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류시화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 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 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
<부레옥잠화>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릴 때 /이외수
온 생애를 바쳐서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은 부지기수지만
온 생애을 바쳐서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내 마음이
우주와 같은 크기를 가지고 있다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아무리 멀리 떠난 사랑도
우주와 같은 크기의 마음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당연히 그 안에 간직될 수 밖에 없지요
사랑은 소유할 수는 없지만 간직할 수는 있습니다.
-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릴 때> 중에서-
통일전망대에서 / 兄山/김용오
원흉이 바로 너였구나
내가 왜 밤마다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한반도 같은 웅크린 모
습으로 선잠을 잘 수 밖에 없었는지 한평생 심한 통증의 허리
를 욱신욱신 어루만지며 내가 왜 빨간 눈의 외로운 토끼처럼 이
렇게 덧없이 혼자 살고 있는지
_ 길게 그어놓은 저 우라질 원수같은 녹슨 금 하나
물에 대하여 1 / 구재기
물은 언제나 하나가 된다
크고 작은 줄기도 하나를 이룬다
어두운 하늘에서
갈기갈기 찢겨진 채로 지상에 내려와서는
문득 끊기듯 어두운 땅속으로 스며들었다가
지상의 밝음으로 나오면 하나가 된다
줄기 하나를 이룬다
물은 하나로만 흐른다
골짜기 작은 몸을 점점점 불리다가
가람이 되고, 마침내 한 바다를 만든다
지상에서 가장 맑고 큰 물이 된다
유럽의 라인, 아메리카의 아마죤도
아프리카의 나일, 아시아의 황하도
모두 다 하나된 물이다
제각기 다른 이름으로
일정한 거리로 놓여진 5대양 6대주
그 물도 한줄기, 하나로 이어진다
지상의 거대한 빛의 바다, 물이 된다
너와 나 사이
일정한 거리로 흐르는 눈물
그 눈물도 물이다. 한 줄기로 흐르고
흐르다 보면 하나의 사랑이 된다
지상에서 가장 크고 맑은 물
오직 거대한 하나, 그 바다, 사랑이 된다
* 도서관 문학서재에서
이름 모르는 풀꽃까지 /글.사진/이춘우
계절마다 무수히 고운 꽃이 피건만
이름 모르는 풀꽃까지 아름답다
어렸을 적엔
길섶의 코스모스나 들국화
화단에 심은 채송화, 분꽃
텃밭에 돋아난 채소꽃
교과서에 나오는 몇 몇 꽃이름 정도만 알았다
그 후
향 좋은 꽃
모양 좋은 꽃
향도 모양도 다 좋은 꽃들을 많이 보아왔다
차츰 나이 더할수록
이쁘고 향이 진한 꽃보다
모양은 빼어나지 않더라도
향이 은은하거나
오솔길 언덕에서 호젓이 핀
이름 모르는 풀꽃에 정감을 느끼게 되었다
소외되거나 덜 알려진 풀꽃에서
살아온 세월의 흔적같은 교감이
더 진하게 느껴지기 때문일까
홀로 산길을 거닐 적엔.
*블로그*
<안개 속의 물봉선화>
*** 나무의 꿈 ***/박정필
북풍에
피엉들어도
바위처럼 말이 없다
하얀 추위 속
발목을 묻고
숨죽여 뛰는 맥박
초록빛 향기
꿈을 꾸며
우듬지에서
내일의 눈을 비빈다.
* 시인들의 산책*
<모싯대꽃>
꽃 비 / 김송배
어디선가
본 듯도 한
젖은 눈썹
빛바랜
비밀 한 자락 어리인
바람결로
조심스레 사랑을 풀어
언젠가 들어본 듯도 한
광기의 역설
허허로운 잔디 위
그대 미소로
지금사 흐르는
가냘픈 향내
아아,
비로소 눈뜨는
비로소 수줍은.
*시인들의 산책* 중에서
<안개 속의 동자꽃>
당신을 믿습니다 /배미향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은 잘 해낼 거예요.
힘을 주고 용기를 얻는 건, 언제나 그런 작은 마음이었습니다.
