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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일반]
"박정희 사상 의심스럽다"
사형 위기…
백선엽이 구했다
추천!더중플-김종필 증언록:소이부답
‘현대사의 연출가’ 김종필의 마지막
증언을 소개합니다.
산업화와 민주화, 대일 청구권 문제 등
‘시대의 풍운아’가 직접 겪은 살아있는
현대사를 재조명합니다.
5·16의 설계자이자 박정희의 2인자로
살아온 그는 박정희의 진실과 가장
가까운 인물입니다.
김종필이 생생히 증언한 5·16의 전말을
담았습니다.
더중앙플러스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
답 (https://ww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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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특별할 것도, 강렬한 점도
없는 짧은 만남이었다.
하지만 아흔에 이르러 회상해 보니
그 장면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나, 우리 둘이 처음
만난 장면 말이다.
육사를 8기로 졸업한 1949년 6월,
나는 육군본부 정보국에서 장교로서
첫발을 디뎠다.
동기생 일곱이 정보국 전투정보과에
배치됐다.
발령식 때 정보국장이던 백선엽 대령이
우리에게 말했다.
“너희가 신고드릴 분이 한 분 더 있다.
작전실로 가서 인사드려라.”
----1952년 4~8월 김종필 대위(왼쪽)는 진해에
있는 육군사관학교 본부 중대장으로 근무했다.
육사 교정에서 선글라스를 낀 김종필 대위가
동료들과 포즈를 취했다----
< 사진 김종필 전 총리 비서실 >
바로 옆 ‘작전정보실’이란 팻말이 붙은
작은 방으로 가서 인사를 건넸다.
“이번에 전투정보과에 배속된 신임
소위들입니다.
신고를 받으십시오.”
작전정보실장이란 타이틀을 가진 사내는
검은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
검은 옷 탓이었을까.
참 키가 조그맣고 얼굴이 새카만
첫인상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계면쩍게 웃어보이며
말했다.
“나 박정희요.
근데 난 그런 신고 받을 사람이 못 돼.
거기들 앉게.”
악수를 나누고 잠시 의자에 앉았다.
박 실장은
“내가 사고를 당해서 군복을 벗었다”
고 간단히 본인을 소개했다.
이어
“육사를 우수하게 졸업한 장교들이라고
들었다.
환영한다”
며 짧은 대화를 나눴다.
군복을 벗고 정보국의 문관(文官)으로
일하던 그분과의 첫 만남이었다.
박정희란 이름은 알고 있었다.
내가 1948년 조선경비사관학교
(육사 전신) 행정처에 사병으로
근무할 때 7기 특별반 1중대장을 하던
분이었다.
그러다 어디로 잡혀갔다고 하는
소문만 들렸다.
나중에야 알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듬해 2월
군법회의에서 사형 구형을 받았다가
극적으로 살아났다.
그에게 씌워진 혐의는 군부 내 남로당
조직책이었다.
박정희 사관학교 제1중대장은
비분에 차 있었다.
군대가 왜 이 지경이냐,
나라는 왜 이 모양이냐. 울분은 폭발
일보 직전이었다.
그는 대구사범학교를 나왔다.
일제의 지배 시대,
박정희는 새로운 세계를 동경했다.
그는 만주군관학교(新京, 지금의 長春)
에 갔다.
1등으로 졸업하고 일본육군사관학교를
특별 입학, 졸업(57기)한 엘리트
장교였다.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와 1946년
조선경비사관학교를 2기로 나와
소위로 임관했다.
미 군정은 1946년 1월 15일
남조선국방경비대(조선경비대)를
창립했다.
국군의 전신이었다.
장교 자원이 부족했다.
일본군 지원병이나 하사관 출신이 대거
장교로 임관했다.
사병 출신도 미 군정이 세운
군사영어학교에서 몇 주 교육을 받고
지휘관이 되는 식이었다.
그러니 조선경비대는 기강이나 규율
면에서 한심스러웠다.
군인정신을 찾기 힘든 장교들도 있었다.
사명감 투철한 엘리트 장교 출신의
박정희 소령이 개탄할 만했다.
