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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의 빛이라(요 8:12)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폭염과 무더위로 인하여 길고 긴 여름을 보내고,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는 이제 살만한 세상을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추운 겨울이 찾아와버렸습니다. 왔다는 인사말조차도 제대로 못 들었는데, 간다는 인사말마저도 제대로 듣지 못한 채, 이렇게 서운함과 아쉬움을 가득 안고, 가을을 떠나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겨울이 너무 일찍 찾아와버렸습니다. 그래도 아직, 10월의 들판은 추수하지 않는 벼로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습니다. 노란 국화꽃도 보기에 좋지만, 들녘에 그대로 남아 있는 황금물결도 보기에 아주 좋습니다.
이스라엘의 명절 중에 초막절이 있는데, 일년의 모든 추수가 끝난 다음, 한 주간 동안 계속되어지는데, 광야로 나가 초막을 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한 때를 기념하고, 가을 농작물을 수확한 기쁨을 함께 나누는 느긋하고, 풍요로운 축제입니다.
이 기간 중에 성전 앞 뜰에는 마치 올림픽 성화대처럼, 높은 대가 세워지고, 그 위에 불이 피워졌습니다. 그 불빛은 예루살렘 온 도시를 환하게 비추었는데, 그 빛이 얼마나 밝았는지, 예루살렘의 여인들이, 그 불빛 아래에서, 바느질을 했다고 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불꽃축제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초막절에 그렇게 불을 밝게 밝히고, 축제를 벌린 까닭이 있는데, 출애굽 당시에,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주셨던 것을 기념하려는데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바로 이 초막절 기간입니다. 흥겨운 축제가 끝나가고, 이제 밝게 타올라, 온 예루살렘을 환하게 밝혔던 불도 하나둘 꺼져가는 때에,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고달프고 험한 광야 길을 앞서 인도하셨습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 27:1) 그리고,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삼하 22:29)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 굴곡진 삶을 살아왔던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등불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 700년 전에 활동했던 이사야 선지자도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사 9:2)라고 선포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의 광야길을 걸어가야만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기둥이 비치었던 것처럼,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처럼, 흑암에 행하던 백성들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들에게 밝은 빛이 비치었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는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눅 1:79)라고 말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빛이 비치고, 그들의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는 빛에 대하여 예언을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오시기 전,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빛으로 오실 주님에 대하여, 예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 그대로, 우리 주님은 이 땅에 오셨고, 어둠과 죽음의 그늘 아래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흑암과 그늘진 땅에서 살아가는 자들에게, “나는 세상의 빛이라”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살아 계셨을 때,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3년 동안 따라다녔던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요일 1:5)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빛”이라는 말은 “생명의 빛”이라는 말입니다.
가을 들녘에 누렇게 익어가는 벼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빛이 적당하게 비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가 있습니다. 수확할 때에, 비가 많이 와, 벼가 물에 잠기면, 그 한 해의 수확을 망치게 됩니다. 벼를 수확할 때에는 적당한 햇빛이 내려야 합니다.
저번에 열렸던 서울불꽃축제는 영상으로 보기에도 아주 화려했습니다. 그 불꽃 축제를 보기 위하여, 백만 명 이상이 한강에 모여,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불꽃축제가 아무리 찬란하고, 화려하고, 밝아도, 그 불꽃은 금세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불꽃축제는 순간적인 아름다움이요, 화려함입니다. 순간적으로, 우리의 눈을 황홀하게 만들었다가 곧 꺼져버릴 불꽃입니다. 그렇게 불꽃 축제는 끝났습니다. 우리의 과거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꺼져버린 불꽃을 다시 보겠노라고 한강을 찾아, 어둔 밤하늘을 마냥 바라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떻습니까? 세상이 밝다고 여기시나요. 아니면, 어둠이 깊어졌다고 여기십니까? 계절적으로, 낮의 해가 너무 일찍 지고 있습니다. 어둠이 빨리 찾아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현상황을 “침몰하는 난파선”이라고 표현하며, 어제 서울 도심에선 촛불집회가 열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 촛불로 과연 세상을 밝힐 수 있겠습니까? 어느 누구나, 보다 더 밝은 세상을 간절하게 원했지만, 알 수 없는 어둠이 계속되어지고 있습니다. 이 어둠이 언제쯤 사라지게 될까요? 사람이 바뀌고, 정부가 바뀐다고,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이 어둠이 쉽게 걷히게 될까요? 우리가 지금 듣고 보고 있는 것들은 과연 진짜일까요?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여러분! 아시다시피, 예상하지 못한 노벨문학상이 발표되어, 그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인터넷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이번 노벨문학상이 발표되고서, 가장 기쁜 것은 문학상을 수상한 글의 원문을 번역없이 직접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해에는 노벨문학상을 비롯하여, 다른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들의 이름도 모르고 지나갔지만, 올해에는 알 수도 있는 이름, 쉽게 잊어지지 않는 이름, “한강”이기에, 서점에 간 김에, 그녀의 책을 한 권 사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가기 전에는 뉴스 등에서, 그녀의 책을 구하기 위하여,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고, 그녀의 책을 구하기가 힘들다고 했는데, 막상 서점에 갔더니, 사람들의 눈이 가장 잘 가는 곳, 이쪽 저쪽에 수십권이 쌓여 있는 반면에, 그녀의 책을 들여다보거나 찾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이름이 알려져 있는 큰 서점임에도 불구하고, 한산했습니다. 벌써 독서의 열풍이 사라진 것일까요? 애초부터 없었던 것일까요?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누구에게 속고 있는지 모를 그런 어둠의 세상이 와 버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찬송가 554장 가사입니다.