더 나아지겠다는 다짐도, 더 잘하겠다는 열정도,
잘 해낼 거라고 믿어준 당신의 흔들림 없는
눈빛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고비들을 넘겨 원하는 결승점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 《쉬면서, 길에게 길을 묻다》중에서 -
迎瑞堂記 1 - 선비의 고향 / 소하 이종웅
바람도 잠을 자지 않는 빈 섬이 있네
내내 옷 깃 여미어
수척해진 섬이 있네
가즈런히 모 두어
사랑만을 엮어내는
풀빛 마을이 잠자는 섬
대 바람에 할퀴어 상채기난 붉은 지조는
수 백년을 버티어 밤 바람 소리를 듣네
일어나라고 하네
상혼에 베이는 떡 잎의 아픔으로
일어나라고 하네
빈 섬이 있네
풀빛 마을이 잠자는 섬
정신의 칼을 갈고 있는
가즈런 하게
迎瑞堂:
전남 담양군 창평면 장화리에 있는 필자의 고향.
이곳에서 선대 대대로 글을 읽으셨다
* 산다는 것은 결국 빈손 흔드는 일이었구나 *
*시인들의 산책*
<쇠별꽃 과 봄까치>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생각이 /오규원
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는 것을, 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밤 1시와 2시의 틈 사이로
밤 1시와 2시의 공상의 틈 사이로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할말 없어 돌아누워 두 눈을 멀뚱하고 있으면,
내 젖은 몸을 안고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잘못 사는 방법도 방법이라고
악마 같은 밤이 나를 속인다.
<산당화 ;동백의 축소판)>
맛깔나 민조/ 신세훈
꽃잎이 흐르는 시
창호지의 얼
겨레혼 달밝은.
*경북의성,
*1962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당선
*한국문협이사장 ,자유문학대표.
*시집 ;꼭둑각시의 춤, 3,4,5,6, 조 외
<당아욱꽃>
기다리면 별이 된단다 /김기만
기다리면 별이 된단다
슬픔 한조각으로 배를 채우고
오늘은 쓸쓸한 편지라도 쓰자
사랑하면서 보낸 시간보다
외로웠던 시간이 많았을까
그대 뒷모습
동백꽃잎처럼 진하게
문신되어 반짝이는 내 가슴 구석
노을이 진다 슬프도록
살아서 살아서 슬픈
추억 한줌으로 남아 있는 사랑을 위해
눈 감는 저녁 하늘 속에
별 하나가 흔들린다
사람의 뒷모습엔 온통 그리움뿐인데
바람이나 잡고
다시 물어 볼까, 그대
왜 사랑은
함께한 시간보다
돌아서서 그리운 날이 많았는지...
* 출처블로그 ;하늘에 걸어둔 내사랑.
<붉은 인동초꽃>
書道 /오소후
나는 몰랐다 이 세상에 이런 이름의 마을이 있는 줄을
구부렁길을 따라 아랫몰 중뜸 원뜸으로
청호저수지 검푸른 물을 찍어 쓴 천추만세락향 이야기
다시 현학의 가무스름한 깃에 드는 길
염천에도 서늘한 기운은 매안에서 내린 걸까
노적봉에서 혼이 아득히 찾아 오는 걸까
먼 곳의 향기가 물결을 접고 화르르 미루나무 잎새소리
분명히 그녀는 나투어 오고 있음에
기운이 살아 있으면 죽은 것이 아닌 이 어른
가도 가도 못 가는 길이라서 운궁타고 둘러 보시는거다
이 세상에 거멍골 근심바우 안 품은 사람 없으니
검은 근심은 흘려보내 금지들 가방들의 거름이거라
죽어서도 산 사람 그녀의 기혈에 또 한 혼불이 타고
나도 오늘 여기서 나의 결혈을 찾아 솔씨를 심는다
청태 입은 바위 아래 출렁이는 물결 굽어보는 적송
한 그루 용자를 꿈꾸는 신목이나 영목으로 살아갈 혼을
요천수에 떠있는 요요한 별이어도 좋다
호성암 저녘 종소리로 가앙강 울어도 좋다
나는 몰랐다 이 세상에 이런 이름의 길이 있는 줄을
혼불을 밝힌 혼이 또 한 혼불을 불붙이는 길이 있는 줄을
* 시인들의 산책* 중에서
<금꿩의 다리>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 도 종환
성내는 일은 폭풍이 몰아치는 것과 같아서
상대방도 나도 다 날려버린다.
