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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라(일진도 정의를 지킬 수 있다 / 사순절 5)
마 18:10-14
(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11) (없음)
(12)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사람들의 마음에는 정의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습니다.
정의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정의롭지 못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정의는 올바른 것, 쉽게 말해 멋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의로운 주연 캐릭터들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도 의로워 보이는 이타적인 인생을 선택하는 이들이 있는 것입니다.
즉 정상적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의와 불의를 구분할 줄 알기에
정의가 올바르고, 불의는 떳떳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무엇이 올바른 정의인지 이미 알고는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정의롭지 못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오늘날 상당히 많은 것을
우리는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든 면에서 완벽히 정의로운 선택을 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정말로 어렵다는 사실은 다들 잘 알고 계실 것이고,
사람마다 어떤 부분에서는 의롭지 못한 숨겨진 은밀한 부분이 있는 경우도 있고,
의로움은 아예 자신과 거리가 멀다고 단정 지으며
불의한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 ‘돈’과 ‘권력’과 ‘쾌락’과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마음’을 정의보다 더 중요시하기에
의로움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지만 의로운 삶을 사는 걸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그리스도인들은 정의로운 선택을 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구동성으로 인정을 할 정도로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의로움을 사랑하시고, 불의를 미워하시기 때문입니다.
사 56:1-2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라
이는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공의가 나타날 것임이라 하셨도다
(2)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의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하지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와 같이 하는 사람, 이와 같이 굳게 잡는 사람은 복이 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라”라고 명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선 정의로운 자들을 지지하시며,
불의한 자들을 악한 자로 판단하시는 의로운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의로움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고, 불의함은 마귀로부터 온 것이기에
의로움을 선택하는 자는 하나님 편에 속한 사람이고,
불의함을 선택하는 자는 마귀를 따르는 마귀 편에 속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의롭지 못한 자는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천국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정의롭지 않고,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괜찮다며 쉽게 불법을 행하며,
연약한 자들을 괴롭게 하고 착취하며, 업신여기는 자들은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을 정도로
다른 이들을 실족시키는 위험한 죄를 범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는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모든 행위는 천사들도 다 보고 있고, 당연히 하나님께서도 다 알고 계십니다.
사람이 정의롭지 못한 선택을 계속해서 하는 인생을 살면
꾸준하게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게 되고, 그것이 알려지면서 뭇사람들을 실족시키게 되기에
실족시킴과 정의의 관계는 매우 밀접합니다.
갈 6:7-8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에게 정의롭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어서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설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래야만 합니다.
모두가 자신이 뿌린 대로 거두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용서한 사람만이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정의를 사랑하며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고,
불의를 사랑하며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며, 저주하는 자는
마귀에 의해 반드시 동일한 저주가 자신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자신이 뿌린 그대로 거두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이며, 법칙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한 사람씩 서게 되는 그 날에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을 인정받고, 또한 긍휼히 여겨주심을 받고 싶다면
강자 앞에서는 약하고, 약자 앞에서는 강한 불의한 모습,
하나님께서 지으신 다른 사람들을 감히 업신여기는 교만한 모습을 버리고,
약자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며, 정의롭고 선하게 살아가는 것을 선택하면 됩니다.
우리의 말과 행위 때문에 상처 받은 이들, 실족한 이들이 하나님께 탄원한다면
우리는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입니다.
탄원하지 않는다 해도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지극히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들이 보는 앞에서 공의롭게 심판을 내리실 것입니다.
특별히 다른 사람을 부리는 높은 위치에 있는 자들은 더욱 주의해야 합니다.
그 날 기분에 따라 돈과 권력으로 불의하게 행하여
쉽게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길 수 있고, 또한 실족시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힘과 권력이 있는 사람이 정의를 바로 세우면 멋지게 세워지지만
힘과 권력으로 불의를 선택하면 한 없이 어두운 죄에 빠져들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골 4:1-2
(1)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엡 6:9
(9)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용자 위치에 있는 사람들, 다시 말해 상전들은
하늘에 계신 가장 높으신 상전, 즉 하나님의 법도를 따르고,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닮도록 힘써서 정의롭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영혼이 안전할 것입니다.
불의한 마음으로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다른 사람의 권리와 이익을 짓밟고,
속여 빼앗는 행위는 당연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며,
스스로를 심판의 대상으로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그럴 수밖에 없는 직장, 즉 불의에 가까운 행동을 해야만 진행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기에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하고 싶다면 자신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 그만두고,
이제부터는 정의롭게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찾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 확실하기만 하다면
도저히 내려놓기 힘들어 보이는 것도 고민 없이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아끼시며, 더욱 좋고 귀한 것들로 가득 채워주실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 이후에 우리 각자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즉 정의롭게 살지, 불의를 적당히 섞어 행동하며 살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데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서 도저히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가 없다면,
더 나아가 사람들을 업신여겨야만 하고, 실족을 시켜야만 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버려야 하는 삶이 확실합니다.