종소리 크게 울려라 저 묵은 해가 가는데 옛 것은 울려 보내고 새 것을 맞아들이자
시기와 분쟁 옛생각 모두 다 울려 보내고 순결한 삶과 새 맘을 다 함께 맞아들이자
그 흉한 질병 고통과 또 한이 없는 탐욕과 전쟁은 울려 보내고 평화를 맞아들이자
기쁨과 넓은 사랑과 참 자유 행복 누리게 이 땅의 어둠 보내고 주 예수 맞아들이자
이 찬송가 554장을 작사한 영국의 시인인 테니슨이 친구와 함께 정원을 거닐 때, 친구가 테니슨에게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나?”
테니슨은 말없이 한참을 걷다가, 아름다운 꽃 앞에 서서, 마침내 입을 열었습니다.
“여보게,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이 꽃과 태양과의 관계와 같다네. 이 꽃은 태양 빛이 없으면 시들시들 죽고 말 것이네. 태양 빛이 없다면 이 꽃은 살 수도 없고, 꽃을 피울 수도 없는 것처럼, 나도 의의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없으면 영원히 죽고 말 것일세.”
그렇습니다. 모든 생물들은 빛을 통해서 생명을 얻습니다. 빛이 없으면, 미생물이나 식물, 동물들의 모든 생명 활동은 중단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 활동은 빛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빛은 우리에게 풍성한 생명을 가져다줍니다. 빛은 모든 생물이 자라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입니다. 빛은 생명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단순한 생명 원리는 영적인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세상의 빛 되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생명을 얻게 됩니다. 반면에, 빛 되신 예수님을 떠나면, 생명을 잃게 됩니다.
세상의 빛 되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어둠을 벗어나 밝은 빛 가운데에서, 자유와 평화와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빛 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과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3:16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요, 생명의 빛이십니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어둠을 벗어나 밝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빛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40년 동안, 아무것도 없는 막막한 광야 생활을 할 때, 그들 곁에 항상 있었던 것은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다녔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백성들의 진영 위에 멈추면, 그들은 행군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몇 날이 지나든지, 몇 달이 지나든지, 그냥 무작정 기다렸습니다.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움직이면, 그들도 전진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순종했습니다. 여기에 우리 인생의 해답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기둥과 구름 기둥을 따라 40년 광야생활을 안전하게 마쳤던 것처럼, 우리도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승리의 비결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항상 우리와 동행하여 주시고,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때로 우리가 살면서 어찌 해야 될지 잘 모를 때, 주님은 이미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여 주시고,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삶의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빛 되신 주님만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빛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생명의 길로 안전하게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시고,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생명의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엘리자 에드먼즈 히윗(1851-1920)은 대학을 졸업한 후, 학교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더불어, 교회학교 사역과 청소년 사역에 관심을 갖고, 탈선한 청소년을 도와 선도하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37세 되던 어느 겨울, 자신이 돌보던 소년이 지붕 위에서 슬레이트(기왓장)를 던진 것이 등에 맞아 중상을 입었습니다. 7개월 동안이나, 병상에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처음 몇 달 동안, 그녀는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증오심 때문에, 고통스러웠습니다.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에게 이처럼 못된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슬레이트를 던진 아이가 미웠고, 그런 일을 겪게 하시는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치미는 분노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마음을 괴롭혔습니다. 몸만 아픈 것이 아니라, 마음도 아팠습니다. 우울한 나날은 병원생활이 감옥처럼 여겨지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병실을 청소하던 흑인 소녀를 만났습니다. 그 아이는 궂은일을 하면서도, 환하게 웃으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녀는 그 소녀에게 “너는 무엇이 그리 즐거워, 이렇게 기쁘게 찬송을 부르니?”라고 물었습니다.
그 소녀는 “우리 주님이 저의 형편을 모두 아시니, 저는 사는 것이 즐거워요. 그러니 노래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구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그 믿음이 연약했음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녀를 십자가의 보혈로 해방시키셨으나, 그녀는 자기 스스로를 마음의 감옥에 가둔 죄수였던 것입니다. 분노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하며 살아왔던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그때 쓴 찬송가가 바로 찬송가 370장입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내 주는 자비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주시네
후렴: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뿐만 아니라, 그녀는 찬송가 428장 가사를 썼습니다.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주 영광 찬란해. 이 세상 어떤 빛보다 이 빛 더 빛나네.
내 영혼에 희락이 있고 큰 소망 넘치네. 주 예수 복을 주시고 또 내려 주시네.
주의 영광 빛난 그 빛, 내게 비춰 주시옵소서. 그 밝은 얼굴 뵈올 때 나의 영혼 기쁘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 우리 영혼의 햇빛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면,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빼앗아 갈 수 없는 기쁨과 평강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 13:12)라고 말했습니다.
온 세상에, 어둠이 걷히기 보다는 점점 더 깊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점점 더 그 깊은 어둠 속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어둠에서 벗어나, 밝은 빛 가운데로 나와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오직 해만 바라보는 해바라기처럼, 우리는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주바라기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앞으로는 더욱더 빛 되신 주님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빛은 주님이십니다. 빛 되신 주님으로부터 풍성한 생명을 얻고, 언제나 생명의 길로 인도함을 받아, 영원한 기쁨으로 살아가는 복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주님,
우리와 항상 함께 하여 주시고, 우리의 길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고,
우리를 지켜 보호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온 세상이 어두울수록 빛으로 오신 주님만을 바라보겠습니다.
우리의 손을 주님의 능력의 손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가는 길을 밝은 빛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