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장소 : 무등산 약사암
일 시 : 2023.11.09(목)
참 가 : 강공수 김영부 김재일 나종만 박남용 양수랑 윤상윤 윤정남 이용환 장휘부 정원길 등 11명
불 참 : 김상문(마산행) 1명
회 비 : 110,000원
식 대 : 88,000원(애호박찌개 5, 김치찌개 3, 청국장 1, 돼지 불고기 1 )
오늘 잔액 : 22,000원
이월 잔액 : 508,000원
총 잔 액 : 530,000원
부곡정에 9명(강공수 김영부 김재일 나종만 박남용 양수랑 윤상윤 윤정남 이용환 등)이 모였다. 10부터 바로 산행을 시작하였다. 오늘은 모두 약사암으로 가기로 하였다.
책력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어렸을 적에는 집집마다 정월이면 달력 말고 책력을 사서 토정비결을 보고, 또 책력에서 절기를 알아서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예전에는 우리나라가 중국의 절기를 따라 농사를 지었는데 그 절기가 우리나라와 맞지 않아서, 조선시대에 들어와 세종대왕은 중국의 절기와 독립된 우리나라의 책력을 만들어 농사를 지으려고 하였다. 그리고 농사직설을 지어서 농민들이 더 많은 수확을 올릴 수 있도록 하였다. 당시에 중국의 책력을 사용하지 않고 우리의 책력을 사용하면 중국, 즉 명(明)으로부터 반역을 하게 되므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제정하여 우리 백성들이 사용하도록 하였는데, 당시 중국을 섬겨왔던 우리나라의 벼슬아치들은 이러한 사대사상(事大思想)에 물들어 있었기 때문에, 훈민정음의 사용도 우리 책력의 사용도 극구 반대하였던 것이다.
고대 중국의 하(夏) 은(殷) 주(周) 시대부터 책력을 만드는 것은 오로지 천자(天子)만이 가질 수 있는 권리였다. 그래서 봉건(封建) 제후(諸侯)들은 정월이 되면 모두 천자에게 가서 문후를 드리고 책력을 받아 자기의 영지(領地)로 가서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고 신하들은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어 농사를 짓곤 하였던 것이다. 그 토록 책력은 일종의 소중한 권력이었던 것이다. 천자만이 가질 수 있는 권력인 책력을 제후(諸侯)와 가신들에게 나누어 주면 백성들은 그것을 받아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은 땅이 넓은 나라여서, 어느 지역을 중심으로 책력을 만드느냐에 따라 절기가 달라지므로 많은 불편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즉 그 왕조의 서울이 어느 지역이냐에 따라 그곳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책력이, 위도나 경도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자연히 절기가 맞지 않게 되므로 불편이 많았지만 그런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영특하신 우리 세종대왕께서는 그것을 스스로 깨닫고 관상감(觀象監)을 설치하고 수학자나 역학자들로 하여금 각종 천문기구를 만들어서 우리나라의 절기에 맞는 책력을 만들어서 생활에 불편이 없게 하고, 절기에 맞게 농사를 짓도록 한 애민(愛民) 군주였던 것이다.
약사암은 바야흐로 가을이 무르익어 이제 곧 겨울을 향해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은행나무 잎이 바닥에 노란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하였다. 탐방객들이 은행나무 아래 자연스럽게 이리 저리 앉아서, 낙엽이 만들어 낸 황홀한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낙엽 밟는 소리를 듣고 있는 이, 떨어져 있는 낙엽에 시선이 멈추어 나름의 상상력으로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 이, 그들은 모두 예술가였다.
음악정자에 모였다. 정원길과 장휘부도 늦게 도착하여 기습곡(旣習曲) <엄마야 누나야>를 함께 불러 보았다. 강공수는 오늘 부를 곡인 김규환 작사 작곡 <가을 길>의 작곡가 김규환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평양에서 태어나고 평양음악학교를 졸업한 김규환(1926~2011)은 2005년 제18회 대한민국 동요대상(작곡부문)을 받았고, 영남대학교와 동의대학교에 출강하였으며, KBS 어린이 합창단을 지휘하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 중에 엄정행이 부른 <임이 오시는지>, 공병우가 부른 <남촌>, 박재란이 부른 <산 너머 남촌에는> 등이 특히 유명하다. <가을 길>을 두 번이나 불러보고 식당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