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의 서울 도심산행이다.
한양도성 순성길에다 백사실계곡을 더해서 시간과 거리를 맞춘다.
한양도성은 조선의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선을 따라 태조때 내4산(북악 낙산 남산 인왕)의
능선 위로 축조한 18.6km로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랬동안(514년) 그 기능을 수행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순성길6코스는 인왕산구간으로 서쪽의 돈의문(터)에서 서북쪽 창의문까지 4km다.
인왕산을 오르기 전 몇군데 들러 볼 장소가 있다.
돈의문터는 태조때 도성의 서대문으로 세웠지만 세종때 새로 건축하여 새문 혹은 신문으로 불려져
현재의 신문로 새문안 등의 유래가 되었다.
돈의문터 오른쪽에 돈의문박물관마을이 있고 왼쪽 병원 내부에 경교장이 있는데 그냥 통과한다.
월암공원을 지나기 위해 도로 옆 산책길로 들어선다.
작곡가 홍난파 선생이 살던 1930년대 서양식 가옥이 잘 보존되어 있다.
도로를 따라 사작터널 위로 지나면 도원수 권율 장군의 집터와 수령 500년이 가까운 은행나무가 있다.
이로 인해 마을이름이 행촌동이란다.
은행나무 바로 앞에 있는 깔끔한 서양식 2층집이 딜쿠샤(힌디어로 '희망의 궁전'의 뜻)인데
미국인 금광기술자이면서 UPI 서울 특파원으로 3-1운동을 세계에 알렸던 앨버트 테일러 부부가
지어서 살았던 집이다.
다시 뒤돌아 나와 사직근린공원을 경유한다.
벚꽃 매화 산수유가 봄을 일려 주고 있고 어떤 얕은 나무는 연초록 잎사귀로 치장을 하고 있다.
도로를 건너 인왕산으로 들어선다.
산성 너머 국사당 위 고깔을 쓰고 장삼을 입은 형상의 선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곡성 앞에는 눈을 부릅뜬 개구리 한마리가 부대를 지키며 산객들을 내려다 본다.
오르막 계단을 따라 들어 누운 노송 옆으로 김박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범바위를 지나 안왕산 정상이 바라 보이는 명당에서 한 컷 남기고 지나간다.
범바위에서 바라보는 인왕산 정상 참 좋다.
지나온 곡성과 범바위를 뒤돌아 본다.
아뭏든 정상 인증샷은 남기고 봐야지요.
중종반정으로 왕위에 올라 신하들에 의해 역적 신수근의 딸인 단경왕후를 폐위시키고
인왕산 아래 사가로 쫓아 내야만 했다. 하지만 왕후는 중종과의 약속을 지키기위해
51년 동안 바위에 자신의 붉은 치마를 널어 놓았고
중종도 경회루에 올라 인왕산의 붉은 치마를 보며 부인을 잊지 못했다는 전설이 있는
치마바위를 뒤돌아 본다.
하산길 성너머 홍제동 방향으로 내려가는 기차바위를 담아본다.
많이 지나 갔던 길인데 이렇게 보니 더 멋있네.
밑에서부터 여섯가지가 뻗은 육손소나무(?)를 만난다.
잠시 성 밖으로 나가면 시기별로 축성 방법이 다른 여러 형태를 관찰 할 수 있다.
윤동주가 연희전문 다닐때 하숙을 하며 거닐었던 언덕에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조성되 있고
대표작 '서시'를 세긴 시비가 있다. 잠시 꽃구경도 하며 쉬어간다.
근방의 경치가 개경의 자하동과 비슷하다하여 자하문으로 불리는 창의문이 건너다 보인다.
식사시간이다.
중국집을 생각했는데 만석이라 바로옆 부암식당으로 갔는데 모두 만족이다.
푸짐하게 배를 채우고 다시 출발이다.
갈림길인데 백석동길은 상류의 능금마을로 해서 내려가는 길이고
백석동2길은 내려가서 중간에 백석동천 바위로 가는 길이다.
오늘은 능금마을로 간다.
북악스카이웨이 P턴길 위 공원의 산수유꽃이 만개를 앞두고 있다.
내려가면 능금마을이다.
여기까지 차량이 도달할 수 있는 곳이다.
가장 도심에 있으면서 가장 두메산골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아주 희귀한 장소다.
능금나무는 관찰을 못했고 여러 농가가 밭농사를 하고 있는 곳이라고 생각이 든다.
농가 몇 집을 지나 개울을 따라 내려간다.
백사실계곡의 백미 백석동천을 만난다.
몇 년 전 왔었던 낙원이 아니다.
이곳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 당시 소일차 찾았다가 새로운 신대륙인 양 발견했다고 해서
많이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도루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좀 더 내려와 별서(별장 + 텃밭)터에 왔다.
이곳은 임진왜란때 병조판서를 지낸 백사 이항복의 별서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항복의 호와 계곡 이름이 동일)과
추사 김정희가 살았다는 기록이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는데 모두 확실한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아직 복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바람직한 방법이 나왔으면 한다.
별서터 옆 계곡도 너무 초라하다.
백사실의 맨 아래 현통사를 지난다.
현통사 문 앞 동령폭포도 너무 초라해 옛날 최고 명승지로 이름을 날렸던 '동천'의 이름이 무색하다.
신선의 경지로 들어가는 입구인 동령폭포가 왜 이렇게 됐나???
우쨌거나 모두 지나와 목적지로 간다.
세검정 두부집으로 옮겨 오늘을 마무리하고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