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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성령충만땅에천국
070310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 장영수 목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한마음교회 담임)
성경본문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눅11:1~4)
1983년 US Open Golf 우승자인 래리 넬슨에게는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그가 그 시합에 나갔을 때 16번 홀 앞에서 코스를 살피느라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잠깐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합에서 우승을 했습니다. 그러자 우승 후에 친구가 물어봤습니다. “아까 16번 홀에서 기도하던데 뭐라고 기도했어? ‘하나님 우승 트로피를 내게 꼭 안겨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했는가?” 그랬더니 그가 말합니다. “아니, 이렇게 기도했지. ‘하나님, 제 마음의 욕심을 거두어 주십시오. 지금 눈앞에서 우승 트로피가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우승이 눈앞에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고 평안하게 하시고 자유롭게 하셔서 저 하늘이 깨끗하게 보이게 해주십시오’ ” 이렇게 기도했다고 하는 것이죠. 이따 골프 하실 때 많이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듣자 하니 골프가 악마의 운동이래요. 아니 저 푸른 초원 위에서 왠 악마의 운동입니까. 해보면 안대요. 왜 그런지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많은 것을 약속하셨어요. 고통 가운데 있는 자에게는 위로와 소망을, 일이 막혀서 답답해하는 자에게는 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어요. 그리고 삶에 대한 확신이 없어 흔들리는 자에게는 확신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어요. 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의 현실 속에는 고통이 있어요. 기도하라고 얘기하는데 정작 기도하지 못하는, 이것도 큰 고통이에요. 기도하지 못하는 고통.
리차드 포스터는 <기도>라고 하는 책에서 우리의 기도를 막는 요인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기도에 관해 모든 것을 먼저 알아야 된다고 하는 생각이 우리의 기도를 막는다는 거예요. 그런 분들이 있잖아요. 준비되기 전에는 말 한마디라도 꺼내기를 주저하시는 분들. 제가 이번 주간에 수마트라 람뿡의 샬롬 신학교에 강의를 하러 갑니다. 사실 제가 말이 너무너무 부족한 사람이지만 재미있게도 1년에 네 번 헬라어나 히브리어를 가르치거든요. 기본적인 성경언어를 가르치는 것인데 해보니까 이것은 충분히 가르칠 수가 있어요.
제가 처음 히브리어를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너무 고생을 했어요. 너무 어렵게 배웠거든요. 포기 직전까지 갔었는데요, 그러다가 아주 요령 있게 잘 가르치는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 분에게 배웠어요. 이전에 쏟아 붓던 그 시간의 1/4 정도의 시간을 가지고도 훨씬 더 많은 것을 더 분명하고 시원하게 더 재미있게 공부했어요. 저는 그렇게 공부했고 신학대학원을 다니면서 4년 동안 오히려 제가 우리 동급생들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마치 옛날에 여섯 살짜리 꼬마가 한 두 살짜리 동생을 업고 교회를 나오는 그 모양으로. 다 요령이 있더라고요. 우리 예전 <성문종합영어> 공부할 때 요령 있는 사람은 중요한 것을 탁탁탁 짚어가면서 공부하지만 요령이 부족한 사람들은 첫 페이지부터 막 시커멓게 만들면서 하잖아요. 그런 식으로 공부하면 몇 페이지 못 가서 진이 다 빠져가지고 지쳐버리죠. 딱 그런 식이더라고요.
