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화산 석천계곡 트레킹과 백패킹
경북 상주의 백화산白華山이 품고 있는 석천계곡을 따라 트레킹을 하고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텐트를 치고 하룻저녁 유숙을 했다. 그것도 이름만 들어도 오싹한 ‘저승골, 아래 임천석대 앞에서 말이다. 백화산은 높고 험한 산세로 인해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군사적 공격과 방어 기지로 이용돼 상주지역에서는 ‘호국의 산’으로 불렸다고 한다. 충북 보은의 속리산을 지난 백두대간의 봉황산에서(상주시 화서면) 발원한 구수천龜水川이 수봉리마을에 이르러, 백화산과 헌수봉 사이를 굽이치며 산태극수태극을 이룬다. 이 물길을 따라 충청도와 경상도 사람들이 넘나든 길은 그 세월이 1,000여 년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천년 옛길’로 불린다. 상주시가 2012년 이 옛길을 충북 영동과 경계가 되는 반야사 옛터까지 5km를 다듬어 ‘백화산 호국의 길’로 이름 붙였다. 그러나 투자에 비해 다니는 사람은 적어서 원시의 자연을 만끽하고 온전히 휴식을 취하고 싶은 사람들에겐 더 할 수 없는 오지 중 하나다. 사실 그래 오지는 아니지만 이 구간만은 오지중의 오지다. 곳곳마다 우거진 푸른 숲과 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져 절경을 자랑한다. 그 계곡사이를 물줄기가 굽이치고 산속의 새소리가 청명하게 들려온다. 청산만큼이나 시야도 뚜렷하다. 계곡을 따라 강과 산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절경을 구경하며 걸어가는 그늘 길인 만큼 그리 힘들지도 않다.
석천계곡은 경상북도 상주군과 충북 영동군에 걸쳐 있는데 백화산 자락을 감싸고 돈다. 강줄기는 상주시 모동면과 모서면과 화서면과 화동면 4개 면의 깊은 산자락에서 기원에서 모동면 수봉리 옥동서원을 지나면 인가가 없는 석천협곡으로 이어진다. 영동쪽에서 이곳을 들어가려면 반야사에서 주차하고 석천계곡을 따라 걸어 들어가면 된다. 예전에 상주에서 영동으로 가장 빨리 지나려면 이곳 협곡을 통해서 가는 길이 가장 빨랐을 듯하다. 그렇지 않으면 높은 산자락과 고갯길을 넘어야 하는데 한참 돌아야 한다. 이곳은 평일에는 거의 사람의 왕래가 없고 주말에도 10명 내외의 사람들이 오갈 뿐이다, 반야사에서 조금만 더 걸어들어가도 통신불능지역이다.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다, 반야사에서 모동면 옥동서원이 나오기 전까지 약 4km에 걸친 이 둘레길은 첩첩산중이다. 석천계곡 양옆으로 이어지는 깍아자른 듯한 높은 절벽으로 인해 핸드폰이 안터져서 조난당할 경우는 구조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오염이 안 된 천연 그대로 자연의 맛을 느끼려면 이곳만큼 걷기 좋은 곳도 없다. 울창한 숲길로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는 강을 건너는 돌다리 지역 말고는 거의 햇볕이 들지 않아서 시원함을 더한다. 다만 더운 여름철이라 날파리들이 땀냄새를 맡고 달려들어 귀찮게 한다.
반야사는 천년고찰로 백화산 자락인 충북 영동군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 곳에서 500미터 정도 걸어올라가면 경북 상주시 경계가 나온다. 충북 영동군과 경북 상주시 경계에 옛 반야사터가 있고 현재는 옛 반야사터에서 5백미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 이 곳을 지나는 물줄기는 태극 문양으로 산허리를 감아 돌며 연꽃 모양의 지형을 이룬다고 한다. 이 연꽃 모양의 중심에 반야사가 있다. 이 반야사에서 조금 올라가다 오른쪽 절벽에 문수암이 있는데 세조가 문수보살의 안내를 받아 목욕 후 병이 나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걸어가면서 이곳 강을 살펴보니 낚시꾼들의 발길도 없고 등산객도 없어서 계곡 물속에 물고기들이 상당히 많았다. 피라미, 모래무지, 매자, 꺽지 돌고기, 부러지, 깔딱메기, 수수미꾸라지, 메기 등 어종도 다양하고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없어서 고기 잡기도 좋겠다. 물에 내려가서 보니 다슬기도 많았다. 큰 것은 손가락 굵기 수준이다. 저녁시간 짧은 40여 분 동안 2kg 정도를 잡아서 올갱이국을 끓여 먹었는데 아주 구수하고 간이 해독되고 모이 개운한 느낌이 든다. 다음에 올때는 낚시도 들고 반도도 챙겨서 물고기도 잡아봐야겠다. 다슬기 잡기는 해가 떨어지는 시간부터 새벽까지 많이 나온다. 낮에는 모래속이나 돌 아래 붙어 있다가 해가 지면 까맣게 기어나오는데 대개 여울 아래나 돌 바위 아래나 물이 떨어지면서 바위가 있는 지역에 많다.
