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상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22: 1-15)
내용
1-15 제사의 손해배상에 대한 율례
1) 우양을 도적하여 죽였거나 판 경우
2) 도적을 쳐 죽인 경우
3) 남의 것을 도적한 자가 배상한 경우
4) 짐승을 놓아 먹이다가 남의 밭에 손해 준 경우
5) 불이 나서 남의 재산에 손해를 준 경우
6) 이웃 물건을 보관하다가 도적맞은 경우
7) 남에게 맡긴 소나 양이 사고난 경우
8) 이웃에게 빌려 온 것이 상하거나 죽은 경우
16-31 도덕상 및 종교상의 잡율례
1) 정혼하지 않은 처녀를 꾀어 동침한 경우
2) 무당을 살려두지 말 것
3) 짐승과 행음한 자를 죽일 것
4) 여호와 외에 다른 신에게 제사하는 자를 멸할 것
5) 이방나그네, 과부, 고아를 특별히 보호할 것
6) 가난한 동무를 불쌍히 여길 것
7) 재판장과 관리를 저주하지 말 것
8) 하나님께 바칠 것을 더디 말 것
9) 들에서 찢긴 고기를 먹지 말 것
서론.
본문 상반절 1-15절은 재산의 손해 배상을 명하신 율례이다.
이 부분에 갚을 지니라라는 말씀이 두 번, 배상이라는 말이 14번이나 기술되었다.
1) 도적질한 물건을 갚아야 한다고 하셨다.
2) 가축으로든지 실화로든지 이웃의 작물에 손해를 주었어도 갚으라 하셨다.
3) 맡은 물건이나, 빌린 물품 혹은 가축을 도적맞거나 손해 받은 때도 배상하라고 하셨다.
이 사실에서 하나님의 대하여 알 것은 다음과 같다.
본론.
1. 하나님은 매우 주의 깊게 사건에 간섭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인생은 흔히 사람만 보지 않으면 무슨 짓이라도 하면 되는 줄 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 보시고 도둑질하지 말라 하시고 만약 도둑질 하신 것이 있으면 갚으라 하신다.
하나님은 사건이 아무리 은밀한 중에 이루어진 것이라도 그것을 다 보시고 그 사건이 지당하게 해결되기를 바라신다.
고로 우리는 하나님 몰래 어떤 일을 할 수 없음을 알고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은 해결을 보아야 한다.
2. 하나님은 배상할 것은 반드시 배상하라고 명하신다.
본문에 거듭 배상할지니라고 하신 말씀에 주의해야 한다.
남의 것은 결코 내 것이 되지 않는다. (마 5:26)
우리는 남김 없이 다 갚았는가? 다 갚기 전에는 하나님의 정죄와 심판을 면할 수 없다.
3. 우리가 배상해야 할 것을 주께서 배상해 주셨다.
우리가 하나님께 진 죄의 빚을 갚기 위해서는 죄 값으로 사망을 지불해야만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죽음을 받으시고 우리를 사하신 것이다.
주님은 귀한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우리들의 모든 죄를 배상해 주신 것이다.
결론.
하나님은 사건을 주의 깊게 살피고 계신다.
하나님은 배상할 것을 배상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죄의 빚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받으셨다.
