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再生된 붉은 도마뱀 꼬리
통일부장관 이종석의 퇴장과 이재정의 등장
[2007-01-08 16:22:09]
- 이주천 원광대 교수
햇볕정책의 전도사로서 퍼주기 대북원조와 대북유화정책으로 일관하여
야당과 부수우익단체의 강력한 항의를 받았던 이종석 통일부장관이 드디어 사임의사를 밝혔을 때,
보수우익단체들은 환호했었다.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애국단체들의 성명은 벌써 노정권 초기부터 이어졌다.
왜냐하면 그가 NSC의 사무차장과 통일부장관으로 재임하면서 행했던 각종 친북발언, 친북정책에
국민들의 엄청난 반발과 저항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통일부장관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남북한의 관계개선과 장기적으로 대한민국의 통일정책을 수립, 집행하는
막중한 권한을 가진 자리이다.
그런데, 소위 민간정부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면서,
통일부 장관은 형식적으로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김정일의 落點을 받은 인물이어야 장관직에 오를 수 있고
임기도 長壽할 수 있는 해괴한 전통이 수립되고 말았다.
김정일의 비위에 거슬리거나 분노를 산 남한의 통일부장관은
도중에 장관직을 사임해야 할 처지에 몰린 경우도 있었다.
김대중 정권시절 강인덕 장관(1998,3-1999.5)은
김정일의 미움을 사서 중도에 사임하는 곤욕을 치렸다.
그리서 역대 통일부 장관은 김정일의 대변인 노릇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것은 대한민국이 바야흐로 김정일의 인질이 되었음을 反證하는 좋은 사례이다.
II
이종석이야말로, 김정일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고 김정일의 수령독재체제를 지원하는
각종 친북유화정책을 수행했던 대표적인 친북 인물이다.
남파간첩으로 붙잡혀 전향하였지만
위장전향자로 의혹을 산 김남식이 운영한 ‘독립문써클’ 회원이던 이종석은
성균관대학(정외과)에서 송두율의 내재적 접근법을 활용하여 북
한관계 석·박사 학위논문을 써서 학계와 언론계의 주목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당시에 얻기 힘든 북한자료 原典을 입수하여 인용했기 때문이다.
대학에 직장을 구하지 못한 이종석은
세종연구소 이사장 임동원의 도움으로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취직했다.
40대 초반의 젊은 시절 이종석은 KBS <토요심야토론>에서
아버지뻘인 김동길 교수와 베테랑 대북전문가 남주홍교수에 용감하게 맛서
“북한은 그들의 사고방식에서 이해를 해야 한다”고 송두율식 친북논리로 강변하면서
간접적으로 김정일 체제를 옹호하면서 친북논리를 교묘하게 전파하는 좌파논객으로 방송에 데뷔하면서 자주 얼굴을 내밀었다.
국민들은 처음에는 젊은 이종석이 누구인지 몰랐으나,
북한문제가 터질 때 마다 방송에 북한의 입장을 그럴듯하게 토론자로 너무나 자주 나오니까
弱者에게 동정심 많고 情에 약한 국민들에게 그의 주장이 신선하게도 느껴졌으며
언제부터인가 이종석은 북한전문가로 각인(刻印)되어 있었다.
특히 젊은 층은 이종석의 친북논리를 여과없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했었다.
반복(反復)과 세뇌(洗腦)의 힘은 그토록 무섭고, 방송매체의 힘은 그토록 크다.
그래서 노무현은 온갖 반대를 아랑곳 하지 않고
KBS 방송사장에 정연주를 그토록 연임시켜려고 했나보다!!!
어쨌든 임동원의 후원으로 큰 이종석은 김대중이 가장 아끼는 인물 중에 속했다.
NSC 사무차장에 부임이후 이종석은
이라크 파병과 대북문제를 둘러싼 한미공조를 둘러싸고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과 사사건건 충돌하여 결국 윤장관이 사임하는 해프닝이 벌어졌으며,
휴전선에 있었던 대북확성기를 철거하도록 지시했으며,
군장성급 강연회에서 북한에 적개심을 고취하지 말도록 하고
북한을 主敵으로 대하지 말도록 강요하여 군장교들의 반발을 샀으며,
유엔에서 북한인권문제에 한국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지나치게 미국이나 일본과 긴밀하여 공조하여 북한 김정일 체제를 압박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PSI의 참여나 한미합동군사훈련도 반대, 심지어 작계5029중단 등
긴밀한 한미동맹관계가 마찰, 균열하도록 온갖 행정 조치를 취했던 인물이다.
또 그는 통일부장관 취임이후
북한이나 금강산을 방문하는 친북단체에게 국가예산으로 후원하는 등
각종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2006년 7월 초 북한 김정일의 미사일 발사와 10월 핵실험 강행으로
한국사회에서 안보불안감이 고조되고
그동안 햇볕정책에 대한 회의와 반발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국민 정서가 우경화되자,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승계한 이종석의 대북유화정책이 코너에 몰리게 되었다.
이종석이 김정일에게 더 퍼주고 싶어도 악화될 대로 악화된 국민여론이
이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게 되었다.
