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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무(60)
천살성의 개시는 피다(4)
백산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나왔다. 별호하면 정말이지 하고 싶은 말
이 꼬리를 늘고 이어진다. 광혈지옥비 운용 방법을 배우기 위해 열두
개의 쇠구슬을 차고 다닌 바람에 과거엔 다쇠불알이란 별호를 얻었는
데 지금은 귀광두란다.
기가 막혔다. 별호에 있어선 복도 지지리 없다는 생각에 불현듯 맹
렬한 분노가 치솟았다.
"광치야, 한번 정해진 별호는 절대 바뀔 일이 없겠지?"
"당연하지, 별호는 제 입으로 짓는 게 아니니까. 그나저나 대장 너
도 지지리 복도 없다. 난 광(狂)자를 버리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너는
버리면 큰일나니까 말이다."
"이런 죽일 놈들!"
또 다시 저들끼리 노닥거리는 모습에 만자승은 진득한 살기를 쏟아
냈다. 마교와 남천벌 무인들이 숨어 지켜보지만 않는다면, 놈들의 상
태에 상관없이 진작 공격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강자이기에, 북황련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기에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강자는 적을 잡을 때도 정당한 방법을 동원해야만 명예
에 누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쯧쯧! 무식한 놈은 약도 없다고 하더니. 육상이나 모주앙하고 똑
같은 놈일세 그려. 저런 놈들이 어떻게 강호를 접수했나 모르겠네. 하
기야 니네들이 잘나서가 아니라 무림인들이 병신 같아서겠지. 이 멍청
아 50명이나 데려왔으면 이미 정당함하고는 멀어졌는데 뭘 망설이고
자빠졌냐. 등 돌리고 있을 때 칼로 쑤셔버리지. 나 같았으면 벌써 아
작 내버렸겠다."
"개자식, 네놈 주둥이만큼 힘을 쓰기를 바라겠다. 시작하라!"
붉으락푸르락 얼굴이 변한 만자승은 대기하던 부하들을 향해 빽 고
함을 내질렀다. 놈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설련을 잡기 위해 50명을 동원했으니 강호인들의 비웃음은 이미 맡
아 놨다고 봐야한다. 어처구니없게도 혼자만 체면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름이 만자승이라고 하더구나. 지저사령계에서 혈월(血月)이란 이
름을 가진 도(刀)를 하나 얻었다. 아직 시험을 못해봐서 얼마나 좋은
칼인지를 모르겠어."
싱긋 미소를 머금은 백산은 혈월을 뽑아들었다. 슬쩍 내공을 주입하
자 도신 가운데 들어있던 초승달에서 핏빛 광채가 폭발적으로 솟구쳐
나왔다.
"백 공! 개시를 사람 피로 할 겁니까?"
"나는 그래야 할 운명을 타고났다, 구양중. 네 녀석과는 다르다. 왜
냐면?"
혈월을 불끈 틀어쥔 백산의 신형이 전방을 향해 내달렸다. 엉성한
모양새, 마치 다리에 무엇인가가 달려 있는 듯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달려가며 내심 중얼거렸다.
'천살성이기 때문이다.'
"오인합살(五人合殺)!"
백산 전면에 서 있던 도기철의 입에서 날카로운 고함이 터지고 준비
하고 있던 부하들에게서 내공이 물밀 듯 밀려들었다.
일순 장포가 팽팽하게 부풀고 도기철의 검은 암묵색 광채를 폭발적
으로 쏟아냈다.
"잘 들어라! 싸움에 이기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일순 몸을 굴려 눈앞으로 다가온 검강지기를 피하며 백산은 소리쳤
다.
"하나는 무식하게 정면으로 돌진하는 방법이고, 하나는 나처럼 나려
타곤(懶驢打滾)이라는 절정수법으로 몸을 피하는 방법이다!"
재차 방향을 바꾸는 검강지기를 흘낏 쳐다보며 재빨리 도기철 발치
로 데구루루 몸을 굴린다.
"그런 다음 상대의 약점을 찾는 거야. 선두에서 다른 놈의 내공을
받아들이고 있는 놈은 반탄력이 강해서 힘으로 치기는 힘들어. 그럴
땐 뒤에 있는 놈을 먼저 없애는 거다, 이렇게."
