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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소실된 후 광해군 8년(1616)에 정전(正殿)인 명정전이 재건됐으나 다시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과 순조 30년(1830) 대화재로 인해 내전이 소실됐다.
순종 3년(1909)에는 일제가 이어한 순종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전각을 헐고 동물원, 식물원을 개설해 일반인들에게 관람케 하는 등 치욕의 역사도 숨어 있다. 1911년에는 일제가 궁내에 박물관을 설치하면서 동ㆍ식물원을 포함해 ‘창경원’(昌慶苑)이라 이름을 고쳐 그 격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그러다 창경궁이라는 이름과 옛 모습을 다시 찾은 것은 1983년 12월부터 1986년 8월까지 3년간 진행된 창경궁 복원공사 후다.
창경궁은 무엇보다 다른 궁에 비해 나무가 많아 산책이나 나들이 하기에도 좋다. 국립서울과학관, 종묘, 창덕궁과 연결돼 있어 연계 나들이를 즐기기에도 그만이다. 대학로가 정문인 홍화문에서 10분 거리에 있다.
관람시간 3~10월 오전 9시~오후 6시(매표마감 오후 5시, 주말 및 공휴일엔 매표마감 오후 6시, 관람 오후 7시까지) 11~2월 평일ㆍ주말 및 공휴일 관계없이 오전 9시~오후 5시30분(매표마감 오후 4시30분), 화요일 휴관
관람료 대인(19~64세) 1000원, 소인(7~18세) 500원
찾아가는 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4번 출구 300m 직진 후 횡단보도 건너 왼쪽 길로 직진
문의 (02)762-4868 cgg.cha.go.kr
식물원 지나 성종태실 가는 길이 산책로의 백미
▲ “이리오너라~” 햇살 좋은 가을날 나들이 나온 최혜영(30)ㆍ강여울(3) 모녀와 박가희(3)ㆍ이지연(32) 모녀.(왼쪽부터) |
▲ 창경궁 돌담길 모퉁이, 원남사거리엔 시원한 바닥분수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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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이용한다면 ‘창경궁’ 정류소에서 하차와 동시에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보물 제 384호)과 마주하게 된다. 들어서면 옥천교(보물 제386호)와 명정문, 명정전(국보 제226호)과 차례로 만난다.
하지만 가을 길을 따라 걷고 싶다면 옥천교를 건너 춘당지가 있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을 것. 계절을 잊은 채 여전히 푸르름을 잃지 않는 잔디밭을 지나 직진하면 창경궁 산책의 백미 춘당지와 바로 만난다. 춘당지는 원래 임금이 친히 경작하고 농사의 풍흉을 보던 권농장이라는 논이 있던 곳이었으나 1909년 일제가 일본식 정원을 꾸미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연못이다.
하지만 1986년 창경궁 복원 공사를 통해 다시 한국적 조경수법으로 조성해 놓은 곳. 능수버들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바람결에 하늘거리고 이따금 시원하게 이는 바람에 나무들이 소스라치게 놀란다. 연못에는 팔뚝만한 비단잉어가 관람객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먹느라 파닥거리는 풍경. 한적하기 그지 없는 연못 주변에는 벤치도 있지만 돌을 의자 삼아 아무렇게나 앉은 사람들이 한가롭게 담소를 나눈다.
춘당지를 한 바퀴 크게 돈 후 관덕정 방향으로 나가면 자생식물학습장이 나온다. 우리나라 산과 들에서 자라는 자생식물 100여 종을 모아 놓은 곳으로 3~4월엔 잎보다 먼저 개화하는 세계 1속1종밖에 없는 우리나라 특산종 미선나무를 구경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가을이라 꽃은 지고, 누렇게 변한 이파리들뿐이다. 자생식물원 오솔길을 따라 관덕정 방향으로 나오면 짤막한 단풍길이 나타난다. 하늘을 가리고 있는 나무는 눈치 없이 여전히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지만 땅바닥 위로는 노란 낙엽이 바람에 따라 바스락거리며 이리저리 뒹군다. 위쪽으로 오르면 집춘문이다.
하지만 현재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반대방향으로 발길을 돌리면 작은 분수가 있는 일본식 정원을 배경으로 식물원(등록문화재 제83호) 건물이 나온다. 대온실인 식물원 정문 앞에는 반송 두 그루가 있는 힘껏 줄기를 뻗고 있다. 1909년 준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식물원이자 건축 당시 한국 최대의 목조구조 식물원이었지만 역시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것. 식물원 안에는 가운데 인공연못 주변으로 분재나 난 등과 함께 팔손이나무 등 자생목본류가 전시돼 있다.
▲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는 춘당지. |
식물원을 나와 일부러 돌아가고 싶다면 왼쪽 길을 따라 오르자. 식물원 뒷길에는 주먹만한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가 숨어 있다. 뒷길을 따라 내려오면 창경궁 산책로 중 가장 고즈넉한 길을 만나게 된다. 초입이라 할 수 있는 식물원 오른쪽편에는 소나무 두 그루가 세월의 힘을 못 이기고 지지대의 도움을 받아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다. 성종태실비 방향으로 가는 산책로는 수목원의 삼림욕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나무와 풀이 울창하다.
흙길은 발걸음 소리조차 머금어 조용하다. 호젓함의 묘미를 진정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왼쪽으로는 춘당지가, 오른쪽으로는 아름드리나무가 친구가 되어준다. 새소리, 물소리, 풀소리가 모든 시름을 잊게 만든다. 세월의 풍파를 견뎌온 300년 느티나무도 이 길 위에 있다. 흙길 오솔길이 끝나면 시멘트길이 이어진다. 직진하면 명정전 방향, 오른쪽으로 난 구릉지의 좁다란 오솔길로 오르면 성종태실이 나온다. 이왕이면 성종태실 방향을 택해보자.
짧게나마 등산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구릉지 언덕에는 성종태실이 기다리고 있다. 성종태실(成宗胎室)은 말 그대로 성종의 태를 묻은 석실이다. 내려와 직진하면 조선왕궁 법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평가받는 명정전이, 오른쪽 길로 오르면 조선시대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측정했다는 풍기대(보물 제846호)가 있다. 해시계인 앙부일구(보물 제845호)도 구경할 수 있다. 길을 따라 다시 오른쪽으로 돌면 통명전 뒷길로 가는 길이지만 현재 보수공사 중이다. 대신 양화당 계단으로 내려가자.
통명전(보물 제 818호)은 숙종 때 장희빈이 이 일대 흉물을 묻어 인현왕후를 저주하다 사약을 받은 곳으로 유명하다. 창경궁 내에서 유일하게 신발을 벗고 올라가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다. 경춘전은 정조가 태어나고 인현왕후 민씨가 승하한 곳이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은 문정전도 빼놓을 수 없는 관람코스다. 숭문당 뒷길 따라 심심한 길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