해방공간 속 정치는 혼란스러웠다.
----1950년 육본 정보국 전투정보과 시절
육사 8기 동료들. 앞줄 왼쪽부터 서정순
(훗날 정보부 차장)·석정선(정보부 차장)·
전재덕(정보부 차장), 뒷줄 왼쪽부터
이영근(유정회 국회의원)·고재훈(정보부 국장)·
안영원(경제 과학심의회의 부이사관)----
< 중앙포토 >
사관학교 2중대장이던 강창선
대위는 박 소령의 만주군관학교
동기생으로 친했다.
비밀 남로당원이었던 강창선은
우수한 장교와 육사 생도를 당원으로
포섭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런 강창선 대위가 박정희 소령을
놓칠 리 없었다.
그때도, 그 뒤로도 박정희 소령은 술과
술자리를 좋아했다.
강창선은 박 소령에게 접근해
저녁 자리를 벌였다.
박 소령은 술만 들어가면 마음속
응어리를 분출해 내곤 했다.
세상과 군대에 대한 답답함과
비분강개를 한바탕 쏟아내야 속이
시원했다.
술김에 과장되고 격한 말이 툭툭
튀어나왔다.
군 내 빨갱이 검거에 열을 올리던
1연대 정보주임 김창룡 대위는
이미 강창선을 주시하고 있었다.
여순사건 직후 좌익계열 숙군(肅軍)의
바람은 거셌다.
일본군 헌병보 출신인 김창룡은
공산당을 때려잡겠다며 한창 눈에
핏발을 세우고 있던 차였다.
강창선과 자주 어울리는 박정희가
감시망에 걸려들었다.
나중에 육사 8기로 나와 동기생이 되는
전창희에게 밀명을 내렸다.
박정희가 사상이 온건치 않아 보인다.
네가 책임지고 전모를 캐라.
🔎 인물 소사전: 김창룡(1920~56년)
이승만 정권 시절 공산당 색출에
앞장섰던 특무대장. 일본 관동군
헌병보로 근무하다 광복 후 귀국해
조선경비사관학교(현 육사) 3기생으로
졸업했다.
여순사건 직후 숙군작업에서
이재복·이중업 등 남로당 간부를
잇따라 체포해 이름을 떨쳤다.
51년 육군 특무대장(대령)이 됐고
53년 준장, 55년 소장으로 승진했다.
군 내 좌익 제거에 앞장서서 이승만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
56년 그의 권력 남용에 불만을 품은
허태영 육군 대령과 그 부하들에게
저격 살해당했다.
박정희 소령이 술자리에서 터뜨린
불평불만이 전창희를 통해 고스란히
김창룡에게 보고됐다.
박정희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나
그의 과격한 발언이 그를 옭아맸다.
48년 11월 강창선에 이어 박정희
소령이 체포됐다.
남로당에 가담해 반란을 기도했다는
혐의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구 10·1사건 때
사망한 셋째 형 박상희의 영향을 받아
좌익에 물들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야기 꾸며내기 좋아하는 이들이
멋대로 갖다 붙인 소리다.
내 장인 박상희는 공산주의자가 아닌
민족주의자였다.
두 형제분 간 사이는 그다지 친밀하지
않았다.
사상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을 만한
관계가 아니었다.
나의 장인에 대해선 황태성 사건과
관련이 있어 나중에 기술하겠다.
박정희 소령은 1949년 2월
군법회의에서 사형 구형과 무기징역
선고를 받았다.
위기에 처한 박정희 소령을 구해준 건
육군 정보국장이던 백선엽
대령이었다.
그는 군대 내 좌익 색출 작업의
총책임자였다.
백 대령이
“내가 책임지고 신원을 보증하겠다”
고 나섰다.
마침 김창룡은 사생활이 깨끗한
백선엽을 가장 존경하는 상사로
여기고 있었다.
김창룡도 백 대령 뜻을 따라
박 소령에 대한 신원보증서에
서명했다.
형집행이 정지됐지만 박 소령은
군복을 벗어야 했다.
민간인 신분이 된 그를 정보국
문관으로 채용한 것도 백선엽
정보국장이었다.