허공 한가운데로 들어 올렸다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는 일이다.
둘 다 다치고 부러진 마음을 안고
절룩거리며 살게 된다.
치유되는 기간이 오래 가기도 하고
겉으로 보기엔 치유된 것 같아도
상처의 기억을 지우지 못하며 사는 때도 많다.
미워하지 않음으로써 미움을 넘어서고,
분노하지 않음으로써 불길로 나를 태우지 않으며,
욕하고 비난하지 않음으로써
내가 먼저 쓰러지지 않고,
원망하지 않음으로써 원망을 극복하고,
성내지 않음으로써 상처받지 않는 일은
상대방도 나도 죽이는 일에서 벗어나
나도 살리고
상대방도 살게 하는 일이다.
좋은생각 ( 2004 )중에서
<천일홍>
무명초 /김솔아
그대는 분명
함성의 불빛이었어.
천상을 열어주는 축제의 문이었어.
잠긴 어둠을 풀어
천리 밖에서 내 마음 끓어 당기는
이름 모를 꽃
진정
그리움에 녹아내리는 향수였어.
민감한 이 마음 깊이 자극하는
오-그대 향기와 눈 맞춤은-
*시인들의 산책*
<3000년에 1번 핀다는 우담바라꽃>
추억 하나 있었느니/이일향
날빛에 이슬같은
무지개같은
순간.
일렁이는 파도같은
그 순간도 있었느니
아련하 되돌아드는
돛배 하나
있었느니.
*국제펜클럽본부이사, 한국문협 이사역임
*한국시조시인, 한국여성문학인회이사.
*시조시집 ;세월의 숲속에 서서, 밀물과 썰물 외.
- 春風-봄바람 불어-
글 그림 / 雲谷 강장원
山村에
봄이 들어
아침안개 휘감는다
산 빛은
여지없이
紫色으로 물이 들어
또다시
설레는 가슴
임 그리운 봄 바람
*시인들의 산책*
<자목련>
목련꽃 피는 봄날에/용혜원
봄 햇살에 간지럼 타
웃음보가 터진 듯
피어나는 목련꽃 앞에
그대가 서면
금방이라도 얼굴이
더 밝아질 것만 같습니다
삶을 살아가며
가장 행복한 모습 그대로
피어나는 이 꽃을
그대에게 한아름�
선물할 수는 없지만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기쁨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봄날은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아름답기에
꽃들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활짝 피어나는 목련꽃들이
그대 마음에
웃음 보따리를
한아름 선물합니다
목련꽃 피어나는 거리를
그대와 함께 걸으면 행복합니다
우리들의 사랑도 함께
피어나기 때문입니다
<등꽃>
이 세상에서 가장 넉넉한 집 /이광석
이 세상에서 가장 넉넉한 집은
당신 마음속에 들앉은
생각의 집이다
대문도 울타리도 문패도 없는
한 점 허공 같은
강물 같은 그런 집이다
불안도 조바심도 짜증도 억새밭
가을 햇살처럼 저들끼리 사이좋게 뒹굴 줄 안다
아무리 달세 단칸방에서
거실 달린 독채집으로 이사를 가도
마음은 늘 하얀 서리 베고
누운 겨울 들판처럼 허전하다
마침내 32평 아파트
열쇠 꾸러미를 움켜쥐어도
마음은 아파트 뒤켠
두어 평 남새 밭 만큼도 넉넉지 못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분양 받기 힘든 집은
마음 편안한
무욕의 집이다
그런 집에서 당신과 함께 살고 싶다
때묻고 구김살 많은 잡념들은
손빨래로 헹구어 내고 누군가가
수시로 찌르고 간 아픈 상처들도
너와 나의
업으로 보듬고 살자 어쩌랴
나의 안에 하루 하루 평수를
늘려가는 고독의 무게
지워도 지워도
우리 삶의 인터넷 속에 무시로 뜨는
저 허망의 푸른 그늘을
이젠 고독밖에 더 남지 않은
쓸쓸한 비밀 구좌 모두모두 열고
좋은 생각으로 버무린
희디흰 채나물에 고집스런 된장찌개가
끓는 밥상 앞에 당신과 마주앉아
따스한 얘기를 젓가락질 하고 싶다
<구름패랭이>
새 새벽하늘로/정경혜
아무도 휘젓지 않은
첫새벽
하늘문 아직 닫혔다.
