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하나...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였다. 부모님께서 격하게 다투셨는지 어머니께서 보따리를 챙겨 집을 나가셨다. 형은 어머니를 따라나섰고, 나는 우물쭈물하다 집에 남겨졌다. 그 와중에 내 생일을 맞이했다. 당시(1970년대)는 먹고사는 일이 우선이라 아이는커녕 어른조차 생일 따위는 거르는 일이 허다했다. 당연히 아무런 기대도 없었는데 아버지께서 나를 경양식집에 데려 가셨다. 가족이 생이별을 한 상황이었음에도 돈까스는 참 맛있었다. 옥의 티라면 아버지께서 뽀이를 불러 밥을 한 접시 더 청하신 일이다.
그 땐 그게 왜 그리 창피했는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이야기 둘...
“최상병님, 제가 휴가를 나갔을 때 말입니다. 레스토랑에서 돈까스랑 맥주를 마셨걸랑요. 그런데 참 이상하더라고요. 처음에 넙적한 접시가 나오기에 거기다 뭘 덜어 주려나 했는데 암만 기다려도 안 주더라고요. 그러더니 야채(샐러드)가 담긴 접시를 가져다 놓고 그 접시를 그대로 가져가더라고요. 왜 그랬을까요?”
“(곰곰 생각을 해보다)ㅋㅋㅋ~ 완전 촌닭들이구만. 처음에 가져다 준 접시는 빈 것이 아니라 크림스프가 담겼겠구만...ㅎㅎㅎ
돈까스를 먹을 때마다 떠올리는 추억담 두 편이다. 요즘에야 도시락 반찬으로 싸가지고 다닐 만큼 흔한 음식이 되었지만 불과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돈까스는 선택받은 소수의 인류만이 별식으로 맛보던 귀한 음식이었다. 내 경우도 어쩌다 큰맘을 먹고 작업(?)용으로 이용했을 뿐이다. 경양식집의 어두침침한 분위기나 나이프와 포크를 양손에 쥐고 고기를 썰어 먹는 행위 따위의 낯설음이 상호유대감 형성에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격동의 1980년대, 부잣집 아이와 사귀었고 급기야 고급 레스토랑이란델 가볼 일이 생겼다. 돈까스든 정식이던 주문하며 라이스 또는 빵 중 하나만 선택하면 일사천리로 음식이 제공되는 흔한 경양식집이 아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선택해야 하는 진짜 레스토랑이었다. 메뉴판을 보면 볼수록 머리가 텅 비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진땀을 빼가며 눈치껏 주문을 했다. 그랬는데 제일 먼저 나온 스프란 놈부터 아주 생소했다. 여태 먹어 본 스프라곤 오뚜기 (크림, 야채, 쇠고기)스프 따위였는데 돌연 커다란 야채와 고깃덩어리가 넉넉히 담긴 자주빛의 스튜스런 음식을 차마 스프라 인정 하기 싫었다. 또 고깃덩어리와 치즈을 수북히 얹은 샐러드 또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여태 샐러드라곤 마요네즈로 버무린 사라다나 케찹을 끼얹은 양배추채 밖에 구경을 못해 봤던 터였다.
언젠가부터 돈까스가 분식집 메뉴로 곤두박질을 치더니만 돈까스를 제대로 먹으려면 일본식 돈카츠집 가야 한다는 암묵적 분위기가 형성됐다. 헌데 돈카츠는 내가 소싯적부터 드나들던 경양식집의 돈까스하고는 생김새부터가 영 달랐다. 우선 스프를 안 준다. 이래서야 돈까스(경양식)를 먹는 기쁨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돈카츠가 나오면 더욱 황당해진다. 모처럼 칼질 좀 해보겠구나 싶어 어깨에 잔뜩 힘을 주었는데 막상 나온 돈카츠는 한 입 크기로 잘게 썰려서 나온다. 나이프와 칼 대신 나온 끝이 뽀족한 젓가락마저 낯설다. 게다가 다꾸앙(단무지)과 미소시루(된장국)는 또 뭐란 말인가? 돈카츠는 서양식이거나 한국식이 아닌 일본음식일 따름이다.
