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군의 9월 재기포
1 전주화약(全州和約) 이후 동학군의 요구대로 폐정개혁안이 시행되고 호남 전역에 집강소(執綱所)가 설치되어 동학군이 치안과 민정을 맡아 잠시 안정되는가 하였으나
2 일본군의 대궐 침범과 패륜적인 내정 간섭으로 조선은 다시 걷잡을 수 없는 망국의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3 기회만 노리던 일본군이 드디어 아산만 풍도(楓島) 앞바다에서 전단(戰端)을 열고 청군에 포격을 개시하니 이로써 청일전쟁이 불을 뿜기 시작하니라.
4 이후 청일전쟁에서 연전연승하던 일본은 평양 전투의 승리를 계기로 조선의 내정에 더욱 깊이 개입하며 본격적으로 동학군 토벌에 나서거늘
5 이에 외세에 기울어 가는 국운을 통탄한 동학군의 수뇌들이 9월에 전주 삼례에서 회동하여 화전(和戰) 양론의 대립 끝에 다시 기병을 결정하니
6 마침내 동학군은 전명숙을 대장으로 하여 손화중(孫華仲)은 무장에서, 김개남(金開南)은 남원에서, 김덕명(金德明)은 금구 원평에서, 차치구와 손여옥은 정읍에서, 최경선은 태인에서, 정일서는 고부에서, 류한필은 함열에서, 오동호는 순창에서, 기우선은 장성에서, 손천민과 이용구(李容九)는 청주에서 일어나 삼남의 강산과 전국을 뒤흔드니라.
(증산도 道典 1:52)
동학군에게 비극의 운명을 경계하심
1 증산께서 이 해 10월 태인 동골에 가시어 동학 접주(接主) 박윤거(朴允擧)를 방문하시니
2 마침 모악산 계룡리(鷄龍里)에 사는 안필성(安弼成)이 같은 마을의 동학 신도 최두현(崔斗鉉)과 함께 윤거의 도담(道談)을 듣고 있더라.
3 본래 증산과 필성은 흉허물없이 지내는 친구 사이라 필성이 반갑게 맞으며 “아니 이보게 증산,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 하고 인사를 하니
4 증산께서 필성과 가볍게 수인사를 나누시고 마루에 걸터앉아 윤거와 성명을 통하신 뒤에
5 말씀하시기를 “내가 여기에 온 것은 장래의 대세를 전하고자 함이라.
6 지난 4월에는 동학군이 황토재에서 대승을 거두었으나, 이번에는 겨울에 이르러 전패할지라. 그대가 접주라 하니 더 이상 무고한 생민들을 전화(戰禍)에 끌어들이지 않기를 바라노라.” 하시고
7 다시 필성을 향해 정색을 하시며 “필성아, 거기는 네가 갈 자리가 아니다. 가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니 부디 가지 말아라.” 하고 간곡히 충고하시되 필성이 끝내 마음을 돌이키지 않으니라.
8 윤거는 증산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바가 있어 접주를 사면하고 전란에 참가하지 않았으나 두현은 믿지 않고 윤거의 뒤를 이어 접주가 되어 부하를 인솔하고 출전하니라.
(증산도 道典 1:53)
친구 안필성을 만나 동행하심
1 동학군이 삼례를 떠나 공주(公州)를 공략하기 위해 은진과 논산 쪽으로 서서히 진군하니
2 삼례를 떠난 동학군이 머지않아 한성(漢城)으로 진격한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온 나라 안에 퍼져 나가니라.
3 이 때 필성은 두현에게서 도를 받은 뒤에 ‘남원으로 가서 종군하라.’는 군령(軍令)을 받고 보름날 계룡리를 떠나 남원으로 향하더니
4 전주 구이면 정자리(九耳面 亭子里)를 지나다가 그곳 노상에서 뜻밖에 증산을 뵙게 되니라.
5 필성이 반가워 인사를 하니 증산께서 말씀하시기를 “음, 네가 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함께 가자.” 하시고
6 필성과 더불어 두어 마장을 더 걸어 임실 마근대미(任實 馬近潭) 주막으로 들어가시니 온통 동학군의 소문과 일본의 대궐침범 이야기로 시끄럽더라.