꽃향기 ,
마음밭에
심으려고 두 손 모은다.
흐느끼듯 열리는
하늘곡조속으로
내 목소리를 풀어올린다.
*경남합천
*1992 문예사조 시조 신인상
*한국문협, 크리스천 문학가협 이사.대신문인회
*시집 ; '나목 외.
<꿩의비름>
분꽃이 피면 /해봉 변재열
하나 둘 셋
셈하여도
잠이 오지 않는다.
눈 비비고 돌아누우면
시골집 뜨락
해질녘에 지는 분꽃
분꽃의 눈물이 보인다.
파르르 떨며
초승달이 떨어져 내리고
꽃잎 마다 꽃잎 마다
갈증(渴症)
어머니는 가시고
우리들만 남아
일제히 울먹이는 상(床)
향 지피던 눈망울이
가셔지지 않는다.
분꽃이 피면.
분꽃이 피면.
*시인들의 산책*
<금낭화>
매화나무 /황 금 찬
봄은 언제나 그렇듯이
늙고 병든 매화나무에도
찾아 왔었다.
말라가던
가지에도 매화 몇 송이
피어났다.
물 오른
버드나무 가지에
새파란 생명의 잎이
솟아나고 있다.
반갑고
온혜로운 봄이여
늙은 매화나무는
독백하고.
같은 봄이지만
나는 젊어가는데
매화나무는 늙어가네
버드나무의 발림이다.
가을이 없고
봄만 오기에
즈믄 해를
젊은 줄만 알았다네 -.
<뻐꾹나리>
꽃 사설(辭說)/조 한 나
그의 기억 속에
나에 대한 것은 남아 있지 않아
그가 내 곁을 스쳐지나거나
아니면 나를 불러 세울 용기가 그에게 전혀 없어
목청껏 소리내어 내 이름을 부르지 못하더라도
나는 언제나 그의 곁을
그 두터운 침묵의 한 켠을
얼마의 빛깔과 몇 움큼의 향기로
소담스럽게 장식해줄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
때로는 소금기라고는 전혀 없는 일상의 대화로
어느 날은 기억의 한 켠을 채우고 자라는
이런저런 말들
무수히 둔덕진 무료함을 적시며
강이 되어, 아니 바람이 되어
우리 사이에 벼랑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여전히 충만한 사랑
생각하면 그까짓 아픔쯤이야
한낱 집착에 지나지 않은 것임을
형체조차 없는 빈 그림자임을
내 왜 모르겠는가
노을빛 머금고
어둠의 한가운데로
잦아드는 물살과 같은 것인데
나는 오늘도 배를 만들어
눈 닿지 않는 곳
그 어느 아득한 숲 속으로
내 모든 것들을 유배 보내고
그의 곁으로
한 발 한 발 다가가고 있다.