예를 들어 직원들에게 퇴직금을 주기가 싫어서
절대 연단위로는 계약하지 않고 10개월 이하로만 계약하여
10개월만 이용하고 퇴직시키는 치졸한 꼼수를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등의 정의롭지 못한 삶,
자신의 실적과 금전적 이득을 위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거짓말도 서슴없이 하게 된 양심이 딱딱해진 불의한 삶,
부하직원을 속여 실적을 빼앗거나 노동력을 착취하는 등의 불의한 삶을 살고 있다면
그 사람은 당연히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정의롭지 못함을, 그 냄새나는 불의함을
악하다고 정의 내리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닮아 의로운 삶을 살고,
마지막엔 구원에 이르고 싶은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다는 핑계와 변명은 이제 버리고, 전통이라고 부르며 이어가는 악습들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순종하여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할 것입니다.
엡 6:5-8
(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7)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딛 2:9-10
(9) 종들은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슬러 말하지 말며
(10) 훔치지 말고 오히려 모든 참된 신실성을 나타내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또한 고용인들도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눈가림만 하면서 성실하지 않고 불의한 이득을 취하는 자,
더 나아가 몰래 훔치는 자들도 당연히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하고
동일한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자신의 낮은 위치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악해보였던 것뿐
만약 높은 자리에 있었다면 똑같이 불의하게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며,
악하게 살 것이라는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각 사람이 무슨 선과 무슨 악을 행하든지 하나님께로부터 그대로 받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있든지 불의하게 살아가는 자,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정직하지 않은 자,
즉 정의롭지 못한 자들은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정의롭지 않고 불의하게 살아도 여전히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다면 더더욱 위험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뉘우칠 기회가 매우 적기 때문이며, 양심에 화인을 맞아 아무런 감각이 없고,
또한 스스로 계속 불의와 악을 선택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이미 다 놓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자신에게 불의한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다면,
양심에 걸리는 불편한 부분이 있다면
속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고 돌이킨 후
이제부터는 정의로운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렇게 하면 최소한 즉시 행복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큰 칭찬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귀한 복들을 가득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안 돼요. 저것 때문에 안 돼요.” 하는 이들은 그냥 하기가 싫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가치관 최우선에 하나님을 모신 사람은
어떤 이유가 있어도 하나님께서 기쁘시다면
즉시 행동할 수 있고, 마음도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전적인 손해를 보더라도, 감정적인 손해를 보더라도,
누가 옆에서 보고 있든지, 아무도 안보고 있는 혼자든지
언제나 정의롭게 행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사람으로서
반드시 가장 귀한 것으로 상을 받게 됩니다.
힘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의로운 척을 하고, 선한 척을 하는 이들은
의롭지 못한 자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에
그 사람이 힘을 가졌을 때 어떻게 행동하고 싶어 하는 지에 대해서도
이미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즉 힘이 있는 사람이든지, 없는 사람이든지
의로우신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 자신도 의롭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그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가족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뒤에서 남을 험담하며 업신여기면서
마귀가 주는 구역질나는 쾌감을 즐기며 살아가면서도 그것이 왜 죄인지를 도무지 모르는 무지한 자들,
인터넷 공간에서는 남들을 업신여기는 욕과 악플을 달며 희열을 느끼는 자들,
다른 사람들을 천하게 여기고 짓밟는 말과 행동으로 물질적, 정신적 이득을 얻고
거기서 자존감을 찾는 교만한 자들, 남의 것을 훔치는 자들, 속여 빼앗는 자들,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숨어서 악한 행동을 하는 자들 등등
정의, 그리고 불의와 관계된 일들은 매우 광범위하기에
각자가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되돌아보며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그리고 행동하고 있는 정의와 불의에 대한 현주소를 점검해야 합니다.
절대적인 기준은 언제나 성경말씀으로 하면 됩니다.
시 33:5
(5) 그는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
시 37:27-31
(27)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원히 살리니
(28)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29)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서 영원히 살리로다
(30) 의인의 입은 지혜로우며 그의 혀는 정의를 말하며
(31)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의 걸음은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진리의성령교회 가족 여러분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시길 저와 여러분들이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면
버림받지 않고 영원한 보호를 받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하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정의는 이렇게 멋진 것입니다.
