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11
조해일의 `아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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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맨얼굴을 보기 위해 머나먼 인도차이나 반도까지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땅에서도 그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을 그곳에 가면 깨닫게 된
다. 서울에서 정북방으로 20여㎞ 거리, 휴전선 이북의 원산을 향해 벋어 있는 경원선 국도와
철로가 나란히 지나가는 곳, 한국전쟁 이후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주한미군들과 몸 부대끼
며 살아온 도시, 동두천이 그곳이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라는 책에서 함석헌은 우리 겨레를 `학대받은 계집종'에 빗댄 바
있다. 그의 비유가 여유와 관조의 결과이기는커녕 냉정한 관찰의 산물임을 지나간 역사는
보여준다. 고려 때 원나라로 끌려간 공녀들에서부터 조선의 그 많은 논개들, 식민지 강점기
의 일본군위안부들에 이르기까지 이 땅의 여성들은 겨레의 굴종과 치욕을 온몸으로 감당해
왔다. 게다가 그것은 이민족의 지배에서 해방된 뒤에도 끝나지 않았으니, 오늘날 양공주 또
는 양색시로 불리는 이들이 그를 증거한다. 해방과 함께 이 땅에 들어왔으며, 한국전쟁을 거
치면서 진주를 확고히한 미군들은 이른바 기지촌을 형성시켰고 그것의 첫번째 필요조건은
몸 파는 여자들이었다.
팔려고 내놓은 한국 여자들의 몸뚱어리와 그것을 사고자 하는 미군 병사들의 욕정, 그 둘
사이를 이어주는 클럽으로 이루어지는 기지촌은 나름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다. 여러 시인
·작가들이 그 세계에 눈을 주었음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시인 장영수·김명인씨가 각기 시
집 <메이비>와 <동두천>에서 혼혈아와 기지촌 풍경을 다루었고, 소설가 천승세씨의 `황구
의 비명'과 윤정모씨의 <고삐> 연작은 양공주 문제를 프리즘 삼아 한미관계의 예속적 본질
을 까발렸다. 최근작으로는 복거일씨의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과 윤이나씨의 <베이비>가
기지촌과 양공주의 삶을 진솔하게 그리고 있다.
1972년에 발표된 조해일씨의 중편 `아메리카'는 기지촌인 ㄷ읍 ㅂ리의 클럽에 스며든 대
학 중퇴생의 눈에 비친 양공주들의 삶과 죽음을 소묘한다. 군을 제대한 뒤 학교에 복학하는
대신 당숙이 운영하는 클럽의 문지기로 취직한 `나'는 클럽을 드나드는 양공주들과의 성적
인 일락(逸樂)에 기꺼이 몸을 맡기며 차츰 ㄷ읍의 사정에 눈을 떠간다.
무책임한 구경꾼이거나 기껏해야 본능에 몸을 맡긴 한 마리의 숫컷으로서만 자신이 몸 담
고 있는 ㅂ리를 바라보던 그의 시선에 변화가 오는 것은 우연히 목격한 양공주의 죽음으로
해서이다. 동거하던 여자를 밤무대 쇼에 나간다는 이유로 목 졸라 죽인 흑인 병사의 범죄를
겪고 그렇게 죽은 양공주의 장례식을 지켜본 그는 양공주들의 자치 조직인 `씀바귀회'를 찾
아가 그들의 실상을 청취하기에 이른다.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비록 그가 “오늘 내게 그녀들의 춤은 이상하게도 삶에
대한 격렬한 거역의 몸짓처럼 보였다”라며 시각의 변모를 토로하지만, 그것의 궁극은 “가
진 나라와 못 가진 나라 사이에 일어나는 여러가지 갈등 내지는 소외관계라는 도식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갈 수 없다는 무력감”일 따름이다.
그같은 무력감의 결과일까. 소설의 결말은 홍수의 몫으로 돌아간다. 홍수는 클럽과 골목을
채우고 넘치지만, 기지촌 자체나 그것의 정치경제적 근거를 함께 쓸어가버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명 구조용 고무보트를 타고 동네 골목에 나타난 미군들은 노약자들을 부대로 대피
시켜 보살피기조차 한다.