* 《빛깔과 한 움큼의 향기》 시집
<솔나리>
4월의 빛 / 이 충 이
- 부활절에
물 위로 폭포처럼 쏟아지는 4월의 아침을
보았다 저 만큼 흐르는 물살은
예감처럼 반짝인다 지금
물오른 물푸레나무는 멀지 않은 곳에서
하부의 뿌리를 일으킨다
기어코 고로쇠나무가 옆구리를 터트리고
난 다음 웃자란 보리는 하루가 멀다하고
4월의 빛으로 덮인다
저 붉은 4월의 비명 뒤에 서서
우리는 휩쓸리고 여전히
어딘 가로 가는 지 모른다
우리의 작심과 상관없이 허우적이는
강물은 그래도 4월의 빛 속에
살아있다 그가 다 이루었다고
말했던 그 때도
귀먹은 자들은 알아듣지 못하고
깨우치지 못 했으므로 되묻지 못했다
그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그러나 우리는
사려 깊지 못한 순간을
후회하지 못한 채 이로 말미암아
온전해질 수 없다고 악을 쓴다
지상에 무릎 꿇는 4월의 저녁을 지나
붉은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난다
이제 우리는 남겨진 빈 무덤을
모른다고 말을 바꿀 수 있는지
가슴 무너지는 것들을 하나씩 제자리에
일으켜 세우면서 어둠이
일어서지 못 하는 새벽에 다시 살아
무덤 밖에 걸어나와 서 있는 그 사람
눈뜨고 보지 못하는 우리는
이 시대의 어둠에서
4월의 빛을 알지 못한 채
비굴하게 눈을 밑으로 내리고 입을 내민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가 뭐라 우기든
할 일 하는 자들처럼 구두끈을 묶으며
빛나는 4월의 아침으로 간다
*시인들의 산책*
<잔대>
나와 넌 색이었다/彩雲
色`
빛에 의해 알아볼 수 있는 色`
나와 넌`
색이었다
나의 신비로운 역설의 생을 본다
진리를 담고있는 선악의 과일을 따 먹은 하와처럼
마주치고 싶지 않은 시간처럼 나의 그림자를 본다
내 영혼의 색
사막을 통과하는 햇살처럼 고통스러움을 본다
내 욕구는 나를 비우며 신을 닮게하는 겨울이었고
고통은 치유될 수 있는 나의 가을이었다
성찰은 사막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여름이어야 했고
봄을 만나는 새싹이어야했다
그대와 햇살과 같은 열정은
기다림의 봄처럼 순간 짜릿했고 슬픔의 통증처럼 나의 가슴을 물들였다
그대와 나의 봄앞에 와 있는 시간의 빛`
다시 첫입맞춤처럼 닿아 가슴에 가슴을 포개리라
갈망이 가슴에 촉촉히 젖어
햇살같은 미소에 기대어 진한 하늘보며 지혜의 떨림으로
봄같은 포옹하리라
내 안에
그대 안에
슬픔도 날아가는 하늘에
가녀린 날개를 가진 새처럼 아픔없이 날으리라
*채운의 블로그*
<둥굴레 꽃과 열매>
만리장성, 까치집 /안정환
만리장성은 사람이 만든 장난감이지
백두산 天池 본 다음날이니 더욱 그렇지
오랑캐 막아서 살아난 사람보단
성 쌓느라 죽은 사람 더 많았다지
옛날엔 군사용 높은 성벽이었겠지만
비행기 미사일 날아다니는 지금엔 난센스지
이런 생각하며 하산하는 리프트카 창밖으로
산기슭 전신주 위에 앉힌 성 하나 보았지
까치 부부가 새끼들 까 품고 살겠다고
스스로 사랑과 정성과 삭정이로 쌓은……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고 넘보지도 않는
정말로 튼튼한 만리장성 하나 보았지.
*시인들의 산책*
<가시연꽃>
흙/진영학
흙속엔
生命과
人生
그리고 歷史가 숨쉬고 있다
비록 交感하지만
알 수 없는 것처럼
*시인들의 산책*
<산삼꽃>
비밀을 사랑할거다 /신현림
몹시 사고 싶던 새 옷도
사고 나면 어느새 시시해지고 만다.
뭐든 그렇다.
갖고 싶은 것을 다 갖거나,
감춰진 것이 탄로나면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다 보여주지 말고 다 알려고 들지 말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알아도 모르는 체할 줄 안다면
삶은 매력적이고 육감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연애도 그렇다.
다 보여주지 말고 다 주지 말아야
그 연애가 오래간다.
- 《희망의 누드》 중에서 -
*시인들의 산책*
<바위꽃>
***이 끼 ***/ 안초근
빛으로 빛으로만 발돋움하는
나무들 발치에서도
동동대며 바지런하지
진홍빛 꽃들에 짓밟힐 때도
툭툭 털고 일어나
웃으면 그뿐
언제나 그늘진 뒷전에서
그늘은 그늘만한
초록빛 언어로 도란거린다.
