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6년 7월 19일(성령강림절 후 여덟 번째 주일)
고린도전서 16:5~12
아름다운 동역
하늘사랑교회 주일오전예배 설교문
본문 접맥적 주제 설교형식
김규태 목사
*설교 주제문: 바울은 신실한 동역자를 통해 고린도 교회를 세우고자 했습니다.
*설교 목적: 우리는 신실한 동역을 통해 함께 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
what’s problem?
혹시 여러분은 상자 표면에 두 사람이 함께 상자를 나르는 그림을 본 적이 있습니까? 이 그림은 상자를 혼자 들지 말고 반드시 다른 사람과 함께 옮기라는 뜻입니다. 우리 삶에는 늘 ‘혼자보다 함께’가 필요합니다.
여기 논밭을 가는 농부가 있습니다. 농부는 쟁기를 끌고 논밭을 갈 때, 동력을 키우기 위해 소 두 마리를 하나의 멍에, 즉 ‘쌍멍에’로 묶었습니다. 이때 쌍멍에에 묶인 두 마리의 소는 모든 것을 함께 해야 합니다.
둘 다 같은 방향으로 가야 하고, 하나가 쉴 때 다른 하나도 쉴 수밖에 없습니다. 일할 때도 철저히 같이 일해야 합니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서로를 배려해야 합니다. 생각이나 기질, 능력치가 달라도 서로 맞추어야 비로소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교회의 모든 성도는 이 쌍멍에로 묶인 한 팀입니다.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고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 포용하고 인내하며 협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출처: 김창훈, 「바울로부터, 빌레몬에게」(좋은씨앗, 2024); 「생명의 삶 플러스」(두란노, 2025년 5월호), 211쪽에서 재인용.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고린도전서의 가장 마지막 부분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전도 여행계획을 밝히고 동역자들을 교회에 추천하고 있습니다.
지금 바울은 에베소에 있습니다. 이때 바울은 세 번째 전도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에베소에 머물면서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는 장차 에베소를 떠나 마게도냐를 지나 고린도에 머물며 겨울을 지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고린도 성도들과 충분히 교제한 뒤, 그들의 파송을 받아 새로운 선교지로 나아가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이러한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에베소에 있던 바울에게 광대하고 유효한 전도의 문이 열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계획을 내려놓고 에베소에 좀 더 머물며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해야 했습니다. 실제로 바울은 에베소에 3년간 머물며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좀 더 머물러 있어야 했던 또 다른 이유는 대적자들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에베소에는 광대하고 유효한 전도의 문이 열렸지만, 그에 못지않게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도 많아졌습니다. 이에 바울은 고린도를 방문하려는 계획을 잠시 내려놓고,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며 복음을 전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바울이 고린도 교회 방문 일정을 변경한 것으로 인해 오해를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고린도 교회의 일부 성도들은 바울의 방문 계획이 변경되자, 바울이 말을 자주 바꾸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바울이 처음에는 방문을 연기했지만, 이후 고린도 교회의 상황이 더욱 악화되자 결국 근심 가운데 두 번째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바울은 일부 교인들에게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바울은 고린도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속히 에베소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눈물로 그들에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교인들과 아름다운 동역을 이루기 위해서 때로 어려움을 겪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우리를 낙심시키고, 공동체를 떠나 혼자 속 편하게 신앙 생활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동역은 언제나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바울처럼 동역의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혹시 여러분은 다른 성도들과 연합하고 함께 동역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본 적은 없습니까? 혹시 여러분은 지금 그러한 아픔과 어려움을 느끼고 있지는 않나요?
what?
그렇다면 바울은 이러한 깊은 오해와 배신의 상처를 어떻게 극복해 낼 수 있었을까요? 놀랍게도 바울은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사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갈등으로 얼룩진 고린도 교회를 향해, 도리어 자신이 가장 아끼는 디모데를 보내 소통하기 시작합니다.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붙여 주신 동역자들과 함께 이 위기를 돌파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과연 디모데가 누구입니까? 디모데는 바울의 가장 신실한 동역자였습니다. 그는 제2차 전도여행 중에 루스드라에서 바울을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행 16:1~3). 바울은 디모데를 영적인 아들이라고 부르며 아꼈습니다.
디모데는 강한 성품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직 어린 나이였고, 두려움을 많은 느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처럼 연약한 사람을 고린도 교회에 보냈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는 갈등과 분열, 음행과 송사, 은사 문제로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왜 바울은 그런 거친 상황에 처한 교회를 위해 연약한 디모데를 보냈을까요? 10절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
비록 디모데는 두려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었지만, 바울은 그의 연약함에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디모데가 자기처럼 주의 일에 힘쓰는 사람이라고 추천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표현이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추천하면서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에 힘쓰는 자”라고 표현한 점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의 영적인 아버지였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을 통해 복음을 믿게 되었고, 사역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디모데의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칫 디모데를 자기의 심부름꾼 정도로 낮추어 소개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디모데를 ‘내가 보낸 젊은 제자’라고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동등하게 소개했습니다.
바울은 무조건 디모데를 믿어준 것이 아니라, ‘주의 일에 힘쓰는 그의 진정성’을 알고 인정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동역자의 가치를 알고 세워주는 지도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혹 우리가 가진 생각이나 자세의 연약함이 이런 것과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전도해서 양육했기 때문에, 나는 제자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을 무의식중에 갖고 있지 않은지 세심하게 살펴볼 일입니다.
