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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번 째로 쓴 수필을 올립니다.
어떤 말씀이든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따끔한 충고와 쓴소리 부탁드립니다.
두 개의 악몽
사람은 누구나 잠을 자면서 꿈을 꾼다.
꿈을 꾸는 이유는 주장하는 학자들마다 다르다. 우리 내면에 숨어 있던 무의식이 나타나는 것이라는 주장, 잠을 자는 동안 다른 차원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라는 주장, 전생의 기억이 나타나는 것이라는 주장, 무언가 예지를 하는 것이라는 주장 등.
또한 가끔은 악몽을 꾸기도 한다. 귀신이 나오는 꿈을 꾸기도, 자신이 죽는 꿈을 꾸기도,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기도 한다. 어렸을 때는 나 역시 악몽을 꾸다가 겁에 질려 깬 적도 여러 번 있었고, 심지어는 잘 때마다 같은 악몽을 꾸는 바람에 잠들기가 무서웠던 적도 있었다.
이십대 이후에는 겁이 없어져서 그런지 귀신이나 괴물이 나오는 악몽을 꾸었던 기억은 없고, 혹 가다가 여자친구와 헤어지는 꿈이라든지, 엄마가 돌아가시는 꿈속에서 우는 바람에 아침에 일어나니 베개가 눈물에 흥건히 젖어 있던 적도 있었다.
대부분의 꿈은 아침에 깼을 때만 잠깐 기억이 나고 이내 기억에서 사라진다. 굉장히 좋았던 꿈을 꾸고 나면 그 느낌을 오래 간직하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금세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내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잊히지 않는 꿈이 몇 가지 있으니 첫 번째는 태몽이다.
꿈에서 나는 어느 햇볕이 잘 드는 방 안에 앉아 있었다. 방 안엔 그 어떤 가구나 물건도 없이 텅 빈 방이었고, 창문으로 햇살이 환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밖에서 새들이 날아와 창가에 앉아 있다가 그 중 한마리가 방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바닥에 내려앉아 나에게 다가오는 새는 엄청나게 커다랗고 살이 오른 비둘기였는데, 희한하게 색깔이 까마귀처럼 온통 검은 색이었다. 나에게 종종 걸음으로 다가와서는 내 가슴에 안기는 꿈이었다.
주위 사람들한테 얘기를 하니 태몽이라고들 했다. 그땐 병원에서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지 않을 때였고, 나 역시 성별에는 관심이 없어 태어날 때까지도 모르다가 사람들이 아들 태몽이라기에 반신반의 했는데 낳고 보니 진짜 아들이었다.
태몽이여서 그런 걸까? 아들이 중학생이니 그 꿈을 꾼 지도 한참이 지났지만 지금도 바로 어젯밤에 꾼 꿈인 냥 또렷하다.
아들의 태몽을 제외하고 내가 살아오면서 생생히 기억나는 꿈 두 가지가 있다. 하필이면 둘 다 악몽이다. 그 꿈들이 생생히 기억나는 이유는 같은 꿈을 꽤나 여러 번 꾸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악몽은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꾸어봤을 입대하는 꿈이다. 그런데 나의 입대하는 꿈은 다른 남자들의 꿈과는 조금 다르다. 보통은 전역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다시 훈련소로 입대하는 꿈을 꾼다고 하지만 나의 경우는 전역하고 15년이 넘도록 같은 꿈을 꾸곤 했다. 꿈에서 나는 이제 훈련소로 입소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이다. 계급이 훈련병일 때도 있고, 이등병일 때고 있고, 병장일 때도 있다. 공통점은 한 가지. 이미 전역을 했는데 다시 입대했다는 것이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무슨 서류가 잘못 되어서.
전역을 하고 전역 신고서를 동사무소에 제출 했는데 그 서류가 잘못 됐던지, 아니면 분명히 병장 만기 전역을 했는데 그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새로운 부대에 다시 배치되었다고 한다. 꿈에서 나는 훈련을 받으며, 혹은 내무반 생활을 하며 억울해 하지만 나의 억울함을 알릴 수도 없고, 알려봐야 소용이 없거나, 다른 사람들한테 얘기를 해도 믿어주지 않는다.
내가 훈련병으로 나오는 꿈에서는 저녁에 전투화를 닦다가 동기들한테 억울하게 재입대 했다고 말하지만 동기들이 믿질 않는다. 내일은 어떤 훈련, 다음 주엔 어떤 훈련을 받게 될 것이라고 얘기해주면 동기들이 이내 내 말을 믿으며 안타까워한다. 뭔가 잘못 됐다고 소대장한테 말을 하면 일단 상부에 전달할 테니 그때까진 훈련을 받으라고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 어떤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이등병으로 나오는 꿈에서는 내 위로 고참 들이 전부 같이 복무했던 내 후임병들이고, 그들도 그 사실을 안다. 계급 상 나의 고참 들은 내가 자신들의 고참 이었던 걸 알기 때문에 이등병한테 '주선태 병장님'이라고 부른다. 전투모에는 작대기가 하나만 붙어 있지만 내부반 관물대는 가장 안쪽, 그러니까 최고참 병장의 자리이다.
