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언어로, 신동엽 평전-문시온
제목: 좋은 언어로
신동엽 시인은 1930년에 부여에서 ‘향그러운 흙가슴’을 가득 안고 태어나 일제강점기,6.25 한국전쟁, 4.19 민주화운동, 군사정부등 그 왜곡된 역사와 격동의 역사를 모두 겪은 사람이다. 신동엽은 일본의 파시즘, 전체주의를 경험하고 그 후엔 북한의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경험하며 꽤나 어린시절부터 정치, 사회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키웠다. 신동엽은 당시 일본, 북한, 미국 중 그 어느 곳에도 만족하지 않았고 한 곳으로 권력이 쏠리는 세상을 반대하는 아나키즘을 주장한다. 그가 주장한 아나키즘과 무정부주의는 모든 나라가 평등하게 살아가는 새로운 민족주의를 담고 있다. 그는 권력이 한 중심으로 쏠리면 결국 붕괴하게 된다는 인간의 본성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신동엽은 그 후 6.25 한국전쟁을 겪으며 죽음의 고비를 넘기기도 하고, 나라가 세워지고도 활개치는 친일파들과 정권의 타락, 4.19 항쟁, 군사정부 등 민족의 아픈 역사를 보며 안타까워 했다. 그는 이러한 한국상황 속에서 사람들을 위로하고 일깨우는, 현실 참여적인 시들을 펴낸다. <아사녀>, <껍데기는 가라>, <금강> 등이 바로 그러한 흔적들이다. 신동엽은 그런 의미에서 그저 과거의 시인에 국한 되지 않는다. 역사는 반복되고 과거는 거울이다. 그러니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고 그리하여 나아갈 방법을 제시한 신동엽의 시는 절대 과거의 시인으로만 국한될 수 없다. 어쩌면 현재에도, 미래에도 그의 시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일깨우고 나아가게 할 것이다.
언어는 한 민족의 꽃이다. 그리고 시가 바로 그러한 언어의 가장 아름다운 꽃이다. 언어는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고 화합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 민족의 약속이다. 그리고 시는 그중 가장 아름다운, 울림있는 소통이고 화합이다. 이러한 시가 현실의 아픔들을 외면한채 그저 순수한 예술만을 위해 지어진다면 그의 의미는 더하지 못할 것이다. 현실에 참여하여 민족의 아픔을 위로하고, 사람들을 일깨우는 시는 그 민족에게 가장 가치있는 시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신동엽의 시는 우리 민족에게 있어 정말로 가치있는 시라고 생각한다.
신동엽 시인은 ”조국과 민족이 그리고 인간이 굶주리고 학대받고 외침되어 울부짖고 있을 때, 어떻게 해서 찡그림 속의 살 아픈 언어가 아니 나올 수 있을 것인가“라고 이야기 했다. 신동엽 시인에겐 현실에 참여하는 ’살 아픈 언어‘가 바로 ’좋은 언어‘이고 ’이로운 언어‘인 것이다..
“때는 와요
우리들이 조용히 눈으로만
이야기할 때
허지만
그때까진
좋은 언어로 이 세상을
채워야 해요.” <좋은 언어>
책을 읽고 덮은 순간 나는 부끄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국의 의미를 잊고, 나라의 과거를 잊고, 현재의 나라에도 무관심한채 그저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민족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힘들고 벅차다는 말 뒤에 숨어 현실을 외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신동엽 시인은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향그러운 흙가슴’을 일깨웠다. 지금 내가 어떠한 땅을 밟고 살고 있는지 무엇이 현재의 좋은 언어일지, 이로운 언어일지 생각해 보게 했다. 지금껏 언어를 투덜대기에, 미워하기에 사용하고 있던 나는 부끄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치한 언어였다. 앞으로는 좋은 언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내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