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태왕의 최대 적수이자 후연 모용씨 왕조의 마지막 군주인 모용희
모용희는 광개토태왕의 고구려와 전쟁하다 연전연패로 국력의 소모를 촉진하고
내부적인 불만을 야기하게 되어 한인 풍발의 쿠데타로 살해당하는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게 되었지요
모용희 살해 쿠데타를 주도한 풍발은 다른 모용씨 왕족을 내세우지 않고 타국 출신인 고구려계 고운을 군주로
추대하여여 몇십년간 이어온 모용씨 왕조를 단절 시킨 것이지요
그러나 풍발의 모용희 살해 쿠데타에 의문점들이 여러 있는데 쿠데타 당시 풍발은 수배령이 떨어진 도망자 신세에 불과했던 터라
정상적으로 쿠데타를 일으킬 군대를 거느리지 못한 상태이고 용성에 비밀리에 침투하여 모용희가 황후 부씨 장례로 성밖에 나간 틈을 타서 좌위장군 장흥을 포섭하여 쿠데타를 일으켜서 모용희의 행차로 허술해진 궁궐을 쉽게 장악했다고 하는데
문제는 풍발이 회유한 좌위장군 장흥의 병력이 과연 쿠데타 성공에 도움이 될만한 병력이었는지 의문이 들수밖에 없지요
상식적으로 황제 모용희 같은 최고 권력자가 지방이나 궁궐 밖 성밖으로 행차할때 수도의 대다수 병력들이 거기로 집중되는게 다반사라 장흥이 거느리는 병력 대다수가 모용희 행차에 차출안될 가능성이 있을까요
그리고 장흥의 쿠데타군이 궁궐과 도성을 장악한다 해도 문제는 병력면에서 모용희 행차군대에 비해 열세일것 같아서
모용희의 공격을 막아낼수 있는 수준인가요 모용희가 군대를 동원하여 진압에 나설게 뻔할테고 설령 성을 장악한 반란군의
전략적 위치 때문에 모용희 군대가 단기적으로 함락시키지 못한다 해도 모용희는 지방의 군대들을 동원 소집하여 성안의 반란군들을 격파시키고도 남음이 있을텐데
그러나 사료에서는 모용희가 용성 첫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용등원으로 달아나서 은신했다고 나와 있어서
풍발 반란군보다 유치한 위치에 서 있는 모용희가 그렇게 첫번째 공성이 하루만에 실패했다고 몇시간만에 용등원이라는 일개 정원으로 후퇴하여 숨는다는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가는 일입니다 첫번째 공성이 실패하여 지방군대로 차출 동원하여
연속적으로 공격하던 모습을 보여야 정상인데 모용희는 그렇게 하지 않는등 자신의 운명이 걸린 반란 진압을 그렇게 포기하였지요
모용희의 용성 공격전투가 하루만에 쉽게 철수할 정도로 실패한건 혹시 용성 밖 모용희 군대 배후에 성안의 풍발 군대를 지지하여 모용희 군을 공원하는 반란지원군이 있었음을 의미하는게 아닐까요
성밖의 모용희 군대를 배후에서 풍발 반란세력을 지지하는 제3자의 군대가 나타나서 공격한다는 것을 가정한다면 그 제3자 군이 후연 내부의 반란 지지하는 지역의 군대인지 아니면 후연 밖 적국이었던 고구려 군대인지 둘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성밖 모용희군을 배후 공격한 풍발 지지 군대가 후연 내부의 친풍발 지역의 군대라면 사료에서 못 나올리가 없는 법이지요
풍씨 일가의 집권 정당성을 더욱 띄워주기에 아주 좋은 내용인데 그걸 숨길리가 있겠나요 그런데도 모용희군을 공격한 제3군이 사료에 안나오는건 고구려 같은 후연 외부 세력일 가능성이 높았기에 그래서 안나오는 법이지요
광개토대왕비의 영락 17년에 기록된 정체불명의 정벌 대상이 모용희 제거 쿠데타와 연결한다면
그럴 개연성이 높아지는 법이니까요 영락 17년 전쟁 기록은 대왕비의 전공 기록에서
이상하게 적의 정체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기록 내용이니까요
다른 대왕비 전공 기록들은 적의 정체를 확실하게 밝힌데 반해
영락 17년은 기록은 그러지 못하니까요
물론 미흡한 해독의 문제가 될수 있겠지만
그리고 사료에서 전해지지 않는 것도 풍씨 일가가 북연멸망 후에 고구려의 지원으로 자신들이 집권했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은폐해서 제대로 잘 전해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 법이고
그리고 모용희의 최후에 사료 기록에서는 모용희는 미복 차림으로 용등원의 숲속에 숨었다가 정체불명의 사람들에 체포되어
고운에게 압송돼 처형당했다고 기술되었있는데 그런데 군주인 모용희를 체포한 사람들의 신분성명이 제대로 기록되지 않고
정체불명으로 표현하는 등 모용희 최후 과정의 중요한 부분들이 생략되어 기술되었다는 점이지요 군주의 체포한 사람을
확실하게 기술하는 군주 국가의 기록 특성상 이런 중요한점이 누락된다는게 말이 안되는 법이고
모용희를 체포한 사람들의 정체가 누구인지 간에 고구려의 연관 가능성도 있는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