내가 병장인 꿈에서는 부대원이나 간부들도 내가 서류가 잘못 되어 재입대 했다는 걸 알고 측은해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계속 근무해야 하는 상황으로 나온다. 26개월 만기 전역 후 재 입대해서 현재 병장이니 군 생활만 4년째 하고 있는 셈이다.
휴가 나왔다가 복귀하는 꿈도 꾼다. 분명히 내가 전역을 했는데 왜 다시 군복을 입고 입영소를 통과하고 있는지 이해를 못해 억울해 한다. 한마디로 미칠 노릇인 것이다.
비슷한 내용의 이런 꿈들을 15년 넘게, 잊을 만 하면 꾸곤 했다. 그러다가.
전임 교에서 체육부장으로 근무할 때 배구부가 창단되어 4년 동안 배구부를 맡았었다. 전국대회에 참가하면 선수 인솔과 관리를 위해 시합장에 같이 다니곤 했는데, 대회 장소도 태백, 제천, 단양, 영광, 평창, 영주, 해남 등 전국 각지에서 열리곤 했다.
2013년이었던가, '대통령배 전국 남녀 중고 배구대회'가 전남 강진에서 열렸다. 전국대회 시합은 보통 예선에서 결승전까지 일주일 정도 기간이 소요된다. 그 날은 우리학교가 예선 통과 후 8강 경기를 앞 둔 상태에서 다른 조의 예선이 아직 안 끝나 경기가 없는 날이었다. 문득 내가 군복무 했던 부대에 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민간인 신분으로 부대 안까지 들어가진 못하겠지만 전역하던 날 감격에 젖어서 걸어 나왔던 위병소 앞에만 가 보더라도 다시는 재입대하는 꿈을 안 꿀 것 같은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전남 강진에서 내가 복무 했던 상무대가 있는 전남 장성까지는 자동차로 한 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차들이 뜸한 한적한 지방 국도를 달리며 무어라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들곤 했다. 이윽고 부대가 가까워지면서 길들이 낯이 익기 시작하고, 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장소에 간다는 생각에 설렘이라고 하기에도, 그렇다고 긴장감이라고 하기에도 어색한 묘한 감정이 들었다. 마치 재입대 하는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윽고 부대 앞에 도착했다.
'어, 이게 아닌데…'
이상했다. 참으로 이상했다.
모든 게 그대로인데 크기만 작아졌다. 어릴 때 뛰어 놀던 초등학교 운동장에 어른이 되어 갔더니 작아진 느낌이랄까? 그렇게 위압감을 주던 부대 정문은 여느 대학교 정문보다도 작아 보였고, 위병소에 서 있는 헌병들은 예전 동네 방위들 마냥 기품이 없어 보였다. 위병소에서 한참을 걸어 나오던 면회소는 바로 코앞이었고, 나중에 전역하고도 꼭 다시 와서 먹고 싶었던, 휴가 복귀하기 전에 먹고 들어갔던 주물럭집은 허름한 식당, 그 이상도 아니었다.
소중한 내 청춘의 2년이라는 시간을 갇혀서 보냈던, 다시 돌아오지 못할 2년의 시간을 바쳤던 부대가 이렇게 보잘 것이 없었구나. 나는 너무 큰 실망을 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후로 거짓말처럼 군대 꿈은 다시 꾸지 않는다.
두개의 악몽 중 하나는 이제 다시 꾸지 않지만 하나가 남았다. 이번에도 뭔가가 잘못된 꿈이다.
꿈에서 나는 대학교 4학년이다. 분명히 열심히 공부해서 임용고시에 합격을 했지만 졸업이 안 된단다. 졸업을 해야 신규 발령을 받을 텐데 이수 학점이 모자란단다. 모자란 학점을 채우기 위해 대학교를 더 다니고 있다.
발령을 받았는데 졸업이 안됐다며 임용고시 합격이 취소되는 꿈도 꾼다. 꿈에서 억울해서 소리를 질렀는데 잠꼬대를 했는지 옆에서 자던 아내가 놀라기도 한다.
발령을 받고 교직 생활을 하면서 모자란 학점을 이수하기 위해 방학 때마다 대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는 꿈도 꾼다.