얼마 전 가족과 정릉과 성북동 일대를 한 바퀴 돌아 봤다. 점심때를 막 지나서 집을 나와 ‘봉국사-정릉-길상사-서울성곽’을 차례로 둘러봐도 저녁식사를 하기엔 다소 이른 시간이었다. 하지만 점심식사가 부실했는지 시장기가 돌았다. 현재 위치는 명륜동과 성북동의 경계지점인 서울과학고등학교 앞이다. 근처에는 칼국수, 돼지갈비, 짜장면, 초밥, 묵밥, 잔치국수, 돈까스 등 소문난 음식점이 많은 동네라 오히려 선뜻 정하기가 힘들다. 조금 더 멀리 본다면 삼청동, 돈암동, 대학로도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는 위치다.
평소 외식이 잦은 나는 집밥을 선호하지만, 아내와 딸아이는 모처럼의 외식마저 집밥스런 음식을 먹기는 싫을 것이다. 궁리 끝에 선택한 메뉴는 돈까스였다. 이름하여 금왕돈까스. 예전엔 허름한 건물이었는데 이번에 방문해 보니 옛건물의 뒤편에 깨끗한 식당을 새로 지어 옮겼다. 하지만 서비스나 돈까스의 맛은 예전과 별반 다를게 없었다. 딱 기사식당 수준의 서비스와 맛을 생각하면 되겠다. 적당한 가격으로 대충의 서비스를 제공 받으며 배불리 먹어줄 수 있는 식당이란 뜻이다.
이상은 2006년 3월 20일, 엠파스 블로그에 파찌아빠란 닉네임으로 올렸던 글입니다.
어제 업무차 아내와 함께 정릉에 다녀왔습니다. 업무를 마친 시각이 점심 때라 성북동에 있는 오박사네왕돈까스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최근에 성북동쪽 손국시집에 다녀 온 적이 없어서 연희칼국수의 사진으로 갈음합니다.
정릉시절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그 동네의 먹거리도 연상이 되는데 가장 그리운 음식을 꼽으라면 사골국에 말아주는 하늘하늘한 손국시입니다. 국시집, 손칼국수, 혜화칼국수, 우리밀국시 등에서 맛볼 수 있습니다. 손국시는 국시집마다 다른 듯 비슷하기에 우열을 가늠하지 않고 그 때 그 때 내키는 곁들임 음식에 따라 선택지를 정하는 편입니다. 수육이 땡길 땐 국시집, 육전은 손칼국수, 생선전과 바싹불고기는 혜화칼국수, 감자전은 우리밀국시 등을 찾는 식입니다.
정식/오박사나왕돈까스
그런데 희한하게도 막상 정릉에 갈 기회가 생기면 왜 왕돈까스 따위나 먹고 오는 걸까요? 이번에도 오박사네 왕돈까스를 먹었으니 말입니다. 성북동에는 유명한 돈까스집이 여럿 있습니다. 그 중에서 역사와 전통을 따진다면 금왕돈까스, 주차가 용이한 곳은 오박사네왕돈까스와 바로 옆집인 서울왕돈까스, 가성비는 성신여대쪽 온달왕돈까스가 낫습니다.
<갑판장>
& 잠깐정보 :
돈카츠(とんカツ) : 일본어와 영어가 뒤섞인 일본스러운 단어로 とん(豚)은 돼지를 뜻하며 pork를 대치한 말이고,
뒤에 붙은 까츠(カツ)는 소, 돼지고기에 밀가루, 계란 노른자, 빵가루를 묻혀 기름에 튀겨낸 요리인 cutlet의
일본식 발음인 카츠레츠(カツレツ)에서 앞의 두 음절인 카츠(カツ)만 따온 것이다.
즉, 서양음식인 pork cutlet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현지화 되어 일본음식인 豚カツ(돈카츠)가 됐다.
이를 다시 한국에서 받아들이며 현지화 되어 한국음식인 돈까스가 됐다.
첫댓글 광명시장에서 고추튀김 사왔으니 쐬주 한 잔 해야할듯 ㅎㅎ
이런 거까지 행차했으면 연락했어야지..ㅉㅉㅉ
@강구호 갑판장 반쪽 모임이 공항쪽에 있어서 기사로 갔다가 잠시 들럿다는...ㅎㅎ
파찌의 어릴때 얼굴이 살짝 보이네요,,, 이제는 대학생인데 왕돈까스보단 일본식 돈가츠를 좋아할려나요,,,
단체급식의 여파로 돈까스, 카레 등을 먹으러 가자고 하면 고개부테 설레설레 흔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