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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성동교회 이병석 목사의 주일 오전 설교
愛國 - 노블리스 오블리제(1)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이 다 그날에 죽었더라) 사무엘상 31:1~6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들에게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대체적으로 사울 임금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당연히 그럴 것이 성경이 사울 임금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씀..... 사울 임금은 사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입은 자다.. 사사기 마지막 시기에 베냐민 지파가 다른 11지파와 싸움! 거의 모든 남자들이 죽고 겨우 600명 정도만 살아 남았다. - 그 후손 아버지가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으러 나섰다가 뜻하지 않게 -사무엘로부터 이스라엘 임금이 될 것이라는 소리와 기름 부음을 받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에게 새 마음을 주셨고, 영을 부어 주셨다... -그 자신이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 길르앗 야베스를 침범한 암몬 사람을 칠 때 사람들이 따라 준다. / 모암, 앞몬, 에돔, 소바,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이긴다.(삼하14:47) (향하는 곳 마다 이겼다)고 했다. (삼상 14:47) / 아말렉을 치려 갈 때도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을 주신다. 그러나 그는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말씀대로 승리는 하였으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좋은 짐승들을 살려 온다... 이것으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다」 「여호와께서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 하셨더라」 그 뒤로부터 사울의 모든 행적은 부정적인 모습으로 묘사된다..... 어떻게 보면 오늘 사울이 죽은 장면에서도.....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전사하는 한 위대한 왕으로 묘사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음의 비참함, 불쌍함을 더 드러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 이 사울의 마지막 전투에서 나는? 사울의 위대함을 찾아 보고자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 사울과 요나단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노블레스 오블리주) 이다 오늘 사울이 전사하는 마지막 전투는 블레셋과의 전투이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밀려 이스라엘 군사는 갈릴리 남쪽 요단 서편 길보아산까지(얍복강과 갈릴리 하단 중간 위치) 후퇴를 하게 된다. 이 길보아 전투에서 사울과 세 아들 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아가 장렬한 전사를 한다... (성경에서는 사울의 아들 4명이 있는데 이스보셋이 하나 더 있다.) 성경에서 이렇게 왕과 그 왕의 아들들이 한 전쟁에서 한 꺼번에 죽는 경우는 없다.... 사울 임금과 사울의 3 아들들은 블레셋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그러나 사울의 힘이 약하다... 그래도 끝까지 싸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여 길보아 산에서 엎드러져 죽으니라」 적어도 이 전쟁을 평가하면 사울 임금님과 왕자들 3명은 이스라엘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끝까지 항전하다가 죽는다.. 이 전쟁에 사울 임금은 그의 아들들을 출전시킨다.... 특히 요나단은 사울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사람이라 볼 수 있다..... 사울의 입장에서는 다음의 보위를 위하여 아껴야 될 아들이다.... (하나님의 뜻은 그렇지 않지만 자기의 입장에서 볼 때.....) 그래서 자기는 어떻게 되더라도 이 아들은 출정을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사울은 자신과 3 아들이 같이 출정을 하여 전쟁을 한다... 적어도 이 부분에서 사울 임금은 한 나라의 왕으로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임금이었다... -왕의 아들이기 때문에 보호를 받아야 한다..... ⇨ 맞는 말이다... -왕의 아들이기 때문에 더 나라를 위하여 싸워야 한다.... ⇨ 맞는 말 우리나라 연속극들을 보면 자주 등장하는 말? 