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아흐 Ruah, 성령바람이 온 땅을 날려 제단이게 합니다(밥 딜런).
아침에 부는 바람이 덥지 않게 느껴졌는데 보니 처서의 아침이었습니다. 더위가 물러가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이 느껴지며 벼가 익어가고 모기가 들어가고 귀뚜라미가 나오는 절기입니다. 기후위기로 지구가 끓는 정도의 굉장한 더위였는데 선선한 기운을 담은 바람이니 처서다운 날입니다. 바람이 일어 돛배가 가고 바람이 일어 풍력발전기가 돌고 바람이 일어 민들레꽃 홀씨들이 공중에 날아갑니다. 바람은 보이지는 않지만 바람의 소임대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여 변화의 바람을 일으킵니다. 히브리 성경에 루아흐 Ruah라는 단어는 성령 Spirit이라는 뜻입니다. 선선한 아침의 바람이 창조주 하느님의 성령의 바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속에 성령이 임재를 느끼게 해 줍니다. 사도들을 두려움에서 해방시킨 그 루아흐 Ruah에 기대고자 합니다.
우리 성당에서는 감사성찬례(미사)를 시작한다고 종을 울리고 유대교도들은 예배를 시작한다고 나팔을 붑니다. 이슬람교에서는 예배를 알리는 것을 목소리로 하는데 이를 “아단 adhan” 이라 합니다. 예배를 알리는 아단이 울려 퍼지면 사탄은 물러나고 도주하면서 사탄은 방귀를 뀌어 아단을 듣지 못하게 합니다. 아단이 끝나면 사탄이 돌아와 유혹을 합니다. 사탄을 물리치기 위한 신도의 방책을 예배 안에 넣은 이슬람교가 새롭게 보입니다. 성공회는 예배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함께 모여서 입당성가를 부릅니다. 예배 시작의 종소리가 나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싸움도 멈추고, 서로 인사를 하지도 않고, 하느님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예배 속으로 들어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앞에 다가가 서 있습니다. 조도일 경우에는 수탉이 잠을 깨우니 “예배가 잠보다 더 좋습니다.”는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종소리로 인하여 큰 분의 일부가 되는 시작에 자신이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러니 사탄이 도망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당에서 모여 입당성가를 부를 때 가능한 목소리를 높여 성가를 부릅니다. "하느님, 저희가 여기에 왔습니다."고 하느님께 알리듯이 말입니다. 그러니 사탄에게 우리 속에 들어올 틈을 주지 않게 됩니다.
뒤에서 바람이 밀고, 앞에는 태양이 얼굴을 비추고, 비가 내려 촉촉한 대지가 되고, 하느님이 나의 손을 잡기를 바랍니다. 내 여정에 하느님은 우주와 자연을 소환하여 나를 양육하십니다. 태양이 내가 갈 길을 비춰주고 얼굴을 따스하게도 하지만 너무 더워 지치게도 합니다. 그리고 비는 시원하게도 하지만 홍수로 모든 것을 가져 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바람은 시원하게도 하지만 소중한 것을 사라지게 불바람이 되기도 합니다. 바람으로 유익과 무익이 겹쳐진다 해도 내가 해야 할 어색한 사과를 해야만 합니다.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수정을 해야 한다면 이제는 해야 합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내려놓고 불가능의 시기에 하느님의 성령인 루아흐 Ruah에 전적인 기대를 하는 것입니다. “+ 전능하신 하느님, 저를 순결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나는 선하고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기를 원합니다. 나는 단지 내 뒤에서 바람에 의해 서두르고 싶지는 않습니다(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서).”
“바람에 날려. Blowin' in the Wind”라는 미국가수 밥 딜런 Bob Dylan(1941.5.24.- 84세)의 노래를 부르는 미국의 반전가요세대의 시위가 시원한 바람으로 생각이 납니다.
How many roads must a man walk down/ Before you call him a man?
How many seas must a white dove sail/Before she sleeps in the sand?
Yes, 'n' how many times must the cannon balls fly/Before they're forever banned?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합니까?/ 그 사람을 남자라고 부르기 전에?
흰 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를 항해해야 할까요?/ 그녀가 모래에서 자기 전에?
