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브라 궁전(아랍어)은 아랍어 말 그대로 "붉다"라는 뜻을 지닌 궁전과 성곽의 복합단지이다. 스페인 남부의 그라나다 지역에서 머물던 아랍 군주의 저택이었던 곳으로 그라나다 시의 남동쪽 경계에 있다. 현재에는 이슬람 건축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르네상스식 건물이 카를로스 1세 때 추가되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우리말로는 알함브라 궁전이라고 쓰는 경우가 많지만 알함브라는 영문 식으로 그냥 읽는 경우이다. 아랍어가 스페인어로 굳어져서 쓰이고 있는 Alhambra라는 이름은 스페인어에서 h가 묵음이므로 "알람브라"라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우리말로 옮겼을 때 공식명칭은 알함브라 궁전이 아닌 알람브라 궁전이다. 서북서, 동남동의 방향으로 건물이 뻗어 있으며 전체 면적은 142,000 m²이다. 견고하게 쌓아진 벽이 있으며 주위에는 13개의 타워가 있다. 다로 강이 흘러가며 깊은 골짜기를 이루며 그라나다 지역을 양분한다. 아사비카 계곡이 있으며 주위에는 알람브라 공원이 남서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무어 인 출신의 시인들은 궁전을 "에메랄드 속의 진주"라고 표현하였다. 건물의 반짝이는 광채와 고급스러운 배경 때문이었다. 여름에는 꽃과 잔디가 자라나며 대개 장미와 오렌지 나무 등 자민족이 좋아하는 작물을 많이 심었다. 그러나 1812년 웰리턴 공작이 영국산 느릅나무를 비롯한 다수의 종을 들여오게 되었다. 공원 주위에는 유럽산 지빠귓새인 나이팅게일이 노래하며 분수대가 많이 있다. 대부분의 건물은 폐쇄적인 건축을 지양하여 작은 전각도 중앙을 향해 드러나도록 하고 있다. 외부는 언덕의 굴곡을 없애어 평평하게 하도록 하였고 대신 내부에는 웅장함을 가미하기 위해 고도 차이를 이용하였다. 내부에는 대리석 기둥과 아치 형의 건물이 나타나기도 한다. 투명하게 드러나는 천정도 볼거리이다. 따라서 햇빛과 바람이 자유롭게 통하고 전체 공간을 밝고 우아하게 한다. 파란, 빨강, 금빛 노란색이 잘 어우러져 있어 시간과 빛의 노출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마음은 늘 지중해와 대서양 넘어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로 향하곤 했다. 19세기 초 이 곳을 침략했던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피레네 산맥을 넘으면 아프리카다고 말했다. 중세 때 무어인(이슬람교를 믿던 북아프리카인)에게 수백년간 지배를 받았고 이슬람 문화에다 아랍인의 피까지 섞인 스페인을 나폴레옹은 끝내 유럽국가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기독교도의 국토탈환운동(레콘키스타)으로 마지막 거점이던 그라나다가 1492년 함락되면서 스페인 땅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500년이 지난 지금도 스페인을 지배했던 화려한 이슬람 문화의 흔적은 그라나다와 세비야를 중심으로 한 안달루시아(태양이 빛나는 땅이란 뜻) 지방에 그대로 남아 있다. 12세기 모로코의 모하드 왕조가 성인(聖人) 모하메드를 추모하기 위해 로마신전 터에 대리석과 벽돌을 사용해 97.5m의 하랄다를 축조했으나 1234년 기독교도가 세비야를 함락한 뒤 이 탑 위에 하늘의 영광을 나타내는 고딕식의 지붕을 만들었다. 천연의 요새 그라나다의 깎아지른 벼랑 위에 세워져 있다. 당시 이슬람 왕이었던 모하메드 13세는 이 왕궁을 완공하면서 사랑하는 백성들이여! 너희가 살아서 지상의 천국을 보게 될 것이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불과 10년 뒤인 1492년 기독교도에 쫓겨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넘으면서 스페인을 잃은 것은 아깝지 않지만 알함브라를 다시 볼 수 없는 것이 원통하다고 눈물을 흘렸다. 이곳은 훗날 통한의 언덕으로 이름지어졌다.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매표소 앞 광장은 이른 아침부터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가 1984년 이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한 이후 안달루시아 주정부는 시설보호 차원에서 입장객 수를 하루 980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입장료는 1100페세타(약 9000원). 안내원 가르시아 페트로(35)는 입장료가 다소 비싸긴 하지만 비싼 만큼의 볼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국 땅에 꽃핀 선조의 문화를 감상하면서 감회에 젖는 모습이었다. 터키에서 역사학을 공부한다는 압둘라 하메드(23)는 이슬람 국가에서는 전쟁과 근대화의 물결에 밀려 문화재가 크게 훼손된 반면 오히려 기독교 국가인 스페인이 이슬람 문화를 이렇게 잘 보존하고 있는 데 놀랐다고 말했다. 수도 마드리드에는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슬람 문화센터가 건설됐고 스페인 전역에는 300개 이상의 이슬람 사원(모스크)이 들어섰다. 그라나다에서는 이슬람교도들이 학교와 신문사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이슬람 열풍이 불면서 가톨릭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한 사람만 최근 2만5000명이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서구사회가 이슬람의 과학성과 예술성을 무시한 채 부정적인 면만을 강조해 온 데 대한 반성과 이슬람 문화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진정한 문명간 화해는 문화와 인종에 대한 편견을 버리는 데서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타레가는 근대 기타연주법의 틀을 완성한 전설적인 기타리스트로서, 제자인 콘차 부인을 사랑하게 됩니다. 알함브라 궁전은 스페인의 대표적인 유적지의 하나이지만, 원래 건물을 세운 것은 이슬람인들입니다. 발달한 이슬람의 중세문명은 732년부터 1492년까지 약 8세기 동안 지금의 스페인 영토를 포함한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했습니다. 반면 이슬람의 문화, 기술, 산업 수준은 세계 최고의 수준이었습니다. 알함브라 궁전은 그 중에서도 이슬람 문화의 최고 결정체, 이슬람 건축의 최고 걸작이라는 평판을 받는 곳입니다. 건물의 세공도 뛰어나지만, 곳곳의 연못이나 분수로 꾸며진 정원이 대단히 아름다워, 달빛이라도 비치면 최고의 장관을 연출한다고 하더군요. 콘차 부인을 생각하며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작곡했다고 합니다. 일설에 따르면 타레가의 부름에 콘차 부인이 이 궁전에서 타레가와 하루밤을 함께 보냈다고도 합니다 영어명 스페인(Spain)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면적 50만 4782㎢. 인구 4021만 7400명(2003). 이베리아반도의 약 4/5를 차지하며, 북동쪽으로는 프랑스·안도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포르투갈과 국경이 닿아 있다. 북쪽으로는 대서양, 남동쪽으로는 지중해에 면해 있다. 수도는 마드리드. |
출처: 마음에고향 원문보기 글쓴이: 옛날에금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