壬 丙 戊 癸
辰 午 午 巳
庚辛壬癸甲乙丙丁
戌亥子丑寅卯辰巳
양인격. 양인격은 반드시 살성을 보아야 상격이 된다(상격의 첫 조건을 갖춘다...)
살성이 약하면 살을 보좌하는 운으로 흘러야 좋다.
허나... 이 사주는 정사, 병진, 을묘, 갑인 무려 40년을 역방향으로 흐른다...
이 사주는 현대 명리학의 태두가 된 임철초라는 중국 명리학자의 사주이다.
다음은 본인이 자신의 사주를 자평하고 비정한 운명을 받아들이는 내용이다(번역문은 다른 책에서 인용하였습니다)
此任鐵樵自造. 亦長夏天, 與前造只換一丑字, 天淵之隔矣. 夫丑乃北方濕土, 能晦丙火之烈, 能收午火之焰, 又能蓄水藏金. 巳乃南方之旺火, 癸壬絶地, 杯水輿薪 喜其混也, 不喜其淸也. 彼卽戊癸合而不化, 此卽戊癸合而必化, 不但不能助殺, 抑且化火爲劫, 反助陽刃猖狂, 巳中庚金, 無從引助, 壬水雖通根身庫, 總之無金滋助, 淸枯之象, 兼之 運走四十載木火, 生助劫印之地. 所以土不能繼父志以成名, 下不能守田園而創業, 骨肉六親直同畵餠, 半生事業, 亦似浮運, 至卯運, 壬水絶地, 陽刃逢生, 遭骨肉之變, 以致傾家蕩産. 猶憶未學命時, 請人推算, 一味虛褒, 以爲名利自如, 後竟一毫不驗, 豈不痛哉. 且予賦性偏拙, 喜誠實不喜虛浮, 無諂態, 多傲慢 交遊往來, 每落落難合, 所凜凜者, 吾祖若父, 忠厚之訓, 不敢失墜耳. 先嚴逝後, 家業凋零, 潛心學命, 爲糊口之計. 夫六尺之軀, 非無遠圖之志, 徒以末技見哂, 自思命運不齊, 無益于事, 所以涸轍之鮒, 僅邀升斗之水, 限于地, 困于時, 嗟乎, 莫非命也. 順受其正云爾.
“이 사주는 임철초 자신의 사주이다. 또한 한 여름에 나서 앞 사주와 더불어 다만 丑의 한 글자만 바뀌었으나 천지의 차이가 있으니, 대저 丑은 北方의 습토여서 능히 丙火의 열기를 흡수하고 午火의 불꽃도 거둬들이며 또한 물을 저장하고 금도 저장하는데, 巳火는 이와 달라서 남방의 왕성한 불이니 계수가 절지에 임하여 한잔의 물로 짚 수레에 불을 끄는 셈이니 오히려 혼잡 된 것이 좋다고 해야 할 모양이고, 청한 것은 반가워하지 않는 형상이다.
저 사람은 戊癸가 합이 되어도 化하지 않으나 이 사주는 무계합이 化火가 되는 형상이니 다만 살을 돕기가 불가능 할 뿐만 아니라 또한 불로 화해서 양인을 도와서 도리어 공격을 하고 있는 꼴이다.
巳火 속의 庚金은 이끌어 낼 방법이 없고, 壬水는 비록 身庫에 통근을 했으나 한마디로 金의 도움이 없는 꼴이니 청고(淸枯)한 형상이다. 겸해서 운이 40여 년을 木火로 흐르니 비겁들을 생조하는 운이니 그래서 위로는 부친의 뜻을 이어서 이름을 이루지도 못했고, 아래로는 전답을 지켜서 창업을 하기도 불가능했다. 부모형제는 바로 그림의 떡과 같았고 반평생 한 일은 또한 뜬 구름이 되었다. 卯운에는 壬水가 절지에 임하고 양인은 생조를 받으니 골육에 변고가 있었으며 그로 인해서 가세가 기울고 재산은 탕진되었는데,
가만히 생각 해보면 예전에 명리학을 배우기 전에 어떤 사람에게 감정을 부탁했는데, 모두 좋다고 하면서 명예와 재물이 마음대로 될 것이라고 했는데, 후에 살아보니까 끝까지 하나도 맞은 것이 없었으니 어찌 통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내 성질이 치우치게 졸열하여 진실한 것은 좋아하고 허망한 것은 싫어하는 성격이며 아첨하는 짓도 하지 못하고 오만함이 많고 사람과 사교적인 면도 많다고 했는데, 매양 용납이 되지 않았다.(落落-맞지 않았다는 의미인 듯)
그래도 꿋꿋하게 버틴 것은 내 할아버지와 부친의 충효에 대한 가르침으로 인해서였는데, 감히 실추시킬 수가 없었던 것이다. 먼저 부친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가세는 갑자기 시들게 되고 나서 마음을 몰두해서 명리학을 배우게 되었고, 그래서 호구지책으로 삼을 계획을 했는데, 대저 여섯 자의 몸으로 원대한 뜻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마침내 이렇게 잔재주가 우습게 되었으니 스스로 생각해보면 명리학이 맞지 않는다면 무슨 일에 도움이 될까 싶다. 수래 바퀴 자국에 있는 붕어가 우선 당장 먹을 한 되의 물이 필요한 것처럼, 땅을 한탄하고 시절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한탄하지만, 참 기가 막힌 일이 아닌가. 팔자의 탓이 아니라고 못하겠으니 순순히 그것을 그대로 받는 것이 아니겠느냔 말이다.”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