응, 대포알은 몇 번이나 날아가야 해?/ 영원히 금지되기 전에요?
친구여, 답은 바람에 휘날리고 있어요./답은 바람에 날린다.
성령의 바람은 우리를 자연과 하나 되게 이끌어 줍니다.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과 친교와 경배와 사도성을 확인하는 미사에서 우주와의 일치를 고도의 질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이를 “세계의 미사. La messe sur le monde(1923)”라는 책에서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 Pierre Teilhard de Chardin(1881-1955) 사제가 영성작품으로 1918년 1차 대전때 참호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테이야르 샤르댕 사제는 몽고의 남부사막에서 미사거행시에 필요한 빵과 제단이 없는 궁핍 속에서 글을 쓴 것입니다. 하느님께 바치는 제물로 우주 찬송가를 작곡했습니다. 신성은 기원과 끝이며, 인간은 물질의 영성화의 중심입니다. 이는 8월 6일 주님의 변모대축일 Transfiguration(루가 9:28-36)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다음 날(1923.8.7.)에 “내가 노새의 등에 올라타 걸을 때, 나는 하루 종일 다른 미사가 없을 때와 마찬가지로 '세상의 미사'를 반복한다.”고 기술합니다.
자비에르 틸에테 Xavier Tilliette 예수회 사제(1921-2018)는 “제단은 온 땅이며, 제물은 "세상의 일과 고통"입니다. 파테나(성반) paten은 노력의 수확을, 성배는 "으깬 과일"의 수액을 운반합니다.”
”하느님이 자신을 말씀하시는 영감받은 책, 성경(1998)“이라는 책을 낸 장미셸 말다메사제는 “미사는 성변화의 관점에서 표현된 봉헌에 중점을 둡니다. 그것은 경배와 친교의 시간입니다. 그것은 친교입니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파송, 즉 '사도직'입니다.”이 비젼은 성체신학의 축과 사제를 그리스도의 행동, 주권자, 세상의 구세주와 연관시키는 신학적 성찰에 기초합니다.
티이야르사제는 "세계"라는 단어는 존재하는 것의 총체성, "그것을 거룩하게 하는 운동에서" 성취되는 총체성을 나타냅니다. 이 성화는 사제의 기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사제의 궁핍은 자연과의 보다 직접적인 접촉에서 진정한 차원을 찾는 성체 기도의 기회입니다. 세상에 드리워진 미사는 "우주의 차원으로 확대된 성체의 신비를 장엄하게 의역한 것입니다. 외베사제는 이 작품을 "시적 힘, 이미지의 힘"을 넘어 각 신자가 거행의 주체가 되는 "성찬례의 전체 신학"을 표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약 40년 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연설할 신자들의 "공동 사제직"을 예표한다고 강조합니다. “물질의 심장. Le Cœur de la matière”이란 제목으로 다시 출간되었습니다.
테이야르사제는 그리스의 알파벳의 마지막 글자인 Omega라는 말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오메카포인트는 우주가 향하고있는 복잡성과 의식의 발전의 궁극적 인 지점을 나타냅니다. 인간의 미래와 인간 현상에 제시된 그의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점점 더 높은 수준의 복잡성과 의식을 향해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오메가 포인트는 이러한 진화의 정점이자 원인이기도 합니다. 즉, 오메가 포인트는 지극히 복잡하고 지극히 의식적인 방식으로 존재하며, 우주와 관련하여 초월적입니다. 모든 것을 끌어들이는 오메가는 니케아신조의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 참 하느님에게서 나신 참 하느님”이라는 점에서 그리스도교의 로고스, 즉, 그리스도를 불러일으킵니다. “인간현상”에서 오메가포인트를 5가지로 설명합니다. 1) 그것은 항상 존재해 왔고, 2) 그것은 개인적이어야 하고(초인간), 3) 우주진화 이전에 존재하고, 4) 그것은 독립적이어야 하고(공간과 시간과 무제한), 5) 그것은 돌이킬 수 없어야 합니다(달성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형상을 지니게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형상을 지니게 하는 “기도는 침묵이 되는 것과 침묵의 존재인 것과 하느님께서 들으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포함됩니다(쇠렌 키에르케고르).” 그렇게 침묵은 종소리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배의 시작은 침묵으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