의로움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불의한 선택을 한다면
그 사람은 그 순간 그리스도인이길 포기한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관계없는 자가 되는 선택을 스스로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의 주제는
착하게 살면 복이 오고, 악하게 살면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의 단순한 내용이 아닙니다.
정의를 사랑하시며, 악을 미워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영원히 함께 살게 될 가족을 찾고 계시는데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정의를 자신들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불의를 자신들도 미워하는 사람들입니다.
즉 하나님과 마음이 합해진 사람들입니다.
단순히 정의가 기분이 좋고, 악행은 나쁜 것이니까
인본주의적으로 악을 멀리하고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는 계몽은 낮은 수준의 각성이지만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면서 신본주의에 입각하여
하나님을 닮는 것을 기뻐하며, 마음과 생각과 행동을 늘 주의하면서
장성함에 가까워지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어울릴만한 수준 높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바로 그 중에 포함되십시다.
그 어떤 경우에라도, 즉 정의롭게 행한다면 내가 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망설임 없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정의를 선택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여 그 누구도 실족시키지 않기 위하여 언제나 말과 행위를 주의하며,
과거 언젠가 한 번이라도 수군거리며 누군가를 업신여기며 험담하는 죄를 범했거나,
누군가를 실족시켰거나 상처를 준 적이 있다면 철저하게 회개하여 돌이키고,
가능하다면 사죄하여 머리에 쌓여 있는 숯불을 떨쳐내야
곧 하나님 앞에 서는 그 날에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저는 학창시절에 싸움 짱, 요즘 흔히 말하는 일진이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저는 2짱이었고, 1짱은 초등학교 때부터 가장 친했던 친구,
그 친구랑 서로 1짱 하라고 양보하다가 결국 제가 양보해줌)
중학교에 입학할 때 키가 이미 170cm가 넘고, 합기도 유단자로서 시범단을 했기에
싸우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일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늘 하나님을 경외했고,
어렸지만 내 주변에는 정의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나름대로 하고 있었기에
학교 내에서 왕따를 시키는 녀석들, 동급생끼리 심부름을 시키는 녀석들,
즉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는 녀석들을 따끔하게 혼내줬고,
등교 길에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온 학생이 있다면 그 친구가 처음 보는 학생이었어도
저를 따르는 학생들 약 30명 정도를 데리고 청소시간에 그 학교에 찾아가서
교문 앞에서 큰 소리로 “야이 새끼들아!! 우리 학교 학생 다시는 건들지 마라!
걸리면 쳐 맞는다!”라고 외쳤습니다. 그 때는 그 학교의 선생님들도 전혀 무섭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폭력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정의로운 떳떳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학교의 불량 학생들은 저희가 무서워서 뒷담으로 도망쳤지만
저는 폭력을 쓰지 않기 위해 따라가지 않고 그대로 도망가게 두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희 학교 학생들은 안전하게 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창시절 내내 일진이면서 동시에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아서
매년 학급반장, 2년 연속 전교부회장(당시 전교회장을 하면 가난했던 부모님이
학교에 큰돈을 내야 했고, 번거롭게 해드리기도 싫어서 저도 스스로에게 투표하지 않았고,
유세할 때도 저를 찍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었습니다.)을 하는 매우 특이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제가 불량 학생들을 잘 선도해주니
선생님들도 덕분에 여러 모로 편하다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며 좋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무려 하나님께서 저의 그 부분을 칭찬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의로움이 그 테두리 안에 거하는 모든 이들을 편안하게 하고,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는 멋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학창시절을 벗어나 사회에 나오고,
군대에 가서 억울하게 특정 병과의 선임들로부터 지독한 집단 괴롭힘도 당해보니
(같은 병과의 선임들이 지켜줄 수가 없던 낮은 계급의 파견 상황)
정의라는 것은 오직 힘이 있는 자만 지킬 수 있는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잠시 하게 되었습니다만
그 이후로 지금의 중년까지 인생을 살아보니
힘이 없는 자도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확신하게 된 이유는
하나님께선 정의를 선택하는 자의 편이 되어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의심 없이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 우리가 얼핏 보기에는
불의해도 돈과 권력과 힘이 곧 정의인 것처럼 보이고,
불의한 선택을 해도 무조건 이기는 자가 최종 승자인 것처럼 왜곡되어 보이지만
공의로운 하나님께서 모든 이들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는 그 날에는
손해를 보더라도, 심지어 죽더라도 정의를 선택한 자와
욕심을 따라 돈과 권력으로 불의를 선택한 자의 형편은
하늘과 땅의 차이, 천국과 지옥의 차이, 즉 극과 극을 달리게 될 것이 확실합니다.