리차드 포스터는 말합니다. 기도는 그게 아니다. 또 하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데 그래도 동기가 순수해야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이상주의자들이 있어요. 평소에는 하나님을 쳐다보지도 않다가 내가 아쉽다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가 있느냐, 너무 위선적인 것 같다. 착각이에요. 우리가 자신에 대해서 솔직하다면 우리가 얼마나 허물이 많은 존재인가 하는 것을 부인할 수 없어요. 그걸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셔요.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실수와 허물을 다 용납하시는 분이에요. 하나님 앞에 ‘올바른’ 기도를 하려 하지 말고 그냥 나가서 얘기만 해라. 아 여러분, 남편과 아내가 대화할 때 ‘올바른 얘기를 해야 되겠다’ 이렇게 긴장을 하고 합니까? 물론 저는 가끔 그럴 때가 있습니다. 심리적으로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더 죄의식을 가지고 있어요. 왜냐하면 뭐 나가서 하는 일들이 그렇게 의롭고 깨끗하고 도덕적인 일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 벨을 누를 때 옷깃을 여미고 호흡을 가다듬고 마음을 가다듬고 벨을 누릅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리차드 포스터는 그 많은 종류의 기도 첫머리에 ‘단순한 기도’를 강조해요. 단순한 기도. 왜 기도에 의문이 있잖아요. 뭐 하나님이 다 아신다는데 굳이 내가 기도할게 뭐가 있어.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셨고 내 형편을 다 아시는데 어련히 알아서 잘 해주시려고. 참 괜찮은 믿음인 것 같지만 그게 아니고 심리적으로 자격지심에 갇혀있어요. 두려움이 있는 거예요. 예를 들어 유명한 사람이 왔다. 그러면 말이죠, 선뜻 나가기를 꺼려하게 되는 그런 심리죠.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잘못 가진 거예요. 하나님은 유명한 스타가 아니고 아버지라고요. 마치 어린 아이가 자기 아빠 품에 막 뛰어들듯이, 심지어는 옷에 먼지가 묻고 그랬는데도 아빠가 왔다고 달려와서 품에 안기듯이.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남 들으라는데 있는 거 아닙니다. 또 오늘 내가 지금 답답한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기도하기도 하지만 기도의 원래 궁극적인 목적은 그 문제해결을 통해서 결국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 분을 더 새롭고 가깝게 만나는 거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려고 하는 거죠.
오늘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을 보세요. 마태복음에 나오는 주기도문과는 많이 다르지 않아요? ‘기도할 때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마태복음에서는 좀 더 형식을 갖춰가지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했습니다만 사실 연구에 의하면 누가복음의 기도가 더 원형이에요. 마태복음은 더 예배에 적합하게 손을 본 거죠. ‘아버지’ 어린 아이 식으로 말하면 ‘아빠’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눌 때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기계적인 관계가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한 번 명령하시면 그것은 움직일 수 없는 그런 게 아니에요. 우리 딸들이 와가지고 뭐가 필요하다고 얘기합니다. 만나기 전에는 내가 들어줄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얘기를 듣고 보니까 꼭 논리적이어서가 아니라 얘기하는 동안에 내 마음이 녹고 열려가지고 허락해주잖아요. 하나님도 때로는 그 분의 계획을 바꾸시기도 해요. 아주 중요한 사실이에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그냥 머리를 숙이고만 있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 나가서 대화할 수 있어요. 또 알고 보면 그걸 원하셔요. 여러분도 다 그러시겠죠. 저희도 딸들이 다 밖에 나가 있으니까 장점이 있더라고요. 그립더라고요. 아마 함께 있으면 잔소리하고 지적하고 그럴 텐데, 떨어져 있으니까 전화할 때마다 그립고.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이상하게 아내하고 전화할 때는 그렇게 싱겁고 그런데 왜 이렇게 아이들하고 전화를 하면 뭐라고 말 한마디 더 하고 싶고 그런지 모르겠어요.
또 하나, 기도는 결국 새롭게 하시고 속사람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 속에 우리도 함께 들어가는 거예요. 누구 좀 마음에 걸리고 미워하는 사람이 있죠. 좋은 방법이 있어요. 만나가지고 해명하려고 그러지 마세요. 말이라는 게 할수록 꼬이는 거예요. 때로는 물론 얘기할 필요가 있어요. 내 마음이 아프다든지 자기의 감정을 솔직하게 지혜롭게 드러내는 것도 꼭 필요해요. 그러나 거기에 자꾸 설명이 붙게 되면 얘기가 꼬여요. 그냥 기도해주세요. 하나님은 아시니까. ‘하나님, 우리의 마음을 아시잖습니까. 하나님, 이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그래서 기도를 ‘하나님의 창조에 함께 참여하는 예술적인 모험이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어떤 분들은 그러시죠. ‘나는 지금까지 전혀 기도하지 않았는데요.’ 여러분, 그렇더라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원초적 본능이 있어요. 적어도 여기에 나오셨다면 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어요. 하나님이 얼마나 후한 분인지 아세요. 그것까지도 기도로 쳐주세요.