8년동안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막대한 원조로 북한을 지원했으나
북한으로부터 돌아온 것은 국군포로의 귀환도 아니고
김정일의 감사연하장 ‘Thank You’ 카드도 받은 것도 아니고,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이었다.
국민들은 배신감에 온 몸에 치를 떨면서 마치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되고 말았다.
이것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어찌 보면 친북좌파들의 本性과 正體를 제대로 간파하지 모르고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선택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自業自得이라고 할 수 있다.
III
이종석이 사임의사를 밝혔을 때, 당연히 후임자가 누구인가에 세인의 관심이 쏠렸다.
그동안 길거리에서 신문광고 난에서 이종석의 퇴진운동을 벌렸던 보수우익의 환호는 잠시였다.
노무현은 이종석보다도 더 지독한 친북행각으로 명성을 날린
성공회 사제 골수좌익 이재정을 임명하여 국민적 기대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이것은 5.31선거이후에 나타난 여론과 국민들의 정서를 아예 무시한
좌편향 코드 인사라고 볼 수 있다.
이재정은 누구인가?
이재정은 1988년부터 2000년까지 성공회신학교를
성공회신학대학, 성공회대학으로 성장시키면서,
교장, 학장, 총장을 역임하면서 친북좌파 인사들을 대학의 교수로 임명하여
성공회대학을 친북좌파 논리의 産室로 만든 장본인이다.
총장을 그만둔 뒤에는 아예 정치판에 뛰어들어 노무현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
2002년 대선때는 한화그룹으로부터 10억원의 채권을 정치자금으로 전달받아
2심에서 벌금형으로 구속된 적도 있었다.
성공회대학의 이념은 평등과 관용에 기초한 기독교 사회주의를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신임교수 임용시 학생운동이나 투옥경력은 결격사항이 아니라 우대사항이다.
대표적인 예로, 1989년 이재정은 성공회신학교 학장이 되자마자
신영복(申榮福)을 교수로 특채하였다.
신영복이 누구인가?
그는 1968년 통일혁명당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20형을 받고 출소한 사상범인데,
어찌된 일인지 출소 1년뒤 하루아침에 성공회신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되었다.
이재정은 2006년 5월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신영복 교수 채용에 대해서
“죄 없는 사람이 20년 감옥에 있다 나왔는데 감옥에 있다 나왔는데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주장했다.
통혁당은 공산혁명을 목표로 하여
중앙당인 북한의 조선노동당의 지령을 받아서 건설된 남한내 지하당으로서
살아남은 최고 우두머리가 신영복이고 그 하부선이 박성준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재정은 신영복이 죄 없는 사람이라고 단정하는가?
신영복은 감옥에서 서예를 배워서 독특한 필체를 창안하였는데,
두산에서 새로운 소주 ‘처음처럼’을 개발하여 신영복의 書體를 받았다.
또 이재정은 역시 통혁당사건으로 15년형을 선구받고 1981년에 풀려난
국무총리 한명숙의 남편 朴聖俊을 2001년부터 교수로 임명하였다.
박성준은 신영복에게 포섭된 인물로서 서울대 상대에 재학중일 때
크리스찬 아카데미라는 지하써클을 운영하면서
이대를 다니던 한명숙을 포섭하는 등 반체제운동을 지도하였으며
최근에는 주한미군의 평택으로의 이전 반대를 배후에서 조종하여 물의를 빚은 인물이다.
신용복과 박성준이 사상 전향을 확실히 했는가에 대해서는 세간의 의혹이 많다.
신용복은 자신을 좌파라고 인정했으며,
박성준은 자신을 철저한 反美反戰 平和主義者로 자처하고 있다.
그들의 강의내용이나 언론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잘 드러나고 있다.
성공회대학의 교수들은 좌파가 대부분이다.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에서 성공회대 교수 70여명중 50명이 서명했으며,
북한공작원으로 국정원이 고발한 송두율의 석방과
이적단체로 법원에서 판결된 한총련의 합법화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재정은 친북좌파인사들의 자식들을 대학에 특채로 입학을 허용하면서,
친북좌파의 거대한 가족공동체, 敎育聖地로 만들어 온
이종석보다 영향력이 큰 친북좌파의 거물급 인사이다.
이재정은 국회청문회에서 이미 자신의 親北史觀을 여지없이 드러내었다.
“김일성의 남침 규정은 부적절하다”는 망언을 쏟아 부었으며,
더 나아가 김일성은 역사가 평가할 것이며
북한의 인권유린도 명확한 근거가 없다는 친북자세를 견지했다.
이재정 통일부장관은 새해 1월 2일 시무식에서
‘북한 빈곤의 남한 해결론’을 제기하면서 정초부터 파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 장관은 “우리가 경제 10위 국가로서 북한의 빈곤문제에 일정한 책임을 갖고
한반도 빈곤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면서,
“북 핵실험도 빈곤구조의 한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궤변에 불과하다.
