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가 멸망하자 당나라가 안동도호부를설치하여 이를 지키게 하였다.그러나,중국에서 멀리 떨어져서 다스리기가 어려워 많은 고구려인들을 양자강과 회수(淮水)로 이주시킨 결과,그곳은 빈 땅이 되어 벼렸다.여기서 발해가 점차 새력을 키워수백 년을 유지하다가 거란에게 멸망당하였다.
무릇 숙신 이후로 물길(勿吉)이라 불리기도 하였고,말갈이라 불리기도 하였으며,발해라 불리기도 하였으나,그 부락의 흥성망쇄를 논할 만한 자료는 충분하지 않다.그렇지만,사나운 우두머리들이 체력과 호기를 믿고 산림 속에 집결하여 서로 다투어 빼앗으며 방자히 뛰어 돌아다닌 사실은 충분히 생각해낼 수 있으므로,그들이 얻거나 잃은 자취와 영토의 변천 및 산천의 지세에 대해선느 국가의 큰 일을 꾀하는 사람들이 마짱히 해아려 밝혀야 할 것이다.
그런데,가탐이 징,ㄴ 군국지는 소략하여 제대로 갖추어지지가 않았고,탈탈이 지은 요사도 오류가 많고,금사는 상세하지만 산 이름과 물 이름이 애매하여 근거로 삼기가 어렵다.혜보가 본디 지리학에 밝아서 그가 인용하고 고증한 것이 모두 정연하고사리에 맞으니,남해부를 함흥에 비정하고 책성무를 경성에 비정한 것이 그런 예이다.다만,압록부가 강게에서 동북쪽으로 2백 리 떨어진 압록강 북쪽에 있엇다고 하였는데,내가 압록부 관할에 있던 신주,환주 등을 살펴보니,압록강 남쪽에 있었지 강 북쪽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공께서 정력을 쏟아 고증하고 연구하여 이 책을 지은 것은,본디 신기한 것을 좋아하는 성정에서 비롯된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자 한것은 아니었다.그렇지만,사람들이 자세히 검토하여 국가를 세워 운영해갔던 뜻을 이해가게 도니다면,이 세상을 다스리는 정책에 도움이 되는 것이 적지 않을 터인데,이를 알아주는 사람이 극히 적어 함부로 버려지게 되니,실로 애석한 일이다.
1.국립중앙도서관 필사본에는 성해응의 서문이 없어서,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오성사,영인본)외집(外執) 제 1의 179쪽에 실려 있는 것을 새로 추가하였다.
2.원문은 '상검중비서'(嘗撿中秘書)이다.이것은 유득공이 역임한 검서관(檢書官)을 직접 지칭하는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영재집 권7에 있는 유득공의 서문에도 '궁중 도서를 많이 읽었다'[頗讀中秘書]란 구절이 나타나므로,본문처럼 해석하였다.
3.원문은 '태씨'(太氏)라 하였는데,태와 대는 서로 통용하여 쓴다.그렇지만,발해왕은 대씨였고,멸망 후에 고려로 들어온 후손은 태씨라 부르고 있으므로,이를 구별하여 쓸 필요가 있다.
4.속말수(粟末水)는 제2송화강을 가리킨다.송화강(松花江)은 크게 북쪽으로 흐르는 부분과 동족으로 흐르는 부분으로 나뉘는데,앞부분을 북류(北流)송화강 도는 제 2 송화강이라 부르고,뒷부분을 동류(東流)송화강 또는 제 1 송화강이라 부른다.
5.혼동강(混同江)은 시대에 따라 지칭 대상이 다른데,여기서는 송화강을 이른다.
6.남경 남해부의 위치를 성해응은 함흥 일대로 비정하였다.(연경재전집외집 제1 354쪽 참조)남관 지방은 지금의 함경남도 일대,북관 지방은 함경북도 일대를 가리키는데,숙종실록 숙종 30년 5월 임자에 "남관의 북청 거산과 북관의 경성 수성(輸城)"을 지적한 데에서 알 수 있다.
7.동경 책성부는 동경 용원부를 말한다.성해응은 이 곳을 육진(六鎭)즉 지금의 함경북도 북부 지역에 비정하였다.
8.이 곳을 성해응은 강계 폐사군(廢四郡) 지역에 비정하였다.
9.이 곳은 실제로 양자강과 회수의 남쪽 일대이다.(자치통감 권 201, 당 고종 총장 2년 4월 참조)
10.한서 권94하,흉노전에 실린 양웅(揚雄)의 상서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흉논느 천서이 사납고 신체가 강건하여 체력과 호기를 자부하기 때문에,선으로 교화하기가 어렵고 쉽게 악에 빠져든다."[外國天性忿鷙,形容魁健,負力怙氣,難化以善,易肄以惡.]
11.가탐(賈,730~805)은 당나라 사람으로 793년에 재상의 지위에 올랐다.그는 외국에서 온 사신이나 먼 곳에서 온 사람을 만나면 꼭 그곳의 지리를 물어,801년에 마침내 해내화이도(海內華夷圖)와 고금군국현도사이술(古今郡國縣道四夷述) 40권을 저술하였다.이 가운데,외국의 교통로에 대한 서술이 신당서 지리지에 실려 있고,발해와 당나라 사이의 교통로에 중요 정보도 이 곳에 포함되어 있다.
12.군국지(郡國志)는 가탐이 지은 고금군국현도사이술을 가리킨다.
13.탈탈(脫脫,1314~1355)은 원나라 사람으로,1341년에 우승상(右丞相)이 되어 정치를 일신하고 송사 요사 금사를 지어 당시에 현명한 재상으로 칭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