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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플랑드르의 화가 헤라르트 다비트(1460~1523)는 브뤼헤라는 도시로부터 회의장과 재판정으로 쓰이는 건물을 장식할 그림을 주문받고 B.C. 6세기의 페르시아를 배경으로 한 그림을 내놓았다. 당시 돈을 받고 판결을 내린 시삼네스라는 재판관이 페르시아 왕 캄비세스로부터 끔찍한 처벌을 받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었다.
그림 속에서 처형대 위 결박된 시삼네스는 산 채로 그 피부가 벗겨지고 있다. 살아 있으나 죽느니보다 못한 시삼네스의 고통 그득한 표정과 사형 집행인들의 잔인한 손놀림이 그럴 수 없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캄비세스는 그렇게 벗겨낸 살가죽을 시삼네스가 앉아 있던 의자에 깔게 한 뒤 시삼네스의 아들을 불러서 말한다.
“이제부터 네가 재판관이다. 저 자리에 앉아라. 네 아비의 살가죽 위에서 네가 어떻게 판결할지를 항상 고민하라.”
이게 ‘캄비세스의 재판’이라고 불리는 그림이다.
캄비세스는 왜 그렇게 유달리 끔찍하고 곱절로 고통스러운 방식의 처벌을 사용했을까? 그건 바로 재판관의 부정이라는 범죄가 그만큼 치명적이고 무거운 범죄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였을 거다.
판관(判官)들의 판결은 곧 법으로서 사람들의 일상을 규정하는 힘을 지니는데, 돈이나 사적인 관계나 기타 등등 때문에 공정하지 못한 판결을 내는 것은 그 사회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출처] 뇌물 받은 판사의 최후|작성자 Prel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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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되는 판사 시삼네스 - 헤라르트 다비트
캄비세스 2세의 명령으로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판사 시삼네스 - 헤라르트 다비트
처형된 아버지의 가죽위에 앉아 판사로 임명되는 아들 오타네스, 피터 폴 루벤스 (18세기)
역사학의 아버지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시삼네스는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제국의 부패한 판사였습니다.
뇌물을 받고 부당한 판결을 일삼던 시삼네스는 결국 체포되어 황제 캄비세스 2세에 의해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형벌에 처해집니다.
캄비세스 2세는 벗겨진 그의 가죽을 판사 의자에 씌우게 하고 그의 아들 오타네스를 판사로 임명하여 아버지의 가죽위에 앉게 합니다.
아버지를 교훈으로 삼아 공정한 재판을 집행하라는 뜻입니다.
시삼네스의 이야기는 헤라르트 다비트에 의해 1498년 두 개의 그림으로 그려져 후대의 교훈으로 남게 됩니다.
이후 18세기 루벤스를 비롯한 많은 화가들에 의해서도 그려졌습니다.
법을 공정하게 집행해야 할 판사가 부패하여 사리사욕을 챙기거나 사회에 정의롭지 못한 판결을 내린다면 그 어떤 것보다도 무거운 범죄라는 경종을 울리는 그림입니다.
[출처] 캄비세스의 재판 - 부패하고 타락한 판사의 최후|작성자 달팽이북스
위 자료는 시삼네스가 뇌물을 받고 처형된 판사로 언급되 있으나...반드시 뇌물을 받고 처형된 판사만을 문제삼고 있는게 아니다. 판사가 공정하지 않게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일체의 모든 증거를 배척하고 일방적으로 피고인을 죄인으로 만드는 것도 뇌물을 받는 판사 못지 않게 잘못된 것이다. 임정엽,권성수,김선희 부장판사 셋은 시삼네스 판사의 운명이 될 수도...
첫댓글 판사는 검사가 무모하고 억지스런 기소를 한게 분명하면 그걸 가려내야 할 책무가 있거늘 검사와 짝짜꿍이 되어서 억울한 죄인을 만드는데 공범자가 되다니...그래서 임정엽,권성수,김선희는 시삼네스 판사가 될 운명입니다.
뇌물받은 판사 뿐만 아니라 공정하지 못한 판사 또한 시삼네스의 운명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