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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이란?
걸작 예술품을 감상할 때 순간적으로 느끼는 정서적 압박감. `적과 흑'의 작가 스탕달이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관람한 후 격렬한 흥분과 두려움을 느꼈다고 말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걸작 예술품을 전시관 계단을 내려오는 도중 심장이 뛰고 무릎에 힘이 빠지는 특이한 경험을 일컬으며, 이를 치료하는데 1개월 이상이 걸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예민한 사람들이 뛰어난 예술품을 감상한 뒤 받은 흥분에서 생기는 현상이다.
스탕달 신드롬은 환자들에게 의기소침, 피해망상, 자아상실, 정서혼란 등의 증상을 겪게 한다고 발표했다
"축구는 예술작품일세.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수 있고 누군가를 환호하게 만들수 있으며 그들의 등골이 오싹할만큼의 공포도 줄수 있지." - 본 자서전 내용 中 -
"그림,음악,영화와 같은 것만이 예술이라고 생각하나? 천만에! 우리들 사람 한명 한명이 모두다 예술품인셈이지. 쉽게 말해서 그런 사람 22명이 뛰어야 하는 축구장은 루브르 박물관 부럽지 않은 또 하나의 전시실이란 말일세." - 본 자서전 내용 中 -
"축구는 그라운드라는 전시실에서 열리는 22명의 단체무용과 같은걸세. 그래서 축구는 모두에게 사랑받는게지." - 본 자서전 내용 中 -
- 1화 '마라카낭 처럼' -
나의 현역시절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 누구처럼 세계 최고의 명문 클럽에서 뛰지 않았을뿐더러 항상 가는 곳은 재정이 굶주린 팀이었고 더불어 나에겐 항상 이해를 구했다.
그것은 아주 흔한 '프로팀 연습생'의 길이었다. 누구나 축구를 꿈꾸고 희망한다. 그것은 비단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번이라도 축구를 관람해본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골을 넣는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에빠지곤 한다.
그렇다. 바로 그것이 축구에 대한 갈망이다. 물론 축구를 인생의 기둥으로 삼는 사람들은 여타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 그 갈망이 강했을뿐 그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프로는 돈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의 말은 반박할만하다. 예를 들자면 '돈이 좋아서'라는 아주 원초적인 문구부터 시작해서 혹은 '많은 부와 명예를 위해서'와 같은 거창한 문구까지 말이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처음엔 축구에 대한 욕망과 성공욕에 벅찬 마음으로 축구를 시작했었지만 결과는 축구 그 자체를 즐겨야만 했다. 그것은 프로 연습생의 슬픈 현실이었고 돈과 인연을 맺을수 없는 수많은 축구선수들이 있음을 알아둬야한다.
나의 현역시절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내가 축구선수로써 밟아왔던 과정은 괜찮은 편이었다. 오늘은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내가 현역선수를 꿈꿔왔던 시절의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어쩌면 그때가 내 인생의 황금기였는지도 모르지만..
- 브라질에서 -
나는 고등학교때 나름대로 이름있는 선수였다. 그때문에 나의 고교시절은 수많은 프로팀의 스카우터들과 대면할 기회가 많았지만 나는 좀더 나를 가다듬고 싶었다. 보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보다 많은 것들과 만나야 했으며 보다 많은 것들을 가질수 있어야 했다.
그러던 와중에 나에게 찾아온 브라질 유학은 좋은 기회였다. 더구나 궁핍했던 나의 집안사정을 감안할때 모든것이 무료였기때문에 나에겐 더할 나위 없는 최상의 조건이었다.
브라질로 떠났고 그곳에서의 모든 경험들은 나에게 감미로운 옛추억이 되었지만 그때 당시를 돌이켜 보면 정말 철 모르고 모든것에 서툴은 소년티를 벗지 못한 놈 하나가 브라질을 무대로 뭔가를 해보겠다는 야심찬 각오에 차있었다.
브라질에서의 축구는 굉장히 신비롭게 다가왔다. 모든이들이 늘상 그렇다는듯 해변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고 남녀노소를 가리지않는 그야말로 국민적인 스포츠였다. 마치 우리나라의 태권도를 누구나 배워야 하는듯 생각하는것처럼 그들에게 축구는 우리의 국무인 태권도보다 더욱더 대중화되어있었다.
내가 브라질 상파울루 국제 공항에 첫 발을 내딛고 감회에 차있을때 나에게 다가왔던 사람은 상파울루시와 브라질의 국가적 지원을 받던 '유소년 축구팀'의 '히카르도'씨였다.
≪ 동양에서 온 젊은이 '김관우'군! 여기입니다 ≫
서툴게 보이는 한국어로 낙서처럼 갈겨놓은 플랜카드를 들고 있었던 히카르도씨는 처음 만난 나에게 아주 친절히 대해주었다.
"안녕하세요. 김관우입니다."