사 57:1
(1)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진실한 이들이 거두어 감을 당할지라도 깨닫는 자가 없도다
의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서 불리어가도다
말씀을 통해 보신 것처럼 이 세상에 거하는 동안에는
의롭게 행하는 이들이 손해를 많이 보는 것 같고,
억울하게 당하고만 있는 것 같으며, 인정해주는 사람들도 없고,
억울한 상태에서 그대로 죽게 되어도 누구 하나 기억해주는 이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모든 마음과 행위를 기억해주시는 분으로서
마지막 결산의 날에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정의를 선택한 자들을 신원해주시고, 인정해주시며,
더불어 원수들의 눈앞에서 상을 베풀어주실 것이기에
지금 당장 억울해하거나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정의는 돈과 힘이 없어도 누구나 바로 세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정의를 시작해보십시다.
누가 보든 안보든 무단횡단 하지 않기, 운전할 때 신호위반/과속/난폭운전/욕설 하지 않기,
거스름돈 100원을 더 받았어도 다시 가서 되돌려주기,
회사의 대표 등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은 부하직원 업신여기지 않기,
착취하지 않고 정당한 대가를 치러주기,
학생들은 약한 친구들 괴롭히지 않고 다 같이 힘을 합쳐서 지켜주기,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이들을 한 명도 실족시키지 않도록 말과 행동을 늘 주의하기,
세상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살아가기 등등
각자의 자리에서, 가정에서,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는 장소,
즉 모든 장소에서 정의를 바로 세워보십시다.
“무단횡단처럼 아주 사소한 것 정도는 괜찮지 않나요?
남에게 피해주는 것도 아닌데 굳이...?”하는 생각이 드는 분들도
‘하나님 앞이라면 내가 그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훨씬 낮은
‘대통령이 지금 눈앞에 있다면 내가 그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시면
적당한 답이 머리에서 떠오를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점도, 흠도 없이 준비하려면 그까짓 거 못 지킬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양심이 무뎌져서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내 행동을 어떻게 보실까?’를 생각하는 것이 아닌
“내 생각엔 말이지!”가 먼저 입에서 튀어나온다면
다시 처음부터 유일한 신이신 하나님에 관해, 그리고 피조물인 나에 관해,
그리고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 관해 고민하며 생각해보시기를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선 무소부재, 즉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의 마음과 행위를 다 감찰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분, 유일한 신이시라는 그 사실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한 번 사는 짧은 인생, 누군가를 속이고 착취하는 등의 불의를 행하여
평생을 부유하게, 편하게 살게 된다 해도
날아가듯 빠르게 어느새 시간이 다 지나가버린 후 그 인생은 반드시 영원한 실패로 돌아갈 것이지만
우리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정의로움을 주저 없이 선택한다면
그 인생은 영원토록 기억되며 회자될 성공의 인생으로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지독한 어리석음과 반짝이는 지혜로움의 차이는
이처럼 멀리 볼 수 있는 눈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저와 여러분들이 마음에 깊이 새김으로서
오늘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을 맞이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아무도 업신여기지 않고, 누구도 실족시키지 않기 위하여
각자의 삶속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정의를 바로 세우고,
머지않아 하나님 앞에 서는 그 날에 흠 잡을 데 없이 잘 준비되어 단장된 모습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으며 원수들의 목전에서 베푸시는 큰 상을 받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시 145:17-21
(17)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일에 은혜로우시도다
(18)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19)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20)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은 다 보호하시고 악인들은 다 멸하시리로다
(21)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 모든 육체가 그의 거룩하신 이름을 영원히 송축할지로다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진리의성령교회 윤경훈 목사 올림
진리의성령교회 2022.04.03. 주일설교
감사와 다짐의 노래
507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자
1.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그 맘에 평강이 찾아옴은
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이 하늘로부터 임함이로다
2. 주 모습 내눈에 안보이며 그 음성 내 귀에 안들려도
내 영혼 날마다 주를 만나 신령한 말씀 늘 배우도다
3. 가는길 거칠고 험하여도 내 맘에 불평이 없어짐은
십자가 고난을 이겨내신 주님의 마음 본 받음이라
4. 주 예수 세상에 다시 오실 그 날엔 뭇성도 변화하여
주님의 빛나는 그 형상을 다함께 보며 주 찬양하리
[후렴]
주님의 마음 본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첫댓글 아멘~~
앞으로도 언제나 정의로운 선택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영원한 생명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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