출처: 임성락 원문보기 글쓴이: 임성락의 행복한 날들
정직한 그리스도인
22: 1-15
1. 사람이 소나 양을 도적질하여 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하나에 소 다섯으로 갚고 양 하나에 양 넷으로 갚을찌니라
2. 도적이 뚫고 들어옴을 보고 그를 쳐 죽이면 피 흘린 죄가 없으나
3. 해 돋은 후이면 피 흘린 죄가 있으리라 도적은 반드시 배상할 것이나 배상할 것이 없으면 그 몸을 팔아 그 도적질한 것을 배상할 것이요
4. 도적질한 것이 살아 그 손에 있으면 소나 나귀나 양을 무론하고 갑절을 배상할찌니라
5. 사람이 밭에서나 포도원에서 먹이다가 그 짐승을 놓아서 남의 밭에서 먹게 하면 자기 밭의 제일 좋은 것과 자기 포도원의 제일 좋은 것으로 배상할찌니라
6. 불이 나서 가시나무에 미쳐 낟가리나 거두지 못한 곡식이나 전원을 태우면 불 놓은 자가 반드시 배상할찌니라
7. 사람이 돈이나 물품을 이웃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다가 그 이웃의 집에서 봉적하였는데 그 도적이 잡히면 갑절을 배상할 것이요
8. 도적이 잡히지 아니하면 그 집 주인이 재판장 앞에 가서 자기가 그 이웃의 물품에 손 댄 여부의 조사를 받을 것이며
9. 어떠한 과실에든지 소에든지 나귀에든지 양에든지 의복에든지 또는 아무 잃은 물건에든지 그것에 대하여 혹이 이르기를 이것이 그것이라 하면 두 편이 재판장 앞에 나아갈 것이요 재판장이 죄 있다고 하는 자가 그 상대편에게 갑절을 배상할찌니라
10. 사람이 나귀나 소나 양이나 다른 짐승을 이웃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다가 죽거나 상하거나 몰려 가도 본 사람이 없으면
11. 두 사람 사이에 맡은 자가 이웃의 것에 손을 대지 아니하였다고 여호와로 맹세할 것이요 그 임자는 그대로 믿을 것이며 그 사람은 배상하지 아니하려니와 12. 만일 자기에게서 봉적하였으면 그 임자에게 배상할 것이며
13. 만일 찢겼으면 그것을 가져다가 증거할 것이요 그 찢긴 것에 대하여 배상하지 않을찌니라
14. 만일 이웃에게 빌어온 것이 그 임자가 함께 있지 아니할 때에 상하거나 죽으면 반드시 배상하려니와
15. 그 임자가 그것과 함께 하였으면 배상하지 않을찌며 세 낸것도 세를 위하여 왔은즉 배상하지 않을찌니라
=====================================================================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의 시내 산 언약에서 도덕법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십계명 외에, 사회생활에서 지켜야 할 시민법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오늘도 21장에 이어 계속되는 시민법 중 몇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절에 보면 “사람이 소난 양을 도적질하여 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하나에 소 다섯으로 갚고, 양 하나에 양 넷으로 갚을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보면 소 한 마리를 도적하였을 경우 소 다섯 마리를 갚도록 했습니다. 즉 일대 오의 배상 원칙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도적질 한 짐승이 양인 경우 “양 하나에 양 넷으로 갚을지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일대 일 배상 원칙의 ‘동해 보복법의’의 기준에서 볼 때는 상당히 무겁고 혹독한 규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무거운 배상 원칙을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재산을 훔치는 도적질을 하나님께서는 큰 죄로 보시며 엄중히 다스리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3절에 보면 “도적은 반드시 배상할 것이나, 배상할 능력이 없으면 그 몸을 팔아 그 도적질한 것을 배상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적질 한 자에게 자기 몸을 팔아서라도 배상을 하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자는 필연적으로 고통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실 뿐만 아니라, 또한 이웃의 재산은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는 사실과, 그리고 불로 소득을 노리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며, 사람은 항상 정당한 대가를 치른 노동을 통해 재물을 얻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주위를 살펴보면 자신은 땀 흘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땀 흘려 이루어 놓은 것을 차지하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남의 것을 도적질하거나 강탈하는 사람들, 다른 사람을 속여 재물을 가로채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사람들이 땀 흘려서 일하고 물질을 모을 때, 자신은 부동산 투기나 고리 대금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재산을 착취하는 것 또한 도적질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도박이나 불법적인 사업을 통해 열심히 노력하지 않고 쉽고 편하게 많은 돈을 벌려고 하는 것도, 성실히 일하고 땀 흘린 대가로 물질을 얻게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죄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땀 흘리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것을 뺏는 사람에게 몇 갑절로 배상하게 하실 것입니다. 땀 흘리지 않고 모은 재물은 금방 바람과 같이 사라질 뿐 아니라, 자신을 불행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고 부당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을 때, 언젠가는 재물도 사라지고 자신에게도 홀연히 멸망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미국 보스턴에 유명한 보석털이 전문범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아서 베리(Arthur Berry)였습니다. 그는 주로 상류층의 보석을 훔쳤습니다. 머리가 좋은 도둑은 한 번도 결정적인 증거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범인을 체포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서 베리는 평소 친분이 있는 어느 가정에 침입했다가 경찰에 발각되었습니다. 결국 경찰이 쏜 세 발의 총을 맞고 창문에서 떨어진 그는 20년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출소했을 때 그의 나이는 이순(耳順), 인생의 황혼기였습니다.