"오. 동양의 젊은이가 바로 자네였군. 하하 핸섬. 핸섬"
어깨를 토닥이며 상당히 익숙한 솜씨를 사람을 다루는듯 했다. 그와 가벼운 성함교환을 한뒤 우리가 향한 곳은 브라질의 마라카낭이라는 축구팀의 경기장이었다.
그곳엔 이미 수많은 브라질인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왁자지껄 모여있었고 각각의 화려한 의상을 뽐내며 경기장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가장 놀랐던것은 구장의 크기였다. 아시아에서 고등학교 대표팀으로써 몇차례 일본이나 중국, 베트남등에서 경기를 치룬적도 있었고 나름대로 아시아에서 볼만한 경기장은 봤었던 나였지만 이토록 큰 경기장을 본것은 처음이었다.
"오우~ 놀란 표정이군? 놀랄 만도 하지 하하!"
내가 약간은 얼이 빠진 표정으로 히카르도씨를 쳐다보자 무안하셨는지 말을 이어나가셨다.
"쏘리~ 아시아인이라고 놀리는것은 아니예요. 유럽의 축구 유학생들도 놀라고 가는걸요?"
"이 경기장이 세계에서 가장 큰 경기장이죠.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할까요?"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어느세월에.. 라며 한탄하려 할때 히카르도씨는 나의 손을 잡고 줄을 지나쳐 또다른 입구를 찾아가 매표원에게 몇마디 속삭였다. 지나치게 자상한 이 매표원은 싱긋 웃어보이며 우리에게 출구를 열어주었고 내 뒤로 길게 늘어선 수만명(짐작하건데..)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으며 우리는 태연하게 경기장안으로 들어섰다.
경기장 내부는 우리들의 그것과 비슷했지만 크기가 워낙 압도하는 터라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미로를 연상케했다. 심지어 과연 이들이 전반전을 끝나고 급한일(?)을 해결할수는 있을까 라는 일종의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를 가지고 있을거라 짐작까지 할 정도였으니까..
내가 히카르도씨의 길안내를 받으며 관중석 입구를 찾아 헤메고(?)있을때 아까 보았던 긴 줄을 이루고 있던 관중들이 하나둘씩 입장하기 시작하면서 금새 장내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미국 스릴러 영화에서나 보던것처럼(예컨데 주인공이 하수구를 지나고 있으면 뒤에서 물들이 밀려온다거나..)우리들 뒤로 수많은 그림자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그들의 웅성거림이 마치 댐이 무너지는듯한 착각을 느끼게했다.
"이런~ 사람들이 몰려오는군요. 꾸물댈 시간없어요오~"
느끼한 악센트를 가진 한국어를 구사하는 히카르도씨를 따라 서둘러 길을 걷는데 내가 아는 서툰 영어로 써진 '관중석(Spectator)'이란 간판을 지나가는것이 아닌가. 나는 혹시 못보셨을까 하는 의문에
"히어~ 스펙테터~"
라고 말했지만 히카르도씨는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로 한번 웃어주고는 보다 빠른 발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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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후 우리가 도착한곳은 일종의 전용관람 박스(Box)였다. 통유리창이 넓게 드리워져있고 의자와 테이블정도가 간소하게 차려진 이곳엔 나와 히카르도씨, 그리고 몇몇 구단관계자들이 전부였다. 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촌스러운 모습으로 어정쩡하게 서있다 히카르도씨가 손목을 잡아끌며 테이블로 안내했다.
"뭐 좀 먹겠어요오~?"
테이블 위엔 자그마한 바구니가 있었고 그 바구니속엔 위스키 한병과 빵, 그리고 바나나 정도가 담겨있었다. 내가 바나나를 하나 주섬주섬 집어들자 히카르도씨는 감탄사를 지르며
"예스!! 역시 바나나는 S.A(사우스 아메리카라고 생각한다)죠! 사람들은 과일은 칠레라고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브라질이야 말로 푸르츠판타스틱!!"
그의 말에 신경쓸새 없이 어느새 내 앞에 놓여져 있던 1개의 바나나뭉치를 먹어치우고있었다. 그렇게 한 5분쯤이 지났을까 히카르도씨가 나를 불렀다.
그가 서있던 넓은 통유리창으로 다가갔을때 나는 숨이 막히는줄 알았다. 엄청난 인원이 구장을 꽉꽉채우고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가 흔히 볼수 있는 규모 그 이상이었다. 과연 이 많은 인원이 어떻게 모였을까라는 의문심을 품게 할 정도의 엄청난 관중수!
"몇명일까요오~? 이 구장의 최대 수용인원은 22만명이지요오~"
"22만명..."
나는 혼잣말로 그 수를 되내이고 있었다. 과연 22만명이란 사람수는 얼마나 많은 인원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미 내 눈앞에서 증명해보이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22만명이란 사람의 수를 직접본적도 없고 볼수 있는 기회도 없었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그때의 그 엄청난 웅장함을 기억한다.
"하지만 현실적인 이 구장의 수용인원은 고작 5천명이랍니다아~ 우리 눈앞에 보이는 저 많은 인원중에 서쪽의 5천명을 제외하곤 모두가 서서 경기를 관람하죠오~. 무려 2시간이나~!"
