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연주한 "소양강 처녀"는 반야월 님이 작사하고 이호 님이 작곡한 한국인의 대표적 애창곡 입니다.
1970년 가수 김태희[1]가 불러 큰 인기를 얻었으며, 당시로서는 엄청난 앨범 10만장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처음에는 제목을 춘천 처녀라고 하려 했으나, 어감이 더 괜찮은 소양강 처녀라고 지었다고 하네요.
이후, 한 때의 유행가로 잊혀지나 싶었지만, 1990년대 초반에 가수 김재희, 한서경이 이 노래를 잇달아
리메이크하여 발표하였고, 때마침 대한민국에 노래방 열풍이 시작되면서, 부르기 쉬우면서도 흥겨운 이 노래가
다시 크게 유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노래에 등장하는 소양강 처녀의 모델이 된 인물은 1969년 당시 가수지망생이었던 윤기순(1953년생)이라는
실존 인물로 반야월 님이 1990년 KBS '전국노래자랑' 인터뷰에서 소양강 처녀의 노래 모델인 윤기순씨의 실명을
거론했습니다.
춘천에서 서울로 상경하여 명동 근처에 있던 한국가요반세기 가요작가 동지회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던 윤기순은 1968년 6월 어느날 소양강 상류에서 민물고기잡이를 하는 아버지가 살고있는 춘천의 고향집으로 자신이 일하던 사무실 사람들을 초청했고 회장인 반야월 선생을 비롯해 작사가 고명기·류노완·월견초 선생 등 일행 10여명이
초청에 응했는데 이 때 얻은 시상을 반야월이 노랫말로 옮겨서, 작곡 작업과 음반 녹음 작업을 거쳐 1970년에
발표한 노래가 "소양강 처녀" 입니다.
실제로도 가요작가 사무실 동지회 사람들 사이에서 윤기순의 별명이 소양강 처녀였다고 하네요.
노래는 크게 히트했지만 정작 주인공인 윤기순은 잊혀졌는데, 1970년에 음반을 발표하기는 했지만 별 인기없이 묻혔고, 그 이후 전국을 돌며 밤무대 가수를 했다고 합니다.
결혼도 하지 않았으며, 노래를 너무 불러서 목이 상해 성대결절수술을 두 번이나 받기도 하고, 돈을 모아 아버지께
젖소를 사드렸지만 우유 파동으로 목장이 망하는 등 상당히 험난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잊혀졌던 실제 소양강 처녀는 1995년 노래비를 세울 때 작사가 반야월이 직접 밝힌 뒷이야기로 인해 세상에
알려졌으며, 춘천시가 경찰청의 협조로 윤기순을 찾아냈을 때 그녀는 고향을 떠나 광주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서 밤무대 가수로 한동안 활동하다가, 2006년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으로 돌아와 지금은
첫댓글소양강 처녀 국민가요라 칭해도 될 것 같습니다. 진선생님 연주 멋집니다. 소개글은 더 감동이고요. 저는 군대생활을 화천에서 해서 그런지 춘천터미널지나 시가지를 벗어나면서 펼쳐진 소양강 줄기는 지금도 눈에 훤히 비쳐집니다. 그래서 인지 춘천, 화천 주변에서 전해 지는 노래나 가수 글들에 무지 애착이 갑니다. 화천은 노사연을 배출 했다고 자랑이 자자 했어요. 당시에... 벌써 40년 전이네요.
첫댓글 소양강 처녀
국민가요라 칭해도 될 것 같습니다.
진선생님 연주 멋집니다. 소개글은 더 감동이고요.
저는 군대생활을 화천에서 해서 그런지 춘천터미널지나 시가지를 벗어나면서 펼쳐진
소양강 줄기는 지금도 눈에 훤히 비쳐집니다.
그래서 인지 춘천, 화천 주변에서 전해 지는 노래나 가수 글들에 무지 애착이 갑니다.
화천은 노사연을 배출 했다고 자랑이 자자 했어요. 당시에... 벌써 40년 전이네요.
잘지나시죠??
댓글 감사합니다 .
멋진 밤이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