한 기자가 그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보석을 훔쳤습니까?”
백발의 아서 베리는 눈물을 떨구며 말했습니다.
“내가 훔친 것은 아서 베리였습니다. 나는 손재주가 좋아 기계를 잘 다뤘습니다. 피아노 연주도 잘했습니다. 언변이 좋아 친구가 많았고, 몸이 민첩해 운동도 잘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재능을 도둑질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내가 훔친 것은 나 자신이었습니다."
성경은 도적질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5절을 보면 사람이 짐승을 놓아먹이다가 그 짐승이 남의 밭이나 포도원에 들어가서 먹게 되면, 자신의 밭과 포도원에서 제일 좋은 것으로 배상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6절에 보면 밭을 일구기 위해 불을 놓았는데, 그 불이 다른 사람의 곡식이나 밭을 태운 경우 반드시 배상하도록 했습니다. 물론 이 두 경우 모두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려고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신체적 형벌은 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부주의로 인한 타인의 피해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책임을 지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누구든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는 변명하지 않고 분명하게 책임을 져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 주위를 보면 어떤 일을 할 때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해 놓고, 막상 그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사람이란 누구나 다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행동이 다 좋은 결과만을 가져올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느냐 지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양과 소를 살려 전리품으로 취한 사울 왕이, 이를 책망하는 사무엘 선지자에게 잘못을 인정치 않고 변명을 늘어놓다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던 사실은, 사람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철저하게 책임을 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 줍니다.
7-9절에 보면 물건을 맡겼던 자가 물건을 보관했던 자의 재산 중에서 일부를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는 경우에 대한 해결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이럴 경우 두 사람이 함께 재판장에게 가서 판결을 받게 되는데, 만일 정말 물건을 맡았던 자가 물건을 착복한 경우는 도적질한 것이기 때문에, 규례에 따라 두 배의 배상을 해야 했습니다. 반대로 물건을 맡았던 자의 소유가 확실한 경우는, 물건을 맡긴 자가 두 배의 배상을 하도록 규정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죄 없는 이웃에 대해 무고한 경우도 도적질한 것과 같은 중한 벌을 받도록 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웃에 대해 무고하는 죄가 얼마나 큰 죄악인지를 보여 줍니다.