얄밉게도 어깨에 힘이 들어간 자세로 자랑스럽게 말하는 히카르도씨를 얄미워 할수 없었다. 정말 그의 말처럼 서쪽의 스탠드 아래의 5천명을 제외하곤 모두가 서서 경기를 관람하는것이 아닌가. 나는 한 사람이 2시간동안 서서 축구를 관람하는 일은 가능하다고 믿었지만 22만명이란 인원이 일제히 2시간동안 서서 축구를 관람하는 일은 상상할수 없었다.
"아주 쇼킹한 표정이네요오~ 하하. 여기로 가장 먼저 데리고온 이유를 이제는 알겠죠오~? 축구는 전세계적인 스포츠예요오~. 과연 그 세계의 모든것중에 그 무엇이 22만명을 한곳으로 모을수 있을까요오?"
"만약 있다면 그것은 축구 뿐이예요오~. 전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교황이 죽어도 22만명이 올까요오~? 베이스볼? 바스켓볼? No. No~ 온리 풋볼뿐이죠오~"
그의 말이 맞았다. 과연 무엇이 세상에서 22만명을 한곳에 웅집하게 하는 힘과 파괴력이 있을까. 내가 브라질에서 처음보았던 것은 '축구의 한계는 없다'라는 것이었다. 축구는 한계성이 없다. 사람이 하는것중 한계가 없는것. 그것이 바로 축구였다.
"라스트~. 축구를 스포츠라고들 하지만 No No~~. 축구는 예술이예요오~. 이 경기장에선 골이 터지면 22만명이 기뻐하죠. 더러는 눈물도 흘리구요, 혹은 관중들의 열기에 기절해서 병원에 실려가는 경우도 더러 있답니다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 과연 22만명중 그 누구하나라도 쓰러지게 만들수 있을까요오~?"
히카르도와 함께 했던 첫날의 그 기억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비록 나는 지금 퇴색되고 세월이라는 짐을 등에 지고 히끗히끗한 흰머리로 변해버렸지만, 그때 그 철없던 동양 소년은 분명 마라카낭 경기장의 가장 높은곳에서 축구라는 거대한 예술작품을 바라보고 있었다는것만은 분명하다.
내 기억으론 그 날밤 잠을 못 이뤘던것으로 기억한다. 분명 그때 보았던 경기는 비단 브라질만의 리그였지만 그 기억은 전 세계로 뻗어나가기 충분했다. 브라질에서 떠날때까지 날 괴롭혔던 것은 히카르도씨의 뼈속 깊이 베어드는 몇마디의 충고가 아니라 마라카낭 경기장에서 들었던 22만명의 환호성과 그들이 열광하는 축구의 파라다이스였다.
----------- (2화)에 계속~~ -------------------------------------
그동안 리포트식 자서전만을 쓰다가 요즘 왠지 감회를 받아 스토리식 자서전을 써봅니다.
1화부터 시작해서 당분간은 지금은 감독이 된 한 사람의 옛 시절의 이야기와 축구에 관한 필자의 철학을 스토리에 연계시켜서 밝혀나갈 생각입니다.
워낙 글재주가 없고 긴글이어서 재미없을수는 있겠지만 제 나름대로는 재밌어서 쓰고 있습니다. 굳이 성원을 바라는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리플 하나하나가 저에겐 힘이되고 모든 자서전 필진분들에겐 힘이됩니다.
응원해주세요 ^0^)/
첫댓글 와아아~~~민철옹도 자서전 부활이다아~~~건필건필 ㅇㅇ>
앗 민철형도 쓰네....+_+;; 왜이리 모두들 자서전 쓰느라 바쁜기야!! (넌 언제 쓸꺼니?)
오옷... 멋집니다. 스탕달의 '적과흑' 중학교때 몇번을 읽었는지... 다음편도 기대할께요~
오 요즘 자서전의 돌풍이^^ 민철님 잘읽었습니다 요즘 읽을게 많아서 흥이납니다 ㅎㅎ
아.. 이런 답변이 4개나 달리는 바람에 부담감이 늘어날듯.. 아무튼 밑에 올라오는 자서전들처럼 '재미'나 '웃음'은 적지만 열심히 써볼께요^^;
공들인 묘사와 전개 잘 부탁해요~
ㅋㅋㅋ 민철님 멋진 자서전기대 +_+
ㅜㅜ 기대 많이 많이 할께요 ㅋㅋ
제목부터 포스가 느껴지옵니다 민철님(퍽퍽퍽퍽퍽)
오 민철이형 엄청난 포스!!!! 브라질리안의 nono~ 피식~ 캬캬캬
오 글에서 알수없는 포스가~~우오오~~^^;; 건필하세요오~
캬 역시 민철님 기대대로,, 잘쓰시는군요 건필건필
이야,. 대박소설 또 떴네요 ㅎ 건필하십시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