졸업 이수 학점 수에 1학점이 모자라는 꿈도 꾼다.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에 수강신청을 할 때 학점 계산을 잘못 했던 것이다. 임용고시는 합격했지만 그 1학점이 모자라 졸업을 하지 못해 교육청에 찾아가서 상황 설명을 하는 꿈이다.
군대 재입대 꿈은 마지막으로 꾼 지 한참이 지났지만 대학 4학년을 다시 다니는 꿈은 얼마 전까지도 꾸어서 그런지 너무도 생생하다. 군대 꿈은 혹 가다가 꿈속에서 '이건 꿈일지도 몰라'하는 생각을 하지만 대학 4학년 꿈은 전혀 그러한 의심 없이 꿈속에서 현실을 받아들이고 좌절한다.
군대 재입대 꿈은 전역한 부대를 가 봄으로써 더 이상 안 꾸게 되었지만 대학 4학년에 다시 다니는 꿈은 어떻게 해야 다시 꾸지 않는 걸까? 졸업하고 한, 두 번 정도 모교를 방문했던 적이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계속 꾸니 말이다.
꿈속에서 나는 절망적이다. 교직에 발령을 받고 지금의 아내인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려고 했지만 모든 게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4학년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하는데 등록금도 없고, 집에서 도움도 못 받는 형편이다.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을 공부하진 않았지만 왜 이런 악몽을 꾸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내 인생에서 너무도 간절히 원했던 것들에 대해, 한편으론 부담이 컸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렇게 10년이 지나고, 20년이 다 되도록 꿈속에서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닐까?
중대원들 중 유일하게 끝까지 여자친구가 기다려 주었던 말년 병장이 전역 일을 손꼽아 기다리는 애타는 마음, 척추 디스크 파열로 수술을 받고 누워 있어야 했지만 그 해에 졸업시험과 임용고시를 보기 위해 힘들게 재활과 공부에 매달렸던 처절한 몸부림.
당시에 임용고시에 합격하지 못했으면 난 어땠을까? 과연 남들처럼 재수, 삼수를 할 수 있었을까? 어려운 집안 형편에 힘들게 대학 4학년을 마쳤는데 졸업 후에도 고시 공부를 위해 대학교에 머무를 수 있었을까? 군대 2년을 기다리고 먼저 대학 졸업 후 직장을 다니며 내 졸업을 기다리던 지금의 아내에게 뭐라고 말했으며, 부모님께는 뭐라고 말했을까? 무엇보다 암흑 같은 고시 생활을 끝내고 발령을 받아 아이들을 가르치길 꿈꾸던 나의 절망감을 어떻게 감당했을까?
얼마나 간절했으면 이렇게 오랜 시간 내 가슴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지 내 꿈이 말해주는 듯하다. 그러나 이제는 진심으로 다시 꾸고 싶지 않다. 이제 그만하면 되지 않았는가? 교직에 들어온 지 벌써 17년째인데 이제 임용고시에 대한 불안함과 부담은 사라질 때도 되지 않았는가? 군대 꿈을 다시 꾸지 않게 된 것처럼 대학 4학년 꿈도 다시 꾸지 않는 방법이 있을지 모른다.
아니다.
다시 생각을 해보니 가끔씩 그 꿈을 꾸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아닌 것 같다.
교직이 지겨워질 때, 교직에 대한 열정과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식을 때, 교직에 대한 감사함과 행복이 줄어들 때 한번씩 4학년으로 돌아가는 꿈을 꾼다면 그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들 것 같다.
앞으로는 그 꿈을 악몽이라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첫댓글 악몽은 누구나 꾸겠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계속 꾸다니 정말 신기하네요.
건망증인지 나는 꿈을 꾸었는지도 몰라요 ^^
뭔가 특별한 꿈이어서 그런가 봅니다. 감사합니다. ^^
저는 꿈 속에서 소설을 쓰는 꿈을 가끔 꿉니다.
무언가를 원하는 간절함이 꿈으로 나타나는가 봅니다.
꿈 속에서 꿈을 이루죠.
결론이 좋네요.
악몽이라 생각지 마시고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원했던 선생님이란 걸
잊지말라는 의미인 것 같네요.
좋은 꿈 꾸세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혹시 지난번 문봄 창립 기념 모임에서 시 낭독하셨던 분인가요? ^^
꿈을 안꾸는건 아날텐대 기억이 안나네요 ㅎ
기억이 안나는게 오히려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
저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을, 아이들이나 꿀것 같은 꿈을 오십이 넘어서도 자주 꿉니다. 이 글에 대한 심사평을 읽고 이 글을 읽으니 느낌이 다르네요. 심사평이 있는 문봄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