그렇습니다. 죄 없는 이웃을 무고하는 것은 도적질 하는 것과 같은 큰 죄악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적질은 큰 죄로 알면서도, 이웃에 대해 무고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일반적 현상입니다. 그리하여 이웃에 대해 전혀 밝혀지지 않은 헛소문이나 거짓 소문을 퍼뜨려, 이웃으로 하여금 억울한 누명을 쓰게 하고 고통을 당하게 하는 경우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까지 같은 성도들을 시기하고 모함하여 그 성도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을 퍼뜨림으로,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 아십니까? 오늘 본문 말씀은 그런 죄가 도적질하는 것과 같은 벌을 받을 만큼 심각한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웃에 대해 또는 성도들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항상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혹시라도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상대를 모함할 수 있다면, 그 즉시 멈추시기 바랍니다. 그런 여러분의 말과 행동은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여러분 자신 또한 하나님의 엄중한 벌을 받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진정 여러분은 모든 말과 행동에 주의하고 이웃을 모함하는 일에 동참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엄중한 징계를 피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0-11절에 보면 어떤 사람이 이웃에게 소나 양이나 짐승을 맡겨 지키게 하다가, 죽거나 상하였을 때 또는 도둑을 맞았을 때 이를 본 사람이 없으면, 짐승을 맡은 자가 이웃의 것에 손대지 않았음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고, 주인은 이를 믿도록 명령하고 있습니다. 즉 짐승의 주인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한 이웃에 대해 의심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사실 이런 경우 짐승을 맡은 자가 나쁜 마음을 품고 거짓으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의심이 가도 절대 의심을 제기하여 재판을 청구할 수 없게 하신 의도가 무엇입니까? 것은 바로 상호간의 신뢰입니다. 만일 맹세한 이웃에 대해 의심이 간다고 의문을 제기하고 재판을 청구할 수 있게 했다면, 그런 경우를 염려해서 다음부터는 이웃이 급한 경우에 짐승을 돌보는 것을 부탁할지라도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이웃간에 불신이 생기고 서로의 관계가 단절되어 그 공동체는 서로를 믿을 수도 안심하고 살 수도 없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결백을 주장하는 이웃의 맹세에 대해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게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한 사회가 평안하게 살 수 있는 것은 결코 물질적으로 풍요하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사회를 보십시오. 얼마나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과학이 발전하여 편리한 세상이 되었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십시오. 밤에는 물론이고 낮에도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살아갑니다. 밤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경계심을 가지고 바라봅니다. 모두들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그런 풍조 속에서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두고 어떻게 물질은 비록 부족했지만 이웃끼리 서로 믿고 문을 열어 놓고 살던 옛날보다 더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 자신들이 먼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가지고 있는 불신과 의심의 마음을 버리도록 합시다. 이웃을 믿고 신뢰하는 믿음을 가집시다. 점점 신뢰가 사라져 가는 이 시대 속에서, 우리 성도들이 솔선하여 가정과 교회와 이웃 안에서 남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임으로, 서로 믿고 사는 아름다운사회를 만들어 나가도록 합시다.
12-13절을 보면 이웃이 맡긴 짐승을 자기 집에서 도둑맞았을 때는, 맡은 사람이 임자에게 배상하게 하고, 만일 사자나 곰과 같은 맹수에게 찢겼을 경우에는, 그 찢긴 것을 갖고 와서 증거 하면 배상의 책임을 면하게 하였습니다. 이 율법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신 것은, 이웃의 짐승을 맡은 자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즉 자기 집에서 도둑을 당한 것은, 맡은 자가 최선을 다하여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였으므로 배상의 책임을 지게 하셨습니다. 반면 사자나 곰과 같은 맹수에게 찢긴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막기 힘든 어쩔 수 없는 일로써, 맡은 자는 그 찢겨진 것을 가지고 옴으로 자신이 최선을 다했음을 증거하고, 또 그로 인해 배상의 책임을 면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비록 자신의 소유가 아니지만, 이웃의 것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 자신이 맡은 임무를 다하고 돌보는 것은, 공동체를 사는 사람들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한편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오늘날 사람들이 직장에서 일을 하는 것도 이웃의 것을 맡은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이 속한 직장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할 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공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사람은 물건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고, 건물을 짓는 사람은 자신의 이웃이 거주할 곳이기에 최선을 다해서 안전하게 지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최선을 다하지 못해서 이웃이 손해를 보게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이웃의 손해에 대해 우리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의 일이냐 남의 일이냐에 따라 그 일에 임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그것이 누구의 일이든 간에 맡은 일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14절을 보면 이웃에게서 어떤 것을 빌려왔는데, 임자가 함께 있지 아니할 때에 상하거나 죽으면 반드시 배상을 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 규례 또한 단순히 타인에게 끼친 손해에 대한 배상에 대해서만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에 대한 교훈을 가르쳐 줍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여기서 이웃에게 어떤 것을 빌려 왔다는 것은 돈을 주고 빌려 온 것이 아니라, 이웃의 호의에 의해 무료로 빌려 온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임자가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것은 임자가 자신의 물건이나 짐승을 상대방을 믿고 완전히 맡긴 것을 의미합니다. 