7 증산께서 술 한 상을 시켜 목을 축이시고 말씀하시기를 “날도 차고 하니 이곳에서 쉬며 기다려라. 남원에서 네가 만나려는 사람은 여기서 만날 것이다.” 하시거늘
8 필성이 “노자가 다 떨어져 여기서 만일 그 사람을 못 만나면 참으로 곤란하네.” 하니
9 이르시기를 “허허, 내 말을 믿고 밥 굶을 걱정은 말아라.” 하시니라.
10 두 시간쯤 지나니 문득 길 건너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함성이 울리며 인마(人馬) 소리가 가까이 들려오거늘
11 필성이 밖으로 나가 보니 동학군 수천 명이 ‘보국안민(輔國安民)’, ‘척양척왜(斥洋斥倭)’라 쓴 오색기를 흔들며 혹은 어깨에 총을 메고 혹은 손에 창을 들고 행군해 가는데 동학군의 긴 행렬로 계곡은 온통 사람의 물결로 뒤덮이니라.
12 이 때 진군하는 복잡한 행렬 속에서 접주 최두현이 필성을 보고 다가와 “남원으로 가지 말고 전주로 집결하라는 군령이 떨어졌으니 그리 알라.” 하고 대열 속으로 사라지니라.
13 당시 동학군의 대본영은 논산에 있고 관군은 충주와 괴산에서 동학군을 토벌한 후 남하하는데
14 남원에서 기병한 김개남 장군의 일만여 동학군은 관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청주성을 공략하려고 전주에 집결하는 중이더니
15 바로 이 때에 최두현을 다시 만난 것이라.
16 증산께서 필성을 데리고 멀리서 군마의 뒤를 따라가시다가 전주 수통목(水桶木)에 이르러 말씀하시기를
17 “오늘은 전주에서 살상이 있을 터이니 이곳에서 자고 내일 전주로 가도록 해라.” 하시거늘
18 필성은 장렬한 동학군의 행군에 마음이 더욱 조급해지니라.
(증산도 道典 1:54)
거리에 나가면 볼 것이 있으리라
1 이튿날 필성을 데리고 전주에 이르시어 조용한 곳에 머물 곳을 정하시니라.
2 저녁에 필성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거리에 나가면 볼 것이 있으리라.” 하시고
3 함께 나가시어 한 곳에 이르니 싸늘한 가을 바람이 부는 길 위에 잘려진 머리 셋이 나뒹굴고 있거늘
4 증산께서 크게 놀라는 필성에게 그 광경을 가리키시며 엄숙한 목소리로 말씀하시기를 “저것을 보아라!
5 이렇게 위험한 때에 어찌 경솔하게 몸을 움직이리오. 부디 몸조심하라.” 하시니라.
6 그러나 필성은 동학의 가르침으로 새 세상을 개벽하리라는 기대와 외세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건진다는 대의(大義)에 불타 증산께서 깨우쳐 주시는 어떤 말씀도 들리지 않더라.
7 증산께서 필성과 그곳에서 작별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1:55)
전명숙 장군을 찾아가심
1 한편 전명숙 장군의 주력 부대는 10월 말경에 공주를 공략하기 위해 비장한 공세를 펼치니라.
2 증산께서 몰살의 큰 위기에 처한 동학군의 운명을 내다보시고 곧장 공주에 있는 전 장군의 진영을 찾아가시어
3 “무고한 백성들만 죽이고 절대 성공을 못 하니 당장 전쟁을 그만두시오.” 하고 강권하시나
4 명숙은 외세를 몰아내고 탐관오리를 물리쳐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자 하는 일념뿐인지라 증산께서 일러 주시는 어떠한 말씀도 새겨듣지 아니하니라.
(증산도 道典 1:56)
여산에서 안필성을 다시 만나심
1 필성이 종군한 김개남 부대는 전주를 떠나 청주를 향하여 북상하는 길에 여산(礪山)에서 잠시 머물러 쉬거늘
2 이 때 필성이, 길 한쪽에 서서 바라보고 계시는 증산을 다시 만나니라.
3 증산께서 물으시기를 “이제 종군하는가?” 하시니 필성이 “그러하네.” 하고 대답하거늘
4 말씀하시기를 “이 길이 크게 불리할 것이니 극히 조심하라.” 하시니라.
나는 대세를 살피러 온 것이다
5 김개남 부대는 행군을 계속하여 진잠(鎭岑)을 지나 태전(太田) 유성장터에서 하루를 쉬니, 이는 다음날부터 청주성을 공략하기 위함이라.