백산의 손을 떠난 혈월이 허공을 가르며 도기철 뒤쪽 인물의 허벅지
에 그대로 관통했다.
"크아악!"
"커억!"
"아악!"
일순 처절한 비명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 단 한 명의 허벅지
를 공격했을 뿐인데 도기철을 비롯한 나머지 인물들마저도 피를 토하
며 비명을 내질렀다.
"이게 바로 한번의 칼질로 다섯 놈을 잡는 방법이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백산은 도기철의 목을 틀어쥐고 전면으로 내
달렸다. 허벅지에 혈월을 꼽고 신음하는 자의 턱을 차올리며 벌러덩
넘어가는 놈의 다리에서 혈월을 뽑아든 백산은 도기철의 목을 내팽개
침과 동시에 제자리에서 빙글 돌았다.
일순 붉은 광채가 둥글게 원을 그리고 도기철을 비롯한 네 명의 몸
이 횡으로 잘렸다.
"하여간 대장 저 자식은 미쳤다니까!"
머릿속으로 선명하게 박혀드는 백산의 목소리에 광치는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었다.
물론 백산이 말한 방법은 이미 알고 있다. 내공을 전이하는 자들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바로 내공을 전이 받는 당사자가 아닌 뒤에 있
는 자들이다.
동료에게 내공을 전수해주고 있는 상태에서는 그들은 무방비 상태일
수밖에 없다. 더욱 위험한 일은 내공을 전이 받던 자에게 문제가 생겼
을 때다. 물 흐르듯 나아가던 내공이 갑자기 막히면 역류하게 되는데
자신이 보낸 내공의 두 배 이상의 힘으로 되돌아온다.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러기에 내공전이를 목적으로 한 진은 뒤에 있는 인물의 보호에 최
선을 다한다. 다섯 명이 남아 그들을 보호하는 이유도 그 때문인 것이
다. 그런데 백산은 단 일수만에, 그것도 무인이라면 극도로 꺼리는 나
려타곤이라는 저급한 수와, 자신의 무기를 던져버림으로써 깨트려 버
린 것이었다.
"미친 짓거리는 지금부터야 임마."
광치를 향해 낮게 소리친 백산은 혈월을 든 채로 남는 다섯 명을 향
해 돌진했다.
"막아!"
당황한 척사대원들은 재빨리 뒤쪽으로 물러서며 방어대형을 갖췄다.
그러나 방어대형을 짠 척사대원들의 행동을 비웃기라도 하듯 더욱 거
칠게 달려들었다.
챙!
척사대원과 백산의 혈월이 부딪쳐서 나온 소리가 아니었다. 목을 향
해 다가오는 검을 백산은 왼손을 들어올려 막아버렸다.
강시의 몸으로 싸웠을 때의 행동이 무의식적으로 나오고 만 것이다.
"이것도 괜찮군."
싱긋 미소를 지으며 혈월을 횡으로 그었다. 혈월의 날카로움은 상상
을 초월했다. 목을 긋고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검을 떨어뜨리
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눈동자도 여전히 살아 있었다.
퍼억!
푸악!
정지한 듯 서있는 상대를 움직이던 탄력으로 쳐내자 그때서야 목이
떨어지며 피가 솟구쳤다.
"허억!"
왼쪽에서 공격 기회를 노리던 인물이 해쓱한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눈앞으로 목잘린 동료의 시체가 달려들었던 탓이었다. 얼굴로 쏟아지
는 동료의 피 때문에 일순 시야가 막혔고, 그 순간 가슴을 후벼파는
섬뜩한 기운을 느껴야했다.
우두둑!
손목을 비틀어 거칠게 뽑아낸 혈월을 역수로 틀어쥐었다. 그리고 슬
쩍 자세를 낮추며 뒤쪽으로 힘껏 찔러넣었다.
"끄으윽!"
몸을 일으켜 세우며 혈월을 오른 편으로 그어버렸다. 일순 복부가
절반정도 잘린 무인이 나직한 비명을 지르며 지면으로 털썩 쓰러졌다.
"척사대원들은 물러서라!"
급기야 만자승은 후퇴명령을 내렸다. 산동만씨세가의 정예인 척사대
원들은 상대가 아니었다. 귀광두라는 별호처럼 놈의 몸은 빠르지 않았
다. 하지만 검기(劒氣)가 통하지 않는 몸을 가진 상대를 벨 방법이 없
다. 놈 앞에 있던 척사대원들이 순식간에 당했고, 그의 잔인한 행동
때문에 구양중과 광치를 맡았던 부하들마저 당황하고 있다.
