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아사히계 / 도에이 / 2000.1~2001.1 / 컬러 TV 시리즈 / 전 49화 / 출연 : 오다기리 죠, 카츠라야마 신고, 무라타 카즈미, 나나모리 미에
서기 2000년, 일본의 어느 오지에서 고대의 미이라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조사대가 미이라의 몸에 손을 대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괴인이 조사대를 전멸시키고 모습을 감춘다. 비슷한 시기, 사람들의 웃는 얼굴을 보기 위해서 1999가지의 기술을 몸에 익힌 청년 모험가 고다이 유스케는 갑자기 기묘한 괴인의 환상을 보기 시작하는데, 그때 나가노에 나타난 거미 괴인이 차례로 사람들을 해치기 시작하고, 누군가의 부름에 이끌린 듯 고대 전사의 벨트를 장착한 고다이는 고대의 전사 = 쿠우가로 변신하여 괴인과 싸운다. 하지만 경찰은 그런 고다이를 '미확인 생명체 4호'라 부르며 괴인들의 동료라고 생각하는데, 유일하게 진상을 알고 있는 열혈 형사 이치조와 고다이의 기나긴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이 ‘가면라이더 쿠우가’는 당초에는 ‘가디언’이라는 이름으로 도에이에서 오래 전부터 기획되었던 우주 SF 기획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러나 당시의 도에이는 ‘스타워즈’ 풍의 대작을 지향했던 이 기획을 TV 시리즈로 제작할 만큼의 여유가 없었고, 그 때문에 이 ‘가디언’ 기획은 보다 호러 분위기를 강조한 ‘오티스’로 바뀌었지만 히어로 작품으로서의 상업성과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결국 햇빛을 보지 못하고 어둠 속에 묻혀버리게 된다. 그러던 것이 이시노모리 쇼타로 사후 새로운 ‘가면라이더’ 작품을 제작하려는 움직임을 계기로, 이미 폐안이 되어있던 여러가지 히어로 기획들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게 되는데, 그 중 '가면라이더'의 분위기와 가장 근접해 있던 ‘오티스’의 기획에, 이시노모리 프로에서 대량의 디자인 작업을 거쳐 선별된 새로운 라이더의 디자인을 결합하고, 거기에 반다이 개발부의 여러가지 시도들이 합쳐져서 탄생한 것이 바로 이 ‘가면라이더 쿠우가’라는 작품이다.
당시의 도에이 스탭들은 ‘가면라이더 블랙 RX’의 제작과정을 통해 왜 도에이의 간판 히어로가 가면라이더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었고, 이것이 그들에게 오리지널 히어로 ‘가디언’을 만들게 한 원인이기도 했지만, 일단 ‘가면라이더’ 신작의 제작이 결정된 시점에서 그들은 ‘가면라이더’를 다시 원점부터 재검토한 끝에 예전 시리즈의 철저한 해체와 분석, 그리고 재구성을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그들이 특히 힘을 기울였던 것은, 당시 한참 속편이 제작되고 있었던 예전의 히트작들 중에, 어째서 ‘고지라’나, ‘스타워즈 에피소드 1’은 예전의 인기를 잃고 졸작이라는 오명을 써야 했는지, 그리고 ‘가메라’, ‘배트맨’의 신작들은 어째서 예전에 버금가는 성공을 얻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분석이었다. 그 결과 그들은, 각각 도호라는 영화사의 폐쇄적 구조와 조지 루카스라는 개인의 한계 덕분에 언제까지나 예전 작품의 그늘 아래에 묶여있을 수 밖에 없었던 ‘고지라’와 ‘스타워즈’와는 달리, ‘울트라맨’과 ’가메라’ 의 신작에서는 과거의 팬들이 대거 제작에 참가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반영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이 ‘가면라이더 쿠우가’에서는 지금까지 금과옥조처럼 지켜져왔던 ‘가면라이더’의 전형성에서 의도적으로 탈피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기본적으로 예전의 가면라이더와 쿠우가의 가장 큰 차이는 ‘개조인간’이냐 아니냐는 것인데, 예전의 가면라이더들은 비록 몸은 개조되었어도 일단 그 사실을 납득하고 받아들이면 어느정도 긍정적으로 세상을 보며 살아갈 수 있었고, 또한 어떤 경우에라도 '뇌'만큼은 본래의 인간 그대로였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정체성만큼은 잃지 않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쿠우가는, 비록 개조인간은 아니지만 '라이더'가 된 시점에서 이미 인간과는 다른 존재로 변해버렸다는 점은 역대 라이더들과 다를 바 없었고, 그 변화도 한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투를 통해 그 파워가 증대될수록 점점 인간과는 다른 존재로 변해가는 공포와 싸우지 않으면 안되는 더 큰 핸디캡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이 극한에 이르면 자신의 인격마저도 파괴당할 수 있다는 공포의 궁극점의 존재는, 이 '가면라이더 쿠우가'라는 작품에 지금까지의 라이더들이 가지고 있던 개조인간의 비애 이상의 비극성을 