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년 5월 (15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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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
5월 초1일 (계유) 바람이 세게 불고 비가 내렸다. [양력 6월 8일]
310
5월 초2일 (갑술) 맑다. [양력 6월 9일]
311
아침에 바람이 몹시 사납게 불었다. 웅천현감 ∙ 거제현령 ∙ 영등포 만호 ∙ 옥포만호가 와서 봤다.
312
밤 열 시쯤에 탐후선이 들어와서,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고 하며, 종사관이 벌써 본영에 이르렀다고 한다.
313
5월 초3일 (을해) 맑다. [양력 6월 10일]
314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해남현감이 와서 봤다. 금갑도만호는 진에 이르렀다.
315
5월 초4일 (병자) 맑다. [양력 6월 11일]
316
오늘이 어머니 생신이다. 몸소 나아가 잔을 드리지 못하고, 홀로 멀리 바다에 앉았으니, 회포를 어찌 다 말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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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나절에 활 열 다섯 순을 쏘았다. 해남현감이 아뢰고 돌아갔다. 아들 편지를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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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의 왕작덕(王爵德)이 (고려)왕씨의 후예로서 군사를 일으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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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했다. 참으로 놀랄 일이다.
320
5월 초5일 (정축) 비가 내렸다. 오후 여섯 시쯤 잠깐 개었다. [양력 6월 12일]
321
활 세 순을 쏘았다. 우수사 ∙ 경상수사와 여러 장수들이 모두 모였다.
322
오후 다섯 시에 종사관 류공진이 들어왔다. 이충일(李忠一) ∙ 최대성(崔大晟) ∙ 신경황(申景潢)이 같이 이르렀다.
323
몸이 춥고 불편하고 아파 토하고서 잤다.
324
5월 초6일 (무인) 맑으며 바람도 없다. [양력 6월 13일]
325
아침에 종사관이 교서에 숙배한 뒤에 공사례를 받고 함께 이야기 하였다. 저녁나절에 활 스무 순을 쏘았다.
326
5월 초7일 (기묘) 맑다. [양력 6월 14일]
327
아침에 종사관(류공진) ∙ 우후(이몽구)와 함께 이야기했다.
328
5월 초8일 (경진)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양력 6월 15일]
329
아침식사를 한 뒤에 출항하여 삼도가가 같이 선인암(仙人巖: 통영시 한산면 하소리 하포)으로 돌아가서 이야기하고 구경도 하며, 또 활도 쏘았다.
330
오늘 방답첨사(張麟)가 들어와 아들들의 편지를 가지고 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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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나흘에 종 춘세가 잘못 불을 내어 집 열 채가 번져 타버렸다. 다만 어머니께서 계신 집에는 불이 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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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했다. 이거야 말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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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기 전에 배를 돌려 진에 이르렀다. 종사관과 우후는 방 붙이는 일로 뒤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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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초9일 (신사) 맑다. [양력 6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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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식사를 한 뒤에 종사관이 돌아갔다. 우후도 같이 갔다. 활 스무 순을 쏘았다.
336
5월 초10일 (임오) 맑다. [양력 6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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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 스무 순을 쏘았는데 많이 적중했다. 종사관 등이 영문에 이르 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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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1일 (계미) 저녁나절에 비가 뿌렸다. [양력 6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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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치(하동읍 두곡리)의 군량, 남원 ∙ 순창 ∙ 옥과 등을 합하여 예순 여덟 섬을 실어왔다.
340
5월 12일 (갑신) 궂은비가 그치지 않더니, 저녁에야 잠깐 개었다. [양력 6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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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에 나가 공무를 봤다. 동지 권준(權俊)과 조방장 신호(申浩)가 함께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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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일 (을유) 비가 퍼붓듯이 오는데 종일 그치지 않다. [양력 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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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대청 가운데 앉아 있으니 온갖 회포가 끝이 없다. 배영수(裵永壽)를 불러 거문고를 타게 했다. 또 세 조방장을 불러 오게 하여 같이 이야기했다.
344
하루 걸릴 탐후선이 엿새나 지나도 오지 않아 어머니 안부를 알 수가 없다. 속이 타고 무척 걱정이 된다.
345
5월 14일 (병술) 궂은비가 그치지 않고 종일토록 왔다. [양력 6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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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식사를 한 뒤에 대청으로 나가 공무를 봤다.
347
사도첨사가 와서 보고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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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양현감이 받아 간 전선이 암초에 걸려 뒤집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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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한다. 그래서 대장(代將) 최벽(崔璧)과 십호선 장수(十船將)와 도훈도(都訓導)를 잡아다가 곤장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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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 권준(權俊)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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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 (정해) 궂은비가 그치지 않아 지척을 분간하지 못하겠다. [양력 6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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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꿈이 어수선했다. 어머니 소식을 들은지 이레나 되니 몹시 속이 타고 걱정이 된다. 또 조카 해가 잘 갔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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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를 한 뒤에 나가 공무를 보자니, 광양의 김두검(金斗劍)이 복병으로 나갈 적에, 순천과 광양의 두 원에게서 이중으로 월급(朔料)을 받은 것 때문에 벌로써 수군으로 나왔는데, 칼도 안 차고 활도 안 차고서 나왔는데다가 무척 오만하므로 곤장 일흔 대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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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나절에 우수사가 술을 가지고 와서 몹시 취하여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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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6일 (무자)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양력 6월 23일]
356
아침에 탐후선이 들어와서, 어머니께서는 편안하시다고 하고, 아내는 실수로 불을 낸 뒤로 마음이 많이 상하여 담천이 더해졌다고 한다. 걱정이 된다. 비로소 조카 해 등이 잘 간 줄을 알았다.
