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뜨기 창원에 갔었네요. 한 달에 한 번 어리바리 밤길 절절 매며...
어젯밤에는 저의 절친이랑 그곳에서 만나 같이 의령으로 오자고 약속이 되었습니다.
예상 시간보다 이른 저녁 8시 40분쯤에 약속장소에 갈 수 있었지요.
친구가 있다고 한 곳은 한마음병원 근처. 상남동이라고 합니다.
네비를 치니 꼴랑 3분 거리. 신호등 세 개쯤 통과하니 한마음 병원이 보입니다.
어디엔가 차를 세워야 해서 남들 주차해놓은 근처 길 가에 눈치껏 세웠습니다.
거리엔 가게들이 붐볐고 불빛들이 그 아래 모인 사람들을 반기느라 덩달아 바쁜 모습이었습니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리는데, 촌뜨기 티날까봐 괜히 어색했습니다.
창원을 서울로 착각한 세포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너는 서울 가면 죽었어..
친구와 저는 만나면 입이 아프지도 않게 서너시간 족히 보내는 사이 답게
차에서 내린지 1분 만에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화들짝 만납니다.
한마음 병원 근처란 정보만으로도 그 많은 사람들 제치고 서로를 얼른 찾아내는 사이.
더듬어 어디에 있냐고 여러번 수신호 하지 않아도 되는 이 간편한 사이.. 절친 사이 맞지요.
이 절친이랑 사흘 못만났더니 반가워 죽을 것만 같습니다.
친구는 회식이 있어 약간 쩔어 있었습니다. 절친이 쩔친이 되니 살짝 취하고 싶어집니다.
술을 잘 안마시는 청정코가 그 노천에서도 소주 냄새를 금방 알아내는 거 보니 청정도 그리 좋은 건 아니었네요.
원래의 저였다면 거기서 얌전히 친구 모시고 집으로 바로 와야 하는데, 그날따라 낯선 행성에 발을 디딘 기분이 남달랐는지
이 불빛 휘황한 거리에서 커피한잔 하고 가자고 친구를 유혹했습니다.
친구는 전혀 취하지 않은 듯 발음을 정확하게 하려 노력하였지만 제 귀에는 흘러 떨어지는 미세한 끝음들이 들렸습니다.
우하하 너무 우스웠습니다.
우리는 상남동 거리를 걸었지요.
20대를 보고 어려 보인다고 하면 저도 나이를 먹은 거지요? 아무리 봐도 어린 애들이 너무 많습니다.
물론 어떡하든 방황의 흉내를 내고싶은 4, 50대 수컷들도 많았습니다.
촌뜨기 커피숍 찾는데 보이는 건물들은 모두 커다란 음식점과 술집 간판들.
익숙한 의령의 조용한 커피숍이 생각나고 있었습니다.
커피는 고요하게 마시는 게 좋은데, 이곳에선 그런 맛이 안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는 한참을 걸었습니다. 몇 개의 덩어리 건물을 지나고 몇 개의 골목을 지나도 그 흔한 커피집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팔짱끼고 얘기하다 놓친 것인지, 정말 이곳엔 술집 뿐인지...
결국 길거리 떡볶이집 아줌마한테 물었습니다. 길 건너편에 꽉 찼다는군요.
겨우 천사의 날개를 붙잡았지만 커피는 딴전이고 시원하게 보이는 음료를 그림보고 주문하였네요.
거기 앉으니 다리가 아팠을 친구 걱정이 됩니다.
운동화로 성큼성큼 걷는 저에 비해 구두를 신고 졸졸졸졸 따라 다녔던 친구의 다리가 참 수고했겠을 겁니다.
약 20여분, 어수선해서 간소하게 마시고 나와야 했습니다.
어느덧 집으로 가야 할 시간. 슬슬 차가 어디에 있는지 걱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우리가 1분만에 만나는 사이라면 차도 그렇게 찾을 것이라고 제법 낙관적인 운명론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천사의 날개를 버리고 상남동 원주민처럼 걸어다녀 보아도 우리 차가 어디에 있는지 감감하기만 합니다.
하긴, 얘기하는 맛에 찾아헤맨 정도는 아니고 둘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게 더 맞겠네요.
둘이 한 마음과 같으니 한마음병원 찾는 건 식은죽 먹기라고 근거없이 믿기도 했지요.
그러나 어젯밤엔 전국 어디에 살아도 길치인 제가 많이도 아니고 약~간 취한 제 친구의 길라잡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세상 살다보니...
결국 지나가는 행인에게 느닷없이 물어가며 한마음 앞에 도착했습니다.
한 시간 전의 모습 그대로 차가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집에서 찾는 물건 중 가장 흔한 것이 핸드폰과 리모컨이라면, 그때의 차가 리모컨쯤 되었을까요.
핸드폰이야 소리를 내지만 리모컨은 이불을 다 뒤져야 나오니, 소리도 없이 가만히 있는 차 하나 찾느라 상남동 골목 다 뒤진 꼴이었습니다.
저와 친구 역시 한마음답게 동서남북 위치 감각도 똑 같음을 알았습니다.
그래도 저보다 창원 많이 다닌 친구가 그렇게 헤매어 주니, 묘하게 길치 자부심 살아나는 거 있죠.
친구와 함께 하니 길을 헤매어도 기쁘기만 했습니다. 덕분에 동네 구경 잘 했지요.
헤어지기 아쉬워 골목길 몇 바퀴 도는 아이들처럼 그렇게 몇 바퀴 도심을 돌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늦은 밤 11시에 도착. 익숙한 공기 맡으며 즐겁게 헤어졌지요.
요즘 시대 마지막 헤어짐의 인사는 카톡으로 하지요.
'웃으며 잘자'
첫댓글 미갱이 하고 헤맸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