부여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스탭들은 그러한 비극성을 등진 가면라이더 쿠우가 = 고다이 유스케를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 있는 이상적인 히어로 상으로서 그려내려고 했는데, 개인적인 원한이나 복수심이 아니라 보다 큰 대의명분을 추구하는 히어로이자, 추상적인 ‘정의’ 대신에 보다 구체적인 가치인 타인의 ‘웃는 얼굴’을 위해 싸우는 숭고한 마음을 가진 히어로의 모습은, 작위적인 비극성을 등지고 폭력을 미화하는 공상세계의 히어로들보다는 오히려 타인의 웃는 얼굴을 보기 위해 자신의 웃는 얼굴을 희생하면서 묵묵히 살아가는 현실사회의 진짜 히어로들의 모습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작품 속에서의 쿠우가 = 고다이는, 자신의 그런 이상을 ‘꿈 같은 얘기’로 치부해버리는 사람들을 향해서, 사실은 그런 ‘꿈 같은 얘기’가 더 좋은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현실적인 어려움만을 보고 계속 뒷걸음치다가 결국은 자기 자신밖에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인간들보다는, 그런 꿈 같은 일을 실현하기 위해 한발한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더 멋지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정말 ‘꿈 같은 얘기’로만 들리는 고다이 유스케의 이러한 신념은, 특촬작품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은 각본가 아라카와 나루히사의 뛰어난 시나리오와, 고다이역을 맡은 오다기리 죠의 탁월한 연기력을 통해 강렬한 설득력을 얻으면서, 많은 시청자들에게 가슴으로 와닿는 감동을 전해줄 수 있었다.
이 ‘가면라이더 쿠우가’의 또 한 명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이치조 카오루 형사는, 원래는 초대 가면라이더 혼고 다케시와 FBI 수사관 타키 카즈야의 관계를 본딴 설정에 여성팬들을 노리고 보이즈 러브의 취향까지 다소 곁들인 특이한 캐릭터인데, 이지적인 인물인척 하면서도 사실은 고다이 이상의 뜨거운 마음으로 정의를 위해서 사지로 뛰어들고, 그러면서도 ‘보통 인간’이라는 한계 때문에 언제나 시청자들을 아슬아슬하게 만드는 그 모습은 고다이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서 여성팬들을 매료시켰다.
그리고 이 작품은 ‘가면라이더’ 시리즈에서는 보기 드물게 현실적인 경찰조직의 활약을 그렸던 것도 특필할만한데, 스탭들은 과거에 만들어졌던 전대시리즈의 경험을 살려, 거기에 등장하는 박사나 방위조직의 역할을 해체, 재구성하여 경찰이나 기타 협력자들에게 분산시키는 연출방법을 도입했다. 쉽게 말하자면, 실은 전대 시리즈의 기본 패턴을 조금 더 리얼하게 바꾼 것이 ‘쿠우가’에서 보여주는 인간관계의 기본적 구조였던 것이다.
하지만 ‘쿠우가’는 거기에서만 그치지 않고, 기왕 현실의 경찰조직을 등장시킨 이상, 2000년의 현대 일본에 정말로 괴인이 나타난다면 과연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에 대한 시뮬레이션적 요소도 도입하였다. 갑자기 발생한 비상사태에 대한 경찰의 단계적인 대응방법과 더불어, 현실세계라면 괴인들과 마찬가지로 이형(異形)의 존재인 가면라이더 역시 괴인들과 같은 부류로 취급될지도 모른다는 가정과, ‘가면라이더’라는 히어로의 존재를 현실세계에서 그렇게 간단히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냉정한 분석은, 누구보다도 숭고한 희생의 정신을 가지고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쿠우가’의 싸움을, 일반인들은 단순히 괴인들 사이의 내부 분열로 치부하고 있다는 극히 냉소적인 묘사로 이어졌다.
실제로 이 ‘쿠우가’는 작품 중에서는 한번도 ‘가면라이더’라고 불리지 못하고, 괴인들과 마찬가지로 ‘미확인생명체 4호’로 분류되면서 끝까지 ‘히어로’의 자리에는 오르지 못하고 마는데, 이러한 묘사는 자칫 히어로 작품으로서의 상업적인 기반을 허물어뜨릴 수 있는 마이너스적 요소가 될 수도 있었지만, 이 ‘쿠우가’는 ‘변신’, ‘오토바이’ 등 가면라이더로서의 최소한의 상업적 정체성을 지키고 있으면서, 이를 ‘블랙 RX’나 ‘울트라맨 티가’ 등과 마찬가지로 상황에 따라 다채로운 모습으로 변화하는 ‘초변신’이나, 서포트 메카와 변형합체하는 오토바이인 ‘트라이 고우람’ 등의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시키며 가까스로 상업작품으로서의 경계선을 지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제 쿠우가의 적인 그롱기 괴인들을 설명하자면, 이들은 지금까지의 가면라이더에 등장했던 것과 같은 어떤 목적의식을 가진 거대 비밀결사가 아니라, 자신들의 쾌락을 위해 게임의 법칙에 따라 살육을 거듭하는 고대의 초인종족으로 그려져 있다. 이들은 변신능력뿐만이 아니라 현대인들을 훨씬 능가하는 높은 지성과 적응력을 가지고 있는 고등종족이면서도, 그 존재이유를 오직 살육의 쾌락에서 찾고 있는 무시무시한 존재들이기도 하다.