또 하나, 모처럼 기도하겠다고 아주 다부지게 결심하고 그러지 마세요, 그것도 욕심이에요. 새벽기도 안 나오던 분이 갑자기 막 새벽기도에 나오겠다, 참으세요. 영적인 탐욕이라고까지 얘기할 수 있어요. 여건이 안 되시는 분들은 우선 자기 그 자리부터 하나하나 출발하세요. 때로는 분노하고 어떤 욕심에 매여 있고 또 실패를 맛보았을 때라도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라. 부부싸움 하실 때도 기도하면서 싸우세요. 이미 물은 엎질러졌어요. 서로 막 열이 올라서 험한 말이 나오고 싸우고 있어요.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기도하세요. 기도하면서 싸우세요. ‘하나님 상황이 이렇게 돼버렸습니다. 제가 수습하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다 지켜보시지 않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붙들어 주십시오. 오늘밤에는 끝날 것 같지 않은데 그러나 하나님이 붙들어 주십시오.’ 이건 제 경험담입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날 밤으로 끝나더라고요.
리차드 포스터는 단순한 기도를 강조하면서 일상적인 기도를 얘기합니다. 여러분, 제일 좋은 기도, 제일 건강한 기도는 일상적인 기도에요. 모처럼 축구시합이 있다. 그날 갑자기 팔을 걷어 부치고 뛰어 들어가면 그런 분일수록 발에 걸려 넘어져가지고 팔다리가 부러지더라고요. 그런 날일수록 의욕을 부리다가 넘어지더라고요. 왜? 늘 운동을 하지 않고 준비 안 한 몸이 갑자기 덤벼들면 사고 나요. 그러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뭐냐. 일상적인 기도를 하는 게 중요해요. 사실은 새벽기도를 하는 것이 제일 좋죠. 혹 이런 방법도 좋습니다. 저는 뭘 좀 하려고 하면 우선 제 마음을 다스려야 되잖아요. 그래서 <한마음의 은혜>와 같은 설교 한 편을 소리 내어 읽습니다. 읽으면 분명히 몇 달 전에 제가 한 설교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통해서 다시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더라고요. 항상 그렇게 해요. 제 마음의 주파수를 하나님에게 맞추기 위해서 설교를 읽는 거예요. 또 시편을 읽습니다. 시편은 아주 훌륭한 기도에요. 제가 예전에 고등학교 교사로 있을 때 선생님들끼리만 소풍을 갔는데 그 가운데 좀 나이가 드신 수학 선생님이 계셨는데요, 이 분이 한 번 마이크를 잡았는데 이건 완전히 가수 저리 가라 에요. 그 분이야말로 ‘도전 1000곡’인가 하는 프로그램에 나가면 아마 챔피언이 될 거에요. 끝이 없어요. 사람들이 지겨워하는 것이 아니라 신기해하는 거예요. 좔좔좔좔 나와요. 더 재미있는 건 교회 다니시는 분이라는 거예요.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가 있어요?” 그랬더니 아주 자기 집안 분위기가 유행가 분위기래요. 어머니고 아버지고 하루 종일 그걸 틀어놓고, 자기는 그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비록 교회는 나가지만 어떻게 입만 열면 유행가가 나오는지 모르겠대요. 그거 일부러 머리를 써서 외운 게 아닙니다. 그냥 어렸을 때부터 골수에 새겨진 거죠. 여러분, 우리가 시편을 그냥 읽으세요. 내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반드시 내가 작사 작곡해서 부를 필요 없어요. 조용필이 노래를 부르면 찡 하지 않아요? 유명한 가수가 부르는 애절한 노래를 그저 두 번만 부르면 그게 내 노래가 되고 내 이야기가 되는 거죠.