박 소령을 위해 원래 직제에 없던
자리를 만들어준 것이다.
위인설관(爲人設官)이었다.
----1951년 말 육군정보학교장 박정희 대령(오른쪽)
과 특무대장 김창룡 대령(가운데)이 대구 육본
정보국 앞에 나란히 서 있다.
김 대령 왼쪽은 이승철 중령.----
< 중앙포토 >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선 그때가
특히 불행했던 시기다.
타의에 의해 군인의 길을 접고,
사관학교 중대장 시절 직접 가르쳤던
유양수 전투정보과장(육사 특7기)
밑에서 편제에도 없는 실장으로
일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에 대해 그가 불평의 말을 털어놓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육사 후배들에게
“난 그런 신고 받을 사람이 못 돼”
라고 말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심정을 그땐 나도 미처 알 수 없었다.
🔎 현대사 소사전: 남조선노동당
(남로당)
박헌영을 중심으로 1946년 11월
서울에서 결성된 공산주의 정당.
그해 8월 북한에서 북조선노동당이
결성된 뒤 남한 내 좌익세력을
재정비하기 위해 조직됐다.
남한의 공산화 공작을 진행하다
48년 12월 국가보안법으로 당이
불법화되자 간부들이 대거 월북한다.
5·16의 전말
34시간 만에 돌아온 박정희…
JP “휴, 빨갱이 아니었구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76474
박정희와 죽자고 혁명했다…
5·16 설계자, JP의 고백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74657
반공 국시 처음 본 박정희
“이거 나 때문에 썼겠구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75335
5·16 석달전 JP “혁명합시다”…
박정희 “나도 준비를 해왔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78211
“자네 하려는 거, 그거 하자”
박정희와 ‘지프차 혁명언약’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78774
[출처:중앙일보]
[댓글]
ww21****
박 정희 대통령을 욕하고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을 전혀 욕하지 않는 종북 빨 갱이들은
모두 죽여야 한국이 편안해진다.
ww21****
반민족적이고 망국쟁이들인 좌익 빨 갱이들이 민족
타령을 하는 것은 아주 뻔뻔하고 우습다.
kwon****
그래서 더불어 미친 犬들이 백선엽 장군을 못 잡아
먹어서 그 난리를 쳤구나~~~
mand****
다까끼 마사오를 위해 열심히 구명 활동한 백선엽 등
또한 민족의 반역자들이다.
ww21****
좌익 빨 갱이들이 마구 날뛰어 나라가 위태롭게 된
한국은 박정희 대통령이 시행한 유신 정치가
옳았음을 보여주어 제2의 박정희의 영구 집권이
매우 필요해졌다.
ww21****
한국에 필요한 지도자는 최소 박정희와 같은
지도자이다.
ww21****
박정희를 욕하는 인간들은 모두 좌익 종북
빨 갱이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ww21****
박 정희가 해방 뒤에 잠깐 남로당애 있었던 것을
트집잡아 18년 집권 기간 내내 철저한 반공
정책을 시행하여 북한의 김일성이 네 번이나 죽이려
했던 박 정희 대통령을 빨 갱이로 몰아 욕하고
빈정대는 좌익 인간들의 뻔뻔함은 지독하다.
ww21****
박 정희 대통령이 18년 집권 기간에 정치적으로
잘한 것은 유신 정치를 한 것이고 , 정치적으로
잘못한 것은 악질 빨 갱이 김 대중 새애끼를
죽이지 않은 것이다.
ww21****
김 재규 새애끼는 북한을 대적하여 북한의 수괴
김일성을 죽여야 하는 중앙 정보부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능하여 김 일성을 죽이지 못하고
대통령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자기의 상황을
악용하여 박 정희 대통령을 죽인 김 재규
새애끼는 아주 비열하고 무능한 머저리
새애끼이다.
그런데도 김 제규 새애끼를 민주투사라고 생각하고
김 재규 새애끼를 빠는 인간들은 김 재규 새애끼와
같은 병 신 머저리들이다.
supe****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이 그렇다.