전의상실.
척사대원들의 모습에서 만자승이 느낀 점이었다. 더 이상 싸움을 이
끌어갈 형편이 되지 않는다. 지금상태가 지속된다면 설련을 잡기 위해
나왔던 부하들은 전멸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일었다.
"빌어먹을……."
기다렸다는 듯 물러나는 부하들을 보며 나직한 욕설을 뱉어냈다.
문득 제갈승후의 말이 생각났다. 척사대원들 중, 놈에게 정면으로
달려들어 이길만한 자는 없다고 하였다. 그때는 그의 말을 비웃고 말
았다. 그랬던 것이 지금의 결과를 불러오고 말았다.
"기억하겠다 귀광두! 반드시……. 돌아간다!"
많은 부하를 잃고 돌아간다는 게 치욕적이긴 했지만 지금으로선 방
법이 없다. 백산을 뚫어져라 노려보던 만자승은 먼저 몸을 날려 자리
를 떴다.
비단 놀란 사람은 만자승뿐만이 아니었다. 구양중을 비롯한 광치 그
리고 설련마저도 멍한 얼굴로 백산을 쳐다보았다.
무공을 완전하게 회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얼마 전 강시의 몸일
때처럼 싸웠다. 단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좀더 빨라진 움직임과 그의
손에 혈월이라는 도가 들렸다는 사실뿐이다.
단지 혈월이라는 도를 들었을 뿐인데 그는 절대적인 전사로 변했다.
"오빠! 몸 좀 조심해서 굴리면 안 돼? 날파리 몇 명 잡는데 그게 뭐
야. 그리고 싸울 때도 좀 품위 있게 싸워. 꼭 천자문밖에 못 익힌 표
를 내야겠어?"
모두들 백산을 보며 침묵하는 가운데 먼저 말문을 튼 사람은 주하연
이었다.
"이런 걸 일벌백계(一罰百戒)라고 하는 거야. 우리도 그만 갈까? 오
랜만에 사람 먹는 음식 좀 먹어보자."
뜻 모를 이야기를 남기며 백산은 몸을 돌렸다.
"맞다, 우린 6개월 간 풀만 먹고살았지."
샐쭉 미소를 지은 주하연이 가볍게 바닥을 찼다. 일순 공간을 단축
한 그녀의 신형은 백산의 등에 찰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었다.
"허! 딱정벌레 너도 괴물이구나."
잔상을 남길 정도로 빠른 주하연의 경공에 광치는 너털웃음을 터뜨
렸다. 이제 16살 소녀의 몸놀림은 자신을 능가했다.
그러나 그의 놀라움은 시작에 불과했다. 지난 6개월 간 일행이 살았
던 초막에 일순 서리가 낀 것처럼 허옇게 변하더니 이내 조각조각 부
서져 내리는 것이었다.
"일벌백계(一罰百戒)의 연장이니까 놀라지 말아요, 곰 아저씨."
입을 쩍 벌린 채 초막을 바라보는 일행을 향해 주하연은 소리를 질
렀다. 하지만 그녀 또한 놀라는 중이었다.
초막을 향해 빙천수라마공을 시전하면서도 가능하리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랬는데 저런 엄청난 위력을 보일 줄이야.
"한때 그 무공은 고금오천무에 들었던 무공이다. 별반 이상할 것도
없다."
"그래도 넘 심하네. 앞으로는 사용할 일 없을 거야. 차가운 음식을
만들 땐 제외하곤."
"맞아, 그 무공은 여름엔 최고야. 시원한 얼음물을 언제나 먹을 수
있거든."
"뭐라는 거야 저 괴물들은?"
백산을 뒤따르던 광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작은 집 한 채
를 통째로 얼려버리는 가공할 무공으로 얼음물을 만들어 먹을 생각을
하다니.
머릿속이 어떻게 된 거 아닌가 싶었다.
"형님, 시원한 얼음물만 있는 게 아닙니다. 술도 시원하게 먹을 있
겠구먼요."
"술? 그거 아주 좋은 방법일세."
술이란 말에 광치는 헤벌쭉 웃음을 흘렸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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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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