이곳은 태백산에서에서 갈라진 백두대간이 속리산을 거쳐 봉황산 지나 추풍령을 넘고 다시 영동 삼도봉을 지나 무주 남덕유산으로 이어지고 다시 영취산으로 영취산에서 금호남정맥으로 갈라지고 신무산, 마이산을 잇는 금호남정맥 경계로 금강과 섬신강의 수계가 나뉘게 된다. 속리산에서 다시 금북정맥이 갈라져서 남한강과 금강의 수계를 나눈다. 이곳 백화산은 백두대간의 속리산 아래 봉황산에서 분기한 팔음지맥의 팔음산에서 다시 분기해서 남북으로 시원한 칼날같이 선명한 백화산을 세우고 주행봉으로 이어지는데 영동의 민주지산에서 내려온 물한계곡 물줄기가 황간면의 초강으로 이어되고 황간면에서 석천강과 초강이 합수가 되면서 백화산이 멈추어 선다. 이 두 물줄기가 영동의 월류봉을 감싸고 흐르다가 영동 심천면에서 금강본류와 합수가 되고 옥천을 지나 대청호를 만나서 대전을 크게 돌아 공주를 지나 부여를 거쳐서 군산으로 흘러나가서 서해바다를 만난다.
충북 영동 반야사를 지나 문수암 아래 석천계곡을 따라 2km정도 올라가면 저승골 표지판이 나오는데 저승골로 올라가면 정상인 한성봉이 있다. 한성봉은 백화산의 한성봉과 주봉인데 남쪽의 주행봉(871.4m)으로 이어지는데 이곳은 백화산맥이라고 부를 만큼 걸출한 산세를 자랑한다. 한성봉恨城峰은 금돌성 전투에서 크게 패한 몽고군이 물러가며 ‘한을 남긴 성과 봉우리’라는 뜻이다. 당시 세계 최고의 강력한 몽골군이 상주에게 기병한 승병이 주축이 된 의병들에 의해 3천명 정도가 죽었다고 한다. 이곳이 ‘저승골’이라 불리는 협이름만큼이나 오싹한 느낌이 든다. 오늘은 이곳에서 백패킹을 하면서 천년 전에 치열했던 역사를 체험해본다. 산에서 잠을 자다 보면 사연이 있는 곳은 꿈에서라도 영적인 체험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깊은 밤에 산짐승 소리를 잠시 들은 거 외엔 사람이든, 귀신이든 인기척도 없이 텐트에서 편하게 잘 잤다. 일제가 ‘백화산의 기를 사로잡는다’는 의미로 포성봉捕城峰으로 바꾼 것을 지역민들의 노력으로 2007년 이름을 되찾았고 한다. 산세가 절개와 충정을 느낄 정도의 위세를 보이는 만큼 이곳에는 나라가 위기 때마다 승병이나 의병들이 일어나서 구국을 위한 항쟁을 하였다고 한다. 백화산 아래 월류봉 지역 주민에 물어보니 제법 위인들이 나는 좋은 풍수를 자랑하는 지역이라고 한다.
저승골에서 강가쪽으로 임천석대와 정자 데크가 조성돼 있다. 임천석대(林千石臺)」는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에 있는데 고려 말엽 악사(樂師)였던 임천석(林千石)이 조선 건국 후 태종(太宗)[1367~1422]의 부름에 나아가지 않고 절벽 아래 깊은 물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고려 왕조에 대한 임천석의 충정을 기리는 곳이다. 임천석은 고려 패망 후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백화산(白華山)에 와서 은거하였다고 한다. 임천석대는 조선 태종이 임천석이 음률을 잘 한다는 말을 듣고 불렀으나 응하지 않고 절벽 아래 깊은 물에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임천석대 아래를 보면 물이 그리 깊지는 않다. 아마 예전에 비해 수량이 상당히 많이 줄어든 것 같다.