그렇다면 미군의 자비와 잔혹으로부터 벗어날 길은 없단 말인가. 같은 양공주 문제를 다
룬 천승세씨의 `황구의 비명'이나 윤정모씨의 <고삐> 연작이 미군과 미국에 대한 고발과
거부라는 명쾌한 결론으로 나아가는 데 반해 상황의 한가운데에서 끝을 내버린 `아메리카'
의 성취를 회의하는 시각도 있다. 그에 대해 작가는 “현실에서 명쾌한 매듭이 지어지지 않
는데 소설 속에서만 유독 매듭을 짓는 것도 작위적일 것”이라며 “나는 다만 기지촌과 양
공주들의 실상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가가 `아메리카'를 비롯한 일련의 기지촌 소설들을 쓰게 된 데에는 부친이 동두천에서
클럽을 경영한 것이 계기가 됐다. 소설에 나오는 ㄷ읍 ㅂ리는 바로 작가의 부친이 클럽을
경영했던 동두천시 보산동을 가리킨다. 하지만 소설이 쓰여진 뒤 사반세기, 소설 배경으로부
터는 3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96년 여름의 보산동은 소설에서 묘사된 모습과는 사뭇 다르
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보산동의 상징이었던 양공주들의 숫자가 급격하게 줄었다는 사정과 관
련이 있다. 한때 3천명 가까이에 이르렀다는 그 여자들은 지금은 겨우 30명 미만에 머물고
있다. 그 여자들이 출입하는 클럽 주인들의 모임인 한국특수관광업협회 동두천지부의 이명
석 지부장(46)은“현재 지부에는 33개 업소가 가입해 있지만, 실제로 영업을 하는 곳은 10여
군데밖에 안 된다”고 밝혔다. 달러의 위력이 현저하게 줄어든 데다 미군들에 대한 주민 감
정이 나빠져서 그들이 전만큼 `대접'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부대 밖으로 나오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흑인 병사에게 살해당한 동료를 단체로 장례지낸 `씀바귀회'의 모델인
민들레회 역시 회원 수의 격감으로 오래 전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나마 주말 저녁에나 기지촌 분위기를 낸다는 보산동 골목의 평일 낮은 황구의 혓바닥만
큼이나 늘어져 기신거리고 있었다. 인디언헤드니 맨해튼, 와일드캣, 뉴하우스, 리버티 따위의
영문 이름을 쓴 클럽이나 테일러, 사진관들이 오래 된 영화 세트처럼 꾸며져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이 풍기는 분위기는 활기와는 거리가 멀다. 땡볕이 내리쬐는 골목을 한동안 지키고
서 있어도 양공주로 짐작되는 여자들의 모습을 보기는 힘들다. 두세명씩 짝을 지어 어슬렁
거리는 사복 차림의 미군 병사들, 열살 미만의 흑인 혼혈아와 또래의 한국 아이, 무료한 표
정으로 어서 밤과 주말이 오기를 기다리는 듯한 동네 주민들이 골목을 오갈 뿐이다.
소설 속에서 흑인 병사에게 살해당한 양공주의 장례는 동료 양공주들의 집단적인 한풀이
의식과도 같이 치러진다. 소복한 여자들은 미군 부대 정문에서 노제를 지낸 뒤 부대 앞을
흐르는 신천의 다리를 건너 상패동 공동묘지까지 흙먼지 이는 길을 곡을 하며 나아간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졸(卒)한 양공주들은 동두천시 서쪽 상패동 공동묘지
의 한켠에서 영원한 안식을 찾았다. `홍주리의 무덤, 면사포 한번 못 써보고' `양춘실의 무
덤, 다음 세상엔 좋은 팔자 타고나기를' `박데비의 묘, 꺾인 꽃도 꽃이랍니다'…. 양공주들의
`경기'가 좋았던 시절만 해도 이런 묘비명이 적힌 나무 십자가를 흔히 볼 수 있었다지만, 지
금은 그렇지가 않다. 돌보는 이 없는 그 여자들의 무덤은 세월과 인정의 풍화작용에 씻기고
무너져 다시금 없을 무의 상태로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글:최재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