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말씀은 '최후의 심판'인데,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어떻게 대했느냐?'가
최후의 심판 기준이 된다고 하십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이 말씀은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라는 뜻 아닐까요?
옛날에 라틴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던 사람들은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존칭으로
'주여!', 또는 '주님!'이라는 뜻의 '도미네!' 라는 말을 사용했답니다.
이 말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사용했던 '주님!'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주님이라고 높여 불렀던 것입니다.
루카복음 10장의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나오는 '강도당한 사람'은 예수님입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바로 예수님을 도와드린 것입니다.
루카복음 16장의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 에 나오는 라자로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본당에 교구장 주교님이 방문하면 그 일은 본당의 큰 행사가 됩니다.
나라에 교황님이 방문하면 국가적인 행사가 됩니다.
그러면 교황님보다 더 위에 계신 예수님이 오신다면?
그런데 예수님이 라자로의 모습으로 오신다면?
억압 받는 노동자의 모습으로, 또는 여러 가지 이유로 탄압 받고, 미움 받고,고통을 겪는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다면?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서 부자는 자기 집 대문 앞에 누워 있는
라자로에게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만 주었습니다(루카 16,21).
예수님을 그런 식으로 대접할 수 있을까요?
최후의 심판은 글자 그대로 더 이상 기회가 없는 마지막 심판입니다.
그 심판이 한 번 닥치면 후회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는 바로 지금 아닐까요?
하늘을 보며 구름도 봅니다.
구름을 보며 하늘도 봅니다.
그러나 구름만 보는 사람은 하늘을 보지 못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사랑합니다!
첫댓글 창설신부님께서는 ~~
<최후의 심핀> 복음을 가르치실때는 늘 <사랑의 심판>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연극을 통한 시청각 교육을 매우 중요시 하셨기 때문에 수녀님들이 <사랑의 심판>연극을 만들어
신부님께 칭찬도 많이 받았고, 중앙성당 등 여러 곳에 가서 연극공연을 했던 생각이 납니다.
수녀님들 연기가 아주 뛰어 났고, 신자들의 반응도 대단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