간혹 주변에서 “요즘에는 누군가에게 일을 맡길 만큼 믿을만한 사람을 찾기 어렵다”라는 말이 들립니다. 그만큼 진실한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말이겠지요? 그러나 정작 문제는 믿고 맡길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믿어주지 못하고 세워주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바울은 어린 디모데를 신뢰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자기처럼 주의 힘에 힘쓰는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렇게 믿어주고, 세워주는 사랑의 관계를 통해 세워지지 않겠습니까?
바울은 디모데를 고린도 교회에 보내면서 “누구든지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라고 권면했습니다. 바울은 동역자를 세우고, 공동체가 그 동역자를 존중하도록 격려하는 목회적 지도력을 행사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격려하고 세워줘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혹 여러분은 누군가의 부족함을 바라보고 믿지 못해 일을 맡기지 못하는 때는 없습니까? 혹 실수하거나 실패하더라도, 주의 일에 힘쓰고자 하는 자라면 믿고 세워주려는 자세를 가지면 어떨까요?
우리가 주변의 사람이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나이가 몇 살인지, 경력이 어떠한지를 바라보기보다는 그가 얼마나 주의 일에 힘쓰는 자인지를 바라보고 인정해 주고 세워주는 아름다운 동역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이렇게 연약하지만 신실한 디모데를 믿고 세웠습니다. 그렇다면 또 다른 동역자인 아볼로는 어떠했을까요? 흥미롭게도 아볼로는 디모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줍니다.
과연 아볼로는 누구입니까?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는 성경에 능통했고 말에도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행 18:24). 또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배운 후에는, 능력 있게 복음을 전한 최고의 설교자였습니다.
특히 아볼로는 고린도 교회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 안에는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길 정도였습니다(고전 1:12). 그만큼 아볼로는 성도들에게 존경받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아볼로를 시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를 “형제 아볼로”(12절)라 부를 정도로 귀하게 여겼습니다. 아마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때, 아볼로도 그곳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여러 번 아볼로를 만나 고린도에 가도록 권면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볼로는 지금은 가지 않겠다고 대답했습니다. 12절에서 바울은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이쯤 되면, 아마 바울의 마음이 편치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자기가 여러 번 권면해도 말을 듣지 않는 아볼로를 향해 불편한 심기를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내 감정을 반영하여 편지를 쓴다면 이렇게 썼을 수도 있습니다.
“아볼로?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라고 했는데 안 간대. 나도 걔가 왜 그러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돼.”
만약 바울이 이런 식으로 편지를 보냈다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아볼로를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좋게 생각했을까요? 아마 그렇지는 못했을 겁니다. 누군가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평가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바울의 놀라운 성숙함을 봅니다. 바울은 사도였습니다. 얼마든지 자신의 권위를 앞세워 “내가 가라고 하면 가야지, 어디서 거절하느냐!”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아볼로의 판단을 존중했습니다.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되면 가리라.” 바울은 ‘아볼로가 때가 되면 갈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는 아볼로의 결정을 존중했고, 묵묵히 기다려 주었습니다.
이것이 아름다운 동역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동역하기 위해서는 나의 권위와 기분을 앞세우는 대신, 상대방의 결정을 존중하며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아름다운 동역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바울의 모습에서 동역자의 가치를 소중히 여겨주는 성숙한 지도자의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바울은 연약한 디모데를 믿고 세워주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바울은 아볼로의 결정을 존중하고 기다려 주었습니다.
how?
끝으로 미국에서 목회하던 한 목사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이 목사님이 사역하는 리더 중에 목사님의 마음을 몹시 힘들게 하는 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 성도가 그것을 눈치채고 “목사님, 그분이 목사님을 너무 힘들게 하지 않나요?”라고 물어 왔습니다.
솔직히 그때 목사님의 마음에 원함은, 그분이 자기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속 시원하게 다 털어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성령님이 자기 입을 막으시는 것 같은 강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오히려 성령님은 목사님의 입술을 통해 그분의 장점을 말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이 목사님이 주변 사람에게 했던 그 칭찬과 격려의 말들이 힘겹게 하던 그분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피해를 준 목사님이 도리어 자신에 대해 좋게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마음에 가책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분은 목사님의 가장 든든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출처: 이재훈, 「고통을 통해 소망을 만나다」(두란노, 2021); 「생명의 삶」(두란노, 2026년 5월호), 113쪽에서 재인용.
그 목사님은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비난 대신 격려를, 폭로 대신 장점을 말함으로 결국 사람을 세워주고 최고의 동역자를 얻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번 한 주간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동역’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저는 여러분에게 두 가지 실천적인 권면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여러분 주변의 ‘연약한 디모데’를 찾아 믿고 세워주십시오. 부족함과 실수가 먼저 보일 때, 눈을 감아주고 “그도 나와 함께 주의 일을 힘쓰는 소중한 사람”임을 고백하며 기회를 주십시오.
둘째,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유능한 아볼로’를 존중하고 기다려 주십시오. 내 생각과 하나님의 때가 맞지 않더라도, 서운해하거나 내 감정을 앞세우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신 때를 기다리며 상대방의 결정을 존중해 주는 것입니다.
동역자와 함께 일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사람을 통해 교회를 세우십니다. 그래서 사람을 믿고 세워주는 일은 힘들지만 가장 가치 있는 일입니다.
아프리카의 한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울은 혼자 교회를 세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디모데와 아볼로와 같은 신실한 동역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갔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믿고 세워주었고, 아볼로를 존중하고 기다려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사람을 믿고 세워주며, 존중하고 기다려 주는 사람들을 통해 교회를 세워 가십니다. 우리 모두 그런 아름다운 동역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