독자적인 언어인 그롱기어를 사용하고, 자신들 나름대로의 규칙은 철저하게 지키면서도 타 종족에 대해서는 일절 관용과 타협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그들 그롱기의 생태는 기본적으로 인간과 전혀 다를 바 없으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그롱기들에게는 ‘인간체’의 모습이 부여되어 기존 라이더의 괴인들 이상으로 ‘인간적’인 면이 강조되어 있다. 그들은 자신들 이외의 다른 생명을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쾌락을 위한 도구로서 밖에 보지 않으며, 그들을 움직이는 가장 큰 원동력은 다름아닌 다른 존재 위에 서고자 하는 승부욕이었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그들 그롱기의 실체는 바로 너무나 많은 능력을 손에 넣은 나머지, 극단적으로 비대화된 인간의 암흑면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그롱기의 설정은 단순한 세계관 설정의 차원을 넘어 연출상으로도 세심하게 계산되어있는 측면이 강한데, ‘게임의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그롱기의 행동양식은 지금까지는 그냥 히어로 장르의 약속으로서만 받아들여지고 있던 사항, 곧 왜 괴인들이 한번에 한 명씩 밖에 행동하지 않는지, 그리고 어째서 나중에 등장하는 괴인들일수록 더 강한 것인지에 대한 설득력을 부여해 주는데 성공하였으며, 기본적으로 인간과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인간과 다른 사고방식에 따라 움직이는 그롱기의 알 수 없는 행동은, 작품의 괴기성과 미스터리성을 부각시키며 그 실체를 알고자 하는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극하는데도 성공하였다.
마지막으로 특촬 작품으로서의 ‘가면라이더 쿠우가’에 대해서 살펴보자면, TV 특촬 작품 중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되었던 하이비전 촬영이 우선 눈에 띄는데, 이 하이비전 화면은 시대극 제작 스탭에게서 ‘가발 자국까지 다 보인다’라는 불평을 살 정도의 높은 해상도를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눈속임이 필수적인 특촬 작품에는 적합하지 않은 방식처럼 보였다.
하지만 도에이는 최고의 기술을 도입하여 하이비전 화면에 걸맞는 리얼한 특촬 장면을 만들어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지금까지의 라이더 작품들과는 달리 트램폴린 액션이나 와이어를 사용하지 않은 전투신은 이전 작품에 비해 상당히 밋밋하게 보이기는 했지만, 일본 최고 수준의 오토바이 전문가를 기용한 과감한 오토바이 스턴트나, 단 한번의 전투를 위해 교회 건물 하나를 지었다가 다 태워버렸다는 일화, 그리고 단 5분 남짓한 마지막 장면을 위해 가면라이더 사상 최초로 해외 로케이션까지 시도한 이야기 등은 이제는 거의 업계의 전설로서 남아있을 정도이다.
‘쿠우가’의 에피소드 하나하나는 기본적으로 전후편의 2부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쿠우가’가 괴인과 라이더와의 사투를 그리는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 뒤편에서 벌어지는 인간사의 여러가지 문제를 함께 보여주고 이를 극복하는 드라마를 함께 그려냄으로써, 쿠우가 = 고다이는 단순히 악을 쓰러뜨리기만 하는 폭력적인 히어로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진정한 히어로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던 스탭의 생각이 반영된 결과였다.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드디어 자신의 의지로 궁극의 폭력을 제어하는데 성공한 쿠우가와, 그 폭력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긴 그롱기의 수장 다구바의 전투를 보여준다. 하지만 히어로 작품의 마지막 전투다운 카타르시스는 간데없이,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두 사람의 주먹과 주먹이 맞부딪치는 처절한 싸움으로 일관하는 이 ‘최후의 대결’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미화되는 폭력의 실상이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폭력을 휘두르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의 심정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거친 수법을 통해 직접적으로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이 히어로에 대해서 가지는 모든 낭만적 환상을 완전히 배제시키는 한편, 결국 폭력이 낳는 것은 끝없는 공허감과, 불쾌감 밖에 없다는 사실을 시청자들에게 깊이 인식시켰다.
모든 싸움이 끝나고, 결국 쿠우가 = 고다이는 소중한 사람들의 곁을 떠나 싸움 속에서 잃어버린 자신의 웃는 얼굴을 되찾기 위한 먼 여행에 나선다. 하지만 그가 목숨을 걸고 지켜낸 소중한 사람들은, 비록 고다이가 없을지라도 그가 남겨준 웃음을 항상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쿠우가'의 싸움을 지켜보면서 진정한 영웅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에게 있어서 정말 소중한 것이란 무엇인지를 배운 우리들 시청자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