전하! 옥체를 보전하시옵소서!!!!! 전하! 사직을 보전하셔야 합니다!!!!! 나라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지도자들은 위기를 피하여 자신의 안위를 보존하기에 바빴다. 백성이 어려움을 당할 때 신하들은 임금을 향하여 “옥체를 보존 하시옵소서”라고 간청을 한다. 임금은 신하들의 요청에 따라 옥체를 보존하기 위하여 아무런 고민도 없이 피난의 길에 오르고 그 문제에서 제외된다. 그 피난길에「옥체를 보존 하시옵소서」라고 했던 신하들이 그 임금을 보필한다는 명분, 명목으로 자기들도 임금을 따라 피난을 간다... 결국 나라는 일반 백성들, 서민들이 일어나 싸워야 하는 비극이 계속... ⇨ 전쟁이 끝난 뒤 옥체가 보존된 임금은 다시 궁으로 돌아오고 같이 피난 갔던 신하들도 그대로 돌아와 그 자리를 차지하고 호위호식 하면서 또 그들끼리 싸운다. 싸워야 될 외세와의 싸움에서는 피난을 가 놓고 궁에 돌아와서는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가 100년 동안 지리 한 전쟁을 한다. (1339~1453년) (조선건국:1392, 세종 1418, 단종원년 1453) 이 100년 전쟁에 우리가 잘 아는「잔다르크」이야기....(오를레앙 전투1429년) 이 전쟁으로 영국은 프랑스 서부지역을 점령하여 지배한다... 이 전쟁 초기 프랑스「칼레」시민들은 영국군의 공격에 완강히 저항... 11개월 동안 버티지만 결국 1347년 「칼레 시」는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항복을 하게 된다. 화가 난 에드워드 3세는 칼레 시민 모두를 몰살시키겠다고 한다... 칼레시 대표는 에드워드 3세에게 시민들의 생명을 살려 달라고 간청을 한다.. 이에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카레 시민의 생명을 보장하는 대신, 칼레 시에서 가장 명망 있는 대표 6명이 교수형에 사용될 밧줄을 목에 걸고 맨발로 영국군 진영에 도시의 열쇠를 건넨 뒤 교수당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때 칼레에서 최고 부자인 유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가장 먼저 자원했다. 그러자 시장인 장 데르가 나서고, 이어 사업가 자크 드 위쌍, 그의 사촌 형 피에르 드 위쌍, 학자 장 드 피엥스, 앙드리에 당드리가 그리고 한 명이 더 자원하여 7명이 되었다. 7명이기 때문에 그 중에 한 명을 빼야만 했다.. 그래서 내일 아침 제일 늦게 오는 사람을 빼기로 결정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6명이 모였는데 가장 먼저 자원한 생 피에르만 나오지 않았다... 생 피에르는 자원한 사람들의 용기가 약해지지 않도록 스스로 먼저 목숨을 끊었었다.... 이들이 처형 되려는 순간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의 왕비가 자기의 임신 소식을 알리면서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보낸 편지를 받고 그 용감한 시민 6명을 살려 준다... 그로부터 550년이 지난 1895년! 칼레 시는 이들의 용기와 헌신을 기리기 위해 생 피에르의 조각상을 로댕에게 의뢰했다. 로뎅은 조각의 의뢰를 받고 10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1893년 6월 3일 제막식을 가지는데 이것이「칼레의 시민」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노블리스 오블리제!(노블레스 오블리주) 원래 노블리스 = 닭의 벼슬 오블리제 = 닭걀의 노른자 라는 뜻 두 개를 합쳐 「닭의 사명이 자기의 벼슬을 자랑함에 있지 않고 알을 낳는데 있다」.... 이것이? 노블레스(자신이 누리는 명예 만큼) 오블리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의미의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가진 자의 의무」를 뜻하는 단어로 굳어졌다.. 애국, 나라의 기본 근간에 이것이 없이는 아무리 부강한 나라라도..... 교회의 기본 근간에 이것이 없이는 아무리 큰 교회라도...... 그런데 나라에서는 이것이 무너지고 있다.......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것 같은 자들, 최 1선에 서 있는 것 같은 자들! 그런데 그들이 세금에서, 국방의 의무에서, 법을 지킴에서..... 그들이 가진 권세로, 그들이 가진 정보를 가지고,.......... 교회도? 목사로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장로로서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권사, 집사로서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먼저 은혜 받고, 포도원에 들어온 자로서의 노브리스 오블리제! 오늘 적어도 사울, 특히 그의 아들 요나단은? 나라를 위해서 그 사명을 다하고 있다...... 다음의 왕위가 자기의 것이 아니라 다윗의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