과 목표를 지향하는 노력이 성공의 열쇠이다. 이는 당연히 네덜란드 개혁교회 해방파의 학교교육이 해방파 교회와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교단의 다름이 해방파 교회의 학교와 협력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특히 이는 개혁교회의 학교교육의 최근 동향을 살필 때 분명하다. 단 이러한 협력작업은 해방파 교회의 정체성이 학교교육에서 끊임없이 유지되도록 하는 노력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학교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그리스도인들을 통해’라는 구호 아래, 모든 교직원들이 개혁주의 전통에 기초한 교회의 회원이 되어야 하고, 개혁주의 전통에 입각하여 학생들을 가르쳐야 함을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이는 부모들에게도 기대되는 바이다.
해방파 교회의 학교교육과 해방파 교회들은 긴밀한 연계는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리고 더욱 긴밀한 연계성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학교는 특별한 프로그램을 통해 해방파 교회의 목사를 초청하여 학생들과 교실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이로써 학생들은 목사로부터 학교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신앙을 배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학교는 자신들이 교회의 자녀들을 교육하며 얻은 경험과 지식을 교회와 공유할 수 있다. 이렇게 학교 현장에서 교회와 학교가 만나는 것은 교회의 자녀들을 위해 더 없이 중요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4. 채비시키는 교육
양육과 교육의 목표는 자녀와 학생이 성장하고 성숙하여 독립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에 부모와 교사는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이다. 학교의 책임은 학생들을 채비시키는 것이다. 즉 학교는 학생들에게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르쳐, 학생들 스스로가 맞닥뜨릴 문제들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학생들에게 답을 가르쳐 주는 것으로 불가능하다. 학생들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다양한 것들을 직접 경험하고 직접 답을 찾아야 한다. 학생들은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성장통을 겪어야 한다.
중등교육과정에는 대학(universiteit)이나 전문학교(hoogschool)를 진학하고자 하는 상당 수의 학생들이 있다. 대학은 이들에게 각자의 창의적인 시각을 기대한다. 또한 고등교육기관에서 기독교 학생들은 세속적이고 학문적인 분위기를 맞닥뜨린다. 교수들 중 누구도 학생들의 신앙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학생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이들은 이 힘을 대학에 진학하기 전 개혁교회의 학교교육에서 충분히 습득해야 한다. 사실 이것은 끝없는 연습의 과정이다. 그러나 학교교육은 그 기초를 든든히 다질 수 있다. 이를 위해 필자가 봉사하고 있는 학교가 시행하는 교육방법 중 다섯 가지를 예로 들어 보겠다.
• 개혁교회의 학교들은 ‘가정과목(Verzorging)’을 위한 수업방법을 개발하였다. 이는 이 과목을 통해 자연스럽게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가 무엇일까?’를 질문하도록 돕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수업방법은 성(性)교육과 건강관리교육과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학생들 스스로가 질문하도록 돕는다. 그리고 환경보호에 대한 가르치면서도 학생들이 동일한 질문을 하도록 이끈다.
• 학교가 멘토들을 지정하여 학생들을 상담하도록 한다. 학교는 멘토와의 상담을 통해 학생들간의 유대관계를 주의 깊게 살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다양하고 일반적인 질문들을 멘토와 함께 토론하면서 보다 인격적으로 배운다. 개혁주의적인 관점을 유지하면서, 개혁주의 전통과는 다른 배경에서 발전된 상담방법들도 사용하였다. 멘토링은 학생들의 구체적인 삶과 그들이 믿는 바를 긴밀하게 연관시켜 주기 위한 노력이었다.
• 학교가 상급생들을 위해 ‘즐김’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일일교육을 실시한다. 이는 아주 흥미로운 시도이다. 왜냐하면 ‘즐김’이라는 단어는 학생들에게 세속적으로 들릴 수 있는 달갑지 않은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는 성경 안에 나타난 ‘즐김’을 가르쳐 준다. 학교는 이를 성(性)과 술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들과 연결시킨다.
• 학교는 학문적인 후속과정, 즉 대학에 진학 할 계획을 가진 학생들을 대상으로, 우리는 기독교 학자를 초청하여 자신들이 학문세계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에 대해 소개하고 설명할 기회를 마련한다. 신앙을 유지하는 것과 학문은 양립가능한가? 창조인가 진화인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학문을 연구해야 하는가? 등에 대해 학생들은 질문하고 그리스도인 학자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지침을 제공준다.
• 필자의 학교는 로테르담에 있다. 로테르담에는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있다. 학교는 학생들과 함께 모스크를 방문하여 이슬람교와 무슬림들에 대해 건전한 이해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왔다. 이는 타문화에 대한 바람직하지 못한 선입견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한 도시 안에서 평화로운 삶을 영위해야 한다. 이는 상대방의 문화와 종교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필요로 한다.
방금 제시한 예들은 ‘안내 받는 대면’이라고 칭할 수 있겠다. 학교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세상’에 대해 배울 필요 없이 교회의 자녀들이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오해이다. 입학한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으로 나갈 시기는 곧 다가온다. 그때 이들이 세상 안에서 기독교인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개혁교회는 학교교육을 통해 가르쳐야 한다. 이는 잘 정비된 보호와 안내를 통해 가능하다. 학교는 학생들이 세상을 대면할 수 있도록 성장과 성숙, 독립성, 그리고 책임감에 중점을 둔 보호와 안내를 통해 그들을 돕는다.
5. 결론
글을 맺으며 필자는 두 가지를 부연하고자 한다.
첫째, 지금까지 필자가 적은 것은 개혁교회의 학교에서 봉사하고 있는 교사로서 본인의 경험과 판단에 기초한 것이다. 다른 강조점을 가지고 개혁교회의 학교교육에 대해 접근하고 평가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둘째, 이 글을 읽는 독자가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학교교육을 하나의 이상(理想)으로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어디나 마찬가지로 네덜란드 개혁교회 학교들은 본인들의 정체성을 재발견하고 발전 시키고자 늘 노력한다. 무엇보다 네덜란드의 교육현장 또한 만만치 않다. 필자는 매일 나 자신과 내가 속한 학교가 더욱 발전해야 한다고 자책한다. 개혁주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실현시킨 교육현장을 만든다는 것은 요원하다. 필자는 자신을 늘 학생으로 생각하며, 특히 그리스도의 학교의 학생이라는 사실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