기도가 그렇습니다. 시편은 우리 삶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이 다 드러나 있는 기도에요. 그냥 읽으세요. 설교를 준비하다가 시편을 1편부터 좍 읽었습니다. 시편은 모두 150편으로 되어있고, 다섯 부분으로 단락이 나누어져 있어요. 첫째 단락 41편까지 읽어보니까 어떤 시편은 찬양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막 애통해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하나님 앞에 덤벼드는 기도도 있어요. 왜 나를 이렇게 내버려두십니까. 그런 기도까지도 하나님이 다 받아주셔요. 기도는 대화이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얘기할 수 있어요. 언제라도 얘기할 수 있는 거예요. 또 어떤 분들은 찬양하시죠. 찬양은 곡조가 붙은 기도라고 했어요. 찬양을 계속하세요. 찬양을 들으세요. 내 환경을 그렇게 만드세요. 내 마음을 하나님께서 언제라도 말씀하시면 들을 수 있는 그런 분위기로 만들어두세요.
프로선수일수록 시합에 당장 들어갈 수 있도록 몸을 만들어야 된다고 그러잖아요. 아니 그렇게 날마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뭐 새삼 몸을 만들어요. 그게 아니죠. 그런 선수일수록 70%가 됐다, 80%가 됐다 그런 표현을 하죠. 운동장에 들어가 공이 오면 골을 넣을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이 몸을 만드는 거죠.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기도라는 건 하나님께서 언제라도 나를 부르시면 응답할 수 있도록 내 몸과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을 향해서 여는 것이죠.
어떤 분들이 묻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습니다. 성경구절을 보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런 말씀이 있는 반면에 또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기도할 때 ‘내 뜻대로 하지 마시옵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그랬는데 이게 뭡니까? 도대체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라는 겁니까, 말라는 겁니까?” 그렇죠, 그 두 가지를 분리해서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죠. 요한복음 15장 7절 말씀을 보니까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사랑하는 두 사람의 마음은 이미 하나가 되어있기 때문에 항상 상대방이 무엇을 얘기하든지 들을 준비가 되어있고, 또 그가 얘기하면 무엇이든지 다 내어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죠. 바로 그런 관계를 말하죠. 왜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과 다르고 하나님의 길은 우리 길과 다르다. 그것은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도하면요 하나님께서 점점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께로 이끌어 주십니다.
지난 주부터 극동방송 한국어 프로그램이 시작됐는데요, 여러분 그건 말이죠, 하나님께서 어마어마하게 큰 교회를 주신 것하고 똑같아요. 그야말로 돈 한 푼 안들이고 하나님께서 방송국 전 시설과 3만 명이 되는 한인 교민과 그리고 그들과 매일 예배드릴 수 있는 그런 기가 막힌 기회를 우리에게 주신 거예요. 이 얘기가 나온 게 벌써 1년이 넘었거든요. 처음에 그런 얘기가 있었을 때 저는 그렇게 흔쾌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굉장히 복잡한 일인데 그것을 누가 하겠는가? 그런데 작년 11월에 김장환 목사님이 그 일 때문에 한 번 오셨고 집회도 하셨고 우리 교회에서 예배도 인도하시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전에 극동방송에서 보내 준 김장환 목사님과 극동방송에 관한 책을 제가 다 읽어보니까 ‘내 생각이 너무나 짧았구나, 참으로 하나님이 귀하게 쓰시는 분이구나 하나님이 극동방송을 통해서 많은 일을 하고 계시는구나. 그리고 방송의 위력이 이러하구나.’ 우리가 이제까지 늘 뭐라고 기도했느냐 하면 ‘자카르타 3만 교민 중에 교회를 제대로 출석하는 사람이 10%도 안 되는 이 현실 속에 지금 밖에 있는 저 많은 사람들을 어찌하든지 하나님 말씀으로 돕고 섬겨야 할 텐데 어떻게 할 것인가’ 늘 이야기하고 생각했던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방송이라고 하는 매체를 통해서 펼쳐주신 거예요.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몰라요. 그래서 기도하다 보면은 하나님의 생각으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 주시는 거예요. 중요한 일이 있기 전에 하나님께서 보통 기도하게 하셔요. 많이 경험했어요. 기도하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꼭 중요한 일들을 맡기셔요. 그러니까 이제는 어떻게 하겠어요. 이제 눈치를 채신 분들은 지금부터라도 기도를 시작하는 거예요. 그렇게 기도를 시작할 때, 하나님이 이제는 내 자녀와 나 자신과 내 이웃과 교회의 모든 일들을 이루어 가십니다.