*시인들의 산책* 중에서
<유주>
아카시아/ 김미하
이 향은 어디서 오는 걸까
누굴 찾아 가다가
내게 잠시 머물다 가는가
언젠가 보았던
꽃을 매달은 초승달
내 작은 창으로
꽃잎을 따먹는 동생들과
가위 바위 보로
벌겋게 부운 이마를 한
어린 내 모습도 따라 들어온다
그들과 함께
꽃향기와 오월의 하얀 밤을 지킨다
*시인들의 산책*
<달걀버섯>
집시/ 임 애 월
노래 없는 노래 찾아
사랑 없는 사랑 찾아
자유 없는 자유 찾아
길 없는 길을 찾아
더 이상 얻을 것도 없고
더 이상 버릴 것도 없이
스스로 바람이 되는 일
스스로 길이 되는 일
* 시인들의 산책*
<노랑망태버섯>
비가 전하는 말 / 이해인
밤새
길을 찾는 꿈을 꾸다가
빗소리에 잠이 깨었네
물길 사이로 트이는 아침
어디서 한 마리 새가 날아와
나를 부르네
만남보다 이별을 먼저 배워
나보다 더 자유로운 새는
작은 욕심도 줄이라고
정든 땅을 떠나
힘차게 날아오르라고
나를 향해 곱게 눈을 흘기네
아침을 가르는
하얀 빗줄기도
내 가슴에 빗금을 그으며
전하는 말
진정 아름다운 삶이란
떨어져 내리는 아픔을
끝까지 견뎌내는 겸손이라고 ㅡ
오늘은 나도 이야기하려네
함께 사는 삶이란 힘들어도
서로의 다름을 견디면서
서로를 적셔주는 기쁨이라고 ㅡ
<수박박풀 꽃>
바람이 바람에게 전하는 말/ 강승도
까닭없는 바람으로
내 안에서
바람이 인다.
신혼초야 춘정에 몸부림치듯
일어서는 불꽃같은 향기
영혼의 창가 흔들며
옷깃을 스치는 미동에도 들썩이는
한가닥 바람으로
고비 사막의 낙타 울음보다
기다림에 목메인 생의 절규는
내 안에서 나를 향해 불지르는 광풍이다
아! 어쩌지 못해
길 아닌 길위에서 헤매다가
별똥별의 운명처럼
아득한 숨소리 그치는 그 곳은
어디서 와 어디로 가는가?
자문자답에 흔들리는 방랑자의 몸짓이여
그리움 여무는 내안에
의문 부호로 다가와
쉼 없이 세속의 설레임 남겨놓고서
봄날엔 꽃빛으로 가을엔 낙엽처럼
한 잎 사위는 인연 이듯
허허로운 벌판 ,휘몰이하다가 쓰러지듯
내 안에서 내 안으로
가슴치는 바람.
*시인들의 산책*
<미역줄나무>
생명의 서(書)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리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빗물 속의 차 한잔 / 조유금
어느 누가 봄은 꽃들의 눈물로 시작된다 했을까.
지금도 ,체온처럼 젖어드는 빗물 속에서
초작 초작 걸어간다.
벚꽃지는 거리를
눈발처럼 휘날리던 꽃잎, 꽃잎들
밤새 우산도 없이 빗속을 걸으며
끝간데 없는 약속도
못내 그리운 것은
그대 식어버린 찻잔 속에서
스냅사진처럼 짧게 각인을 한다.
*시인들의 산책*
<개쑥부쟁이>
*** 자화상 ***/ 이길원
놈은
가슴 속에 칼날 하나 감추고 있다
누군가 달려들면 내려칠 칼날을
놈은 날마다 칼날을 간다
날이 시퍼렇게 서도록
나를 보호해 줄건 이 것뿐이라며
갈고 또 간다
그러다가도
정작 휘둘러야 될 때가 되면
정말 휘둘러야 하는데
차마 차마 망서리다가
제 가슴이나 후비며
자상이나 입히는
써보지 못하는 칼날 하나
숨기고 산다
한 번에 한 사람 / 마더 데레사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 선이 없는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작은새처럼
금이 없는 바다를 향해 날아가는 갈매기처럼 ***
<시인들의 산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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