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고린도후서 6:3]
세상에 속한 속물들은 참된 사역자를 향해 짜증을 냅니다. 그 이유는 참된 사역자는 언제나 그들이 듣거나 보길 원치 않는 어떤 중대 사건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사역자가 어떤 주제를 다루든지 결국 언제나 하나님의 경고를 언급하기 때문에 속물들은 이에 화가 나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삶의 가장 쉬운 부분들을 분석한 후에 거짓 확신 가운데 삶의 모든 현실은 자신들의 노력에 달렸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사역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그들은 그를 향해 "그것은 터무니없는 말이다. 당신은 이상주의자이며 비현실적인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사역자의 음성이 속물들에게는 언제나 듣기 싫은 성가신 음성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복음의 메시지를 듣지 않을 수 있는 핑계만 생기면 즐거워합니다. 그들은 모순된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발견하면 더욱 복음을 멀리할 구실을 삼고 기뻐합니다. 주님께서는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마태복음 18: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족'이라는 것은 '공격할 수 있는 틈'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은 언제나 성도의 '실족'을 찾으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일 사역자가 사적인 삶에서 넘어지면 세상은 당장 그 '실족'을 찾아서 무자비하게 공격하면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핑계를 삼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걸림돌이 될 위험성이 언제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 가운데도 이러한 위험이 있음을 절대 잊지 않았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린도전서 9:27]. 세상에 '실족'할 일을 제공하지 않을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숨겨진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심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걷도록 늘 조심하는 것입니다. 아멘!
<주님은 나의 최고의 선물, 2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