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손님이 몰리는 대형마트의 저녁시간, 고소하고 맛있는 냄새가 식품매장 전체에 퍼져나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했을 ‘시식’이라는 재미있는 진풍경이다. 식품업체가 신상품을 출시했을 때 업체는 고객에게 눈으로만 보아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맛’을 보여주어야 하고, 그 반응을 면밀히 살펴 향후 제품개선과 마케팅방향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때문에 이 시식의 한자는 시험할 시(試)를 넣어 시식(試食)이 맞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이 시식을 공짜음식이라 생각하기에 베풀 시를 넣어 그냥 베푸는 음식, 시식(施食)이라 알고 있다.
손님입장에서 시식은 다양한 음식을 맛보고 심지어 어느 정도 허전한 배를 달랠 수도 있는 기회일 수도 있으나, 만두조각 하나를 씹는 동안 행사직원의 따발총같은 홍보를 옆에서 들어주어야 하는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손님들에게 시식행사는 마트에 오는 동기부여 중 하나이다. 물론 위생상의 이유로 또는 자존심 때문에 나는 시식 따위( )는 절대 하지 않는다는 사람도 분명 있다.
업체 입장에서 시식은 무상으로 자신들의 제품을 뜯어서 손님에게 제공하고, 행사직원까지 따로 고용해야 하는 비용의 문제가 생긴다. 이 행사는 결국 원가에 반영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매장에서 입점업체에게 시식행사를 요구할 때, 갑을관계의 구도상 입점업체가 쉽게 거절할 수는 없다. 업체 입장에서도 굳이 나쁘지 않은 것이, 실제로 샘플로 제공하는 음식의 비용문제를 떠나서 ‘먹이면 구매한다’라는 매출증가의 경험이 쌓여있는 것이다. 한 방송사(EBS)의 조사에서 시식을 진행할 때와 안할 때의 매출 차이가 평균 6배에 달한다고 조사된 바 있고, 필자도 직접 식품을 수입해 마트에서 판매할 때 시식행사가 주는 순기능을 체험한 바 있다. 위 조사에서 시식행사 시 맥주는 70%, 와인은 300%, 화장품은 550%인데 냉동피자는 600%로 매출이 늘었다고 하니 식품의 경우는 타제품보다도 단연 압도적인 효과가 입증된 것이다.
시식이 한국인의 정을 보여주는 특이한 문화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시식행사는 마트 식품코너에 다 있다. 시식행사는 영어로 ‘Product Tasting Event’ 라고 하는데, 음식을 트라이 하고 테스트 한다는 의미임에도 동사는 try 나 test가 아닌 샘플(Sample)을 쓴다. ‘나는 시식한다’는 ‘I sample’ 이라는 것. 한자리에서 이쑤시개 하나로 한 점만 먹어야 하는 것이 시식의 암묵적 동의이지만, 손님도 하나로는 아쉬운데다 인심좋은 판매직원의 경우 더 드시라며 썰어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전자는 음식이 맛있었을 때, 후자는 맛이 별로일 때라는 전제가 붙긴 한다. 꼭 구매로 이어지지 않아도 맛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시식의 효용성은 있다. 손님 대다수는 샘플음식을 먹으면 어지간히 맛이 없거나 하지 않으면 사고, 안 사더라도 미안해하기 때문에 업체와 고객에게 윈윈이다.
체인스토어 협회에 따르면 시식판매사원을 2017년 기준 약 47000여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최근 유통법 개정안으로 업체가 부담하던 시식사원의 인건비를 장소를 제공하는 매장도 50% 부담하자는 발의가 나왔지만, 실제 실행까지는 요원하며 현실적으로 업체는 여전히 다수의 판촉사원 운용과 샘플비용을 대부분 부담하고 있다. 필자가 위에서 말했듯 매출이 아쉬운 업체가 매장에 어떻게든 시식매대를 확보하고 싶기 때문에 ‘자발적 파견요청’의 예외가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2회의 의무휴점을 필두로 한 정부의 유통법 개정안은 대형마트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지만 마트 노동자들의 휴식을 보장한다는 취지에서 어느 정도 정착이 되고 있다. 앞으로의 유통법이 어떻게 개정되고 적용되느냐에 따라 대형마트나 입점업체 사이의 풀어야 할 문제가 상당 부분 남아있을 것이다. 겉으로 보는 ‘먹는’ 사람과 ‘베푸는’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겠지만.
이원석 / (주)시온아이엔티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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