백화산은 한자가 이름하듯 흰‘백白’ 자에 빛날 ‘화華’ 자다. ‘겨울에 정상이 눈으로 하얗게 보인다’ 하여 붙여졌다는 이야기도 있고 산정이 칼날처럼 암릉이 하얗게 드러나 보여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번쯤은 그 장쾌하고 시원하게 뻗은 산세는 등산을 하게끔 마음을 부르는 산이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날카로운 주능선 양옆으로 깎아지른 절벽이 이어지고, 그 사이사이로 아름다운 천(川)이 흘러 계절이 좋을 때는 한 폭의 그림 같은 경관을 자랑한다. 바위가 상당히 많은 암산이다. 이름은 그리 알려진 산은 아니지만 계곡에 들어가면 빼어난 국립공원 못지않은 경관을 자랑한다.
임천석대에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출렁다리가 나오지만 통행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마치 홀로 전세를 낸 거 같은 기분이다. 다리 중간에서 흔들거니는 다리를 건너니 붕 뜬 기분이다. 출렁다리를 넘기 전에 멋진 절벽이 오른쪽에 보인다. 이곳은 구수천龜水川이라 불리운다. 금강의 상류로 영동 쪽에서는 석천石川, 상주 쪽에서는 구수천 또는 중모천이라 한다. 반야사 방향으로 세찬 물살을 따라 사담, 세심석, 명경대, 병풍바위, 저승폭포, 전투갱변, 난가대, 임천석대 총 8곳의 여울을 뜻하는 ‘구수천 팔탄八灘’이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사람들도 왕래가 없는 이런 곳에 이런 비경이 숨어있다니! 영혼이 맑아지고 몸도 맑아지니 그저 즐거울 뿐이다. 물길과 나란히 가는 길은 굴참나무, 물푸레나무, 당단풍나무 등이 수령이 오래되어 시원한 그늘을 만든다.
출렁다리를 지나면 북쪽으로 올라가면 ‘독재골 산장’이 나오는데 밤나무 및 산약초 및 나물을 재배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인기척은 보이지 않는다. 독재골 산장을 지나면 돌다리가 나오는데 이 돌다리를 지나 강변을 따라 양쪽으로 걸을수 있는데 동쪽은 깊은 숲길이면서 오솔길이고 오른쪽 강변은 차도 다닐 정도의 넓이다. 이곳에서 약 1km 정도 올라가마면 바닥에 나무를 이어붙인 현수교가 나오는데 아주 멋지다. 다음에는 이곳에서 백패킹을 해볼 생각이다. 이제 모동면 수봉리가 나온다. 제법 넓은 마을이다. 이곳에는 옥동서원이 있다.
대전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이런 오지가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사람 발길도 없는 이런 곳을 트레킹을 하니 힐링이 절로 되었다. 이제는 사람 발길이 많은 장소는 오히려 피곤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과 하나되어 휴식하고 복잡한 머리를 식히는 곳을 찾게 된다. 휴식을 하러 왔다가 사람 구경하다 가기는 싫다. 이곳은 이런 곳이다. 오지 여행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할만 한 곳이다.
이제 독서의 계절이 돌아왔다. 비록 무덥지만 습기도 많이 사라지고 천고마비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장마철에 습기와 열기로 답답하던 시야도 이제는 선명한 산자락을 보여준다. 이럴 때는 조용한 트레킹이나 독서가 제격이다. 이제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영혼의 갈급증을 채워야 하지 않겠는가. 인문학과 고전은 AI첨단 문명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첨단 과학문명도 인문학적 소양이 깊어야 활용가치가 높게 마련이다. 대다수 성공한 사람들은 독서광이라고 한다. 독서는 인생에서 가장 큰 스승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각종야생화 만개한 천혜의 금대봉
금대봉 대덕산삼거리
황지
세곳에서 1일 5.000톤생산되어 낙동강의 발원지 이다.
물놀이 행사장
광동제약에서 매년 보약 막걸리을 기증한다는 건강하고 싱싱한 명품소나무
첫댓글
아름답습니다
해바라기를 단독 샷을 좀 담아 보시지
낙동강천길을요
대한민국 안 더터 본 곳은 어딜까요?
자연과 아름다운 시간들입니다
@행운
우리고향 동해서 아마도 황지가 그리 멀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한번도 가본 역사는 없어요 ㅎ
오늘도 무지 덥지요
더위에 조심 하셔요
집에서 션하게 보내도 후덥지근 합니다
대한민국 안 가 본 산을 이젠 좀 올려 보세요 ㅎ
요것도 심통인가...ㅎ
@양떼 대한민국에 황지는 3곳으로 동해에서 가까운 황지는 태백산 아래의 낙동강의 발원지 검용소 엿못으로 해바라기 축제가 있어서 태백산행후 휘리릭 대형버스를 세워놓고 빠르게 다녀와서 늦은 귀가를 하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