지난 15년간의 친북, 친공 좌파 정권이 근대
정치사를 완전히 왜곡, 조작, 탄압, 삭제
시켰기 때문이다.
공과와 과실을 적나라하게 사실대로 후대에게
전하지 않고 자신들의 정적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왜곡, 조작하며 지우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후에 자신들이 똑 같이 그런 처지가 될 줄도
모르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지구상의
다른 나라와 달리 유일하게 그의 조국에서만
악마화 되고 있는 것이 과연 정상적일까?
그렇다면 김노문 이들 세 사람은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운명을 북한 핵 앞에 내동댕이치도록
핵개발 자금을 제공한 반역자가 아닌가?
언론에 보도된 것과 같이 북괴에 수천억원의
자금을 제공했다면 말이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를 통해 역사를
바로 잡아야 마땅하다!!!
ww21****
박정희의 치명적인 약점은 자발적으로 일본군에
들어가 일본군 장교를 한 친일 짓과 술과 여자를
좋아한 것이다.
tech****
중앙일보 댓글들 진짜로 웃기네/
박전희 제대로 알려면 60대 후반은 되야 할터/
대한민국 근대화의 장본인 박정희 대통령/
허구헌날 데모와 반정부 투쟁에만 일삼는
민주팔이 인사들/
그리고 그것도 좋다/
지금의 일부 종북 좌파 무리들/
대한민국이 이렇게 굴러가는 것만 해도 신기하다/
세상 낙원 북조선 돼지나라에 그들은 왜 안갈까 /
그것이 궁금하다/
jayc****
'남로당 조직원들'을 체포 처벌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1948년 국가보안법'을 가지고,
2024년 '민주당의 86 주사파 출신 국회의원들'을
처벌해야 한다.
twin****
10월 26일을 국경일로 해야돼.
twin****
니뽕군 바리색이가 니뽕 졸개넘을 살려준거야..
kevi****
웬 종부기들이 떼로 주루루 붙었구나.
야 표 안 나게 좀 띄엄띄엄 달아라.
jang****
발갱이 편을 들었다는 자체가 사상이 발갛다고
봐야 한다...
지금은 친북만 해도 난리 부루스 치는 세상인데.. ..
공산당원이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이적행위라고
봐야한다.
xeno****
박정희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기회주의자이지,
그게 일본군이든 관동군이든 공산군이든
여순 반란군이든 자신의 영달에만 도움되면 언제든
갈아타서 충성 할수 있는...
kkan****
구글에 GDP 1960 by country라 검색하면
1960년 세계 GDP 순위가 나오는데 남한이
115개국 중 46위에 올라있다..
세계 최빈국에서 어쩌구 레토릭은 박정희가
가스라이팅 시킨건데 아직도 모르니..참
csn0****
기회주의자 뉴라이트 같은 인간들이 자신들의
영화를 위해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짖거리로 나라의 기틀을 세웠으니 이제 이 나라의
정의는 없어져 버렸다
모든 악의 근원이 여기서 나와서 대한민국을
비극으로 이끌것임을 후대세대는 직시해야한다~
앞으로 위기상황이 오면 누구나 뉴라이트 같이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자들이 될 것이다
그게 그들의 욕심 욕망이고 대한민국의
정의니까~
모두 도망쳐라 이건 나라도 아니다
pent****
개 대 중이 기념관 보다야 천만배 나
더많이 지어야한다.
빨 dkdkfrod~이들이 판치는 이 나라가 돼지 x끼한테
안 넘어 가는 건 아직도 너 같은 개 종자들을
빨dkf갱ror이라 구분할 줄 알기 때문이다.
tka3****
해방후 민주공화국을 수립한후에 역대 대통령중에서
박정희 전대통령만한 위대한 영도자는 없었다.
60대초에 세계에서 꼴찌에서 3번째로 가난한
나라를 오늘날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으로
일으켜세운 원동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선경지명과 통치력이 없었으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alsa****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남긴 업적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하지만, 집권을 위하여 반대파에게 벌인 무자비한
탄압과 재벌에 준 특혜 같은 부작용도 아울러
지적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