여러분, ‘곶감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어요. 어느 독일로 유학을 간 목사부부가 있었는데요, 그 목사님의 고백이에요. 이상하게 자기는 말이죠, 어렵게 어렵게 기도해 야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시는데 자기 아내는 자기보다 별로 기도를 안 하는 거 같은데도 일이 술술술술 풀리더라는 거예요. 도대체 알 수 없다. 나중에 발견했다는 거예요. 자기는 당대에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자기 집안에서 개척자에요. 아무도 자기 집안에서 자기를 위해서 기도해준 사람이 없어요. 즉 뭘 투자하려는데 자본금이 없는 거예요. 그러나 아내는 할머니 때부터 잘 믿어 온 집안이에요. 이 아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할머니가 늘 기도했어요. 그 부모들이 기도했어요. 이게 바로 곶감의 법칙이라는 거예요. 할머니가 감을 따가지고 깎아서 말려 놓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다 자기가 먹으려고? 아니에요. 나중에 서울에서 사랑하는 손주들 내려오면 먹이려고 다 곶감 만들어 놓지 않습니까. 기도의 원리가 그러해요.
요즘 청년 실업문제가 얼마나 심각합니까. 제 가족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만 큰 딸아이가 이번에 대학을 졸업했고요, 졸업 직전에 취업을 했습니다. 전 그렇게 생각했어요. 네 할머니가 기도하고 네 엄마, 아빠가 너를 위해서 내내 기도해오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실업이 어쩌고 해도 하나님이 다 길을 열어 놓으신다. 심지어는 하나님은 홍해까지도 가르시고 일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그러니 다 때가 되면 문을 여실 것이다. 아침마다 기도합니다. 사람이 어쩔 수 없더라고요. 새벽에 기도를 하려고 머리를 숙이면 딸아이들 기도가 먼저 나와요. 내리사랑이니까. 우리 아내는 순서가 네 번째입니다. 딸이 먼저 나와요. 큰 딸이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둘째 딸이 나오기도 하고. 그리고 어머니가 나옵니다. 곶감의 법칙. 여러분 우리 자녀들을 기를 때에 그들이 필요한 것을 돈으로도 해결해 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기도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는 것을 자녀들에게 보여줘야 돼요. 그래야 우리가 도와줄 수 없는 먼 곳에 가서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에라도 그들이 본 대로 들은 대로 배운 대로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고 부모를 위해서 기도하고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기도하는 그런 역사가 일어나는 거죠. 오늘 성경이 말합니다. 일상적인 기도. 특별히 사랑하는 가족과 자녀를 위한 기도, 여기에 하나님의 응답이 있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은혜 감사합니다.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구하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일용할 양식과 죄 사함의 자유, 자유롭게 함과 유혹과 시험으로부터의 보호하심을 위하여 기도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내 눈앞에 하늘이 펼쳐지고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는 그러한 일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말씀하셨사오니,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께 맞추며 마음을 하나님을 향하여 열고 언제 어디서나 기도하기를 힘쓰는 우리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