북한의 빈곤은 북한 주민들이 어쩔 수없이 굶어 죽은 것이 아니라,
김정일이 개혁, 개방을 거절하면서
핵개발과 대량살상 무기개발, 무력증강으로 막대한 국가예산을 사용하여
주민들을 의도적으로 굶겨 죽인 것이다.
선군정치의 핵심은 주민이 굶어 죽어도 군사력을 강화시키겠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북한 주민들에게 거주 이전의 자유까지 박탈하면서
북한 전체를 거대한 죽음의 수용소로 만들었다.
그런데 어찌 남한이 북한의 빈곤에 책임을 져야하나?
이재정의 발언은 성직자출신 정치인답지 않게 다분히 정략적인 의도가 있다.
첫 번째 의도로서, 남한의 대북원조를 재개하여 김정일 체제에 숨통이 트게 하는 한편,
인푸라나 물류지원을 구축하는 막대한 북한판 마셜플랜을 감행하여
차기 정권이 들어서도 그 기조를 바꾸지 못하도록 하려는 정책적 의도를 가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단의 지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벌써부터 이재정은 김정일 체제를 도와주지 못해서 안달이다.
두 번째 의도로서, 김정일에게 남한의 대규모 지원사업이라는 화끈한 당근을 주어서
남북정상회담으로 유인하여 대선국면에서 여당으로 하여금 주도권을 탈환하려는 것이다.
이 장관은 동교동을 방문하여 자신에게 정치입문의 길을 열어준 김대중을 만나
남북정상회담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런데, 이 장관의 발언에는 김정일의 북핵 보유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이 수립되어 있지 않다는데 대북유화정책의 문제점이 있다.
결국 이재정은 이종석처럼 자신이 북한 김정일의 충실한 대변인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말았다.
IV
노무현은 이종석의 햇볕정책이 실패하였기에 그 책임을 지고 물러났음에도 불구하고
햇볕정책을 전반적으로 수정하는 인물을 채택한 것이 아니라
제2의 이종석, 아니 그보다 더한 친북인사를 통일부장관으로 기용하였다.
권투체급으로 볼 때,
이종석이 밴텀급이라면 이재정은 미들급 정도가 되는 중량감이 있는 인물이다.
이것은 민심을 거스르는 일종의 오기(傲氣)이며 권력자의 만용(蠻勇)이라고 할 수 있다.
정상적인 가정교육에서 태어나서 정상적인 고등교육을 받고 난 뒤
정상적인 국가관과 올바른 역사관을 지닌 지도자라면
이런 식으로 국가운영을 하지는 못할 것인데, 참으로 어이가 없다.
그렇다면 보수우익은 이종석의 퇴진을 환호하면서 축배를 들기도 전에,
그보다 더 지독한 친북좌파 이재정의 통일부 장관 임명을 바라보면서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가?
첫 번째 교훈은 노무현의 감추어진 친북사상은
이종석, 이재정과 사상에서 코드가 맞다는 점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은 친북좌파의 꼭두각시이며 도구(道具)일 뿐이다.
이제 우익애국세력들은 노대통령이 남은 임기동안
반성을 해서 국정을 잘 이끌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는 일찍 포기하고
차후 대응책을 논의해야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 교훈은 친북좌경인사 한 두 인물을 교체한다고 해서
남한사회에서 친북좌파의 완전한 청산이나 정리가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대한민국은 자신이 암에 걸린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
말기 증상을 보이고 있으므로 몸 안의 특정부위의 암세포를 수술을 한다고 해도
이미 온몸에 퍼진 암세포를 일거에 제거하기는 불가능하다.
다른 방안을 찾아야할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마치 말기증상을 보이는 암환자와 같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몸속의 암세포처럼 친북좌익들을 그냥 방치해 두면,
대한민국은 결국 침몰하게 될 것이다(赤化統一).
빨간 도마뱀을 연상해보라!
빨간 도마뱀은 꼬리가 잘려도 다시 꼬리가 나온다.
당연히 새로 나온 꼬리는 빨강색이지 파랑색이나 흰색이 나올 수 없다.
몸통이 빨강색이기 때문이다. 도마뱀은 머리나 몸통을 자르지 않으면 결코 죽지 않는다.
즉 한두 친북인사들이 장차관직에서 물러나도,
그들의 대체세력, 代打 요원들은 항시 발령을 기다리면서 대기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과거 반세기동안 북한의 대남공작이 집요하게 진행되면서
각종 친북 정치단체나 좌경 시민단체가 형성되었으며, 친북좌파들의 인재풀이라고 할까,
人脈이 두터운 층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한 두번의 短期 戰鬪를 통해서
이를 일거에 청산내지 정리한다는 점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친북좌파의 문제는 쉽게 해결이 안된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보수우익과 애국단체들은 이점을 심각하게 고려하면서
장기적 전망과 전략을 가지고 애국운동을 해야 할 것을 부탁하는 바이다.
이주천 원광대 교수
첫댓글 이주천 교수님의 글 탐독하고 갑니다. 국민들이 이런 사실을 알아야 하는데 지금 광주에서는 경제적인 문제로만 현 정부를 비판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광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