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속의 불꽃
백사장에서 땅따먹기를 하면서 떠드는 아이들 머리 위로 하루해가 지나 서쪽으로 지듯이,
각종 이슈로 떠들썩한 인간 세계 위에 황혼을 뿌리며 겨울 해가 지고 있다.
다시금 세모의 문턱에서 우리는 성탄절을 맞고 연말을 맞는다.
오래 전 성탄절이 돌아오면 거리엔 트리 장식 사이로 캐럴이 들려오고
사람들 마음엔 입김처럼 따뜻한 기쁨과 희망이 내리곤 했었다.
한 장의 카드나,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저 들 밖에 한 밤중에” “기쁘다 구주 오셨네”
“꿈속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등의 성탄송은 얼마나 우리의 감성에 공명했었던가?
지금은 “성탄절이 무슨 날이지?”라고 아이들에게 물어도 대답하지 못하고,
빵 없는 빵집처럼 성탄절 개념에선 예수님의 흔적이 사라졌다. 성탄절이 인간의 유흥을 즐기는 날인 줄 아는가?
그만큼 이 시대는 비어있다는 뜻이고, 또 그만큼 이 시대가 불행하다는 말이다.
빵집에 빵이 없다면 그 빵집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굶주리고 있다는 말이다.
얼마 전 온 세상이 폭설의 세례를 받았다. 기억하시는가, 아니면 본 적이 있으신가?
“닥터 지바고”라는 영화에서 나타나는 광대한 설원 우랄 대평원을. 그 무한한 흰색, 그 무한한 정적, 그 무한한 슬픔을.
눈 덮인 설원에 나가본 적이 있으신가? 군대에서 혹한기 훈련을 받을 때
사방 천지에 뿌려진 두터운 눈 속에서 얼어들어오는 몸을 간신이 추스르면서 행군을 하고 텐트를 치던 일이 기억난다.
그때 한 줄기의 모닥불, 내 몸을 감싸줄 한 아름의 온기를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워했던가?
그러다가 밤이 되어 얼어버린 군화에서 언 발을 꺼내 눈밭에 설치한 텐트 속에 몸을 누일 때
텐트 안의 그 미약한 온기마저 고맙지 않았던가? 설원은 춥다.
이 세상은 밤에도 네온이 반짝이고 그 아래를 사람들은 왁자지껄 지나가지만 영혼은 겨울이다.
아버지의 대문 밖에서 이 세상은 죄악에 얼어붙어 있고 인간은 동상 걸린 영혼으로 아버지의 품을 그리워하는 나그네이다.
한 순간의 작은 즐거움이 인간의 아픔을 잊게 하는 마취제가 되곤 하지만
인간은 곧바로 강보가 벗겨져 떨고 있는 자기 실체와 대면해야 한다.
그러나 보라. 저 들 밖 한 밤중에 고뇌에 젖어있는 목동들의 귀에 환희의 소식이 들렸다.
그것은 눈밭의 불꽃이었다.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2:10)
이 세상에 군림하는 죽음의 힘을 뚫고 내려온 생명의 소식이 성탄절이다.
버려진 냉기 속에 얼어붙은 세상에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고 찾아온 하늘의 메시지가 성탄절이다.
냉혹한 허무의 거적을 뒤집어쓰고 파멸로 가는 인간에게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안의 영생을 선물하신 사건이 성탄절이다.
그래서 이제는 믿음이 의심을 대신하고, 희망이 절망을 대신하며,
사랑이 우리의 더러운 이기심을 대신하게 해주신 날이 성탄절이었던 것이다.
또 그래서 이 보잘것없는 인간의 체온은 따뜻해지고
우리 앞에는 저 영원으로 이어진 생명의 무지개다리가 설치된 날이 성탄절인 것이다.
그것은 얼음 속의 불꽃이다.
2012. 12. 16
이 호 혁
첫댓글 그리스도인에게는 12월25일이 성탄절이 아니며 그것은 세상의 경축일에 불과하며, 날마다 감사해야하고 날마다 예수님께 나아가야 하는 성도는 항상 성탄의 기쁨속에 살아야 할것이다. 그래서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날이 기록되어 있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