즉 임자는 전적인 호의로 상대방을 믿고, 자신의 소유를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빌려 준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것을 빌려 간 사람이 그것을 상하게 하거나 죽게 하고서도 아무런 보상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순전히 호의로 그것을 빌려 준 사람은 상대방에게 대해 심한 배신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까지 불신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도 다시는 도와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이웃의 호의에 대해 제대로 보답하지 못한 한 사람으로 인하여, 그 사회에는 커다란 불신이 생기고 어려울 때 서로 도와주는 모습들이 사라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공동체가 바르게 제대로 움직여 나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호의를 받는 사람이 어떻게 보답하느냐 또한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처럼 삭막한 사회가 된 원인 중의 하나는 감사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상대방이 베푸는 친절과 호의에 대해 진정으로 감사하고 보답하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서로가 호의를 베풀기를 꺼려하고, 결국 이로 인해 서로 사랑을 나누는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삭막한 사회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우리가 속한 사회 속에서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들의 호의와 친절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러한 호의와 친절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비록 적은 것이라 할지라도 이웃의 친절과 호의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것이야말로, 서로 신뢰하고 사랑을 베푸는 사회를 만드는 출발점입니다. 진정 여러분은 자신의 삶 속에서 만나는 모든 이웃의 친절과 호의에 먼저 감사를 표하고 보답함으로, 서로에게 사랑을 베푸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주역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시민법 중 도적에 관한 배상법이나 무고에 관한 규정 등이 모두 정직과 진실에 관한 교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국에서 절도 잘하기로 유명한 남자와, 소매치기 잘하는 여자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산모가 병원에 가서 아이를 낳았는데 아기가 손을 꼭 움켜쥐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손을 펴보니 세상에 나오는 그 순간 간호원의 반지를 훔쳐 쥐고 나왔다고 합니다. 물론 꾸민 이야기이지만 세상이 얼마나 험한가를 풍자한 이야기입니다. 사기, 횡령, 착복, 도적질이 난무한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 정직하게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시 15:1-2에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사회생활과 대인 관계에서도 정직해야 하지만, 신앙생활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정직해야 합니다.
전병욱 목사는 ‘식어진 가슴에 불을’이란 그의 설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십일조란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동산의 선악과와 똑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에덴동산에 많은 생명실과를 만들어 놓고 난 뒤에 그 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하나 두시고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은 다 먹되 선악과만은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손대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 선악과로 주신 것이 바로 십일조입니다. 십일조에 손을 대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 것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 주신 물질의 십일조에 손대는 것은 도둑질하는 것이고, 십일조 생활을 안 하는 그 자체는 하나님이 나의 왕이요 나의 주인이심을 부인하는 행위가 됩니다.>
<“너희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받을 것이니라'가 아니라 이미 '받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제까지 5년 동안 십일조 생활을 안 했는데 이제 와서 십일조 생활을 하려고 하면 과거 5년 동안의 모든 것을 갚아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갚으면 좋습니다. 그러나 갚지 못한다 할지라도 괜찮습니다. 이미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이 축복의 말씀을 뒤집어 놓으면 저주의 말씀이 됩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함으로 말미암아 황충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황충은 곡식 가운데 날아다니는 누런 메뚜기입니다. 십일조 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은 십일조 생활을 하지 않은 것만큼 황충이 와서 재산을 다 갉아 먹습니다.
그리고 토지의 소산이 없습니다. 열매가 없습니다. 아무리 뿌려도 뿌린 만큼 다 거두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바치지 않은 사람은 도둑놈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른 것을 통해서 거두어 가십니다. 과실이 기한 전에 다 떨어집니다. 어떤 일을 하다가 중간에 다 망칩니다. 그것으로 이미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외침입니다.>
유명한 설교자였던 스펄젼은 "십일조를 바치지 아니하고 내가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요, 드려야 할 것을 드리지 않는 것도 도둑질하는 것이요, 주일 지키지 않는 것은 주일 도둑놈이요, 예배시간에 예배드리지 않는 것은 예배 도둑놈이요, 하나님께 드릴 영광을 가로채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 도둑놈이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정직한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