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수의 시국선언>
최근 야당대표에 대한 실형을 선고한 판결 이후 정국의 긴장감이 고조 되고 심상치 않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어 불안하다. 서로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이번 판결이 판사 개인의 결정이라면 모르겠지만 정권 차원의 사법 장악에서 나온 판결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 것 같다. 일반 국민으로서 이런 대치 정국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최고의 지성인 대학교수들의 잇다른 시국 선언은 하나의 시사점을 암시하고 있다.
1986년 들어 전두환(全斗煥) 정권의 폭력 통치를 비판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각계각층의 움직임이 가시화되었다. 이 가운데 1986년 3월 28일 고려대학교 교수 28명이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시국 선언을 발표한 이후 교수들의 시국 선언은 전국의 대학으로 확산되었다. 교수들의 시국 선언이 더욱 광범위하게 전개된 것은 1987년 4월 이후였다. 국민들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무시하고 간선제를 고수하겠다는 전두환의 ‘4·13 호헌 조치’가 발표되자 1987년 4월 22일부터 전국의 48개 대학 1,510명의 교수들이 시국 선언에 참여하였다. 부산에서도 5월 8일 부산대학교 교수 39명이 시국 선언을 발표한 데 이어, 5월 12일 동아대학교 교수 12명, 5월 13일 부산여지대학교 교수 14명, 5월 14일 부산산업대학교 교수 31명이 시국 선언을 발표하였다.
부산 지역 대학 교수들의 시국 선언은 대학가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면서, 지역 사회에 민주화를 위한 여론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시국 선언에 따른 희생도 적지 않았다. 동의대학교에서는 1986년 교수 시국 선언에 참여한 사실이 빌미가 되어 3명의 교수가 차례로 해직되었으며, 부산대학교에서도 1987년 시국 선언에 참여한 3명의 교수가 승진에서 누락되는 불이익을 당하였다.대학 교수 시국 선언은 민주화의 여망을 대변하면서 시민과 학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고, 1987년 6월 민주 항쟁을 이끌어내는 데에도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시국 선언을 주도했던 소장 교수들은 이후 대학에서 교수회[또는 교수협의회]를 결성하여 학내 민주화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나아가 전국적인 연대로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를 결성하여, 민주화를 위한 실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따라서 교수 시국 선언은 우리 사회에서 대학 교수가 가진 비판적 지식인의 위상과 책임을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된다.
최근에도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가천대에 이어 한국외대, 한양대, 숙명여대, 인천대 교수들이 이름을 걸고 윤석열 정부의 국정농단과 민주주의 훼손을 꾸짖고 있다. 박근혜 정부 말기를 연상하게 하는 연쇄 성명 사태다. 최고 지성들이 쏟아내는 비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11/6일 인천대 교수 44명은 윤석열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했다. 이들은 ‘역사와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다. 즉각 하야하라!’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단순한 국정농단을 넘어 주가조작, 명품백 수수, 각종 관급공사와 관련된 불법과 부정 의혹, 온갖 의전 실수와 망신살이 멈출 줄 모르고, 그 내용과 수준 또한 치졸하고 저급하기 이를 데 없다”며 “‘지록위마’로 국민을 속이는 주변의 십상시와 정치권 간신배, 한줌도 안 되는 정치검찰 패거리가 국격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고 규탄했다. 한양대 교수 51명도 전날인 5일 ‘윤석열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강력히 촉구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시민들이 피를 흘려 쟁취한 민주주의가 집권 2년 반 만에 파탄을 맞았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에서 의결한 법률안을 모조리 거부하고 있고 검찰 권력과 시행령 통치를 통해 독재를 행하고 있으며, 그의 부인 김건희는 논문 표절, 주가조작, 사문서 위조와 같은 파렴치한 윤리 위반이나 범법 행위를 한 데서 더 나아가 한 나라의 대통령을 머슴 부리듯 하며 심각한 국정농단을 자행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숙명여대와 한국외대 교수들은 김건희 여사 특검 수용을 촉구했다. 교수들의 입에서 ‘하야’, ‘퇴진’ 등의 요구가 거침없이 나오는 건 일반적인 일이 아니다. 그만큼 현 상황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명 내용에 동조하는 국민들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위기를 위기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7일 기자회견을 앞두고도 자화자찬으로 일관한 대독 국회 시정연설에 이어, 성태윤 정책실장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연이틀 2년 반 성과를 자랑하기 바빴다. 자랑할 것도 없지만, 지금이 그럴 때인가. 기자회견도 이렇게 할 생각인가. 진솔한 사과와 해명, 그리고 스스로 특검을 수용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전국 시국선언 대학 현황>
가천대학교 교수노조 (10월28)
한국외대 교수 73명 (10월31일)
한양대 교수 51명 (11월5일)
숙명여대 교수 57명 (11월5일)
전남대 교수 107명 (11월6일)
인천대 교수 44명 (11월6일)
충남대 교수 80명 (11월7일)
아주대 교수 42명 (11월11일)
카톨릭대 교수 106명 (11월11일)
목포대 교수 83명 (11월 11일)
제주지역 교수 75명 (11월13일)
공주대 교수 49명 (11월13일)
경희대 교수*연구자 226명 (11월13일)
전북대 교수*연구자 125명 (11월13일)
고려대 교수 152명 (11월 14일)
부울경 29개 대학 및 연구소 등(가야대, 경남대, 경상대, 경성대, 고신대, 동명대, 동서대, 동아대, 동의대, 마산대, 부경대, 부산가톨릭대, 부산과학기술대, 부산교대, 부산대, 부산외대, 부산장신대, 신라대, 영산대, 울산과학대, 울산대, 인제대, 진주교대, 창원대, 창원문성대, 한국국제대, 한국해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