357
활 스무 순을 쏘았는데, 동지 권준(權俊)이 잘 맞추었다.
358
5월 17일 (기축) 맑다. [양력 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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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나가 본영의 각 배에 사부 ∙ 격군의 급료받은 사람들을 점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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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나절에 활 스무 순을 쏘았는데, 박 ∙ 권 두 조방장이 잘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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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금 굽는 가마솥 하나를 부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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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경인) 맑다. [양력 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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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수사가 진에 이르렀다. 다만, 결성현감(손안국) ∙ 보령현감 ∙ 서천만호(소희익)를 거느리고 왔다. 충청수사가 교서에 숙배한 뒤에 세 조방장과 함께 같이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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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활 열 순을 쏘았다. 거제현령이 와서 보고 그대로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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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9일 (신묘) 맑으나, 샛바람이 차게 불었다. [양력 6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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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를 한 뒤에 권 ∙ 박 ∙ 신 세 조방장과 사도 ∙ 방답 두 첨사 와 함께 활 서른 순을 쏘았다. 수사 선거이(宣居怡)도 와서 같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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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소금 굽는 가마솥 하나를 부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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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 (임진) 비바람이 저녁내 오고 밤새도록 멎지 않았다. [양력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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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를 한 뒤에 공무를 봤다. 수사 선거이(宣居怡) ∙ 조방장 권준(權俊)과 같이 장기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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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 (계사) 흐렸다. [양력 6월 28일]
371
오늘은 꼭 본영에서 누가 올 것이겠지만 당장 어머니 안부를 몰라 답답하다. 종 옥이(玉伊) ∙ 무재(武才)를 본영으로 보내고, 전복과 밴댕이 젓갈, 물고기알 몇 점을 어머니께 보냈다.
372
아침에 나가 공무를 보자니,투항해 온 왜놈들이 와서 보고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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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같은 또래 중에 산소(山素)란 놈이 흉칙한 짓거리를 많이 하기 때문에 죽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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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했다. 그래서 왜놈을 시켜서 그놈을 목을 베게 했다.
375
활 스무 순을 쏘았다.
376
5월 22일 (갑오) 맑고 화창하다. [양력 6월 29일]
377
동지 권준(權俊) 등과 함께 활 스무 순을 쏘았다.
378
이수원(李壽元)이 상경할 일로 들어왔다. 비로소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는 것을 알았다. 다행이다.
379
5월 23일 (을미) 맑다. [양력 6월 30일]
380
세 조방장과 함께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381
5월 24일 (병신) 맑다. [양력 7월 1일]
382
아침에 이수원(李壽元)이 장계를 가지고 나갔다.
383
조방장 박종남(朴宗男)과 충청수사 선거이(宣居怡)를 시켜 활을 쏘게 했다.
384
소금 굽는 가마솥을 부어 만들었다.
385
5월 25일 (정유) 맑다가 저녁나절에 비가 내렸다. [양력 7월 2일]
386
경상수사 ∙ 우수사 ∙ 충청수사가 모여서 같이 활 아홉 순을 쏘았다. 충청수사가 술을 내어 몹시 취하여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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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수사 배설(裵楔)에게서 김응서(金應瑞)가 거듭해서 대간들의 혹평을 받고 있고, 원수도 거기에 끼었다는 말을 들었다.
388
5월 26일 (무술) 저녁나절에 개었다. [양력 7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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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대청에 앉아 있었다. 충청수사 ∙ 세 조방장과 함께 종일 이야기했다.
390
저녁에 현덕린(玄德麟)이 들어왔다.
391
5월 27일 (기해) 맑다. [양력 7월 4일]
392
활 열 순을 쏘았다. 수사 선거이(宣居怡)와 두 조방장이 취하여 돌아갔다.
393
정철(丁哲)이 서울에서 진에 왔다. 장계 회답 내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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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서(金應瑞)가 함부로 강화에 대하여 한 말이 죄가 죄었다"
395
는 말을 많이 하였다.
396
영의정(류성룡) ∙ 좌의정(김응남)의 편지가 왔다.
397
5월 28일 (경자) 흐리다가 마침내 저녁에 비가 많이 내렸다. [양력 7월 5일]
398
끝내 밤에 바람이 세게 불어, 전선을 안정시킬 수가 없었는데, 간간히 구호했다.
399
식사를 한 뒤에 수사 선거이(宣居怡) ∙ 세 조방장과 함께 이야기했다.
400
5월 29일 (신축) 비바람이 그치지 않고 종일 퍼 부었다. [양력 7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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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社稷: 社; 土地의 神, 稷; 穀食의 神)의 위엄과 영험에 힘입어 겨우 조그마한 공로를 세웠는데, 임금의 총애를 받은 영광이 너무 커서 분에 넘친다. 장수의 직책을 띤 몸으로 티끌만한 공로도 바치지 못했으며, 입으로 교서를 외우지만, 얼굴에는 군인으로서의 부끄러움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