6 이튿날 새벽 청주성을 약 30리 남겨 놓은 곳 길가에서 필성이 또다시 증산을 만나니라.
7 증산께서 “너희들 진중에 중(僧)이 하나 있느냐?” 하고 물으시니 필성이 “그러하네.” 하거늘
8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그 요승(妖僧)의 말을 좇다가는 필경 멸망할 것이다. 필성아, 너는 이 길을 따르지 말고 이제는 내 말을 믿어라.” 하시니
9 필성이 버럭 화를 내며 “이렇게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하려는 마당에 어찌 남의 일처럼 구경만 하면서 그런 불길한 말들만 하는가? 도대체 자네는 무얼 하려는 건가?” 하고 따지니라.
10 증산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도대체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내가 그들이 미워서 그러겠느냐? 머지 않아 닥칠 너희들의 장래가 지극히 불리하므로 화를 면케 하려 할 뿐이다.
11 그래도 필성이 너는 내 말을 알아들을 만하니 이렇게 일러 주는 게 아니냐.
12 필성아, 저곳은 네가 갈 자리가 아니니 돌아가자. 그렇지 않으면 죽을 테니 나하고 돌아가야 한다.” 하시거늘
13 필성이 묻기를 “그러면 자네는 왜 이곳까지 계속 쫓아왔는가?” 하니
14 말씀하시기를 “나는 종군하러 온 것이 아니라 대세를 살펴보러 온 것이다.”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1:57)
전쟁터에서 김형렬을 다시 만나심
1 이 때 금구에 사는 김형렬이 증산께서 필성과 말씀을 나누시는 것을 보고 다가와 인사를 청하거늘
2 형렬은 일찍이 증산과 친면이 있던 터라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니 증산께서 “그대도 종군하지 말라.” 하고 권하시니라.
3 필성과 형렬은 종군하지 말라는 증산의 간곡한 당부를 저버리고 계속 종군하여 앞서가는데
4 청주 병영 앞 산골에 이르자 갑자기 좌우에서 복병이 나타나 포화를 퍼부으매 많은 동학군이 쓰러지는지라
5 필성과 형렬이 황급히 소나무 숲 속으로 몸을 피하니 증산께서 그곳에서 기다리기라도 하신 듯 서 계시다가 두 사람을 부르시며 “잘 피해 왔네. 이곳은 괜찮으니 안심하게.” 하시거늘
6 형렬은 증산께서 신감(神鑑)이 비상하심에 새삼 감복하고 마음을 놓으니라.
7 이 때 증산께서 필성에게 “필성아, 가지 마라. 가면 너는 이번에 죽는다. 성공 못 하니 나 따라 가자.” 하며 거듭 타이르시니
8 필성이 문득 깨달아지는 바가 있어 그제야 마음을 돌리거늘
9 이 날 동학군 네댓 명도 증산의 신이하신 말씀을 듣고 함께 발길을 돌리니라.
10 필성과 형렬이 종일 먹지 못해 주림을 이기지 못하거늘 증산께서 돈을 내어 주시며 “저곳에 가면 떡집이 있으리니 주인이 없을지라도 떡값을 수효대로 그릇 안에 두고 떡을 가져와라.” 하시매
11 필성이 명하신 대로 떡을 가져오니 증산께서 두 사람에게 나누어 먹이시니라.
(증산도 道典 1:58)
이곳에서 또 많이 죽으리라
1 증산께서 일러 말씀하시기를 “동학군이 오래지 않아 쫓겨 오리니 우리가 먼저 떠남이 옳을 것이라.” 하시고 두 사람을 데리고 돌아오실 때
2 진잠에 이르러 문득 “동학군이 이곳에서 또 많이 죽으리라.” 하시니 두 사람이 심히 불쾌히 여기거늘
3 이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저들을 미워함이 아니요 사태가 진전될 기미를 말할 뿐이니 아무리 듣기 싫을지라도 불쾌히 생각하지 말라.” 하시니라.
4 이어 산속의 한 은벽한 곳에서 쉬시는데 잠시 후에 총소리가 어지럽게 일어나더니 격전 끝에 많은 동학군이 전사하니라.
5 동학군의 운명의 대세가 기울어 가고 있는 이 때, 증산께서 형렬과 필성을 데리고 관군의 화를 피하여 진잠 산길을 따라 걸어가시니라.
(증산도 道典 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